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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채가 아니라 삶이 먼저다

외채가 아니라 삶이 먼저다

해외 좌파 저널에서

지난 10월 6일 브라질에서는 약 1억 1천5백만 명이 새 대통령과 연방·지방의회 의원을 뽑기 위해 투표했다. 브라질 노동자당(PT) 대통령 후보 룰라가 46.44퍼센트의 지지를 얻어 1등을 했다.

후보 네 명 모두 ‘사회민주주의자’를 자처했다. 그러나 1백만 당원을 가진 PT야말로 노동조합이나 대중 운동과 밀접한 연계를 지닌 유일한 정치 세력이다. 이 때문에 월스트리트와 IMF는 PT의 승리를 크게 우려했다. 룰라가 최근 외채 상환을 늘리라는 IMF 지시에 동의했음에도 국제 금융계는 그가 재정 지출을 확대하고 브라질에 대한 IMF의 영향력을 위협할지도 모른다고 걱정한다.

PT가 승리하면 현 대통령 페르난두 엔리케 카르도주의 친기업 정책이 바뀌기를 바라는 수많은 사람들이 힘을 얻을 것이다. 카르도주 집권 8년 동안 전면적인 사기업화, 대량 실업, 소득 불평등이 심해졌다. 그런데 PT 정부도 카르도주의 “평상” 정책[위급한 사태에 직면해서도 특별한 대응책을 세우지 않고 일상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을 바꾸지 않을 것이라는 걱정스런 조짐들이 많다.

PT는 여전히 사회주의 정당을 자처하지만 실제로는 점차 선거에 집착하는 관료 정당으로 변모해 왔다. 라틴 아메리카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브라질]의 사회·경제적 고통이 심각해지고 있는 바로 지금, PT의 이러한 정치적 우경화에 속도가 붙고 있다.

지난 20년 동안 지속된 IMF의 구조조정 프로그램과 연방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 때문에 브라질에서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심해졌다. 이에 관한 통계 수치들은 소름이 끼칠 정도다. 경제활동인구 6천2백만 명 가운데 2천만 명이 실업자이거나 월 70달러(약 8만 원)인 최저임금조차 벌지 못한다. 이들의 부양가족까지 합치면 인구의 절반이 너무 가난해서 아이들을 제대로 키울 수 없을 정도다. 브라질은 세계에서 네번째로 소득 불균형이 심한 국가다. 국가 교육과 보건의료 체계가 파산해 고통을 겪고 있고, 폭력도 끔찍하게 높은 수준이다.

이런 끔찍한 현실에서 PT가 신자유주의에 도전하기보다는 그것과 협상하는 쪽을 택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것은 최근 선거 운동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경제면에서 PT는 수출을 늘리기 위해 통화를 평가절하하는 온건한 거시경제 정책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이 정책은 카르도주가 채택했다가 재앙적인 결과를 낳은 바 있다. 사기업화한 산업체의 재국유화나 거대 자본에 대한 통제 정책은 PT의 창고에 처박혀 있다. PT는 중소기업인들에게 ‘기업가 정신’을 부추기는 데 더욱 열심이다.

국가 측면에서 PT는 참여 예산제, 협동조합, 인민은행을 독려하고 있다. 이런 개혁은 지지할 만한 것들이지만 이것들이 자본주의의 경제 권력 구조에 도전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국내 시장에 의존해서는 IMF와 세계은행의 후원을 받는 강력한 국내 기업과 다국적 기업들의 수중에 집중된 막강한 권력에 도전할 수 없다.

엄청나게 많은 외채가 사회·경제적 투자를 질식시키고 있다. 2000년에 무토지농민운동(MST)이 조직한 국민투표에서 5백만 브라질 사람들이 외채 상환 거부를 승인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2002년 9월 첫주에 있은 국민투표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지만 이번에도 PT 지도부는 그 운동을 인정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PT의 투사들이 그 운동에 참가하는 것을 가로막았다. 한때 외채 지급 중단을 지지하던 PT는 이제 재협상을 주장하고 있다.

처음에 운동을 ‘표현하는’ 정당으로 출범한 PT는 이제 그 토대와 꽤 멀리 떨어져 있다. 최근 주류 신문의 헤드라인에서 지적하듯이, “PT는 전문화되고 성장하면서 사회 운동을 내던지고 있다.” 당 지도자들은 말로는 운동을 지지한다고 하면서도 토지와 건물을 점거하는 MST의 전투적인 운동 때문에 PT의 이미지가 훼손된다고 비난하고 있다.

대통령 선거 운동에서 가장 우려할 만한 일 중 하나는 PT가 자유당(PL)과 동맹한 것이다. 1980년대에는 노동자 계급의 정치적 독립성을 유지하던 PT가 이제는 우파 정당과 선거 연합을 추구하고 있다. 룰라의 러닝 메이트인 부통령 후보 주제 알렌카르는 자유당 당수이자 유명한 섬유 재벌이다. 알렌카르가 소유한 한 공장의 노조 위원장인 알베르토 마르티아나노는 이렇게 말했다. “룰라가 주제 알렌카르와 함께 공장에 왔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룰라가 지금 사장과 뭐 하고 있는 거야? 변화의 열망을 대변한다는 사람이 사장과 함께 돌아다니는 것을 노동자들에게 어떻게 설명하지?’”

PT가 정책을 온건하게 바꾸는 바로 그 때 라틴 아메리카 전역에서 신자유주의에 도전하는 전투적인 반자본주의 운동이 부상했다는 사실은 모순이다. 볼리비아와 에콰도르에서 노동자와 농민은 사기업화를 좌절시켰다. 아르헨티나의 거대한 시위와 ‘파넬라소스’[‘정제되지 않은 누런 설탕을 먹어야 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최근의 경제 공황 때문에 궁핍화된 사람들의 저항 운동을 말함 ― 옮긴이]는 노동자와 빈민 들에 대한 공세 분위기를 바꿔 놓았다.

PT는 출범 초기에 약속한 것과 달리 자본주의에 근본적으로 도전하는 운동을 건설하고 확대하지 않고 오히려 선거 승리에만 집착하고 있다. 최근 PT가 우호적인 지지자들한테서조차 “PT 라이트”[영양가가 줄어든 PT라는 뜻 ― 옮긴이]라는 별명을 얻은 것도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노조 활동가나 대중 운동 활동가 들은 룰라의 승리를 기뻐할 것이다. 교육·보건 환경을 개선하고 최저임금을 인상하는 데 돈을 쓰겠다는 공약이 많은 지지를 얻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PT가 승리한 뒤에도 활동가들은 계속 신자유주의 의제에 맞서 싸울 필요가 있다는 사실이다. ‘대중협의회운동’의 지도적 활동가 세자르 벤자민이 PT를 비판하면서 말했듯이, “우리는 지금 사회가 어떤지 또는 어떻게 보이는지 고민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