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들은 ‘독재자가 없는’ 새로운 시대를 약속했다. 그러나 이라크 침략은 오히려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 폭력과 학살을 가져왔다. 5년 전 미국과 영국 군대는 의기양양하게 이라크로 행진해 들어갔고, 조지 부시와 토니 블레어는 “중동 민주주의의 승리”를 선언했다.

저들은 이라크 전쟁이 독재자를 제거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전에는 그 독재자를 지원했으면서 말이다. 저들은 이 전쟁이 “45분 내에” 발사 가능한 대량살상무기를 찾아내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저들은 이라크가 9·11 공격에 가담했다는 황당한 혐의를 근거로 이라크 침략을 ‘테러와의 전쟁’의 일부로 만들었다.

점령자들은 온갖 거짓말에 근거한 사상누각을 지었고, 이를 통해 이라크 침략의 진정한 경제적·전략적 이유인 제국주의를 감추려 했다. 

이라크 침략 이후, 미국은 아랍의 심장부인 바그다드에 있는 사담 후세인 궁전들 중 하나에 본부를 설치했다. 영국군은 이라크 남부의 항구도시 바스라에 주둔했다.

민간 하청업자, 용병, 투기꾼 등 이른바 ‘전문가들’이 이라크를 ‘신자유주의 이라크’로 ‘리모델링’하려고 구름같이 몰려들었다.

유럽과 미국 다국적 기업들이 항구, 유전, 각종 공업 설비 등을 인수해 이라크 경제를 좌지우지하게 됐다. 이라크의 새로운 지배자들은 외국인 면책특권 같은 과거 식민 통치를 연상시키는 법안을 포함해 1백 개의 새로운 법을 만들었다.

부시와 블레어는 이라크 침략이 성공했다고 선언했다. 그저 극소수의 ‘[후세인] 정권 잔당들’을 제거하고, 사담 후세인을 체포하고, 대량살상무기만 발견하면 만사형통이라고 주장했다.

이라크인들의 저항과 참전 군인들의 ‘이반’

그러나 점령 첫날부터 점령군은 곤경에 처하기 시작했다. 이라크인들이 쌍수를 들어 점령군을 환영하기는커녕, 수만 명이 분노하며 가두시위를 벌였고, 이윽고 무기를 들고 날로 강력해지는 저항운동에 결합했다.

점령 당국은 이라크인들의 대규모 저항에 깜짝 놀랐고, 야만적인 방법을 동원해 피의 보복을 했다. 아부 그라이브의 두건을 쓴 죄수들의 모습은 제국주의가 얼마나 타락할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상징이 됐다.

이라크는 ‘수렁’이 됐고, 사상자 수는 계속 늘어갔다. 점령군들은 툭하면 ‘이제 고비를 넘겼다’고 되뇌었지만, 금세 그렇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곤 했다.

그래서 점령군의 공식 통계를 봐도, 2003년 6월에는 저항세력의 공격이 매일 8건 있었지만, 2007년 여름에는 1백70건으로 치솟았다.

저항세력의 규모에 관한 미국 정부의 추정치도 계속 늘었다. 2005년 미군 당국은 2만 명의 ‘저항자들’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이 숫자는 7만 명으로 늘었다. 이라크인들을 상대로 한 모든 여론조사들은 이런 저항이 광범한 지지를 받고 있음을 보여 줬다.

이라크 저항세력이 성장하면서, 미국과 영국 병사들 사이에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병사들의 목소리는 군대 내에서 회람되는 반전 간행물들에 반영됐다. 병사들은 정부의 거짓말, 자신이 목격한 악몽 같은 현실, 자신이 해야 하는 끔찍한 일 들에 신물이 났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미국에서는 베트남전 참전 군인들이 이라크에서 귀환한 젊은 남녀 군인들과 접촉했다. 이런 젊은 군인들 중 일부는 자신이 불법적·비도덕적이라고 생각하는 전쟁에 복무하기를 거부했다. 

이런 분위기가 병사들 사이에 퍼지기 시작했다.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참전 군인들’의 첫 행진은 군대 내 결속에 대한 합의를 산산조각 냈다. 전사자 가족들도 참전 군인들의 반전 행동에 동참했다.

2003년에 부시는 악명 높은 ‘임무 종결’ 선언을 했지만 이제 미국 합참의장은 지구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가 한계에 부딪혔다고 솔직하게 인정했다.

내전을 막기 위한 점령?

처음부터 전쟁에 참가한 ‘의지의 동맹’ 지도자들은 하나 둘씩 권좌에서 밀려났다. 역사상 가장 낮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 레임덕 대통령 부시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애당초 침략을 정당화했던 이유들은 모두 거짓으로 판명됐다. 그래서 지배자들은 점령을 정당화하는 새로운 주장을 하기 시작했다.

지배자들은 이제 ‘내전을 막기 위해’ 외국군이 주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들은 점령군을 종파들 간 내전을 막는 ‘경찰’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애초에 점령군이 종파들 간 갈등을 조장했고 더 심화시켰다.

미군은 [단일] 종파로 구성된 민병대를 창설하고 무기를 제공했다. 중앙아메리카에서 좌파 도살 작전을 지휘했던 존 네그로폰테가 새로운 안보 책임자로 바그다드에 파견됐다. 바그다드에서 네그로폰테는 ‘시체들의 전쟁’으로 알려진 대량 납치와 학살 활동을 원조했다.

부시 정부는 미군이 이라크의 분열을 막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실제로는 이라크를 북부 쿠르드족 지역, 중부 수니파 지역, 남부 시아파 지역으로 나누는 ‘부드러운 분할안’을 내놓았다. 이런 분할은 종파 내 결속을 강화하고 종족 간 갈등을 심화하면서 더 많은 폭력을 낳을 것이다. 

이라크 점령은 전 세계적 파장을 낳았다. 이라크 점령은 세계를 안정시키기는커녕, 더 많은 전쟁을 낳을 갈등의 씨앗들을 곳곳에 뿌렸다.

터키 군대는 이라크 북부를 계속 폭격하고 월경 작전을 벌이고 있다. 아랍인, 투르크멘인, 쿠르드인 들은 이라크 북부 유전의 통제권을 놓고 서로 다투고 있다. 점령은 중동 전체의 미래를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부시 정부는 3만 8천 명을 ‘증파’한 덕분에 이라크에서 최악의 상황이 끝났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부 저항 조직들은 휴전을 선언했고, 일부 지역에서는 폭력 발생 건수가 줄었다.

영국군이 바스라에서 철군한 것처럼 점령군이 발을 뺀 곳에서는 폭력 발생 건수가 현저하게 줄었다. 항상 시끄러운 안바르 주(州)의 경우, 미군은 지역 저항세력과 거래를 하고 미군 기지로 철수했다. 

그러나 예전에 조용했던 다른 지역들에서는 폭력 발생 건수가 늘고 있다.

국제적 반전 시위의 의미

점령이 지속되는 한 이라크와 전 세계에서 그에 맞선 반발과 저항도 계속될 것이다. ‘테러와의 전쟁’은 이집트의 민주화 운동에서부터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분노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반발을 초래했다. 

반전 운동은 수십 년 만에 가장 큰 시위들을 조직했고, 아랍인들은 텔레비전에서 수백만 명이 거리를 행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것은 ‘테러와의 전쟁’이 무슬림 대 가톨릭의 ‘문명의 충돌’이라는 관념을 뒤흔들었다.

평범한 아랍인들은 “유럽과 미국의 거리”로 나온 동맹들에 관해 말하기 시작했다. 아랍인들과 다른 지역들 사이에 존재하던 장벽들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점령이 하루라도 더 지속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죽고 절망에 빠질 것이다. 반면에 매번의 반전 시위는 아랍과 무슬림 세계에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고립돼 있지 않음을 알려 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거리에서 반전 운동을 지속하고 우리 정부에 압력을 넣어야 하고 파병 군대를 철군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