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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캘리니코스 논평:
갈림길에 선 베네수엘라 - 정부 관료 vs 거리의 대중

“조국과 사회주의가 아니면 죽음을!” 2006년 12월 베네수엘라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한 우고 차베스가 지난해 1월 취임식에서 맹세한 말이다.

이런 맹세에 비춰보면, 지난주 차베스가 ‘볼리바르식 혁명’의 속도를 늦추겠다고 선언한 것은 심히 우려스럽다. 지난주에 차베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진군 속도를 늦출 수밖에 없다. 올해는 3R, 즉 수정(Revision)·교정(Rectifi cacion)·재출발(Reimpulso)의 해가 될 것이다.” 이 말은 차베스 정부가 추진한 개헌안이 지난해 12월 국민투표에서 패배한 뒤에 나온 말이다.

미국의 부시 정부를 반대하고 자본주의의 대안을 주창해 온 차베스는 신자유주의와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해 왔다. 차베스가 부르짖은 ‘21세기 사회주의’는 옛 소련 붕괴 이후 자본주의가 유일한 대안처럼 보였던 시기가 끝났음을 알리는 듯했다.

그러나 차베스의 처지는 항상 모순적이었다. 2002년 4월 우익들이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차베스를 권좌에서 끌어내리고 살해하려 했을 때 그를 구해 준 것은 카라카스 빈민들이었다. 카라카스 빈민들이 대통령궁을 에워싸고 쿠데타 세력으로 하여금 차베스를 석방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차베스는 여전히 자본주의 사회관계가 우세한 경제를 관장하고 있고 부패와 억압으로 얼룩져 있는 관료적 국가의 수반이다. 그래서 그의 정책들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이끌린다.

차베스는 베네수엘라의 막대한 석유 수익을 이용해 사회 개혁을 추진함으로써 자신의 지지 기반을 유지하려 해 왔다. 볼리바르식 서클이나 각종 미션[사회복지 프로그램] 등의 기구들은 기층 활동가들을 결속시키는 한편 그들이 대통령의 구상을 지지하도록 동원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과 베네수엘라 소수 특권층의 반발에 부딪힌 차베스와 차베스의 동맹 세력들은 국가 기구의 권력을 강화하고 국가 기구에 대한 자신들의 통제력을 강화하려고 했다. 최근 차베스 정부는 이 후자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정부를 지지하는 대중 정당 ― 베네수엘라 통합사회주의당(이하 PSUV) ― 창설은 대중의 지지를 끌어내고 동원하기 위한 상명하달식 조처였다. 차베스가 추진한 개헌안에는 훌륭한 개혁들도 많았지만, 차베스의 대통령 연임 제한을 폐지하고 차베스가 포고령으로 통치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조항들도 포함돼 있었다.

불만

사실, 개헌 국민투표 결과는 우익의 진정한 승리가 아니었다. 개헌 반대표는 2006년 대선에서 패배한 우익 후보가 얻은 표보다 겨우 20만 표 많았을 뿐이다. 진정한 문제는 개헌 찬성표가 차베스의 대선 득표수보다 3백만 표나 적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PSUV 가입을 신청한 5백50만 명 가운데 1백20만 명이 자신들의 지도자가 제안한 개헌안에 찬성하지 않았다.

베네수엘라 정부의 경제 고문인 스테파니 블랑켄부르크(Stephanie Blanken burg)〈뉴 스테이츠먼〉(New States man)[영국의 좌파 주간지]에 쓴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12월 2일 국민투표 결과의 본질은 ‘거리의 차비스타[차베스 지지 세력]’가 ‘차비스타 엘리트’에게 보내는 항의였다.” 식품 부족, 물가오름세, 정부의 부패에 대한 대중의 불만이 국민투표에서 차베스 지지 기반의 대규모 이탈로 나타난 것이다.

차베스의 유턴은 이런 불만을 수용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차베스는 범죄와 식품 부족 문제에 대처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런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려면 혁명적 과정의 속도를 늦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속해야 한다.

식품 부족과 물가오름세에 대처하려면 민간 자본의 경제적 지배력을 분쇄해야 한다. 부패를 뿌리뽑으려면 기존 국가 기구를 해체하고 이를 민중권력 기관들로 대체해야 한다.

살바도르 아옌데

그러나 차베스는 정반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는 2002년 쿠데타 주모자들을 사면하고, 대기업들과 친한 군장교 라몬 카리살레스를 부통령으로 임명했다.

이것은 1972~73년 칠레의 좌파 민중연합 정부에서 일어났던 일을 떠올리게 만드는 위험한 조처다. 당시 칠레에서는 미국 닉슨 정부가 후원한 우익들이 점차 공세를 강화하자 노동자들이 이에 맞서 독자적 방어 기구인 코르돈[cordones: 대공장들을 연결한 노동자 위원회]을 건설했다.

그러나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는 노동자들의 이런 자주적 행동을 억누르고 우익과의 타협을 추구했다. 그 결과로 노동자들의 사기가 떨어지자 우익들이 자신감을 얻어 1973년 9월 11일 군사 쿠데타를 감행했다. 그 쿠데타로 아옌데를 비롯해 수많은 좌파 투사들이 목숨을 잃어야 했다.

베네수엘라의 상황이 아직 그 정도까지 이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차베스의 후퇴는 ‘볼리바르식 혁명’이 지금껏 가장 위험한 순간에 이르렀음을 보여 준다.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런던대학교 킹스칼리지 교수이고,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 중앙위원이다. 국내 번역된 주요 저서로는 《칼 맑스의 혁명적 사상》(책갈피)과 《미국의 세계 제패 전략》(책갈피) 등이 있다.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오는 1월 20일 ‘라틴아메리카의 새로운 좌파 정부들’을 주제로 방한 강연할 예정이다. 19일에도 ‘2008년 세계경제와 정세’에 대해 강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