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럼, 지구를 뒤덮다》를 발표하면서 신자유주의 이후 세계 도시의 빈곤 문제를 폭로한 마이크 데이비스가 또 한 권의 역작 《조류 독감 ― 전염병의 사회적 생산》을 발표했다. 마이크 데이비스는 민주노동당 대통령 후보였던 권영길 의원이 “[자신이] 정치인의 길을 걷는 데 영향을 끼친 책”으로 소개한 《미국의 꿈에 갇힌 사람들》의 저자이기도 하다.

《조류독감 - 전염병의 사회적 생산》 마이크 데이비스 지음, 돌베개

조류 독감은 전 세계적인 공포를 불러일으킨 가장 최근의 질병이다. 어쩌면 대량 사망 사태가 한국에서 곧 일어날 수도 있다. 많은 과학자와 의학자 들이 2008~2010년을 전염병 대유행의 시기로 예측한다.

2005~2006년과 2006~2007년 겨울의 조류 독감 사태만큼 크게 부각되지는 않았지만, 올 겨울에도 이미 전라남도 광주에서 조류 독감이 발생했다. 눈을 돌려 바깥 세계를 살펴보면, 발병 지역의 광범함에 압도당할 지경이다. 중국,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인도, 파키스탄, 이집트, 영국, 독일이 올 겨울 조류 독감 발병 대상국 목록에 올라와 있다. 가금류 수십만 마리가 도살됐고, 인체 간 감염 사례도 속속 보고되고 있다.

〈네이처〉는 2004년 7월 사실상 조류 독감을 근절할 수 없게 됐다고 밝혔다.

“H5N1은 이제 아시아 가금류의 풍토병으로 자리를 잡았다. 놈은 확고한 생태적 지위를 구축했고, 이를 발판으로 아주 오랫동안 인류에게 대유행병의 위협을 가할 것이다.”

1997년 홍콩의 농장과 가금류 시장에서 H5N1이 처음 발병했다. 이 과정에서 18명이 감염돼 6명이 사망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집계한 것을 보면, 2003~2007년에 전 세계에서 3백43명이 감염돼 그 중 2백12명이 사망했다. 이 가공할 치사율은 1918년 독감 대유행 사태를 무색하게 만든다.

2005년 3월에는 북한에서도 고병원성 H7 변종이 발견됐다. H5의 치명성과 H7의 전염성으로 무장한 ‘최후 심판’의 재조합형 조류 독감이 탄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인류라는 종은 지금까지는 운 좋게도 잘 도망쳐 왔는지 모른다.

8년 동안 H5N1을 연구한 과학자 켄 쇼트리지는 이 교활한 ‘문 앞의 괴물’[이 책의 원래 제목]이 종 전체를 말살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확신한다. 그는 철새, 닭과 오리 등의 가금류는 물론 개와 고양이 같은 애완동물도 안전하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 가까운 미래에 우리가 고양이 집단 ‘살처분’을 자행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동안 누적된 상황은 최후의 불길한 사태를 향해 초침을 째깍거리며 달려가는 폭주 기관차에 비유할 만하다.

폭주 기관차

더구나 현대의 광범한 교역과 발달된 교통 체계 때문에 지역적인 사건이 종종 세계적인 사태로 발전하곤 한다. 사스(SARS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사태를 통해 조류 독감 대유행의 미래를 예측해 볼 수 있다.

2003년 2월 중국 광저우의 한 의사가 가족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홍콩에 도착했다. 그는 한 호텔에 투숙했고, 같은 층에 머물던 손님 16명에게 코로나 바이러스를 감염시켰다. 감염된 호텔 투숙객들은 계속해서 각기 다른 다음 목적지로 여행했고 사스는 곧 맹아적 형태의 전 세계적 대유행병으로 변했다.

나중에 정리된 발병 사태의 흐름도에 따르면 홍콩 1백95건, 싱가포르 71건, 베트남 58건, 캐나다 29건, 에이레와 미국이 각각 1건씩이었다. “전 세계적 발병 사태는 이렇게 홍콩의 호텔 한 층에서, 단 하루 만에, 단 한 사람에 의해 시작됐다.”

당시의 돌연한 공포와 히스테리를 어렴풋이나마 기억할 것이다. 21세기 최초의 대유행병은 26개국에서 약 8천5백 명을 감염시켰고, 전 세계적으로 사스 환자의 약 11퍼센트(9백16명)가 사망했다. 큰 희생을 치렀지만 사스는 7월 초에 진압됐다. 운이 좋았다. 하지만 한 번 성공했으니 다음에도 그럴 것이라는 생각은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

만약 최초의 감염자들이 토론토나 싱가포르가 아니라 방글라데시나 아프가니스탄, 자이르로 날아갔다면 어땠을까? 거의 무방비 상태나 다름없는 제3세계의 도시들에 대유행병 사태가 발생한다면 어떻게 될까?

많은 공중 보건 전문가들이 염려하는 선례가 1994년 9월에 발생했다. 인도의 수라트에서 범유행성 폐렴이 발병했던 것이다. 공포가 확산됐다. 자기 병원을 경영하던 의사들은 직무를 유기하고 도시를 빠져나갔다. 항생제 사재기가 만연했고, 정부는 신뢰를 완전히 잃었다. 군대가 동원돼 빈민을 격리했다. 세계보건기구는 침묵했고, 다른 국가들은 감염국에 오명을 뒤집어씌웠다. 이 속에서 유행병, 슬럼의 빈곤, 신자유주의 정책이 맺고 있는 악순환의 고리를 확인할 수 있다. 범유행성 인플루엔자가 발생하면 수라트의 경험이 아마도 1백 배는 확대·증폭될 것이다.

스코틀랜드의 〈선데이 헤럴드〉는 대유행병이 발생하면 사회가 와해 직전에 이를 수 있다고 예상한 영국 정부의 보고서 내용을 폭로했다. “전체 국민의 최소 25퍼센트가 6~8주 만에 병에 걸릴 것이다. … 사망자는 전체 인구의 1퍼센트 가량 될 것이다.”

한국의 질병관리본부도 국회에 제출한 ‘2006 신종 인플루엔자 대유행 대비 대응 계획’에서 위험을 경고했다. “앞으로 5년 이내에 신종 인플루엔자가 대유행할 가능성이 높고, … 외래환자 9백7만여 명, 입원환자 23만여 명, 사망자 5만 4천여 명에 이르는 대재앙이 될” 것이다. 그런데도 노무현 정부는 유일한 초기 방어 수단으로 알려진 타미플루를 전체 인구의 2퍼센트에게 지급할 분량밖에 확보해 두지 않았다. 1백만 명분의 타미플루는 세계보건기구 권고량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다. 한미FTA 협정 체결을 강행하겠다는 이명박 정부에서도 이런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는 않다.

타미플루

마이크 데이비스는 이 책에서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과학사와 그를 둘러싼 정치 과정을 명쾌하게 설명한다. 확산되는 슬럼, 기업형 축산업과 패스트푸드 산업, 부패한 정부가 이 새로운 전염병이 출현할 수 있는 생태적 조건을 창출했고, 이윤에 눈이 먼 제약회사들과 신자유주의 정부들이 만약에 대비한 백신 개발과 충분한 항바이러스제 비축을 가로막고 있다고 폭로한다.

만약 가까운 장래에 조류 인플루엔자가 세계적 유행병으로 발전한다면 그 결과는 파국일 것이다. 마이크 데이비스는 이 대재앙을 막기 위한 시급한 방책도 제시한다. 아시아의 대유행병 차단 노력에 기금을 지원하고, 나아가 백신 생산을 사기업 부문에서 공적 영역으로 이전하는 등 전 지구적 보건 자원을 이윤이 아니라 민중을 보호할 수 있도록 조직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연못에서 헤엄치는 오리와 이웃집 고양이를 불안하게 바라보면서 H5N1의 도래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그 실태와 대책이 궁금하다면 이 책이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조류 독감 - 전염병의 사회적 생산》의 역자인 정병선 씨는 연세대에서 글쓰기와 저널리즘을 공부했고, 《미국의 베트남 전쟁》(책갈피), 《보통 사람을 위한 제국 가이드》(이후), 《렘브란트와 혁명》(책갈피) 등을 번역했다. 그는 마이크 데이비스의 또 하나의 역작 《후기 빅토리아 시대의 홀로코스트》의 번역을 최근 마쳤고 곧 출판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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