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독자들이 덕양(을) 지역의 선거 운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이 지역 조건에 대해 소개한다.

첫째, 지역구 유권자의 계급 분포 상황이다.

서울에 직장을 둔 화이트 칼라 노동자들의 집단적 거주 지역 ― 정확히 말하면, 베드타운 ― 인 행신동에 지역구 유권자 12만 명 중 7만 명이 거주하고 있다. 그 외곽에는 유동 인구와 인구 밀도가 행신동에 비해 매우 적은, 광활한 농촌 지역이 에워싸고 있다. 이러한 계급 분포 상황에서 덕양(을) 선본에서는 행신 지역을 집중 거리홍보 지역으로 정하고 선거 운동을 진행했다. 선거 운동원의 숫자가 비교적 소수여서 선거 운동 기간에 모든 지역을 아우를 수 없는 조건이었음을 감안한다면, 불가피하고 적절한 결정이었다.

둘째, 덕양(을) 지역은 지역구 안의 노동조합이 매우 적고 운동의 전통이 존재하는 지역이 아니다. 대학교도 항공대뿐이다.(그나마 학생들도 대부분 이 지역 거주자가 아니다.) 따라서 애초부터 울산·창원 지역처럼 많은 노동자들의 지지를 받으며 ‘전투적‘으로 선거 운동을 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니었다. 이러한 조건에서 우리는 눈에 띄도록 손수 만든 피켓을 들고 유동 인구가 많은 지역에서 ‘평화적‘인 방식의 홍보에 주력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의 홍보가 소극적이었다는 것은 아니다. 거리에선 열정적으로 소리 높여 민주노동당과 당의 정책을 외치고,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대형 할인매장 셔틀 버스에 올라가 차분히 그러나 열정적으로 왜 민주노동당이 지지할 만한 정당인지 주장했다. 우리의 이러한 열정을 보고 의미있는 수의 사람들이 박수와 환호로 지지를 표현해 주기도 했다.

셋째, 선거 운동의 주된 청중은 20대부터 50대까지 전업 가정주부들이었다. 기성 정당들은 보통 이 점을 노려 아줌마들을 선거 운동원으로 고용한다. 그러나 나이 많은 노동자와 생기발랄한 젊은 대학생으로 구성된 우리들은 무급 자원봉사자라는 점을 적극 홍보해 기성 정당과 차별성을 드러낼 수 있었고,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받았다.

넷째, 유기수 후보는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 부위원장 출신의 노동자 후보이다. 유기수 후보는 IMF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퇴출된 현대중기 노동자들의 정리해고에 반대하는 4백50일 간의 처절한 투쟁에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했다. 이 때문에 현대중기 퇴출 노동자 4명이 선거 운동 기간에 숙식을 하며 함께했다. 이런 후보의 경력을 반영해 선거 전술도 민주노동당을 알리고, 노동자 후보임을 강조하는 데 맞추어졌다. 민주노동당이 노동자·서민의 정당임을 강조하는 선거 전술에 고무돼 우리 학생들도 자신감을 유지하며, 더 열심히 선거 운동을 할 수 있었다.

다섯째, 학생들이 선거 운동에 결합했을 때, 거리 선동과 홍보물에 대한 준비가 잘 돼 있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과 선거 운동 본부의 배려가 맞물려 거리 선동 때 학생들의 창의성과 자율성이 최대한 보장돼, 우리들은 더 능동적으로 활동할 수 있었다.

이번 선거 운동에는 후보와 후보의 가족과 친인척들, 지역 당원 동지들과 현대중기의 50대 노동자들, 분신했던 기아자동차 노동자 송인도 동지, 민주노동당 서대문 지부의 이현우 씨와 민주노총에서 파견된 상근자들이 참여했다. 학생들은 주로 현대중기 노동자들과 함께 거리 선동을 담당했다.

홍보물 제작

우리는 거리에서 사람들에게 우리를 알리기 위한 도구인 피켓과 그 밖의 홍보물들을 기성 정당들처럼 전문 기획사에 맡겨 제작하지 않았다. 도안부터 제작까지 학생들이 손수 만들었다. 도안을 할 때는 무엇을 강조해야 하는지, 어떤 바탕 색깔에 무슨 색의 글자를 넣어야 시각적으로 강조가 되는지 진지하게 토론해서 정치적 의미를 담으려고 노력했다.

한편, 피켓 내용에서도 기성 정당들은 후보의 얼굴과 기호를 강조하거나 선정적인 그러나 내용 없는 문구를 홍보물에 넣은 것이 고작이었으나, 우리는 민주노동당을 강조하고 당의 정책과 공약을 담은 피켓을 만들었다.

우리가 이렇게 손수 만든 홍보물은 한결같이 후보의 웃는 얼굴과 기호를 내세우고 같은 재질의 판에, 비슷한 색깔에, 돈냄새가 물씬 풍기는 기성 정당들의 현란한 홍보물 속에서 조용히 그러나 시각적으로 강렬하게 각인될 수 있었다

기성 정당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경쟁하면 십중팔구 열세였을 상황에서 다른 방식으로 승부함으로써 오히려 더 큰 호응을 얻게 된 것이다.

거리 선동

기성 정당 선거 운동원들의 거리 선동을 묘사하면 다음과 같다.

비슷한 복장을 한 한 무리의 아줌마들이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목에 서서, 피켓을 들고 사람들이 지나갈 때마다 무미건조하게 “안녕하세요! 기호 #번 누굽니다.”를 반복적으로 외쳐댄다. 피켓의 내용과 그들이 외치는 구호의 일관성을 고려할 때,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후보자의 얼굴과 기호·이름을 각인시키는 것이 그들의 선거 전술이다. 이것은 정책과 공약으로 승부할 수 없는 기성 정당의 한계를 반영하는 것이다.

어쨌든 기성 정당들의 거리 선동은 획일적이고 기계적이며 경직돼 있어서 생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선거 운동원 아줌마들의 목소리에서도 열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반면 우리는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20대 초반 대학생부터 대머리가 된 아저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두 제각각의 복장을 하고 열정적이고 신념에 찬 어조로 즐겁게 사람들에게 아침 인사를 했다. 젊은 대학생들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에 맞추어 가볍게 몸을 흔들며 생기발랄한 춤을 췄고 흥이 난 현대중기 노동자들도 학생들을 따라서 어색한 춤을 췄다.

이런 선거 운동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매우 좋았다. 우리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미소를 지었다. 10대들의 호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기성 정당 선거 운동원들과 같은 장소에서 거리홍보를 하다가 우리가 먼저 떠나게 되면, 기성 정당 선거 운동원 아줌마들은 아쉬워서 “더 있다가”라고 할 정도로 우리는 즐겁게 선거 운동을 했다. 우리에 대한 소문이 인근 지역구까지 퍼져, 한번은 일산(갑) 지역 한나라당 선거참모가 “당신들 어디 기획사에서 나왔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돈을 받고 고용된 아줌마들이 하는 선거 운동만을 보았던 지역에서 새로운 선거 운동 방식은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민주노동당을 알리는 효과적인 수단이 됐다.

그러나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목에서 사람들에게 인상을 심어주는 홍보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 우리에 대해 짧게라도 주장할 수 있는 기회를 최대한 찾으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대형 할인매장에서 운영하는 셔틀 버스에 올라 열정적으로 우리 당과 후보를 알렸고, 사람들의 박수를 받기도 했다. 아파트 단지 주변에서 열리는 알뜰시장은 거리의 정치가 무엇인지 체험하는 장이었다. 알뜰시장 주변에서 우리가 주장을 하고 다니면, 어디선가 “옳소” 하는 대답을 듣곤 했다.

이러한 경험은 선거가 끝나고 학교로 돌아와 우리가 더 자신감 있게 정치 운동을 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됐다. 특히 버스 안과 시장에서 했던 경험은, 꼭 이야기해야 할 것을 제한된 시간에 압축적이고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정치적 훈련을 제공했고, 아무리 낮선 사람이라도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걸고 주장할 수 있도록 얼굴에 ‘철판을 까는’ 용기를 주었다.

합동 유세

1차 합동 유세 때 우리는 그 당시 쟁점이 됐던 “탈세·병역비리” 문제와 관련해, 우리 후보의 깨끗함을 강조하고자 두 가지 샌드위치 피켓을 만들었다.

하나는 부자들의 병역기피를 비꼬는 피켓이었고, 다른 하나는 우리 선거본부에서 그 날까지 사용한 선거 비용을 공개한 것이었다.

이렇게 만든 피켓을 두 명이 샌드위치처럼 매고 다녔다. 선거비용을 공개한 피켓을 매고 다니는 사람의 등에는 “공개합니다.”라는 표제를 붙였다. 많은 사람들이 웃음과 관심을 보였고 호응도 좋았다.

1차 합동 유세는 선거판이 얼마나 돈으로 얼룩져 있는지 보여 주었다. 기성 정당 후보들은 한결같이 돈으로 선거 운동원을 사 세를 과시하려 했다. 그들의 연설 또한 경쟁 후보에 대한 비방과 헐뜯기뿐이었다.

그러나, 2차 합동유세 때는 그들 모두 부패한 기성 정치를 비판하며, 노동자 서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노라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선거 직후 민주노동당의 ‘실패‘ 원인으로 민주노동당이 노동자·서민을 위한 정당임을 강조했던 점을 꼽았다. 그러나 덕양(을) 지역 합동 유세 때 후보들의 연설 내용은 〈조선일보〉의 분석이 얼마나 잘못됐는지 보여 준다. 기성 정당들과 무소속 후보 모두 하나같이 자기 계급과 부르주아 정당, 기성 정치의 부패한 측면을 비판하며, 자신들이 노동자 서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노라고 주장했다.

당선 가능성이 제일 컸고, 실제로 당선된 민주당 후보 이근진은 민주노동당과 유기수 후보의 이름을 거론하며 자신은 “노동자·서민의 정당 민주노동당과 노동자 후보 유기수를 제일 좋아한다”면서, “나를 찍지 않을 사람들은 모두 유기수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후보 김용수는 합동 유세 때 깨끗함을 강조하고 선거 운동원들에게는 “허준”을 상징하는 옷을 입혔다.

무소속 후보 이남형은 빈익빈 부익부를 비판하고 자신의 봉급 생활자 경력을 강조했다. 자신은 “이 사회에서 대부분을 차지하는 봉급 생활자들의 고충을 잘 아는 만큼 여러분을 위한 정치를 할 수 있는 정치가임”을 강조했다.

이것은 〈조선일보〉의 주장과는 정반대로, 기성 정당에 대한 분명한 비판과 노동자·서민을 위한 정치와 정당을 강조했던 선거 전술이 효과적이었음을 보여 준다.

기성 정당 선거 운동원 아줌마들과의 관계

선거 운동을 하게 되면 기성 정당의 선거 운동원 아줌마들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된다. 왜냐하면 선거 운동 하는 2주일 내내 같은 장소에서 동시에 선거 운동을 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처음에 우리는 그들에 대해 경쟁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서로 쓸데 없이 목청 높여 소리지르기 경쟁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곧바로 우리는 자기 비판적인 문제의식을 갖게 됐다.

첫째, 기성 정당 선거 운동원 아줌마들을 기성 정당 후보 또는 그 참모들과 구분해서 대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아줌마들의 대부분이 돈 때문에 선거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고, 그들 대부분이 우리 계급의 여성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들이 우리 당의 정책들을 소개했을 때 공감을 표시하는 아줌마들이 많았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OO역에서 거리 홍보를 했는데 지나가는 사람이 뜸할 때 우리가 “사립대 등록금이 너무 비쌉니다. 등록금을 깎아야 합니다.”라고 말하자, 한 민주당 선거 운동원 아줌마가 “얼마 전에 뉴스 보니까 대학생들이 데모하던데, 학생들이 이겨서 등록금을 깎았으면 좋겠다.”고 화답했다.

둘째, 어차피 우리의 선거 운동 방식은 그들의 획일적이고 경직된 선거 운동 방식과 다를수록 효과적이기 때문에 그들과 경쟁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아줌마들은 우리의 열정적이고 발랄한 선거 운동을 지켜보며 무료함을 달랠 정도였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기성 정당의 선거 운동원 아줌마들과 친하게 지냈고, 아줌마들이 주는 음료수와 바나나, 꿀벌차까지 얻어 먹었고, 민주당 아줌마들로부터는 참모들이 없을 때 민주노동당을 찍겠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6.3% 득표의 의미

덕양(을) 유기수 후보는 6.3%의 표를 얻었다. 특히 집중적으로 선거 운동을 했던 행신동 지역에서는 8%의 득표를 했다.

아직까지 수도권 지역 화이트 칼라 노동자들은 민주당에 투표하는 성향을 갖고 있다. 또, 이 지역에서 당원들의 일상 활동이 거의 전무해 민주노동당에 대한 인지도가 거의 없었으며, 후보가 다른 선거구에 살고 있어 출마 지역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이방인’이었다. 또, 선거 운동원의 숫자가 많지 않아 12만 명 중 7만이 거주하는 지역에서만 선거 운동을 했으며, 이 지역이 베드타운이어서 선거 운동을 하면서 만날 수 있었던 유권자가 전체의 20%도 채 안됐다. 이런점들을 고려한다면 6.3%의 득표는 상당히 의미있는 성과이다.

더구나 노동자·서민의 정당으로서 민주노동당을 강조해서 얻은 득표라는 점은 특별히 중요하다. 선거 때 정당과 그 정책을 강조하는 선거 전술이 중요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정당과 그 정책을 강조해서 얻은 표는 민주노동당과 그 정책에 대한 지지의 의미이다. 민주노동당이 지역에 뿌리내리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지구당의 당원을 확대하는 일이  필요하다. 따라서 선거 때 정당과 정당의 성격, 정책을 강조하는 것은 민주노동당과 그 정책을 지지하는 지역 당원을 확대하는 일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둘째, 정당과 정책에 대한 강조는 선거 운동원들 (특히 선거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당원들)의 자신감과 당에 대한 자부심을 높여주고, 선거 운동원들이 능동적으로 활동하는 데 도움을 준다.

마지막으로 민주노동당 서울지역학생위원회에 두 가지 제안을 하며 글을 마치겠다.

첫째, 가능한 한 학생들이 더 많이 배울 수 있고 자신감 있게 선거 운동을 할 수 있도록 당과 당의 정책 그리고 노동자·서민의 구체적 요구들에 대한 선전·선동을 중요하게 보는 후보의 선거 운동에 선택적·집중적으로 학생 당원들을 배치하는 게 더 효과적일 듯하다. 그래야 학생 당원들에게도 선거가 단순한 몸대주기가 아니가 좋은 경험과 교훈을 주는 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선거 운동에 참여하기 전에 학생위원회에서 미리 참여할 지구당을 선정하고, 각각의 지구당에 결합하는 학생들을 미리 팀으로 조직해서, 지역구의 조건과 특성에 관한 조사에 기초해 구체적인 준비와 계획을 갖고 선거 운동에 결합한다면 더욱 의미있는 선거를 할 수 있을 듯하다.


이 글은 유기수 후보 선거 운동에 참여했던 서울지역 학생위원회 소속 성신여대·한성대·국민대·고려대 당원들의 공동 토론에 바탕을 두고 고려대 최중근 동지가 대표로 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