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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위선적인 대북 압박

미국의 위선적인 대북 압박

이정구

유엔 안보리의 이라크 제재 결의안 통과와 중간선거 승리를 통해 힘을 얻은 전쟁광 부시가 북한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 10월 방북한 켈리가 북한의 농축 우라늄을 통한 핵 개발 의혹을 제기하면서 북한 핵 문제가 초미의 쟁점으로 부상했다. 미국은 “북한이 핵폭탄 2개분 농축 우라늄 30킬로그램을 보유하고 있다”고 단언했다. 부시는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단정하고 북한의 핵 “무장 해제”를 요구했고, 국무장관 콜린 파월은 “북한이 제네바 합의와 핵확산금지조약(NPT)·국제원자력기구(IAEA) 협정·남북 비핵화 공동선언 등 4가지 원칙을 위반했다”고 비난했다.

부시 정부의 고위 관리들은 북한에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얼마 되지 않아 경수로 지원용 중유 공급을 중단한다는 결정이 뒤따랐다.

하지만 언론과 부시 일당의 호들갑에 비해 북한이 핵 무기를 개발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는 증거들은 빈약하기 짝이 없다. 핵기술 관련 국제 전문잡지인 〈뉴클로닉스 위크〉(Nucleonics Week) 10월 24일치에 따르면, 미국은 북한이 농축 우라늄을 생산하는 원심분리기 부품과 재료들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밖에 보여 주지 못했다.

게다가 북한은 핵무기 개발 ‘계획’이 있다는 사실만 시인했을 뿐 핵무기 개발을 하고 있다고 밝힌 것은 아니다. 북한이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양의 농축 우라늄을 보유하고 있는지 그것으로 핵폭탄을 제조했는지도 알 수 없다. 북한이 핵무기를 이미 개발해 보유하고 있다 해도 놀랄 일은 아니다. 핵무기는 우라늄과 그 처리 기술이 조금만 있으면 만들 수 있다.

물론 계획 수준에서라도 북한의 핵 개발 시도를 지지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북한 핵 개발이 구상 단계에 있든 진행되고 있든 아니면 실제로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든 그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핵 선제 공격

북한의 핵 개발 의혹이 사실이라 해도 미국이 보유한 핵무기 규모와 핵 개발 노력에 비하면 새 발의 피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은 전략 핵무기만 해도 수천 기를 보유하고 있고, 끊임없이 핵실험을 하고 있다.

부시가 세계 평화를 위해 북한 핵 개발을 막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순전한 위선일 뿐이다. 부시는 핵무기가 있는지도 확실치 않은 북한에는 핵 선제 공격 위협을 가하지만 핵무기를 2백 기 이상 보유하고 있는 이스라엘은 위협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은 2백 기 이상의 미사일과 2백 기 이상의 핵무기로 반미 성향의 아랍 국가들을 위협해 왔다. 그런데도 미국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들한테서 빼앗은 땅에 국가를 세울 때부터 지금까지 군사·경제 원조를 아끼지 않았다.

미국은 북한이 1994년 제네바 합의를 어겼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먼저 제네바 합의를 어긴 것은 미국이다. 제네바 기본 합의 3조 1항은 “미국은 핵무기로 위협하거나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북한에) 보장한다.” 하고 돼 있지만 미국은 여러 차례 북한에 핵 사용 위협을 가했다.

클린턴은 러시아와 핵 미사일 상호 겨냥 포기 합의를 한 뒤에도 이렇게 말했다. “만일 핵 미사일을 북한 등 다른 곳을 향해 재겨냥해야 한다면 우리는 신속하게 그렇게 할 수 있다.” 최근에 미국 안보 및 에너지 연구기관인 노틸러스 연구소는 미국이 1998년에 북한에 핵 폭탄을 투하하는 모의 훈련을 했다고 폭로했다(http://www.nautilus.org/nukestrat/USA/bmd/7aftmd98.pdf). 부시는 지난 6월 새로운 안보 전략을 작성하면서 핵 선제 공격 대상에 북한을 포함시켰다.

게다가 미국은 “2003년을 목표 시한으로” 한 경수로 건설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음에도 지금까지 경수로 건설은 20퍼센트밖에 진척되지 않았다. 반면, 북한은 기본 합의 이래로 영변 핵시설의 사찰을 받았을 뿐 아니라 플루토늄 생산 계획을 동결했다. 또, 핵 반응기(원자로)는 물론 재처리 공장까지 가동하지 않고 있다.

미국의 거부로 대북 중유 지원이 중단되면서 제네바 기본 합의도 사실상 무효화되는 셈이다.

북한에 대한 미국의 태도는 항상 막가파식이었다. 1998년 미국은 금창리 지하시설을 핵 시설이라고 우겼지만 결국 텅 빈 동굴임이 밝혀졌다. 1999년 베를린 미사일 협상 때도 미국은 북한이 미사일 발사 실험을 유예하는 조건으로 경제 제재를 완화하기로 했다. 하지만 경제 제재 완화 조치들은 이행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이미 취해졌던 완화 조치들도 행정 명령으로 무산됐다.

오히려 미국은 북한에 더 많은 양보를 요구했다. 미사일 발사 실험 유예뿐 아니라 사거리 180마일 이상의 모든 미사일의 개발과 생산 및 배치를 금지하는 포괄적인 미사일 합의안을 강요했다. 부시 정부는 생화학 무기와 휴전선 근처에 배치돼 있는 재래식 무기까지 감축하도록 강요했다.

불안정

부시가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문제 삼는 진정한 이유는 한반도를 자신의 영향력 하에 두기 위해서다. 콜린 파월은 “북한 핵 문제가 해소될 때까지 북한은 한·일과의 대화로 인한 다른 혜택을 볼 수는 없게 될 것”이라고 말해 한국과 일본의 대북 관계 진전에 제동을 걸었다.

또, 미국의 북한 핵 개발 의혹 제기는 중국을 견제하는 의미도 담겨 있다. 북한의 후견인 구실을 하고 있는 중국에 압력을 넣어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이 자신의 이라크 공격 계획에 반대하지 못하도록 단속하려는 것이다.

미국의 북한 압박이 거세지면서 한반도의 불안정이 심화하고 있다. 미국의 북핵 압박은 동북아를 더욱 불안정에 빠뜨릴 것이다. 일본 지배자들은 북한 미사일 위기, 동해 괴선박 사건 등을 항상 군국주의적 헌법 개정과 군비 증강 그리고 자위대 파병의 빌미로 이용했다. 이제 일본 지배자들은 북한 핵 논란을 계기로 핵 보유까지도 공공연히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일본의 군사력 증대와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 확대는 중국의 군비 증강을 부추길 것이다. 이런 군사적 경쟁은 동북아를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 가운데 하나로 만들어 가고 있다.

동북아의 안정을 위협하는 진정한 “악의 축”은 북한이 아니라 바로 미국이다. 미국의 군사력은 북한에 비해 1백7배, 중국에 비해 12배, 일본에 비해 7배나 많다. 세계 패권을 유지하고 강화하려는 미국이 이라크에서 군사적 승리를 거둔다면 그 다음 희생양으로 북한을 선택하려 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