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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차별주의, 여성 억압, 미국 대선

미국 대통령 조지 부시는 ‘테러와의 전쟁’을 시작했고, 온갖 대학살, 인종차별주의 정책, 군사 점령을 자행했다. 어쨌든 부시가 대통령직에서 물러날 터이니, 11월 미국 대선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사람들은 민주당 대선 예비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과 버락 오바마 사이의 치열한 경쟁에 열광하고 있다. 2008년 미국 대선에서 미국 역사상 최초로 여성이나 흑인이 국가수반이 될 가능성이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억압과 차별에 맞서는 운동의 관점에서 보자면, 몇 가지 중요한 문제들이 제기된다. 인종차별주의와 여성 억압이 모두 자본주의 사회에 만연해 있기 때문에 일부 좌파는 클린턴과 오바마의 경쟁이 ‘윈-윈 구도’라고 생각한다.

이런 주장에는 일말의 진실이 있다. 1950년대부터 시작된 흑인 공민권 운동이 없었다면, 사람들은 백인 이외의 소수인종이 백악관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또, 미국을 포함한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여성들이 공직에 선출되는 것은 여전히 예외적이다. 그동안 여성 운동이 교육, 고용, 재생산 결정권[낙태권]에 존재하는 성차별주의 장벽에 도전하지 않았다면, 여성이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생겨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정체성

그럼에도 민주당 지도부의 성적·인종적 구성이 바뀐다고 해서 이 당의 친기업·친제국주의적 성격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두 후보가 이 쟁점들에 관해 언급한 것들을 잠시 훑어보기만 해도 이 점을 알 수 있다. 예컨대 이라크와 ‘테러와의 전쟁’에 관해 이들이 한 언급들을 보라.

〈포린 폴리시 인 포커스〉 편집자인 스테판 준스는 이렇게 말했다. “여론조사를 보면 다수의 미국인들이 이라크 전쟁을 가장 중요한 문제로 여기고, 이라크를 침략한 것이 잘못이고, 미군이 빠른 시일 안에 이라크에서 완전히 철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힐러리 클린턴은 이라크 침략을 초지일관 지지해 왔고, 최근에야 기회주의적 동기에서 이라크 침략을 비판하기 시작했을 뿐이다.”

오바마는 애당초 이라크 침략에 반대표를 던졌고, 계속 반대해 왔지만 반제국주의적 동기에서 그렇게 한 것은 아니었다. 오바마는 점령이 시작된 이후 이라크 주둔 미군 병력 증강 계획에 여러 차례 찬성표를 던졌다. 오바마는 미군이 이라크에 장기 주둔하기를 바란다. 오바마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지지할 뿐 아니라 더 많은 군대를 보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바마는 〈시카고 트리뷴〉과의 인터뷰에서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는 도중에 이란이나 파키스탄을 공격하는 것을 배제하지 않았다.

힐러리와 오바마 모두 대기업들의 지지를 받을 뿐 아니라 대기업들의 기부금에 의존해 선거 운동을 펼친다.

미국과 세계 정치를 좌우하는 중요 쟁점들에서 힐러리와 오바마는 차이점보다 공통점이 더 많다. 둘 사이에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개성과, 인종이나 성 같은 정체성이 전면에 대두되는 것이다. 당연히 지저분한 폭로전도 진행중이다.

힐러리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꿈이 1964년 린든 존슨의 민권법 제정으로 실현됐다고 말했는데, 이것은 미국 정치에 인종차별주의가 얼마나 깊숙이 스며들어 있는가를 보여 줬다. 클린턴의 주장인 즉슨, 킹 목사의 꿈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백인] 대통령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미국 전역의 흑인들은 백인 대통령이 흑인 공민권 운동 지도자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당연히 흑인에 대한 모욕으로 여겼다. 더구나 킹 목사는 흑인 공민권을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친 사람이다.

미국 정치를 움직이는 힘

오바마는 어떤가? 오바마는 자신이 킹 목사의 후계자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자화자찬에 불과하다. 오바마가 당선 가능한 후보로 부각된 것은 그가 매우 친기업적이고 애국적일 뿐 아니라 전혀 ‘전투적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오바마는 지지자를 확대하는 데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만 자신의 인종을 상기시킨다.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주류 언론 전문가들의 논리를 흉내내고 있다. 그들은 힐러리와 오바마의 경쟁을 이용해 편협하고 불화를 일으킬 수 있는 입장에서 여성 억압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데, 이것은 인종차별주의를 강화할 뿐이다.

예컨대 1960년대 미국 여성 운동 창시자 중 한 명이자 저명한 자유주의 페미니스트인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뉴욕 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흑인 남성은 어떤 피부색의 여성보다 50년 빨리 선거권을 획득했고, 어떤 피부색의 여성보다 군대나 기업의 최고위층에 훨씬 빨리 진출했다.”

억압받고 차별받는 사람들을 서로 경쟁시키는 이런 입장은 당연히 인종차별주의를 과소평가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다른 페미니스트들은 스타이넘의 주장에 도전했다. 프린스턴대학교 아프로아메리카학 교수인 멜리사 해리스 레이스웰은 스타이넘이 미국 선거권 도입의 역사를 왜곡했다고 지적했다. “흑인 남성이 [여성보다 먼저] 선거권을 보장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실제로 그 권리를 행사하려 하면 물리적 공격을 받곤 했다.”

사회주의자를 포함해 인종차별주의, 성차별주의,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모든 사람 들은 성과 인종 문제를 서로 경쟁 붙이는 이런 잘못된 입장에 반대해야 한다.
성차별주의와 인종차별주의는 모두 자본주의 사회에 퍼져 있기 때문에 이런저런 방식으로 자본주의 계급 착취와 연관될 수밖에 없다.

비록 이번 미국 대선이 중요하지만 미국 대통령이 자기 마음대로 정책을 펼 수 있는 자리는 아니다. 기업 엘리트들은 정치 권력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다양한 방법들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럴 수 있는 다른 집단들도 존재한다. 노동계급, 빈민, 천대받는 사람 들도 미국 정치에 영향을 미쳐 왔다. 흑인 공민권 운동, 여성운동,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 등이 대표적 사례들이다.

이런 ‘또 다른 수퍼 파워’가 미국 정치를 움직이는 진정한 힘이다. 대선을 전후해 대규모 반전 운동을 계속 건설함으로써 새 정부의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다. 누가 대통령 후보로 뽑히고, 그가 어떤 공약을 내놓는가에 상관없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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