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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앞에 놓인 선택

브라질 앞에 놓인 선택

크리스 하먼 《오늘의 세계 경제 : 위기와 전망》(갈무리),

《신자유주의 경제학 비판》(책갈피), 《민족문제의 재등장》(책갈피),

《노동자 계급에게 안녕을 말할 때인가》(책갈피),

《소련의 해체와 그 이후의 동유럽》(갈무리)의 저자

지난 10월 27일 브라질 대통령 선거에서 정치적 지진이 일어나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나라를 뒤흔들었다. 노동자당 후보 루이스 이냐시오 룰라 다 실바(보통 룰라로 알려진)가 61.4퍼센트의 지지를 얻어 집권당 후보 주제 세하를 눌렀다.

1970년 칠레 대통령 선거에서 살바도르 아옌데가 승리한 이래 라틴 아메리카의 전국 선거에서 노동자들에 기반한 정당이 승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선거 결과는 브라질의 남쪽 인접국인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의 경제 위기를 배경으로 한 것이다. 브라질의 서쪽 인접국인 파라과이에는 사회 불안이 널리 퍼져 있고, 북서쪽 인접국인 콜롬비아에서는 내전이 벌어지고 있으며, 북쪽 인접국인 베네수엘라에서는 우익이 거듭 정부를 전복하려 하고 있다.

노동자당은 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후반까지 브라질을 통치한 군사 독재 정권을 끝장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노동자 운동을 기반으로 형성됐다. 룰라는 상파울루 공단 지역에서 금속 노동자들의 파업 지도자로 명성을 얻었다.

노동자당의 등장은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에게 투표하는 브라질 노동자들의 전통과 결정적으로 단절한 것이었다. 다른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브라질에서도, 국내 자본주의를 육성하는 한편 [노동자들에게는] 떡고물을 약속하는 군장성이나 부유한 출세가 같은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에게 노동자들이 표를 던졌다. 노동자당은 수십만 명의 능동적인 노동자 당원을 거느릴 만큼 성장했다. 이들 중 다수는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구 질서에 도전했다.

이번 선거는 룰라의 네번째 대통령 선거 도전이었다. 대통령 선거 때마다 전체 지배계급은 룰라의 당선을 막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다. 언론은 룰라의 사생활을 선정적으로 보도했다. 부자들은 재산을 해외로 빼돌려 경제 공황의 공포감을 조장하면서 이 모든 것이 완전히 룰라의 잘못 때문이라고 떠들어 댔다. 룰라가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사회 중 하나인 브라질의 막대한 불의를 비난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퇴임할 대통령 카르도주는 4년 전 선거 당시 만약 룰라가 이긴다면 브라질 통화가 평가절하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룰라가 카르도주에게 패한 뒤 카르도주는 IMF 같은 국제 금융 기구들의 지지를 받아 통화를 평가절하했다.

이번에도 브라질의 부자들과 다국적 기업들과 미국은 똑같은 속임수를 쓰려 했다. 돈이 나라 밖으로 빠져나갔고 통화 가치는 곤두박질쳤다. 그러나 이것은 사람들 사이에 공포감을 조성해 룰라에 반감을 갖게 만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카르도주와 그의 정부에 대한 분노를 증가시켰다. 브라질의 부자들과 다국적 기업들이 너무나 오랫동안 제멋대로 해 왔고, 이제는 변해야 할 때라는 분위기가 널리 퍼졌다.

불행히도, 이런 상황 때문에 룰라와 그의 참모들은 전에 약속한 광범한 대책들에서 후퇴하기도 했다. 그들은 금융 시장의 투기꾼들에게 화해 제스처를 취함으로써 자본의 해외 유출을 막으려 했다. 룰라는 자유당 소속의 부유한 기업인을 부통령 후보로 택했다. 그리고 카르도주가 최근 IMF와 합의한 프로그램을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룰라 선거 운동 본부의 핵심 인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룰라는 변했다. 현실이 그를 이렇게 만들었다. 상파울루 증권 거래소의 문은 계속 열려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정책은 브라질 국민 모두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 옮긴이] 룰라와 그의 참모들은 부자와 빈민의 이해 관계를 중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브라질의 많은 부자들이 미국에 종속되지 않은 독립적인 브라질 자본주의를 원한다. 룰라의 참모들은 심지어 카르도주 정부조차 미국이 추진하는 아메리카 자유 무역 블록에 열의를 보이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그들은 브라질·아르헨티나·우루과이·파라과이의 대기업들에 기반한 독립적인 경제 블록을 선호한다. 이것은 브라질에서 에어컨이 갖춰진 호화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과 어지럽게 널려 있는 판자촌에 사는 사람들 사이의 엄청난 격차를 은폐하려는 것이다.

모순

룰라 정부는 시장의 압력과 가난한 사람들의 압력, 양쪽의 압력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룰라의 말은 위험스럽게도 32년 전 아옌데가 한 말과 닮았다. 아옌데는 만약 자기가 칠레 군장성들의 지위를 건드리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다수 대중에게 이로운 개혁들을 수행하도록 그들이 허락해 줄 것이라고 믿었다. 3년 뒤 바로 그 군장성들이 아옌데 정부를 피바다에 빠뜨렸다.

룰라는 만약 자기가 브라질 부자들에게 양보하면 어쨌든 그들이 반정부 음모를 꾸미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듯하다. 지금 노동자당 정책의 핵심은 노조와 사용자 단체와 정부 사이의 [노사정]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것이다. 선거 직후 당 경제팀장인 안토니우 팔로시는 룰라가 공식적으로 대통령에 취임하기 전인 두 달 안에 “평화적 이행”을 위해 카르도주 정부와 함께 일하려 한다고 발표했다.

브라질의 부자들은 빈민들을 살해하는 짓도 서슴지 않았다. 그들은 군사 독재가 좌파와 노동조합원들을 고문했는데도 이를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오늘날 그들은 도시의 “불온 분자들”을 살해하는 암살단을 운영하는 비밀 경찰 조직들을 후원하고 있다. 그들은 당분간 룰라 정부를 용인해 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만약 정부가 노동자들과 빈민들에게 이로운 진지한 개혁 약속들을 저버리고 자신들의 이윤을 보장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면 자신들의 경제력을 이용해 나라를 경제 위기에 빠뜨리겠다고 위협할 것이다.

새 정부는 시장의 압력과는 또 다른 종류의 압력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수많은 노동자당 당원과 지지자들은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를 원한다. 그들의 행동은 새 정부의 어떤 후퇴에도 저항할 수 있다. 예컨대 ‘무토지 농민 운동(MST)’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수백만 명이다. MST는 지방의 광활한 토지들을 분배해 판자촌에서 절망 속에 사는 사람들에게 생계 수단을 마련해 주려 한다. 이 운동의 지도자들은 노동자당이 타협을 추구하는 말을 할 때마다 이를 공공연하게 비판한다.

지난 4월 베네수엘라에서 우익 군장성들과 고용주 단체 우두머리가 쿠데타를 시도했다. 이 때 수많은 빈민들이 수도 카라카스의 거리로 쏟아져 나와 쿠데타를 좌절시켰다. 10월 말 두번째 쿠데타 시도는 고용주 단체와 우익 노조 지도자들의 작업 중단 요구를 노동자들이 거부함으로써 시작되기도 전에 분쇄됐다. 쿠데타를 기도한 자들은 카라카스에서 가장 부유한 지구의 한 거리를 점거했다. 이와 비슷한 [저항] 정신이 브라질의 부자와 다국적 기업 들이 경제력을 이용해 대중의 변화 요구를 꺾으려 하는 것을 막아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노동자당 지도자들이 진정한 변화를 추진할 때는 그들과 함께 투쟁하고, 그들이 부자와 다국적 기업 들에 양보하려 할 때는 그들에 반대하는 행동을 조직해야 한다.

브라질의 빈부격차

● 브라질은 칠레와 에콰도르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남미 나라들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 인구는 1억 7천5백만 명이고 이 중 4분의 3이 도시에 산다. 공식어는 포르투갈어다.

● 상파울루는 세계에서 세번째로 큰 도시로 2천2백만 명이 살고 있다. 리우 데 자네이루에는 1천만 명이 산다.

● 노동자당은 PT(뻬떼)로 알려져 있다.

● 경제 활동 인구의 절반이 노동자들이다. 이들 중 3분의 1이 “비공식” 부문의 불안정한 직업을 갖고 있다.

● 브라질 인구의 가장 부유한 10퍼센트는 가장 가난한 10퍼센트보다 78배나 더 많은 재산을 갖고 있다.

● 가장 부유한 10퍼센트가 국민 소득의 45퍼센트를 차지한다. 가장 가난한 50퍼센트는 겨우 11퍼센트만을 갖는다.

약 7천만 명이 빈곤층이다. 약 3천2백만 명은 절대 빈곤층이다.

● 20명의 대지주들이 3백30만 명의 소농들보다 더 많은 토지를 소유하고 있다.

브라질의 외채는 3천억 달러가 넘는다. 외채는 1994년에서 1999년 사이에 두배로 늘었다. 이 시기 동안 1천2백60억 달러가 이자로 지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