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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금 1백50만 원 상한제는 산수놀이인가?

올해 들어 등록금 투쟁이 더욱 전진하고 있다. 지난 3월 28일 등록금 문제 완전 해결 촉구 행동에 1만여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모였다. 등록금 문제가 전 사회적 문제라는 인식이 확산돼 시민·사회·노동단체가 함께 등록금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등 운동이 더욱 확대됐다.

등록금 상한제 등 등록금 인하를 위한 주장이 더욱 대중적인 공감을 얻으며 운동의 핵심 요구로 부상했다. 개별 대학 차원의 등록금 동결 구호를 넘어 공세적으로 등록금 인하 주장이 확산된 것은 분명한 진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전국학생행진(이하 학생행진)은 “진보진영의 등록금 정책을 비판한다”는 글(학생행진 〈뉴스레터〉 12호)을 통해 진보진영의 등록금 인하 요구를 왜곡·폄하하고 있다.

상한제, 후불제, 학자금 무이자대출 등은 “문제 해결에는 조금도 기여할 수 없는 방안들”이고, 민주노동당의 등록금 상한제는 “등록금을 사실상 인정하는” 요구로 “수다한 ‘산수놀이’ 중에 하나일 뿐”이라는 것이다.

1천만 원에 육박하는 등록금 때문에 사람들이 자살하고 연간 3천 명이 넘는 학생이 신용불량자가 되는 현실에서 “폭등하는 등록금에 일정한 규제를 가하고자 하는” 노력이 왜 “산수놀이”일 뿐이라고 폄하돼야 하는가? 등록금 인하 요구가 “등록금을 사실상 인정하는” 요구이기 때문에 지지할 수 없다는 학생행진의 주장은 현실을 구체적으로 보지 않는 추상성을 보여 준다. 학생행진의 주장대로라면, 최저임금 인상 요구도 노동자에 대한 착취를 사실상 인정하는 요구이기 때문에 지지할 수 없을 것이다.

민주노동당이 주장하는 등록금 상한제는 1년 평균 등록금 7백60만 원을 3백여만 원으로 제한하자는 안이다. 물론 월 평균 소득이 1백20만 원밖에 되지 않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3백만 원도 부담스러운 돈이지만 1천만 원에 육박하는 등록금을 획기적으로 낮추자는 민주노동당의 등록금 상한제는 적극적으로 지지할 만하다. 학생행진은 압도 다수의 학생과 노동자 들이 이러한 ‘산수놀이’를 적극 지지하고 있는 현실을 보려 하지 않는다.

사실 등록금 상한제는 등록금 동결 요구보다도 진전된 요구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개별 학교에서 등록금 동결 투쟁에 동참하던 학생행진이 유독 등록금 상한제 요구를 폄하하는 태도는 이해하기 힘들다.

나아가 학생행진은 “진보진영이 주장하는 등록금 정책과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등록금 정책의 밑바탕이 크게 다르지 않다”며 “제시하는 수치와 규제 범위가 다를 뿐”이라고 주장한다. 학자금 무이자 대출을 조금 확대하겠다는 이명박의 공약이나 치솟는 등록금은 그대로 두고 인상률만 제한하자는 기성 정당들의 정책을 근거로 진보진영의 등록금 대책이 기성 정당들의 대책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매우 황당한 주장이다. 이명박 정부는 적립금을 6조 원이나 쌓아두고 등록금을 인상하고 있는 사립대학들에 등록금 인상 자율권을 주는 대학 자율화와 국공립대 등록금 인상을 부추기는 법인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에 반대하며 국가의 등록금 규제 대책을 요구하고 있는 진보진영의 등록금 정책은 “밑바탕”이 다르다.

등록금 문제 해결 요구가 거세다 보니 기성 정당들이 진보진영의 요구 중 매우 부차적인 일부분을 수용하며 생색내기 하려는 것을 근거로 진보진영과 기성 정당의 정책이 다르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은 전체 그림을 보지 않고 꼬투리 잡는 것에 불과하다.

한편 학생행진은 진보 정당과 한나라당의 유사성을 입증하기 위해 과장과 왜곡이 섞인 주장을 늘어놓기도 한다. 학생행진은 진보진영이 등록금 인하를 위해 주되게 “기업의 기부금 문화 조성을 강조”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기업 기부에 의존해서 대학재정을 확충하려는 정책을 우려하는 점은 공감할 만하다. 기업의 개별적 대학 기부는 공짜가 아니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기부의 대가로 여러 대학에 “LG특론”, “애니콜 휴대폰 학과” 등 기업맞춤형 강의를 개설하고 기업의 입맛에 맞는 인재를 길러 내기 위해 학사행정을 강화하는 데 압력을 넣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기업의 대학 기부확대를 대학재정 확충의 방안으로 제시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그러나 “기업의 기부금 문화 조성”이 진보진영의 주된 요구라는 학생행진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실제 민주노동당이 기업의 기부를 대학재정 확충의 한 방향으로 제시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가장 부차적 방안으로 언급돼 있다.

민주노동당이 등록금 인하를 위해 가장 강조하고 있는 것은 교육재정 GDP 7퍼센트 확충이다. 심지어 학생행진의 글에서 근거로 인용한 《등록금 고통 해소 민주노동당-학생대표단 간담회 자료집》도 고등교육재정 확충을 가장 주된 대안으로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학생행진의 글에는 진보진영이 등록금 인하를 위해 교육재정 확충을 주장하고 있다는 언급이 전혀 없다.

학생행진은 “300대 기업이 등록금 책임져라”는 진보신당의 주장을 개별기업의 대학 기부 확대 요구라고 비판했지만 이것도 사실과 다르다. 진보신당의 정책은 300대 기업에게 15퍼센트의 고등교육세를 걷어서 국가의 공적자금을 마련하자는 안이기 때문에 교육재정 확충방안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국가와 사학재단이 2대1 매칭펀드를 마련해서 등록금 문제를 해결하자는 안은 사학재단이 수익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논리로부터 자유롭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우려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진보진영이 주되게는 교육 공공성 강화와 교육재정 확충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은 쏙 빼놓은 채 마치 이명박 정권이나 보수정당과 비슷하게 주로 대학의 기업화에 의존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것은 곡해에 불과하다.

사실 학생행진의 이러한 부적절한 비판은 그들이 교육재정 확충 요구를 폄하하는 것과 관련돼 있어 보인다. 학생행진은 “전 생애에 걸쳐 부과되는 대학교육비용을 과연 국가가 감당할 의지와 능력이 있을까?” 하고 국가에 교육재정 확충을 요구하는 것이 의미 없다는 듯이 서술한다.

하지만 고등교육재정을 GDP 1퍼센트만 더 확충한다면 12조 원의 재원이 마련돼 등록금을 모두 충당할 수 있다. 그런데도 국가에 요구하는 것이 의미 없는가? 학생행진은 교육비를 기업과 국가가 책임지지 않고 노동자·민중에게 떠넘기는 현실을 그대로 두자는 말인가?

물론 이런 요구들은 거대한 운동의 압력으로만 쟁취할 수 있다. 1968년 프랑스에서 거대한 노학연대 투쟁으로 대학평준화와 같은 성과를 이룰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등록금 상한제나 교육재정 확충 요구 자체는 등록금 문제 해결을 바라는 대중의 염원이 담긴 개혁 요구들이다. 따라서 이런 요구들은 지지해야 마땅하다. 더 중요한 문제는 이 요구들을 어떻게 성취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런 요구들은 노동자·학생의 대중 투쟁을 통해서 쟁취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지난 3월 28일 범국민행진은 이와 같은 대중 투쟁의 발전 가능성을 보여 줬다. 학생행진이 이날 행동의 의의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언급 없이 이날 행동의 주된 요구였던 진보진영의 등록금 정책을 억지로 폄하하는 것은 운동을 성장시키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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