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이 ‘합리적 선택’인가

김어진

민주당이 쪼개질 듯하자 중간 계급 자유주의자들이 민주당 왼쪽 날개에 기대를 걸어 보자며 노무현 지키기에 나섰다. 유시민이 한나라당 집권을 막으려면 노무현을 지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대표 인물이다.

유시민은 지난 대선 때에는 김대중의 보수 우경화가 낳은 공백을 “제3의 후보”(조순)로 메우자고 한 바 있다. 그러나 당시 유시민이 주장한 “제3의 후보”론은 김대중의 보수 우경화와 의미 있는 정치적 단절과 거리가 멀었다. 그는 김대중에 기대를 거는 개혁 성향의 표를 잃지 않으면서도 반DJ 정서를 가진 보수표를 끌어들일 수 있는 인물을 끌어들여야만 정권교체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번 대선에서는 그는 자유주의 부르주아 정권의 실정이 낳은 공백을 또 다른 부르주아 자유주의 후보(노무현)로 메우자고 한다. 그러나 이미 지난 5년 동안 자유주의 부르주아지는 보수 우익에 타협을 거듭해 왔다는 게 충분히 입증됐다. 이미 대중의 정서 한가운데에서 두 가지 의심이 자라나고 있다. 과연 노무현이 진정한 개혁을 가져다 줄까? 과연 노무현이 집권해도 이회창보다 낫겠는가? 김영삼을 찾아가 제휴를 의논하고 김대중 아들 비리에 별반 목소리를 내지 않았던 게 이런 의심이 자라난 결정적 계기였다.

그러나 유시민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노풍이 꺼진 탓을 죄다 〈조선일보〉로 돌린다. 〈조선일보〉가 노무현을 “친DJ 아니면 탈DJ”라는 도식에 가둬 ‘김대중의 양자’로 재단했다는 것이다. 유시민은 〈한겨레〉 기자가 노무현의 오락가락한 행보를 지적하자, “모두 정신적 조선일보 기자인 것은 아닌가.”(〈주간 오마이뉴스〉, 13호)라며 목소리를 높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일명 “조선일보 프레임” 현상운운은 노무현의 책임을 덜어 주는 구실에 지나지 않는다. 누가 봐도 “[대통령에게] 너무 야박하게 하지 말자”고 한 것은 분명 김대중의 양자 노릇이었다. 유시민은 〈조선일보〉에 반대하는 사람들 가운데도 노무현에 의구심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을 무시한다.

 

빈약한 수단

최근 유시민은 민주당이 “낡고 병든 정당”이라고 비판하며 ‘개혁적 국민 정당 추진위원회’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 당은 노무현의 외곽 부대다. 그는 민주당 우파가 제거된다면 “합당을 고려할 수 있다.” 하고 말한다. 개혁적 국민 정당의 “정강 정책은 민주당의 것을” 가져왔다.

그러나 집권당의 추락은 다름 아닌 친시장 정책에 대한 누적된 반감과 환멸의 결과다.

유시민 그 자신이 친시장주의자다. 그는 “시장 원리를 대체할 수 있는 다른 경제적 기본 질서는 있을 수 없다.” 하고 말한다. 유시민은 자본주의 국가가 폭력을 마구 휘두르는 것을 비판하고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을 비난한다. 그는 발전 노동자들을 탄압한 정부를 나무란다. 그러나 정작 발전 노동자들이 반대한 사기업화 방침은 반대하지 않는다. 그는 “사회안전망 확충”을 말하지만, 그와  동시에 사유화가 시장의 효율성을 살린다고도 주장한다. 그가 말하는 개혁과 부패 척결이 공허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시장을 대하는 그의 ‘관용적’ 태도 때문이다. 시장이 최선임을 인정하는 순간, 사기업화와 대량 해고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노무현을 지지하라는 주장은 수구 세력을 막기 위해 노동자들이 참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유시민은 한나라당 같은 보수주의자들의 집권은 어떻게 해서든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유시민의 자유주의는 수구 보수주의자들의 창궐을 패퇴시키기에는 너무도 빈약한 수단이다.

이것은 프랑스의 르펜 부상을 두고 그가 한 말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프랑스 대선에서 “좌파의 분열과 무관심이 어처구니없는 정치적 파국을 초래할 [뻔 했다].” 하고 말했다. 그러나 ‘좌파의 분열’이 아니라 대중의 기대를 배신한 ‘복수 좌파’ 연립 정부에 대한 실망이 르펜이 부상한 토양이 됐다. 오히려 분명한 대안을 제시한 극좌파 후보들이 시라크와 조스팽에게 환멸을 느껴 아예 기권하거나 아니면 르펜을 지지할 수도 있었을 사람들의 표를 끌어당겼다.  그는 사회당이 2차 투표에서 우파인 시라크를 민 것을 칭찬했다. 그러나 시라크야말로 르펜과 국민전선의 부상을 결정적으로 도와 주었다. 1980년대 시라크의 공화국연합을 비롯한 보수 정당들은 지방 선거에서 국민전선 후보들을 연합 공천했다. 국민전선은 이를 발판 삼아 성장할 수 있었다. 이미 시라크는 르펜과 여러 번 뒷거래를 해 왔다. 그리고 시라크의 공화국연합은 우파 승리를 위해 르펜의 국민전선을 지원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프랑스 자본주의가 절박한 경제 위기를 겪는다면, 그래서 파시스트의 권력 장악을 원한다면 시라크는 기꺼이 나찌에게 권력을 넘겨 줄 수도 있다. 보수 정당에 의존해서는 극우를 패퇴시킬 수 없다. 파시스트의 집권 뒤에는 언제나 보수 정당들의 지원과 지지가 있었다. 오로지 노동계급의 단결된 행동과 대중적인 거리 시위만이 극우파들을 제압할 수 있다.

 

사회적 타협

유시민은 노무현이 진정한 개혁을 가져다 주지는 못할 거라는 점을 인정하기도 한다. “노무현이 대통령이 된다고 하더라도 그[노동자들의] 요구들을 다 받아들이지는 못할 것”이라고 솔직하게 말한다. “[자신들의 요구는] 당사자들이 싸워서 얻어 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완전한 모순이다. 당사자들이 싸워서 얻어 내야 한다면 왜 노무현을 지지해야 하는가.

위와 같은 모순에도 유시민이 노무현 지지를 주장하는 이유는 이회창 집권하면 계급 양극화가 심화할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회창이 집권하면 공안정국이 온다고 주장한다. “국가보안법[이] 지식인 사회와 정부의 이념적 대립을 부르고 집단적 요구 표출에 대한 ‘법대로’ 대응은 이익집단과 정부 사이의 물리적 충돌”을 부를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이회창 집권에 기죽지 않고 그에 정면 도전할 테니 “정권이 압도하는 공안정국이 아니라, 시도했다가 좌절하곤 하는 공안정국이 반복”될 것이다.

따라서 유시민이 정작 두려워하는 것은 공안정국이 아니라 계급간 격돌이다. 그가 노무현을 지지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는 노무현 집권이 계급투쟁 격화를 제어할 안전판 노릇을 하기 바란다.

유시민은 계급 이해의 충돌이 사회적 타협을 통해 해결돼야 한다고 믿는다. 실제로 그는 독일식 노사정협의체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그는 김대중이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노사정위원회를 도입한 사람이라며 노사정위원회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한다. 그러나 노사정위는 김대중 집권 내내 노사협조주의를 헛되이 설교하는 기구일 뿐이라는 점이 노동자들에게 입증됐다. 최근 노사정위는 최악의 주5일 근무제를 위한 들러리였음이 또다시 밝히 드러났다.

사회적 타협을 지향하는 유시민은 진보와 보수의 통합을 주장한다. “사실 진보는 극좌보다 보수와 잘 어울리고 보수는 극우보다 진보와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맞다.” 그러다 보니 그는 민주노동당이 급진적 강령을 내거는 것이 탐탁하지 않다. 그는 민주노동당의 우경화를 주문한다. 그는 2차 대전 직후의 사회민주당보다는 지금의 사회민주당을 닮아야 한다고 말한다. 현재 유럽의 사회민주당은 행동에서는 우파와 거의 구별되지 않는다. 프랑스의 조스팽은 이전 우파 정권보다 더 많은 기업을 사기업화하고 대기업들이 대량 해고를 밀어 붙이는데도 수수 방관했다. 독일의 슈뢰더는 부유세를 주장한 라퐁텐을 해임하고 신자유주의 정책의 일환인 정부 지출 삭감 정책들을 추진해 왔다. 민주노동당의 우경화를 주문하는 것은 그의 시장주의 신념과 잘 들어맞는다.

유시민은 1985년 여름에 서노련에서 처음으로 주체사상을 주장한 변혁운동가였다. 나중에 그는 스탈린주의 체제에 환멸을 느끼고 자유주의자로 변신했다. 그가 사회주의를 전체주의와 동일시하는 것은 스탈린주의 경험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자유주의는 무망할 뿐 아니라 노동자 운동의 정치적 발전에 걸림돌 노릇을 한다. 노무현 지지는 수구 보수와의 싸움을 핑계로 노동자 계급의 정치 의식 발전을 옥죄려는 것이다. 기성 정당이 아닌 노동자들의 독립적 정당을 건설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개혁을 앞당기는 길이다. 이번 대선에서 노무현이 아니라 권영길 후보를 지지하는 것이 그러한 대안 건설을 앞당기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