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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특정위험물질’, 한미FTA를 제거하자

지난 2월 한미FTA 미국 측 협상대표 웬디 커틀러는 한나라당 대표를 만나 “쇠고기 시장 개방이 [미 의회의] 승인에 박차를 가할 수 있는 열쇠”라고 일러줬다. 그러나 쇠고기 시장 개방은 지금 한국에서 한미FTA 비준의 ‘자물쇠’가 돼 버렸다. 나아가 최근에는 미국의 유력한 대선 주자 오바마가 한미FTA를 반대하는 서한을 부시에게 보냈다.

오바마는 부시에게 보낸 서한에서 “합의문의 문구들이 미국산 공산품과 농산물에 대한 효과적이고 구속력 있는 시장접근을 확신시키기에 부족하”고 “자동차 관련 조항이 불공정하게 한국 측에 우호적”이라고 했다.

한나라당 원내대표 홍준표는 이것이 한미FTA가 “한국에게 유리하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이것은 제 논에 물대기 식 해석일 뿐이다.

오바마의 이런 태도는 FTA에 대한 미국의 평범한 노동자·서민들의 반감을 반영한다. 지난 1994년부터 시작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이후 미국 CEO 평균연봉이 4백60퍼센트나 증가하는 동안 미국 제조업 노동자들의 임금은 13퍼센트나 깎였다. 10년 동안 90만 개의 일자리가 줄었다고도 한다. 오바마는 노동자들의 이런 정당한 반감을 ‘보호무역주의’를 부추기는 데 이용해 대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 한다.

다른 한편 오바마는 미국 자동차 산업 등 한미FTA에 득실을 셈하고 있는 자본가들의 이해관계를 반영하고 있다. 이 자본가들은 협상에서 한국의 경쟁 자본가들보다 더 유리한 위치에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미국 자본과 한국 자본 사이의 이해관계는 단순히 대립되지 않는다. 예컨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개방되면 미국의 축산업계가 이득을 보고 한국의 축산업계가 손해를 보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삼성에버랜드나 LG아워홈 같은 한국의 대형 급식업체들은 오히려 이득을 볼 것이다.

무엇보다 한미FTA에 대한 한국 지배자들의 주된 목표는 FTA라는 “외부 충격을 통한 구조조정”으로서, 노동시장 유연화, 공공부문 민영화, 기업규제 완화 등을 추진하는 것이다.

따라서 한미FTA가 ‘미국에 불리하니까 한국에 유리한 것’이라고 하는 것은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다. 미국 지배자들과 한국 지배자들은 FTA를 통해 자기 나라의 평범한 민중을 공격하고 막대한 이윤을 뽑아내려 하는 데 공동의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이명박은 지난 5월 22일 발표한 대국민 담화에서 한미FTA 통과는 “선진국에 진입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역사의 분기점”이라며 “수출과 외국인투자가 늘고 … 30만 개가 넘는 일자리가 생겨난다 … 새로운 [경제] 성장 동력을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일”이라 말했다.

그런데 과연, 미친 소를 먹으면서까지 한미FTA를 체결하면 일자리가 생기고 서민 경제가 살아날까?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의 진원지인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통해 경제를 고성장 시키겠다는 기대는 실현되기 어렵다.

설사 경제가 성장한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곧장 ‘서민 살림살이’ 경제가 나아지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멕시코에서는 NAFTA 체결 후 9년간 외국인 직접투자는 4배 이상 늘고 수출은 2배 이상 늘었지만 실질임금은 7.9퍼센트 하락하고 실업률도 5.4퍼센트 증가했다.

한미FTA는 미친 소에 반대해 거리로 뛰쳐나온 우리들이 행동하는 또 다른 이유인 의료 민영화나 교육 시장화, 그리고 물, 전기, 가스 등 광범한 공공서비스에 대한 민영화 정책도 포괄하고 있다. NAFTA 이후 멕시코는 필수 식량 저가 공급을 중단했다. 버스·국영석유·철강·광산 등이 민영화됐고 노동자들은 정리해고 됐다.

‘투자자-국가제소권’(ISD)은 FTA에 포함된 치명적인 독소다. 이 제도에 따라 기업은 자신의 시장 개척을 가로막는 나라의 정부를 상대로 제소할 수 있다. 미국 화학제품 기업은 캐나다의 인체 유해물질 규제 조항을 폐지하기 위해 캐나다 정부를 제소한 바 있다. ‘역진방지조항’은 한번 개방된 수준을 되돌릴 수 없게 한다. 정태인 전 청와대 비서관은 이 두 조항이 맞물릴 경우 “어떤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정책을 되돌릴 수 없게 되고 … 공공서비스의 시장화·자유화만 가능할 뿐, 공공성 강화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지금 거리의 저항이 성공해 쇠고기 협상이 백지화되더라도 한미FTA가 통과되면 미국 축산업계가 ‘투자자-국가제소권’을 활용해 한국 정부를 공정 경쟁 위반으로 제소할 수 있게 된다. 소송이 승리한다면 한국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를 전면 개방하는데다 벌금까지 물게 될 수 있다. 게다가 ‘역진방지조항’으로 이런 사태를 되돌릴 수도 없게 된다.

한미FTA는 광우병보다 더 심각한 ‘특정위험물질’인 것이다.

이명박과 재벌·강부자에게 한미FTA는 이득이겠지만, 대량 해고와 비정규직으로 하루하루 고단한 나날을 살아가는 노동자들과 농약을 밭에 뿌려야 할지 입에 넣어야 할지 고민하는 농민들에게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이다. 거리에서 움트고 있는 반란의 물결은 쇠고기 협상을 백지화시키고 나아가 한미FTA도 폐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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