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2일 대한항공 조종사들이 첫 파업을 단행했다. 이 파업은 한 조종사의 말처럼 31년 항공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만한 대사건이었다.

조종사들의 첫 파업은 이미 지난 5월 31일부터 예고돼 있었다. 대한항공 조종사들이 자신의 불만을 조직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노동조합을 건설했다.

그 동안 대한항공에 노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관리직 및 정비직의 직원으로 구성된 한국노총 산하 대한항공 노동조합이 있었지만 이 노조는 친사용자적 노조였다. 그래서 대한항공 조종사들은 별도의 노조를 만들었는데, 복수노조 금지 조항 때문에 어려움을 겪어 왔다.

그러나 조종사들이 5월 31일 민주노총 총력 투쟁 당시 파업에 돌입할 태세를 보이자 회사는 한발 물러섰고 결정적으로 10월 22일 파업으로 노조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11월 7일 서울 행정법원이 대한항공 노조가 낸 ‘조종사노조 신고 수리처분 취소 청구’를 기각해 대한항공 운항승무원 노조가 합법적으로 인정 되었다.

조종사들의 파업 의지는 굉장히 높았다. 파업 찬반 투표에서 조합원 1천1백81명(총조합원 1천3백42명)이 투표에 참여 해 97.7%가 찬성표를 던졌고, 단호하게 행동으로 옮겼다.

대한항공 조종사들은 17시간만에 회사를 굴복시켰다. 비행수당 지급 최저시간 한도를 60시간에서 75시간으로 늘리고 비행수당을 시간당 1만2천 원을 인상하기로 합의했다. 또, 편승시간을 포함해 노동시간을 국제선은 월 120시간(성수기에는 130시간), 국내선은 13시간에서 12시간으로 축소했다. 기장의 정년 규정을 55세에서 56세로 바꾸고, 1년씩 촉탁하던 것을 60세까지 4년 연장하는 등 상당한 성과를 얻었다.

억대 연봉?

조종사 파업이 벌어지자 조종사가 노동자냐라는 논란이 제기됐다. 정부와 기성 언론은 조종사들이 ‘1억이 넘는 고액을 받는데 무슨 파업이냐’며 비난했다. 대한항공 노조도 조종사 파업을 집단이기주의로 비난했고, 〈노동일보〉조차 조종사가 특권층인양 파업을 비난했다.

그러나, 조종사들이 억대의 연봉을 받는다는 주장은 엄청나게 과장된 것이다.

대한항공 조종사들은 분노하며 말했다. “물론 대한항공에 1억까지는 아니어도 비슷하게 받는 1∼2명이 있긴 합니다. 그러나 1400∼1500명의 사람 중에서 한두 명이 그렇게 받는다고 해서 그게 평균이 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부기장들 사이에도 편차가 있습니다. 저는 국제선을 타기 때문에 부기장 중에는 월급이 가장 많습니다. 제가 92년도에 대한항공에 입사했는데, 연 4천5백만원∼5천만원 받아요. 국내선 같은 경우에는 2천5백만원∼3천만 원 정도입니다.”

대한항공사의 억대 연봉 운운은 연봉 계산 방식이 터무니없이 부풀려져 있기 때문이다. 한 노동자는 임금명세서까지 보여주며 명예소송을 걸고 싶다고할 정도였다.

“우리나라에 생수 1병이 7천 원짜리가 어디 있습니까? 회사에서 이야기하는 1억 원에는 이런 것들이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연봉 계산에 포함되는 생수 값만 한 달에 30만 원어치입니다. 이외에도 조종사들이 입는 회사 옷값도 포함되고, 운행을 위해 외국에서 체류할 때 드는 숙소료도 연봉에 포함됩니다. 기내에서 먹는 식사료도 한끼에 1만 원 정도 계산되어서 포함됩니다. 이 뻥튀기된 자료들을 기자들이나 언론이 검증하지 않고 보도한 것입니다.”

외국 항공사와 비교해 봐도 대한항공사 조종사 임금은 결코 높지 않다. 외국항공사는 전체 매출액의 25%를 임금으로 지불하는데 비해, 대한항공사는 연 매출액 5조 원 가운데 11%만을 임금으로 지불하고 있다.

게다가 “현재 조종사의 고임금이란 것도 사실상 코피가 터지고 입술이 부르트는 혹독한 초과비행에 의해서라야 가능한 것”이다.

조종사들이 다른 업종의 노동자보다 임금을 좀더 많이 받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이 조종사가 노동자가 아님을 뜻하는 게 아니다. 임금 수준으로 계급을 나누는 것은 조야한 접근법이다. 계급은 생산관계에서 어떤 위치에 놓여 있는가, 즉 생산 과정과 생산물에 대한 통제 여부에 따라 나뉜다.

조종사는 비행 스케쥴이나 근무 시간 등에서 회사측의 엄격한 통제를 받는다. 또, 조종사가 받는 임금은 그들이 생산한 가치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대한항공은 단 17시간의 조종사 파업으로 2백억 원의 손실을 입었는데, 이것은 대한항공사 수익의 원천이 조종사들의 노동임을 보여 주는 것이다.

한 조종사는 “민주노총 깃발 아래 모인 노동자의 임금을 살펴보면 임금 격차도 심하고, 직업에 대한 사회적인 선호도에서도 많은 차이가 납니다. 겉으로 보이는 외양이 어떻든, 조종사도 자신들의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노동자입니다.”하고 말했다.

조종사는 분명 노동자다. 임금 인상 요구는 완전히 정당했다.

누가 안전을 위협하는가?

이번 파업의 핵심 쟁점은 비행시간 75시간 단축 요구였다. 조종사들은 한결같이 안전 운항을 위해 비행 시간이 대폭 단축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행 자유화 조치 이후 항공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두 항공사는 조종사 부족에 허덕이고 있다. 연간 250명 가량의 신규 조종사가 필요하지만, 자체 교육과 공군전역자 등을 통해 확보되는 인력은 150명 정도로 턱없이 부족하다.

이 때문에 대한항공 조종사들은 장시간 근무에 시달린다. 부기장인 한 조종사 노동자는 “대한항공은 비행기당 조종사 수가 세계적 규모보다 적다. 그래서 한 달에 150시간 가까이 비행하는 경우도 생기고, 준비하는 시간까지 합하면(편승시간) 200시간 정도된다. 그렇게 비행하고 나면 죽어난다.”고 토로했다.

또다른 노동자도 이렇게 말했다. “제가 2년전 국제선 시작할 때 월 140∼150시간이 일반적이었어요. 일반 직장인들이 생각하면 많은 시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거예요. 그런데 비행시간으로 따지면 엄청난 거예요. 외국인인 경우 평균 75시간밖에 안되요. 그것도 많다고 하는데, 보통 60시간 정도가 알맞다고 들었어요”

대한항공사는 55세가 정년퇴임 나이인데 60세까지 촉탁직으로 재고용하는 등의 편법으로 노동력 부족을 메우고 있다. 퇴임 뒤 촉탁직으로 재고용되는 비율이 무려 95%에 이른다.

잦은 비행 계획 변경과 장시간 근무는 안전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요인이다.  

한 조종사는 말한다. “3년 전 대한항공기 괌 추락 사고도 내가 알기론 원래 그런 비행기가 가는 스케쥴이 아니었어요. 다른 기종의 비행기가 가기로 돼 있었는데 그게 바뀌면서 조종사도 급하게 바뀌었죠. 그래서 제대로 쉬지도 못한 기장님을 내보낸 것입니다.”

조종사들은 회사측의 압력 때문에 위험한 상황에서도 회항하지 못하고 무리한 착륙을 시도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성재 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1992년 보잉727기를 몰고 괌을 간 적이 있었습니다. 태풍 뒤라 공항시설이 거의 망가져서 정상착륙이 불가능했습니다. 당연히 이륙 자체를 거부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회사쪽의 압력과 처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가까스로 착륙하긴 했지만 사실상 불가능했던 모험을 해야 했던 등골서늘한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번 파업은 불가피했습니다.”

이번 조종사 파업은 이윤이 아니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정당한 파업이었다.

계급적 자각

대한항공 조종사 파업은 국내 첫 조종사 파업이라는 점에서 커다란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조종사 파업은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선진국에선 낯선 게 아니다. 지난 9월 미국 유나이티드 항공 조종사 1만여 명이 파업을 통해 21.5%의 임금인상을 쟁취했다. 지난 1998년 에어프랑스 노동자들은 월드컵 경기를 앞두고 무기한 파업에 돌입해 정부의 민영화 계획을 좌절시키기도 했다.

대한항공 조종사들은 세계의 조종사들이 벌여 온 전투적 파업의 맥을 잇게 됐다.

이번 파업을 통해 대한항공 조종사들은 자신이 노동자 계급의 일부라는 분명한 자각을 하게 됐다. 한 노동자는 “사실 조종사들이 굉장히 보수적인 집단이었는데, 파업을 통해서 우리도 노동자라는 것을 느꼈다.”하고 말했다.

또다른 노동자는 이렇게 말했다. “조종사들이 한번에 모일 기회가 평소에는 없어요. 그런데 파업하니까 모두 모여 함께 투쟁에 들어갔어요. 우리가 이렇게 모여 뭉치니까 안되는 게 없다는 걸 느꼈습니다.”

이제 조종사는 남한 노동자 계급 운동의 항구적 일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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