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억압은 가장 뿌리 깊고 오래된 천대이기 때문에 영원불변한 인간 본성의 일부로 여겨지기 십상이다. 여성은 언제부터 억압받기 시작했을까? 여성 억압은 정말 인간 본성의 일부일까?

이러한 질문에 대한 많은 역사가들과 여성학자들, 남성 우월주의자들의 대답은 한 가지 점에서 일치한다. 그 원인이 생물학적 이유이든 남성의 심리이든 여성 억압은 항상 존재해 왔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보던 만화영화에서 여성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동굴을 돌아다니는 털복숭이 네안데르탈인의 익숙한 이미지 또한 이런 가정에 기초해 있다.

그러나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대답은 달랐다. 인류 사회에서 여성 억압은 늘 존재하지는 않았고, 계급사회 발전과 함께 나타난 현상이라는 것이다. 사실, 초기 인류 출현 이후 2백만 년 중 95퍼센트에 이르는 기간 동안 여성 억압은 존재하지 않았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에게 ‘천성적인 것’은 없었다. 여성 억압은 사회의 물질적 역사에서 비롯한 것이다.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유물론적 관점에 따르면, 역사를 결정하는 요인은 직접적 생활의 생산과 재생산이다. … 그 하나는 생계수단, 즉 의식주의 생산과 이에 필요한 도구의 생산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 자체의 생산, 즉 종족의 번식이다” 하고 말했다.

이러한 엥겔스의 관점을 집대성한 저작이 바로 1884년 출판된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이다. 미국 인류학자 모건의 연구를 바탕으로 쓰여진 이 책은 1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성 억압에 관한 가장 중요하고 논쟁적인 저작이다.

계급사회

엥겔스는 현대 사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계급 이전 사회들에 관한 연구를 보면서, 이들 사회에서 삶의 방식과 남녀관계, 가족 구조가 자본주의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점을 발견했다.

모건이 ‘야만’이라고 부른 시대를 엥겔스는 ‘원시 공산주의’라고 불렀다. 인류는 소규모 공동체를 이뤄 살았고, 현재의 일부일처제 같은 가족 제도는 존재하지 않았다. 공동체 구성원들은 계급 없이 서로 평등한 지위를 누렸다. 이것은 남녀 간에도 마찬가지였다.

성별 노동분업은 존재했지만, 이 때문에 여성이 차별받지는 않았다. 여성은 주로 채집을 담당했는데, 이를 통해 생산에 크게 기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여성의 지위는 높았다.
엥겔스의 책이 출판된 이후 이뤄진 인류학자들의 연구로, 초기 인류와 선사시대에 대한 지식이 확장됐다. 엥겔스가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에서 제시한 여러 예와 가정들은 이후 연구자들에 의해 틀린 것으로 증명됐다.

이것은 단순히 엥겔스 개인의 오류라기보다는 당시 인류학적 지식의 한계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다윈의 《종의 기원》이 발간된 것이 겨우 1859년이었고, 1856년까지는 초기 인류의 유골조차 발견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가족과 여성 억압이 계급사회의 결과물이라는 엥겔스의 핵심 주장은 여전히 유효하다. 초기 인류 사회의 구성원들이 평등하고 호혜협력적이었다는 것은 엥겔스 이후 채집·수렵사회들을 연구한 여러 인류학자들에 의해 거듭 뒷받침됐다. 

인류학자인 엘리너 리콕은 현존하는 채집·수렵 사회에 관해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발견했다. “사적인 토지 소유도 없었고 성별분업을 제외하면 노동분업도 없었다.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들이 맡고 있는 활동을 결정했다. 집단 활동은 무엇이든 합의해서 결정했다.”

또 다른 인류학자인 리처드 리는 자신이 연구한 칼라하리 사막의 쿵족(‘부시맨’)이 “매우 평등주의적인 부족”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쿵족은 이런 평등을 유지하기 위해 중요한 문화적 관습을 발전시켰다. 쿵족은 불손하고 교만한 사람들을 견제하고 불행을 당한 사람들이 제자리를 찾도록 도와 준다.”

“여성의 세계사적 패배”

여성과 남성이 평등한 지위를 누리던 ‘원시 공산주의’ 사회가 존재했다는 엥겔스의 주장은 여성 억압이 “인간 본성”의 결과라는 주장에 대한 통쾌한 반박이었다. 그렇다면 여성 억압은 어떻게 해서 생겨났을까? 

약 1만 년 전부터 인류 역사상 최초로 농업에 기반을 둔 정착 생활이 시작됐다. 이것이 자동으로 여성의 지위를 하락시킨 것은 아니었다. 이 당시 농경에 사용된 도구들은 괭이처럼 가벼운 것이었기 때문에 여성들도 농경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뒤 쟁기의 발달과 더불어 더 복잡한 생산 체계와 분업이 등장하면서 여성의 지위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생산성 향상을 낳았던 이러한 발전은 처음에는 사회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이로운 것이었다.

그러나 점차 생산을 지휘하고 관할하던 소수에게 잉여가 집중되면서 불평등이 생겨나고 계급이 등장했다.

무거운 쟁기를 사용하고 소와 말을 기르는 더 발달된 농경사회에서 여성들은 더는 아이들을 기르고 젖을 물리면서 일을 할 수 없었다. 아이들은 밭일을 도울 수 있는 중요한 노동력이었다. 여성들이 더 많은 아이를 낳는 것이 사회 전체에 이롭게 작용하면서 여성의 역할은 주로 재생산 영역에서 이뤄지게 됐다. 여성은 사회의 주된 생산에 참여하지 못하게 됨으로써 영향력이 하락했다.

계급사회가 발전하면서 개인 재산을 세습하는 장치로써 일부일처제 가족제도가 발전했다. 여성은 가정에서 남편에게 종속된 지위로 전락했고,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여기는 관념이 사회 전체에 널리 퍼졌다. 엥겔스는 이러한 과정을 “여성의 세계사적 패배”라고 불렀다.

여성 억압이 계급사회의 등장에 따른 결과라는 엥겔스의 주장이 지닌 실천적 함의는 매우 중요하다. 엥겔스는 여성 억압을 낳은 사회적 조건을 분석함으로써 억압을 없앨 수 있는 전략 ― 현존하는 계급사회를 폐지하는 것 ― 을 내놓았다.

이것은 오늘날 대다수 페미니스트들이 받아들이고 있는 가부장제 이론과는 사뭇 다른 결론이다. 가부장제 이론은 여성 억압이 인류 역사에서 언제나 존재해 왔다고 보기 때문에,  억압을 끝장낼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지 못한다. 기껏해야 현존 사회 내에서 억압을 완화하는 데 그치거나 ‘남성과 단절한 공동체’라는 실현 불가능한 대안만 제시할 수 있을 뿐이다.

엥겔스가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을 썼던 때는 성과 결혼, 가족에 대한 보수적 관념이 지배적이던 시대였다. 당시는 결혼한 부부가 임신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성관계를 갖는 것조차 비난받았다. 남성과 여성의 성 행동에 대해 지독한 이중 잣대가 적용됐다.

부르주아 가족제도의 위선을 폭로하고 여성 해방의 전망을 밝힌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은 무척 선구적인 저작이 아닐 수 없다. 오늘날에도 수많은 여성을 짓누르고 있는 억압을 깨뜨리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엥겔스의 고전은 무한한 영감을 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