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총선 결과 - 미국의 핵심 동맹국의 정치 위기

해외좌파저널

지난 11월 3일 터키 총선 결과는 국제통화기금(IMF)과 터키의 고용주 단체가 오랫동안 우려해 온 “사회적 폭발”을 보여 주었다. 미국의 핵심 동맹국이자 나토 회원국에서 기성 정치의 중심 기반이 붕괴해 버렸다.

지난 3년 반 동안 연립 정부를 구성한 세 정당의 지지율은 땅에 떨어졌다. 전통적인 두 보수 정당은 의회에 진입하는 데 실패했다. 총리인 에체비트의 정당을 포함해 두 중도 좌파 정당들은 각각 1퍼센트를 조금 넘는 득표율을 보였다. 약 1천만 명은 아예 투표하지도 않았다.

이번 총선에서는 35퍼센트를 득표한 정의발전당(AKP)이 승리했다. 아마도 이 당이 다음 정부를 구성하게 될 듯하다. 이 당은 유럽의 기독교민주당 노선을 따라 중도 우파 정당으로 재창당한 이슬람 정당이다. 그러나 이 당에 투표한 대다수 사람들은 당의 이슬람적 색채나 신자유주의 수용을 보고 정의발전당을 지지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이 당이 과거 정부와 달리 IMF에 노예처럼 굴종하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비록 정의발전당이 대기업들을 소외시키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 당은 IMF에 반대하는 것처럼 보였다. 당내 기층 조직들은 당의 공식 태도보다 훨씬 더 급진적인 내용을 선전했다. 이 때문에 정의발전당이 집권했을 때, 그리고 이 당이 IMF의 프로그램에 저항할 생각이 전혀 없음이 드러나기 시작할 때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이슬람주의의 위협”에 대한 군부의 강박관념 때문에 정치 안정을 달성할 수 없을 가능성도 높다. 정의발전당 지도자 레젭 타입 에르도간은 이미 선거 출마를 금지당했다. 그는 옛 이스탄불 시장이었으며 과거 선거 유세 도중 시구(詩句)를 낭독했다는 이유로 5년 동안 감옥에 갇혀 있었다. 누가 총리가 될 것인지는 정치 불안정의 한 요인이다. 또 다른 요인은 군부가 (사법부를 통해 간접적으로) 정의발전당을 폐쇄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새 의회에 진출한 유일한 다른 정당은 인민공화당(CHP)인데, 19.5퍼센트를 득표했다. 전통적인 좌파 사회민주주의 정당인 CHP는 선거 직전 IMF 프로그램을 지지했다. 이 당은 IMF 정책을 순탄하게 실행하기 위해 케말 데르비스를 영입했다. 데르비스는 미국이 파견한 세계은행 부총재였다. 그러나 CHP는 연립 정부에 참여하지 않은 덕을 봤으며, 만약 IMF에 반대하는 태도를 취했다면 훨씬 더 많은 지지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오직 두 정당만이 의회에 진출했다. 그 이유는 전국 10퍼센트 득표라는 제한 조건 때문이었다. 이보다 적게 득표한 정당은 의회에 진출할 수 없었고, 심지어 해당 선거구에서 1등을 하더라도 의원을 배출할 수 없었다. 이것은 전체 유권자 4천1백만 명의 절반도 안 되는 1천7백만 명의 유권자들만이 대표를 국회로 보낼 수 있다는 말이다.

이 제약 조건은 안정된 정부를 구성하기 위해 군소 정당들을 배제하고 쿠르드계 정당의 의회 진입을 원천 봉쇄하려는 의도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 제도는 분명히 두번째 목표는 달성했다. 좌파와 쿠르드계 정당들이 연합한 민주인민당(DEHAP)은 6.2퍼센트를 득표했고 주로 쿠르드족이 거주하는 동부 20개 지역 중 12개 지역에서 1등을 했는데도 DEHAP는 의원을 배출할 수 없게 됐다.

청년당의 예상치 못한 성공은 분명한 메시지를 전해 준다. 선거 바로 몇 달 전에 청년당을 창당한 젬 우잔은 터키 최대의 재벌 가문 출신 젊은 기업인이다. 우잔 가문은 완전한 사기꾼들이다. 그들의 회사는 거대 통신회사인 모토롤라와 노키아에서 20억 달러를 사실상 훔친 혐의로 미국에서 기소된 상태다.

우잔이 7.3퍼센트나 득표한 이유는 사실상 모든 선전 활동을 민족주의 관점에서 IMF를 비난하는 데 집중했기 때문이다. 우잔은 “우리는 IMF를 몰아내 바다에 빠뜨릴 것이다.” 하고 말했다.

터키에서 조기 총선이 실시된 이유는 두 가지다. IMF의 정책들을 가차없이 밀어붙이고 이라크 전쟁에 과감하게 뛰어들 수 있는 강력한 정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둘 중 어느 것도 성공하지 못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주민의 거의 1백 퍼센트가 이라크 공격에 반대하고 있다. 정의발전당 정치인들이 전쟁에 대해 아무 말도 안 하지만 그들이 전쟁광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정의발전당에 투표한 유권자들은 그 당이 이라크 공격에 반대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사실, 정의발전당은 십중팔구 군부의 미움을 사지 않기 위해 전쟁을 추종할 것이다.

그러나 정의발전당 정부가 부시 일당에게 필요한 충실한 동맹 세력이 아니라는 점 또한 분명하다. 또 다른 미국의 핵심 동맹국 이스라엘의 연립 정부도 붕괴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하는 데 필요한 공군 기지를 제공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다. 미국이 폭격기를 발진시키는 순간 중동 전역의 불안정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