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신당은 이번 총선에서 “진보가 새로워지면 민생이 바뀝니다” 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그리고 그 ‘새로운 진보’의 핵심으로 ‘사회연대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사회연대전략’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을 뚜렷하게 가르는 핵심적 차이”라는 것이다. 노회찬 전 의원도 “사회연대전략이야말로 진보신당이 왜 진보‘신’당인지 보여 주는 증거”라고 했다. 이미 몇 년 전 민주노동당에서 뜨거운 논란 끝에 거부된 정책을 다시 꺼내들며 ‘새롭다’고 한다. 

‘사회연대전략’은 2006년 말에 처음 제기됐고 민주노동당 안팎에서 논란을 일으켰다. 당시 문성현 당 대표, 권영길 원내대표, 오건호 정책전문위원, 진보정치연구소, 전진 등이 앞장서 주장한 ‘사회연대전략’은 언뜻 듣기엔 그럴 듯해 보였다. 상대적 고소득 노동자와 저소득 노동자가 연대하자는 얘기였기 때문이다. 노동자 연대는 노동운동의 으뜸 원칙 아닌가.

그런데 문제는 고소득 노동자의 ‘양보’를 ‘연대’로 포장한 데 있었다. 그동안 “자본과 국가에 대한 요구로만 한정된 것”(오건호)이 문제였기에 “우리끼리의 나눔”(문성현)이 필요하다는 거였다. 고소득 노동자가 저소득층의 국민연금 보험료를 지원하자는 제안이었고, 이것은 명백히 ‘부자에게 세금을’ 에서 ‘노동자들끼리 윗돌 빼서 아랫돌 괴기’로의 후퇴였다. 무엇보다 이것은 지배자들에 대한 ‘양보’였다.

당시 보건복지위에서 열우당·한나라당 의원들도 “현실적인 안을 내주어서 고맙다”며 이 제안을 반겼고, ‘더 내고 덜 받는’ 국민연금 개악으로 민주노동당의 뒤통수를 쳤다.

때문에 ‘사회연대전략’은 다함께와 좌파들의 강력한 비판과 반발을 불러왔다. 당시 민주노총 5기 지도부 선거에서도 좌파인 조희주 선본이 ‘사회연대전략’을 “노동자 책임론이자 양보론”이라고 분명하게 반대했고 상대적으로 온건한 이석행 선본조차 반대 입장을 취했다. 결국 이런 좌파적 비판과 현장 노동자들의 반발 때문에 ‘사회연대전략’은 좌초됐다.

그러나 전진, 진보정치연구소 등은 ‘사회연대전략’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않았다. 이들은 ‘사회연대전략’이 관철되지 않는 민주노동당을 “낡은 진보”이고 “민주노총당”이라고 비판했다. 

좌파적 비판과 반발

결국 진보신당으로 분리한 이들의 공약에서 부유세나 무상의료·교육은 사라진 반면 ‘사회연대전략’이 전면에 등장했다. 진보신당 내에서도 얼마나 충분한 검토와 토론을 거친 것인지는 불분명하지만 말이다.
 
더구나 ‘사회연대전략’은 더 강화돼서 등장했다. 저소득층 국민연금 보험료 지원뿐 아니라, 평균임금의 50퍼센트 수준으로 최저임금을 인상하고, 연 2천 시간으로 노동시간을 단축해 일자리를 늘리는 데도 ‘사회연대전략’을 적용한 것이다.

진보신당은 보도자료 등을 통해 이것이 상대적 고소득 노동자의 양보를 뜻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을 위한 재원 마련에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층도 일정한 책임 분담을 할 수 있다”는 것이고, “연 노동시간을 2천 시간으로 제한”하면서 “대기업 노동자는 일정 부분 수입이 줄어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노중기 진보신당 정책위원장도 “[이] 방안은 모두 그 재정의 일부를 고소득 정규직 노동자가 부담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고 못박았다.(‘진보의 재구성, 사회연대전략으로 시작하자’, 〈프레시안〉 3월 25일치) 장상환 교수는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결단”을 촉구했다.(‘진보신당이 진짜 비정규직의 희망이 되려면’, 〈프레시안〉 3월 29일치)

이것은 필연적으로 투쟁 자제와 계급 타협을 뜻한다. 내 몫을 줄여달라는 요구의 투쟁은 있을 수 없고, ‘고통분담’은 노사정 타협의 고리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지난해 여름 보건의료노조 지도부는 정규직 임금 인상분의 일부를 비정규직 처우개선에 쓰자는 타협안을 내놓으며 산별 파업을 철회했다. 이것은 당시 이랜드 투쟁을 중심으로 형성되던 노동자 투쟁 전선에 김을 빼는 효과를 냈고, 이랜드 사측은 노조에게 ‘너희도 파업이 아니라 정규직 양보를 고민하라’며 치고 나왔다.  

노중기 정책위원장은 ‘사회적 교섭’ 등을 비판해 온 대표적 좌파 학자이지만 이번에는 뜻밖에도 이런 계급 타협적 정책을 변호하고 나섰다. 오건호 전 민주노동당 정책전문위원, 장상환 교수 등도 ‘사회연대전략’을 적극 지지하고 나섰다.

투쟁 자제와 양보

노중기 정책위원장은 이것이 “‘말로만 총파업’, ‘기자회견 연대’로 일관[하며] … 경제주의에 매몰된 대사업장 노조를 견제하고 비판”하는 취지라고 말한다.

그러나 대기업 노조들이 연대 투쟁과 정치투쟁보다 자신들의 임단투에만 적극적인 것에 대한 비판의 대안이 경제투쟁을 자제하고 양보하라는 것이 돼서는 안 된다.

우파들도 대개 대기업 노조의 경제투쟁을 비난하면서 투쟁 자제와 양보를 요구한다. 예컨대 〈조선일보〉는 “기아차 노조가 국내 일자리를 지키겠다고 파업을 벌이지만 사실은 그들의 그런 행동이 국내 노동자들을 실업자로 내몰고 있다. … 기아차 노조가 진짜 국내 노동자들끼리의 동료의식을 발휘하고 싶다면 당장 자기들이 받는 임금과 대우의 일부를 비정규직 동료들에게 나눠줘 보라”하고 썼다.(1월 25일치 사설)

‘사회연대전략’ 지지자들도 이런 논리를 일부 공유한다. “어느 한 쪽이 임금이 오른 것 때문에 다른 쪽 노동자들이 고달파지는 현실”(진보정치연구소, 《사회국가》)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진실이 아니다. 저소득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고달프게 하는 것은 정부와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공격이다. 예컨대 현대차는 2004년 1조 8천억 원, 2005년 2조 원, 2006년 1조 6천억 원, 2007년 1조 7천억 원 등 연속해서 막대한 순이익을 올렸다.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 총액은 현대차 매출액의 1퍼센트에 불과했고, 순이익의 10퍼센트만 양보해도 모든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난 4년간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는 대량해고·징계·손배가압류·가처분 등 온갖 공격을 당했다.

반면 대기업 노조가 투쟁으로 쟁취한 더 나은 조건은 저소득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조건도 끌어올리는 효과를 낸다.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사회정책수석 이원덕은 “[대기업에서] 고율 임금 인상이 타결됨에 따라 전국적으로 고율 임금 인상 분위기가 지배적[이 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명박 정부가 입만 열면 대기업 노조에게 ‘무파업’과 임금 인상 자제를 요구하는 건 이 때문이다.

더구나 재벌들이 노동자들을 혹사시켜 엄청난 수익을 올리는 상황에서 대기업 노조의 임단투는 정당한 요구와 투쟁이다. 또 대기업 노조에서 경제투쟁의 전진은 다른 노동자들의 경제투쟁도 자극하고, 경제투쟁의 성공에서 얻은 노동자들의 자신감은 연대 투쟁과 정치투쟁의 발전에 밑거름이 된다. 따라서 좌파는 대기업 노조의 경제투쟁을 지지하면서 그것을 연대 투쟁과 정치투쟁으로 연결·발전시키려 해야 한다.

살을 내주고 뼈를 벤다?

노중기 정책위원장은 또 “단기적 경제적 이익을 … 내놓고 중장기적으로 더 큰 경제적 실익을 확보하자”고 말했다. 장상환 교수도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라고 말한다. 오건호 전 정책전문위원도 “노동자의 직접 임금이 줄어들더라도 … 사회임금이 커지면 노동자의 총임금이 증가할 것”이라고 했다. “한마디로 ‘[우리의] 살을 내어주고 [저들의] 뼈를 벤다’는 전략”(진보신당 보도자료)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정치적 무지나 순진한 착각이 아니면 의도적 왜곡일 것이다. 도대체 노동자가 살을 내준다고 자기들의 뼈를 베어주는 자본가나 정부가 있을까? 노동운동의 역사는 그 반대 사례로 뒤덮여 있다. 노동자가 살을 내주면 자본과 정부가 노동자의 뼈까지 베려 한 사례들로 말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최근 한국노총 장석춘 지도부가 “하청 노동자와 비정규직을 위해 대기업 임금 인상 자제”를 선언한 후, 이명박과 경총이 보이는 행태를 보라. 이명박 정부는 코스콤 등 비정규직 농성장을 폭력 침탈했고, 기간제 3년 연장과 파견제 무한 확대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악마에게 한쪽 팔을 내주면 결국 다른 쪽 팔과 몸통까지 잡아먹힌다’는 서양 속담은 이럴 때 알맞다.

따라서 “[이] 과정에서 노동자 내부에서 형성되는 ‘공통의 경험과 의식’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는 진보의 힘”이기 때문에 ‘사회연대전략’은 “계급 형성 전략”이라는 오건호 전 전문위원의 주장도 옳지 않다.(‘사회연대전략 성공을 기원하며’, 〈레디앙〉 3월 28일치) 

‘사회연대전략’은 저소득 노동자의 열악한 처지가 상대적 고소득 노동자들 탓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경험과 의식’만 낳을 것이다. 그것은 고소득 노동자와 저소득 노동자들 사이를 분열시킬 것이다.

저소득 노동자는 자신의 열악한 처지가 상대적 고소득 노동자의 양보가 부족한 탓이라고 여길 것이다. 고소득 노동자는 저소득 노동자에게 양보해서 자신의 몫이 줄어든다고 여길 것이다. 지배자들은 이 틈을 파고들며 온갖 이간질을 할 것이다. 이런 분열은 결국, 부자와 자본가들의 양보를 강제할 수 있는 노동자들의 단결과 투쟁을 약화시키는 구실만 할 것이다.

단결 투쟁 전략

오건호 전 전문위원은 “사회연대가 논란거리가 되[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러나 정작 어처구니없는 것은 이명박의 ‘재벌·강부자 천국’ 시대에 노동자들끼리 나누자는 요구를 ‘사회연대’로 포장하는 것이다.

현대·기아차 사측이 잔업·특근을 줄여서 임금을 삭감하려는 공격을 시작한 지금, 임금 손해를 감수하며 잔업·특근을 줄이자는 진보신당의 주장이야말로 어처구니가 없다. 진보신당은 생계를 위해 고통스러운 잔업·특근에 매달리는 대기업 노동자들에게 “쳇바퀴에 갇히는 삶”을 벗어나라고 “아래로부터 설득해 나갈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기본급만으로 주택·교육 비용과 노후 보장이 된다면 누가 잔업·특근을 좋아서 하겠는가.  

사실 이런 주장은 진보신당만의 새로운 주장은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 지도부는 지난해 이미 이런 주장을 실천으로 옮겼다. 당시 정부와 언론은 보건의료노조 지도부의 후퇴를 “아름다운 양보”라고 칭찬했다. 〈한국경제신문〉은 “의의가 크다”며 “산업 전반으로 널리 확산돼 나가길 기대한다”고 썼다.(2007년 7월 8일치)

최근에도 홍명옥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연봉 5천만~6천만 원을 받으면 ‘철밥통’ 얘기가 나오는 게 당연하다”며 정규직 노동자의 양보를 주장했다. 민주노동당 비대위 정성희 집행위원장도 얼마 전 “보건의료노조는 정규직 임금 인상의 일부를 비정규직에게 돌[리는] … 훌륭한 모범을 보였다”고 찬양한 바 있다. 진보신당은 노동운동 내의 계급타협적 목소리를 대변하며 그것을 더 진전시키는 구실을 하고 있는 셈이다. 진보신당의 심상정 공동대표는 “[필요하면] 양대 노총을 적극 설득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노동운동의 전진을 바라는 사람들은 ‘사회연대전략’을 반대해야 한다. 이명박의 재벌·‘강부자’ 천국 시대에 필요한 것은 저들의 몫을 더 빼앗기 위한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강력한 단결 투쟁 전략이지 ‘사회연대전략’이라는 후퇴가 아니다.

민주노동당 부유세 정책의 의회 내 교착 상황에서 ‘우리끼리의 나눔이 현실적’이라는 잘못된 교훈을 도출해선 안 된다. 의회 밖의 강력한 대중투쟁이 뒷받침될 때 재벌·‘강부자’들에게 양보를 강제할 수 있다는 게 진정한 교훈이다.

이명박 시대, 치솟는 물가 속에 임금 인상 자제를 강요당하는 대기업 노동자들에게 좌파와 노동자당이 할 말은 강력한 투쟁과 연대에 나서라는 선동이지, ‘사회연대’로 포장된 양보가 아니다.

*〈맞불〉 81호에 실린 글은 이 글의 축약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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