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이 ‘합리적 선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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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이 ‘합리적 선택’인가
김어진
민주당이 쪼개질 듯하자 중간 계급 자유주의자들이 민주당 왼쪽 날개에 기대를 걸어 보자며 노무현 지키기에 나섰다. 유시민이 한나라당 집권을 막으려면 노무현을 지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대표 인물이다.
유시민은 지난 대선 때에는 김대중의 보수 우경화가 낳은 공백을 “제3의 후보”
그러나 유시민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노풍이 꺼진 탓을 죄다
빈약한 수단
최근 유시민은 민주당이 “낡고 병든 정당”이라고 비판하며 ‘개혁적 국민 정당 추진위원회’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 당은 노무현의 외곽 부대다. 그는 민주당 우파가 제거된다면 “합당을 고려할 수 있다.” 하고 말한다. 개혁적 국민 정당의 “정강 정책은 민주당의 것을” 가져왔다.
그러나 집권당의 추락은 다름 아닌 친시장 정책에 대한 누적된 반감과 환멸의 결과다.
유시민 그 자신이 친시장주의자다. 그는 “시장 원리를 대체할 수 있는 다른 경제적 기본 질서는 있을 수 없다.” 하고 말한다. 유시민은 자본주의 국가가 폭력을 마구 휘두르는 것을 비판하고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을 비난한다. 그는 발전 노동자들을 탄압한 정부를 나무란다. 그러나 정작 발전 노동자들이 반대한 사기업화 방침은 반대하지 않는다. 그는 “사회안전망 확충”을 말하지만, 그와 동시에 사유화가 시장의 효율성을 살린다고도 주장한다. 그가 말하는 개혁과 부패 척결이 공허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시장을 대하는 그의 ‘관용적’ 태도 때문이다. 시장이 최선임을 인정하는 순간, 사기업화와 대량 해고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노무현을 지지하라는 주장은 수구 세력을 막기 위해 노동자들이 참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유시민은 한나라당 같은 보수주의자들의 집권은 어떻게 해서든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유시민의 자유주의는 수구 보수주의자들의 창궐을 패퇴시키기에는 너무도 빈약한 수단이다.
이것은 프랑스의 르펜 부상을 두고 그가 한 말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프랑스 대선에서 “좌파의 분열과 무관심이 어처구니없는 정치적 파국을 초래할
사회적 타협
유시민은 노무현이 진정한 개혁을 가져다 주지는 못할 거라는 점을 인정하기도 한다. “노무현이 대통령이 된다고 하더라도 그
위와 같은 모순에도 유시민이 노무현 지지를 주장하는 이유는 이회창 집권하면 계급 양극화가 심화할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회창이 집권하면 공안정국이 온다고 주장한다. “국가보안법
따라서 유시민이 정작 두려워하는 것은 공안정국이 아니라 계급간 격돌이다. 그가 노무현을 지지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는 노무현 집권이 계급투쟁 격화를 제어할 안전판 노릇을 하기 바란다.
유시민은 계급 이해의 충돌이 사회적 타협을 통해 해결돼야 한다고 믿는다. 실제로 그는 독일식 노사정협의체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그는 김대중이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노사정위원회를 도입한 사람이라며 노사정위원회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한다. 그러나 노사정위는 김대중 집권 내내 노사협조주의를 헛되이 설교하는 기구일 뿐이라는 점이 노동자들에게 입증됐다. 최근 노사정위는 최악의 주5일 근무제를 위한 들러리였음이 또다시 밝히 드러났다.
사회적 타협을 지향하는 유시민은 진보와 보수의 통합을 주장한다. “사실 진보는 극좌보다 보수와 잘 어울리고 보수는 극우보다 진보와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맞다.” 그러다 보니 그는 민주노동당이 급진적 강령을 내거는 것이 탐탁하지 않다. 그는 민주노동당의 우경화를 주문한다. 그는 2차 대전 직후의 사회민주당보다는 지금의 사회민주당을 닮아야 한다고 말한다. 현재 유럽의 사회민주당은 행동에서는 우파와 거의 구별되지 않는다. 프랑스의 조스팽은 이전 우파 정권보다 더 많은 기업을 사기업화하고 대기업들이 대량 해고를 밀어 붙이는데도 수수 방관했다. 독일의 슈뢰더는 부유세를 주장한 라퐁텐을 해임하고 신자유주의 정책의 일환인 정부 지출 삭감 정책들을 추진해 왔다. 민주노동당의 우경화를 주문하는 것은 그의 시장주의 신념과 잘 들어맞는다.
유시민은 1985년 여름에 서노련에서 처음으로 주체사상을 주장한 변혁운동가였다. 나중에 그는 스탈린주의 체제에 환멸을 느끼고 자유주의자로 변신했다. 그가 사회주의를 전체주의와 동일시하는 것은 스탈린주의 경험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자유주의는 무망할 뿐 아니라 노동자 운동의 정치적 발전에 걸림돌 노릇을 한다. 노무현 지지는 수구 보수와의 싸움을 핑계로 노동자 계급의 정치 의식 발전을 옥죄려는 것이다. 기성 정당이 아닌 노동자들의 독립적 정당을 건설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개혁을 앞당기는 길이다. 이번 대선에서 노무현이 아니라 권영길 후보를 지지하는 것이 그러한 대안 건설을 앞당기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