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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파등록제는 검열 제도다

비대위가 “패권주의와 당내 민주주의 훼손”을 해결하기 위한 “시급한 제도 개선 사항”으로 내놓은 것 중 하나가 정파등록제다.

정파등록제는 일견 음모적 당 활동을 지양하고 당 활동을 되도록 공개적으로 하라는 취지처럼 보인다. “정파 행사는 가급적 전면 개방되어야 [한다.]

많은 당원들이 그 동안 당의 의사 결정을 주물러 온 막후 정치(특히, 비공개 음모 정치에 익숙해 있는 일부 정파들의 행태)에 신물나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므로 당내 정파들이 당 안팎의 중요 사안들에 대해 공개적으로 정견을 내놓는 풍토가 자리잡아야 한다.

그러나 이것을 당규에 명시해, “정파는 핵심 구성원과 입장 등을 중앙당에 등록”하도록 “미등록 정파에 대한 페널티”를 적용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얘기다.

페널티

정견을 숨기고 음모적인 뒷거래 정치를 하는 정파들이 있다면 그것대로 당원들로부터 정치적 평가를 받으면 될 일이지, 당규로 강제하는 것은 당권파의 통제를 강화하는 결과만 낳을 것이다.

실제로, 정파등록제가 진정 노리는 것은 정파가 당 안에서만 의견을 내놓고 자신들의 의견에 따른 당 외부적 활동(집회·시위 참가, 간행물 발간·판매, 연설 등)들은 독자적으로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당 외부 활동 및 발언 규제 등의 의무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사상 검열의 본보기이다. 당권파가 비당권 정파를 철저하게 통제해 당권파에 대한 이견을 단속하겠다는 것이다. 정파 회원들의 명단과 정보를 중앙당에 등록하라는 요구도 이것을 보여 준다.

실제로, 서구 진보정당의 역사를 보면 당이 체제에 순응하며 온건화하는 과정에서 정파등록제는 당내 좌파를 통제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곤 했다.

정파등록제가 당내 민주주의 확립을 위한 제도 개선이 아니라 당 지도부의 관료적 통제를 강화함으로써 당내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제도 개악인 까닭이다.

영국 노동당 온건파의 좌파 제명 사건

1980년대와 90년대 영국 노동당의 존 골딩과 피터 킬포일 등 소위 ‘온건파’도 가십이나 풍문을 근거로, 또는 때로 스스로 터무니없는 말을 지어내 당내 좌파인 밀리턴트 그룹을 비방하고 명예훼손했다. 언론의 지원을 받아가면서 말이다.

지도적 회원인 테드 그란트를 비롯한 밀리턴트 회원들은 정당한 근거 없이 당기위에 제소돼 조사받고 당원 자격이 정지되거나 아예 제명당하곤 했다.

걸핏하면 조사팀을 지역위에 파견해 일종의 마녀사냥식 즉결재판정을 열곤 했다. 지역위 자체가 폐쇄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좌파의 독자적 포럼 등은 금지됐다.

심지어 리버풀에서는 많은 좌파 대의원들이 투표권을 박탈당했다. 그 시의 공직이나 당직 선거에 출마하려면 자신은 밀리턴트 회원이 아니며 밀리턴트를 싫어한다고 선언해야 했다.

지금 심 비대위가 ‘친북’ 청산을 빌미로 하고 있는 일, 또 앞으로 패권주의 청산을 명분으로 수사당국까지 동원하며 하려는 일이 바로 이런 일임을 우리는 안다. 좌파의 독자적 목소리와 조직을 검열하는 조항을 담고 있는 정파등록제도 그런 계획의 일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