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내가 일하는 복지센터로 한 남성의 커다란 손에 자그마한 여성이 끌리듯 들어왔다. 스물두 살 된 베트남 여성과 결혼한 그 사십대 남성은 “한글을 좀 가르쳐야겠다”며 이주노동자 한글 교육 신청서를 접수했다.   

일주일이 채 지나기 전에 그들이 복지센터 옆 병원에 다시 왔는데 그 베트남 아내의 코뼈가 흉측하게 무너져 있었다. 아무래도 석연찮아 이것저것 캐물었더니, “말도 안 통하고, 하도 답답해서 그랬다”며 본인이 때렸음을 시인했다. 베트남 아내는 겁에 질린 고양이마냥 두 손과 발을 꼭 모으고 앉아 있었다.

한참 후에 그 남성이 혼자 찾아왔다. “아내가 도망갔는데 혹시 여기 안 왔냐”고 하길래, 그러게 왜 사람을 때리느냐고 쏘아 줬다. 그는 “수백만 원 들여 베트남까지 가서 데려왔는데, 억울하다. 나도 피해자다”라고 했다. 

그녀는 어디로 갔을까. 고국으로 돌아가지도 못했을 텐데. 단란한 가정을 꿈꾸며 한국 땅을 밟았을 어린 그녀는 말도 안 통하는 아버지뻘 남편에게 두들겨 맞으며 ‘꿈’이 깨져 갔을 것이다. 그 무시무시한 ‘가정’을 뛰쳐나가 불법체류자가 됐을 것이고, 고된 노동에 시달리며 돈 벌어 고국으로 갈 준비를 하고 있을지 모른다. 물론 이 꿈마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다.

혼자 남은 그녀의 남편은 손톱 끝이 새까맣도록 야근에 특근을 밥 먹듯 해도 한 달에 1백만 원을 손에 쥘까 말까 하는 마찌꼬바[영세 공장] 노동자였다. 맘에 드는 이성을 만나고, 근사한 곳에서 데이트를 할 시간도 돈도 없어 보였다. 그는 먼 베트남까지 가서 ‘사 온’ 아내가 사라진 것을 원통해 했다.

최근 46세의 한국 남성과 결혼한 열아홉 살 베트남 신부가 남편의 구타로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여성을 물건 수입하듯 취급하는 야만적인 사회”가 이런  끔찍한 사건을 낳았다고 했다.

슬프게도, 맞아 죽은 베트남 신부는 남편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에서 “베트남에 가서도 당신을 원망하지 않을 거예요”라고 썼다.

물론 우리가 정말 원망하고 깨부숴야 할 것은 이주 여성을 물건 취급하는 야만적인 사회와 체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