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말 IMF에 의한 경제 관리 체제를 부른 경제 공황을 겪고도 한국 경제는 2000년 하반기 이후 경기 후퇴를 한번 더 겪었다. 지금 해외의 신문들은 “한국 경제의 제2의 기적”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의 경기 전망은 좋지 않다. “사상 최악의 대졸 취업난”에 대한 보도 기사가 신문 1면 톱을 장식하고 있다. 사람들은 우리가 도대체 경제 상승기 속에 있는 건지 아니면 하강기 속에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고 말한다.

우리는 위기로 향하는 체제의 장기적 경향과 최근 몇 년 간의 특정한 상황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

칼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체제에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위기를 분석했다. 이 체제 하에서 창출되는 부의 원천은 노동자들의 노동뿐이다. 이것이 기업주들 이윤의 원천이다. 그들은 이 이윤을 이용해 더 많은 기계설비류에 투자한다.

이 때문에 각 노동자는 자본가들을 위한 부를 생산하기 위해 기계를 더 많이 사용해야 한다.

마르크스가 말했듯이, 경제 위기는 “죽은 노동”(기계설비류)이 “산 노동”(노동자)을 점차 대체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기계 형태인 고정자본의 양은 노동자의 노동보다 더 빨리 증가한다. 이것은 투자수익 증가율이 하락함을 뜻한다. 마르크스는 이를 두고 “이윤율의 저하 경향”이라고 했는데, 이것이 바로 경제 위기의 원인이라고 했다.

서로 경쟁하는 자본가들은 더 많이 생산하기 위해 더 많이 기계설비류에 투자한다. 그러나 이것은 이윤율 하락 때문에 과잉생산을 부르고, 자본가들은 투자를 멈춘다.

위기와 이윤율 하락의 해결책은 축적 자본의 일부를 파괴(무용지물화)하는 것밖에 없다. 그래서 자본주의 역사는 호황과 불황의 반복으로 점철돼 왔다. 그래서 일부 자본가들과 그들 기업이 파산하고, 파산한 자본가들이 남긴 기업들이 다른 자본가들에게 넘어간다.

불황은 모두 파산, 공장 폐업, 실업, 인수·합병 등을 수반한다. 그 과정에서 일부 취약한 자본들은 사라지는 한편, 불황에서 살아남은 다른 자본들은 강력해진다. 이들은 수는 더 적어지지만 규모는 더 커지는 경향이 있다.

살아남은 자본들은 광범한 자본 파괴 덕분에 강력한 기반 위에서 다시금 경쟁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성공한 자본들도 자기들이 단지 과거의 순환을 다시 반복하는 것뿐이라는 점, 그래서 결국 또다시 위기로 빠져들 수밖에 없으리라는 점을 알게 된다.

국가 개입

그러나 1930년대 초 자본주의 역사상 최악의 불황(대공황)을 겪고부터 체제의 두 가지 측면 때문에 마르크스 시대의 호황과 불황 유형이 바뀌었다.

첫째, 경제에 대한 국가 개입 수준이다. 1930년대의 대공황으로 말미암아 국가는 개입을 해서 자본 축적을 지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을 통해서만 체제의 완전한 붕괴를 막을 수 있었다.

둘째, 고정자본 양의 증가를 상쇄하고 그럼으로써 이윤율 저항 경향을 상쇄하는 아주 중요한 요인이 있었다.

마르크스는 위기를 지연하거나 막는 구실을 할 수 있는 “상쇄 경향”이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예컨대, 노동생산성 증가, 실질임금 삭감, 지배계급의 소비를 위한 사치품과 무기 생산이 이윤율 저하를 상쇄하는 구실을 한다.

1930년대 이래 이러한 요인들 가운데 주된 것은 이윤의 많은 부분을 생산적 투자가 아닌 무기에 사용하는 것이다.

모든 주요 자본주의 열강이 가담한 제2차세계대전과 이 전쟁을 일으킨 재무장 덕분에 세계는 불황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지속적인 군비 지출(상시적 무기 경제) 덕택에 자본주의는 위기를 피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자본주의 역사에서 가장 오랫동안 탄탄한 호황이 지속됐다.

장기 호황의 모순

하지만 이 장기 호황은 무기 생산에 갈수록 많은 자원을 투입함으로써만 유지될 수 있었다. 그나마 전후 호황은 1974∼75년 세계 경제를 강타한 자기 파괴의 씨앗을 내포하고 있었다.

군비 지출 부담은 체제 전반에 고르게 적용되지 않았다. 초강대국들이었던 미국과 소련이 서로 긴장 상태에서 가장 큰 부담을 졌다. 가장 적은 부담은 제2차세계대전의 패전국 독일과 일본이 졌는데, 이들의 군비 지출은 아주 적었다.

이 덕택에 독일과 일본 경제는 장기 호황 동안 급성장했다. 초강대국들과는 달리, 심지어 영국과 프랑스와도 달리, 독일과 일본은 높은 수준의 군비 지출 부담이 없었다. 이 덕분에 두 나라는 특히 수출 기회가 많았다. 반면, 이 때문에 그들은 고정자본 양을 국제적으로 증대시켜 놓았다.

1960년대 말쯤 생산에 필요한 자본 양이 다시 증가하면서 이윤율이 떨어졌다. 이것은 결국 1974년의 위기를 불렀는데, 석유 가격 인상은 이윤율 하락으로 허덕이던 자본가들이 마침내 투자를 멈추게 만든 결정타였을 뿐이다.

최초의 위기

1974∼75년의 위기가 모든 곳에 고르게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그러나 세계 경제가 회복되기 시작하자마자 또다시 1979∼81년, 위기가 경제를 강타했다. 1990∼92년에도 위기가 엄습했다. 대량 실업, 낮은 성장, 자본 대량 파괴가 뒤따랐다. 그리고 1997년 동아시아, 1998년 브라질과 러시아가 심각한 위기에 빠졌었고, 지난해와 올해 라틴아메리카가 심각한 위기에 시달리고 있다.

이것이 지난 30년 동안의 세계 경제 상황인데, 이 위기는 마르크스가 19세기에 목격한 위기와 다를 뿐 아니라 제2차세계대전 발발 전의 위기와도 다르다.

이것은 1930년대와 같은 심각한 위기는 결코 아니지만, 더욱 장기화하고 있으며, 호황이 더 짧아지고 불황이 더 길어진 것이 특징이다. 또한, 체제는 결코 완전히는 회복되지 못한다. 본질적인 이유는 1930년대에 닥친 바와 같은 붕괴를 지금껏 막아 왔던 “상쇄 요인”들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이제 개별 국가는 소수의 거대 기업에 의존한다. 만일 이들 거대 기업들 가운데 어느 한 기업이 몰락한다면 전체 경제에 파괴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래서 여전히 국가는 시장이 자율적으로 움직이도록 놔 두기보다는 지원을 위해 개입한다.

그 동안 김대중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한 것이 한 예이다.

또한 거대 기업이나 때로는 국가 전체를 파산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채무 부담을 완화하라고 금융 기관과 국제 경제 기구들에 국민적 또는 대중적 압력이 가해진다.(예 : IMF가 1998년 하반기 이후 한국 정부에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애초 안대로 관철시키지 못하고 완화한 것. 그리고 국제적인 반자본주의 운동의 외채 탕감 요구가 창출하는 압력.) 이것도 자본주의에서 위기를 제거하는 오랜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못하게 하는 효과를 낸다.

신자유주의의 모순

자본주의에 대한 이러한 제도적 개입은 최악의 붕괴는 막을 수 있겠지만, 자본이 스스로 완전히 쇄신하는 것도 막는다.

자본가들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이 있다. 과감히 노동자들의 생활수준을 끌어 내릴 수만 있다면 말이다. 이것이 이른바 “신자유주의”이며, 이 위기 해결 수단은 자본과 노동간 계급 투쟁을 격화시킬 것이다.

지금까지 이 나라에서 신자유주의는 노동자 운동의 저항에 부딪혀 완전한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새로운 경제 위기는 미국·일본·유럽 대륙을 포함한 세계 대부분의 나라들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르헨티나에서 보듯이 국가 전체의 파산은 더 이상 말이 아니라 실제의 가능성이 됐다. 미국 주식시장의 붕괴 가능성은 우리 평범한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안겨 주고 있다.

우리는 앞으로 위기가 더욱 깊어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자본가들은 그 대가를 노동자들이 치르도록 하기 위해 대량 해고에서부터 전쟁에 이르는 다양한 위협을 사용할 것이다. 노쇠해 가는 냉혹한 체제에 새 생명이 불어넣어질 수 있느냐 없느냐는 노동자 계급이 대가를 치를 태세가 돼 있느냐 안 돼 있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