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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 원 세대:
비싼 등록금이 가져다 준 신용불량자의 멍에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네. 힘이 들고, 날아가고 싶다. 딸아 … 미안해.”

딸의 대학 입학금 걱정에 애태우던 한 어머니가 생명을 던지며 남긴 유언이다. 졸업과 함께 1억 원을 빚진 사람, 등록금 때문에 집이 풍비박산 난 사례는 한둘이 아니다.

등록금 투쟁과 이건희 반대 시위에 대한 보복으로 나를 출교시킨 고려대 전 총장 어윤대가 “등록금 1천5백만 원까지 올라야” 한다고 말했을 때만 해도 아직 등록금은 연 7백만~8백만 원이었다. 그러나 이제 오르고 또 올라서 1천만 원을 넘겼다.

주변을 돌아보면 죄다 과외에 알바에, 너무 바쁜 친구들 투성이다.

나는 학자금 대출을 못 갚아서 신용불량자가 된 3천여 명의 대학생 중 하나다. 학교가 나에게 준 것이라고는 비싼 등록금이 가져다 준 신용불량자 딱지와, 비싼 등록금에 맞선 대가로 생긴 퇴학이라는 딱지뿐이다. 신용불량 통보를 받는 날 나는 법원에 안 가서 구류 5일을 받기도 했다.

학자금 대출 때문에 마음을 졸이며 휴학도 하지 않고 학교를 다녔지만 빚은 쌓여 2천2백만 원이 됐다. 2006년 3월부터는 원금 상환이 시작됐다. 한 달 3만 원 가량이던 원리금이 11만 원으로 불어났다. 그런데 바로 그 때 출교를 당했다.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알바도 그만두고 농성을 시작했다.

앞으로 얼마를 갚아야 하나 계산을 해 봤다. 다음 학기인 9월부터는 매달 20만 원을 갚아야 하고, 그 다음 학기에는 매달 30만 원, 그 다음 학기에는 매달 40만 원을 갚아야 한다.

4년 동안 대학 생활을 하면서 나의 한 달 평균 생활비는 방값·핸드폰 비용을 합쳐 30만~40만 원 정도였다. 방도 여럿이 함께 살아서 10만 원 이상 낸 적이 거의 없고, 끼니는 거의 학생식당에서 때웠다. 출교를 당해 알바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매달 수십만 원은 도저히 불가능했다.

이자를 내지 못하자 그 때부터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이틀에 한 번씩 전화가 왔다. 신용불량자가 될 것이라는 협박도 들었다.

부모님에게서도 전화가 왔다. 뒷바라지를 못해 줘서 미안하다고 한사코 이야기하시는 부모님이 내가 신용불량자가 되는 것까지 지켜보셔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 큰 마음의 짐이었다. 부모님께는 담담하게 “신용불량자 하지 뭐” 하고 말했지만, 전화를 끊고 나서 그렇게 마음이 무거울 수 없었다.

얼마 전에 빚 규모를 알려고 농협에 찾아갔다. 2천2백19만 원의 빚 중에 1천5백86만 원은 이미 부실채권으로 팔려 갔고, 남아 있는 6백33만 원은 2년 새 이자가 35퍼센트나 붙어 8백56만 원이 돼 있었다. 부실채권으로 팔려간 1천5백86만 원은 이자가 얼마나 붙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학교 당국은 학생들의 고통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1백 주년 기념 드라마에는 6억 원을 책정하면서, 1백 주년 기념관 내부 인테리어에는 47억 원을 사용하면서 학생들에게는 고통을 감수하라고 강요한다.

등록금이 오르고 올라서 가난한 사람들은 졸업하는 대로 신용불량자가 되거나, 그게 아니라도 수천만 원의 빚을 멍에로 지는 일이 속출하고 있다. 이제 더는 안 된다고, 투쟁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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