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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에 대한 당 입장은 강령 정신을 위반했는가?
미국 책임 우선적 비판은 옳았다

심상정 비대위의 북핵 관련 ‘평가·혁신안’은 핵실험 논란 당시 평등파의 주장에 기초해 있는 듯하다. 그때 평등파는 미국 책임론에 강조점을 둬서는 안 되고 미국과 북한의 핵실험에 대해 “등가의 비판”을 해야 한다는 일종의 공평무사 양비론이었고, 진정한 강조점은 북핵 반대에 있었다.

그래서 “현재의 상황에 대한 근본 책임은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에 있다”는 최고위원회 입장에 대해서도 탐탁해 하지 않았고, 미국을 비난하기보다는 북한을 규탄하고 선을 긋는 데 더 관심을 기울였다.

물론 진보는 원칙적으로 북한 핵을 포함한 모든 핵무기에 반대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북한이 세계 평화 또는 동북아 평화의 위협 세력이라는 미국과 남한 정부의 위선에 부하뇌동해서는 안 된다. 미국은 2002년 북한을 이라크·이란과 함께 “악의 축”으로 규정해 위협했고,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한 것은 이런 위협의 직접적 결과였기 때문이다.

부시 정부는 전술핵 무기의 사용을 공언해 왔고, 북한도 그 대상국이었다. 부시 정부는 9.11 테러 몇 달 뒤 의회에 제출한 〈핵태세보고서〉에서 북한을 미국의 잠재적인 핵 공격 목표로 지정했다. 비핵국에 대한 이 같은 위협은 명백한 핵확산금지조약(NPT) 위반인데도 말이다. 게다가 네오콘은 “우리는 이라크 공화국 수비대를 쳐부셨다. 우리는 북한군에 대해서도 똑같이 할 수 있다”(리처드 펄)고 공언하곤 했다. 북한은 이런 상황에서 부시 정부의 제네바 합의 위반(중유 공급 중단)에 따라 NPT에서 탈퇴하고 영변 원자로를 다시 가동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래서 브루스 커밍스, 존 페퍼, 개번 맥코맥 같은 세계적인 북한 학자들도 미국의 압박이 북한의 핵개발을 부추겼다고 주장해 왔고, 심지어 보수적인 미국 민주당 정치인들도 부시의 강경 정책이 북한의 핵개발을 자극해 오히려 동북아를 불안정에 빠뜨렸다며 부시 정부의 대북 정책을 “실패”로 규정했던 것이다.

따라서 북한을 비난하거나 제재하거나 말리는 것은 진정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오직 미국의 전쟁 드라이브와 대북 압박을 중단시키는 것만이 동북아 평화를 보장하고 북한 핵 폐기를 유도할 수 있다.

만약 민주노동당이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위반”이라고 북한을 비난하며 비핵화 요구를 앞세운다면, 자칫 조건 없는 선(先)핵폐기 입장으로 들릴 수도 있다. 비핵화라는 진보의 가치를 타협 없이 지키겠다는 ‘선의’가 엉뚱한 편에 서게 만드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북한 핵무기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를 미국의 제국주의적 위협과 압박이라는 맥락에서 떼어내 답할 수는 없는 이유다.

예컨대 심상정 비대위는 “북한 핵무기 폐기 시점을 주한미군 철수 완료 시점으로 정”하면 “마치 당이 주한미군 철수 이전까지 북한의 핵무기를 용인”하는 것으로 오해될 수 있다고 했는데, 사실 이런 오해를 걱정하면 어떤 조건도 내세우기가 어렵게 될 수 있다. 이런 논리라면 지난해 2·13합의의 컨셉트인 “행동 대 행동”도 오해 사지 말란 법이 없다.

북핵은 미국의 압박이 만들어낸 악몽

비대위는 ‘평가·혁신안’에서 핵보유 반대 결의가 부결된 것과 “당 지도부의 일원이 언론에 ‘북핵 자위론’”을 언급한 것이 “부정적 의미의 ‘친북정당’ 이미지를 누적시켰다”고 주장한다.

2006년 10월 북한 핵실험 직후, 여러 논란 속에서 당의 입장 표명이 늦춰진 것은 분명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 사이에 당 지도부의 일원은 “자위적 측면에서 북핵의 인정[을] 당론이라고 볼 수 있다”(〈레디앙〉)고 했는데, 그 말은 참말이 아니었다.

그리고 북한 국가의 처지가 아니라 한반도(그리고 국제) 노동계급의 처지에서 보면 ‘자위권’은 관심사가 되지 못하고, 따라서 ‘핵 자위권’ 따위를 옹호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국가 간 갈등이라는 면에서 보면 ‘자위론’은 국제사법재판소도 결론을 내리지 못한 문제로, 언급 자체가 불경한 얘기인 것만은 아니다. 국제사법재판소는 “극단적인 환경 하에서 자위 목적, 즉 생존 그 자체가 문제가 될 때, 한 국가의 핵무기 사용이 합법적인지 불법적인지에 대해 명확한 결론을 내릴 수 없다”고 했다(1996년).

그러므로 당의 입장을 정하기 위한 토론 과정에서 편 주장을 해당 행위로 모는 것은 일종의 마녀사냥이다. 이렇게 되면 당의 공식 입장을 정하기 위한 토론은 말조심해야 한다는 압력으로 경색될 것이다.

늦게나마 당의 공식 입장으로 발표된 “현 정세에 대한 최고위원회의 입장”(2006. 10. 20)은 ‘친북정당’ 이미지를 줄 만한 것이 전혀 아니었다. 그것은 “북의 핵실험에 대해 분명한 유감의 뜻”을 표하면서도, “현재의 상황에 대한 근본 책임은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에 있다”고 밝혔고, “대북제재”가 아니라 “대화”를 해결 방향으로 제시한 것이었다.

지도부의 일원이 또는 설령 지도부 다수가 ‘자위론’을 마음 속으로 지지했다 해도 당의 공식 입장이 그렇게 나오지는 않았던 것이다. 지도부 성원 개인(들)의 입장과 지도부 자체의 입장을 엄연히 구분해야 한다. 둘을 구별하지 않고 마치 민주노동당의 공식 입장이 ‘자위론’이라도 되는 듯이 둘을 동일시하는 것은 당 전체에 “부정적 의미의 친북정당 이미지”를 들씌우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그러므로 심상정 비대위는 당의 공식 입장이 문제였다고 에둘러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오히려 당의 공식 입장이 ‘자위론’이 아니었음을 대외적으로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당의 공식 입장 자체를 문제시하는 의견이 당 내에 많이 있(었)기 때문에라도 이 점을 분명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2007년 정기당대회(3월 11일)에서도 ‘북한 핵실험 당시 당이 한반도 비핵화라는 당론을 분명하게 지키지 않아서 당의 지지율이 하락했다’는 수정안이 제출된 바 있는데, 이 안은 대의원 다수의 지지를 얻지 못해 부결됐다.

북한 핵실험에 대한 당의 입장이 “부정적 의미의 ‘친북정당’ 이미지”를 누적시켰다고 말하는 것은 근거가 없다. 북핵에 대한 민주노동당의 입장은 오히려 대중적 공감을 얻었다.

진보정치연구소가 2006년 11월 한길리서치연구소에 의뢰한 여론조사의 결과를 보면, 북핵에 대한 민주노동당의 입장에 공감이 49.5퍼센트, 비공감이 39.7퍼센트였다. 질문은 “최근 북한이 핵실험을 실시한 후 민주노동당은 미국의 책임을 우선적으로 비판하고, 다음으로 북한의 핵실험에도 유감을 표시했습니다. 이와 같은 민주노동당의 입장에 대해서 선생님께서는 어느 정도 공감하십니까?”였는데, 연령이 낮을수록 이념 정체성이 진보일수록 공감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민주노동당 대선 전략 관련 세대별 여론조사 보고서)

어정쩡한 태도는 안 된다

지금은 일시적인 북미간 긴장 완화 국면이지만, 부시가 중동에 전념하기 위한 일시적 조치인 이 국면이 무한정 계속되지는 못할 것이다. 이미 상황은 교착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북핵 신고를 둘러싼 세 가지 논란 가운데 가령 플루토늄 양에 대한 것만 봐도 문제가 만만치 않다. 북한은 30킬로그램을 신고했고 미국은 20킬로그램이 적다는 것인데, 1994년 한반도 전쟁 위기는 이보다 적은 양의 플루토늄이 위기의 발단이 됐었다.

물론 미국이 중동에서 큰 어려움에 처해 있기 때문에 북미관계가 군사적 긴장 국면으로 치닫지는 않겠지만, 2002년부터 2006년처럼, 전쟁 위기로까지 가지는 않으면서도 갈등이 심화되는 국면이 다시 올 수 있다. 핵 신고 문제가 어렵사리 해결된다 해도 그 다음 사찰과 폐기를 둘러싸고는 더 큰 갈등이 빚어질 수 있다.

이럴 때 민주노동당은 누구를 비난하는 입장에 설 것인가? 심상정 비대위의 ‘평가·혁신안’ 대로라면, 미국의 제국주의적 압박과 약속 불이행을 비판하는 데 비할 바 없는 강조점을 두기가 어려울 것이다.

오늘날 거의 모든 세계인이 알고 있듯이 미국이 세계 제일의 깡패 국가이고, 무엇보다 남한 정부가 미국의 푸들을 자처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 제국주의 비난에 압도적 강조점을 두는 것은 “친북”이기는커녕 반전 평화 정당이 지켜야 할 기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