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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총선 결과:
시장주의자들과의 연정으로 타격을 입은 급진좌파

지난주 이탈리아 총선 결과에 우익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1945년 이후 처음으로 공산주의자 국회의원이 한 명도 없는 국회가 탄생하게 됐기 때문이다. 이 결과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끝났다’는 주장에 힘을 싣는 논거로 이용되고 있다.

이탈리아는 좌파에게 매우 중요한 곳이다. 단적으로, 이탈리아 좌파는 유럽에서 가장 크다. 지난 10년간 [유럽에서] 가장 큰 노동조합 집회와 이라크 점령 반대 집회가 모두 로마에서 있었다. 7년 전 제노바에서 있었던 G8 반대 시위는 유럽의 반자본주의 운동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이런 운동들을 주도한 이탈리아의 급진좌파 정당인 재건공산당은 당원이 약 8만 명이다.

2년 전 재건공산당은 중도좌파 연정에 참여해 이탈리아의 언론 재벌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정부를 근소한 차로 몰아낼 수 있었다. 재건공산당 지도부는 베를루스코니가 복귀하면 민주주의를 근본적으로 위협할 것이라며 자유시장 정책을 지지하는 이들(중도좌파)과의 동맹을 정당화했다.

의회에서 간신히 절반을 넘는 의석을 확보한 좌파 정당 진영이 연립정부를 구성했고, 재건공산당과 그보다 작은 이탈리아공산당, 녹색당은 새 정부를 [바깥에서] 비판적으로 지지하는 대신 그 안에 들어가 장관직을 얻는 쪽을 택했다.

압력

좌파 정당들이 의회에서 단일한 입장으로 투표를 해야만 과반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중도좌파 정부를 유지하려면 급진좌파도 투표 지침에 충실히 따라야 한다는 압력이 엄청나게 커졌다. 사람들이 새 정부에 그렇게 큰 기대를 했던 것은 아니지만, 이 정부가 임금을 삭감하고 (계약서도 없고 노동권을 전혀 보장하지 않는) 불안정한 일자리를 급격히 증대시키고, 세금을 인상하는 등의 정책을 추진할 것이라고 예상하지는 못했다. 중도좌파 정부는 이라크에 파병한 군대는 철수시켰지만, 이탈리아가 나토의 아프가니스탄 점령과 나아가 ‘테러와의 전쟁’에까지 동참하게 만드는 씻을 수 없는 범죄를 저질렀다.

이탈리아의 위기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것은 나폴리 거리에 쌓여있는 쓰레기 더미들이다.[편집자주: 나폴리 지방정부는 쓰레기 사업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으려는 마피아와 부패 고리를 형성하며 쓰레기 처리 문제를 수년 동안 방치해 왔고 중도좌파 정부의 인사들도 여기에 연루됐다. 이 때문에 위생 상태가 심각하게 악화됐고 모짜렐라 치즈를 만드는 소의 젖에서 다이옥신이 검출돼 치즈 수출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분노한 나폴리 주민들은 쓰레기에 방화하며 정부의 무능과 부패에 항의했다.] 베를루스코니와 우익들은 총선에서 이를 이용해 재미를 봤다.

정부가 의회에서 더 이상 과반을 유지하지 못하게 되자 선거를 다시 치러야 하는 상황이 됐다. 중도좌파는 급진좌파와 동맹을 깨고 홀로 베를루스코니에 맞서려 했다. 이들이 밝힌 선거의 목표는 이탈리아 정계를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모두 자유시장의 필요성에 동의하는 중도좌파와 중도우파의 양대 정당 체제로 바꾸는 것이었다.

재건공산당과 이탈리아공산당, 녹색당은 ‘무지개 연합’을 결성해 선거에 참여했다. 이들은 선거에서 이전의 급진적 언사들을 사용했지만 나폴리의 사례가 생생히 보여 주듯 [실패한] 정부의 일부였다는 데서 오는 부정적 효과를 벗어날 수 없었다. 이른바 ‘쓰레기가 불러 온 위기’에 책임이 있는 환경부 장관은 녹색당 당원이었는데, 그는 현재 쓰레기 제거 업무에 참여한 기업으로부터 향응을 제공받았다는 의혹으로 조사를 받고 있다.

재건공산당, 이탈리아공산당, 녹색당은 중도좌파 연정의 투표 지침에 따라 최악의 마피아 조직원들을 사면해 주는 데 투표하기도 했다. 이런 행동은 사람들 사이에서 ‘모든 정치인들은 다 똑같다’는 식의 환멸을 불렀고, 사람들은 거짓말쟁이들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무지개 연합’은 총선에서 완패했다. 통계를 보면 패배의 규모가 명백히 드러난다. 2년 전 이탈리아 공산당과 녹색당, 재건공산당은 총 3백80만 표(10퍼센트)를 얻었다. 지난 주말 총선에서 이들은 겨우 1백만 표(3.5퍼센트)를 얻었다. 국회에서 의석을 얻으려면 4퍼센트 이상을 득표해야 한다.

전통적으로 좌파가 강력한 지역인 토스카나에서 세 정당은 2년 전 총선에서 13.4퍼센트를 얻었는데, 이번에는 4.5퍼센트밖에 얻지 못했다. 로마가 속한 라치오 주(州)에서는 2년 전 총선에서 13퍼센트를 얻었지만, 이번에는 3.3퍼센트였다.

한편, ‘무지개 연합’과의 차이점을 중심으로 매우 추상적인 선거 운동을 한 두 극좌파 단체들은 각각 0.4퍼센트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산술적으로 ‘무지개 연합’이 이 표들을 얻었다면 4퍼센트의 벽을 뛰어넘을 수 있었겠지만, [두 극좌파 단체들이 선거에 안 나왔다고 해서] 극좌파 지지자들이 ‘무지개 연합’에 표를 던졌을 것 같지는 않다. 어쨌든 좌파가 이번 총선에서 심각한 패배를 겪었다는 사실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지난 주말에 열린 재건공산당 정치위원회에서는 독자적 조직으로서 재건공산당을 해산하고 ‘무지개 연합’의 일원으로 녹아 들어가자는 당 사무총장의 전략이 70 대 98로 부결됐다. 오는 7월 전국대의원대회에서 이와 관련한 모든 문제가 논의될 예정이다.

그 결과가 어찌됐든, 좌파와 노동조합, 사회운동 안에서 좌파가 가야 할 방향을 둘러싼 논쟁이 첨예하게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좌파의 규모는 여전히 크고, 파업과 집회도 계속 벌어지고 있다. 사람들은 베를루스코니가 연금과 일자리, 공공 서비스 부문을 공격할 것이고 그의 정치 연합 안에는 이주노동자에게 끔찍하게 적대적이고 최근 힘을 회복한 북부동맹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제법 통찰력 있는 우익 논평가들은 의회에서 좌파가 사라진 것이 오히려 노동자와 억압받는 사람 들이 의회 바깥의 투쟁에 눈을 돌리도록 부추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

좌파는 단결해 이 과정을 고무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좌파는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토론하고 고민해야 한다. 그 토론의 핵심은 자유시장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이는 정부에 참여하기로 한 결정이 다시는 반복해선 안 될 실수였음을 인정하는 것이어야 한다. 비록 선거에서는 패배했지만 급진좌파는 여전히 수십만 명에게 지지받고 있다. 또 거리에서 베를루스코니를 패퇴시킬 운동을 건설할 능력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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