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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혁명의 시간》 | 알렉산더 라비노비치 지음, 교양인:
10월 혁명을 가장 생생히 기록한 책

1970~1980년대 ‘사회사’ 연구자들은 러시아 혁명에 관한 두 가지 관점에 도전했다. 첫째는 볼셰비키가 혁명을 설계하고 일으킨 것으로 묘사하는 옛 소련의 관변 역사관이고, 둘째는 혁명과 볼셰비키에 적대적인 미국의 냉전 사가들[의 관점]이었다.

사회사 학파는 1917년 혁명이 볼셰비키의 쿠데타나 무지한 대중의 광란이 아니라 자기 행동의 정치적 의미를 깨닫기 시작한 급진화한 노동계급 주도의 대중 운동에 기초해 일어났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노력했다.

1976년에 출간된 《혁명의 시간》은 사회사 저작들 가운데 가장 훌륭한 것 중 하나였다. 이 책은 러시아 혁명이 노동자·병사 들의 자주적인 행동이었고, 그것을 이끈 볼셰비키 정당은 우익의 신화에 등장하는 고집불통의 광신도들이 아니라 대중의 정서에 민감하게 반응한 유연한 집단이었다는 것을 신세대 독자들에게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라비노비치는 혁명이 기층으로부터 발전하는 과정을 추적한다. 그는 지방과 도시의 소비에트 모임과 임시정부와 볼셰비키 모임 들의 속기록들뿐 아니라 각종 결의문과 신문 들을 활용해 1917년 볼셰비키와 페트로그라드 노동자·병사 들이 맺은 복잡하고도 유동적인 관계를 설득력있게 보여 준다.

라비노비치의 책은 페트로그라드의 7월 시기에서 시작한다. 당시 볼셰비키는 때 이른 봉기[의 실패]와 좌파에 대한 탄압으로 후퇴중이었다. 라비노비치는 8월 우익의 쿠데타 시도 후 임시정부가 어떻게 지지를 잃었고, 볼셰비키가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에서 어떻게 지지를 확대했으며, 그것이 10월 혁명으로 어떻게 연결됐는지를 면밀히 추적한다.

라비노비치는 제1차세계대전이 2월 혁명의 발생에 끼친 영향을 강조한다. 정부는 참전 정책을 고수하면서 군인들의 지지를 잃었고, 특히 사병들이 지속적으로 급진화했다. 라비노비치는 병사들이 급진화한 정도를 사례를 들어 생생히 보여 준다.

유연함

1917년 7월 당시 [우익은] 레닌을 독일 첩자라고 모함했지만 병사들 대다수는 볼셰비키를 지지했다. 왜냐하면 병사들은 임시정부의 수장 케렌스키가 전방에 사형제를 재도입하는 데 반대했기 때문이다. 10월 혁명 기간에 케렌스키는 볼셰비키가 이끄는 소비에트에 맞서 임시정부를 방어할 군대를 전방과 후방 어디에서도 동원할 수 없었다.

라비노비치는 2월부터 10월까지 임시정부의 우익 세력과 소비에트의 혁명 세력 사이에 양극화가 심화되는 과정을 꼼꼼히 묘사한다. 2월 혁명으로 수립된 임시정부가 혁명을 위협하던 우익에 굴복하자 단결에 대한 염원 때문에 임시정부로 결집했던 노동자·병사 대중은 이제 혁명적 소비에트 건설에 힘을 쏟기 시작했다.

라비노비치는 페트로그라드의 이중권력 상태가 초래한 갈등이 어디로 나아갔는지 추적한 뒤, 또 다른 반혁명 시도를 막기 위해 10월 봉기가 불가피했음을 증명한다.

많은 사회사 저작들은 노동자·병사 들의 독립적 행동을 강조하면서 볼셰비키와 당원들이 했던 중요한 구실을 과소평가하곤 한다. [반면] 라비노비치는 10월 혁명이 쿠데타나 음모와는 전혀 상관이 없지만, 동시에 볼셰비키가 중요한 구실을 했고, 그들이 독립적으로 행동하는 대중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었다는 것을 잘 보여 준다.

소비에트와 노동조합에서 볼셰비키와 노동자·병사 들이 맺은 관계나, 볼셰비키와 다른 사회주의 정당들과의 관계는 매우 유동적이었다. 볼셰비키는 자신의 요구를 대중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그들은 공통의 요구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 전략을 마련하는 과정에 참가했다.

임시정부를 통해 개혁을 추진하려는 시도가 좌절되자 노동자·병사 들은 2월 혁명의 요구인 ‘빵, 평화, 토지’보다 더 급진적인 요구를 내놓았다. 그들은 볼셰비키의 구호인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가 자신들의 요구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라비노비치는 볼셰비키가 성공을 거둔 요인으로 내부의 치열한 논쟁과 민주집중제를 꼽는다. 작업장과 지역 소비에트의 볼셰비키 당원들은 종종 지도부의 입장을 바로잡았고, 지도부 사이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라비노비치는 “볼셰비키가 기본적으로 개방적이고 대중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을 뿐 아니라 상대적으로 민주적·관용적이고 분권화된 내부 구조와 운영 방식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성장하고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었다고 지적한다.

라비노비치는 또한 볼셰비키의 성장이 당의 유연함과 대중 친화적 성격을 더 강화했다고 말한다. 1917년에 볼셰비키에 가입한 수만 명의 새 당원들이 “당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로 볼셰비키당은 대중의 정서에 더 민감하고 개방적인 정당이 됐다.”

역동적

이 책에는 몇 가지 약점도 있다. 라비노비치는 [러시아 혁명에] 지나치게 미시적으로 접근한 나머지 더 중요한 사건과 과정 들을 별로 다루지 않는다. 그래서 [이 책을 읽기 위해서는] 10월 혁명과 그 배경에 대한 사전지식이 필요하다.

그는 페트로그라드에서 벌어진 사건과 사회적 변화들만 서술할 뿐, 그 외 러시아의 다른 지역 또는 국제적인 맥락에 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데, 이 점이 아쉽게 느껴질 수 있다. 또, 그의 ‘아래로부터의’ 접근은 당시 부르주아 세력의 동향에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라비노비치가 지루하지 않으면서도 상세하고 설득력 있게 증거들을 제시한 점은 높이 살 만하다. 그는 당시 페트로그라드의 분위기뿐 아니라 대중의 사상과 행동이 얼마나 역동적으로 변했는지를 생생히 보여 준다. 심지어 모든 주요 건물들이 표시된 지도도 수록돼 있어, 독자들이 혁명 당시 상황을 빠짐없이 알게 해 준다.

러시아 혁명사 서술에서 ‘신수정주의’적 관점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상황에서 이 책은 일급의 사회사 저술이 갖는 힘을 새삼 깨닫게 한다. 신수정주의의 대표적 저작인 올란도 피지스의 《민중의 비극》, 앤 애플바움의 《굴락》[한국에서도 2004년에 같은 제목으로 출판] 같은 책들은 러시아 혁명에 대한 적대적 시각을 자유주의적이고 포퓰리즘적인 어투를 사용해 감추려 한다.

스탈린주의의 몰락으로 많은 좌파들은 혼란에 빠졌다. 일부는 정치적 입장을 1백80도 바꾸기도 했다. 그래서 오늘날 수정주의자들의 주장이 별다른 반발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자본주의와 전쟁에 맞선 운동에서 어떤 종류의 리더십이 필요한가에 대한 중요한 논쟁 ─ 러시아 혁명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 이 다시금 제기되는 요즘, 이 고전의 출간은 시의 적절하고 환영할 만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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