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당의 희비극

김인식

끝내 사회당이 대선 독자 출마를 결정했다. 사회당의 대선 후보로 선출된 김영규 후보는 “사회당은 자본주의를 반대하는 것과 달리 민주노동당은 자본주의 유지를 주장”하므로 “우리는 … 민주노동당 및 권 후보와는 이념도 다르고 노선도 다르다. … 사회주의자만이 진보며 사회당만이 유일한 진보 정당이다.” 하고 출마 이유를 밝혔다.

사회당이 주장하는 반자본주의는 충분히 공감할 만하다. 그리고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것도 감동적이다. 인간의 상품화, 열악한 작업 환경, 장시간 노동, 농민들의 생계 파탄, 황폐해진 환경 등 자본주의의 참상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자본주의가 가하는 비참함에 대한 울분이 반자본주의 운동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 운동은 국제적 규모로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다.

그런데 반자본주의 운동은 매우 다양한 표현을 취하고 있다. 이를테면, 민주노동당 운동도 반자본주의 운동의 일부다. TV에서도 보았듯이 민주노동당과 권영길 후보는 신자유주의 반대를 강조한다. 오늘날 자본주의의 경제적 양상은 신자유주의다.(군사적 양상은 옛 소련 붕괴 이후의 신제국주의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신자유주의라는 말은 더 넓은 체제를 에둘러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에게는 신자유주의가 더 넓은 체제와 관계 없는 것인 양 이해되기도 한다. 그래서 민주노동당원들 가운데에는 신자유주의에만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민주노동당이 비록 일관된 사회주의적 전망을 표현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그 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시선은 체제의 특정 효과만 개선하기를 넘어서 있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민주노동당 선거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사회주의적 주장에 개방돼 있다. 물론, 사회주의적 주장이 추상적이지 않고 그들의 관심사를 적절히 다룰 경우에 말이다. 그러나 사회당은 발전하는 의식의 유동성을 과소평가하거나 이해하지 못한다.  

전형적으로, 민주노동당이 “자본주의 유지를 주장”하기 때문에 “사회당만이 유일한 진보 정당”이라는 주장은 입증되지 않은 가설이다. 사실, 민주노동당은 “자본주의 유지를 주장”하기보다는 “자본주의의 질곡을 극복”해야 한다는 견해다. 어느 세력에 의해, 어떤 방식으로 자본주의를 “극복”해야 할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럼에도 사회당이 민주노동당을 “자본주의 유지”를 표방하는 “제3의 보수 정당”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과도한 좌익주의일 뿐이다. 그리고 자기들 외에는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는 “선명성 경쟁”이기도 하다.

그러나 진정한 사회주의자는 대중의 선진적 부분의 정서를 이해하는 사람들이다. 그는 추상적 선전과 종파주의가 현실 투쟁을 회피하는 독특한 방식임을 안다.

사회당 선대본 대변인 양명철 씨는 “존경받는 부자 만들겠다는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가 자신과 이념적으로 가장 비슷한 노무현 후보를 놔 두고 우리 당에 후보 단일화하자고 말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하는 논평을 냈다.

사회당에게는 민주노동당과의 차별화 욕구가 나머지 모든 생각을 압도하는 듯하다. 지금 상황에서 민주노동당의 선거 운동은 현실 운동에 초점을 제공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의 선거 운동 때문에 진보 진영 내에서는 민주당 노무현을 한나라당 이회창보다 “더 작은 악”으로 볼 수 있는가 하는 논쟁이 더욱 치열하게 벌어졌다. 이런 논쟁들은 민주노동당 선거 운동이 부르주아지로부터 노동 계급의 정치적 독립성 획득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는 효과를 내고 있음을 보여 준다.  

사실, 사회당의 이런 논평은 뿌리 깊은 종파적 사고 방식을 보여 주는 증거다. 종파주의는 순전히 이데올로기(“이념”)에 따라 그 운동에 대한 옳고 그름을 판단한다. 자신들이 인위적으로 도입한 추상적 슬로건을 절대시하다 보니 성장하고 급진화하는 운동의 동역학을 무시한다. 바로 이 때문에 사회당은 민주노동당의 선거 운동을 공격 대상으로 본다.

이렇듯 사회당은 ‘사회주의 후보’라는 표지를 앞세워 진보 진영 내(특히, 민주노동당과) 차별 긋기에 주력하고 있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보수 정당에 맞서 다양한 스펙트럼의 진보 세력과 단결하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1848년 혁명 패배 뒤 오랜 고립을 경험한 마르크스는 1860년대 초 노동 계급 운동이 부활하자 제1인터내셔널을 창건하는 과정에서 지도적 역할을 했다. 그 때 마르크스는 그 전에 자기가 맹렬히 비판했던 프루동 추종자들 같은 조류들과 함께 활동했다.

“사회주의적 종파주의의 발전과 진정한 노동 계급 운동의 발전은 언제나 반비례한다. (역사적으로) 노동 계급이 독자적인 역사적 운동을 펼칠 만큼 성숙하지 않는 한 종파들은 정당화된다. [노동 계급이] 그만큼 성숙하게 되면 그 때부터 모든 종파는 본질적으로 반동적이다.”(볼테에게 보내는 편지, 1871년 11월 23일)

 

사회당 = 노동자투쟁당?

김영규 후보는 사회당이 프랑스의 ‘노동자투쟁당’(뤼뜨 우브리에르)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노동자투쟁당은 지난 4월 프랑스 대선 1차 투표에서 사회당 정부의 실정에 대한 대중적 반발로 6퍼센트 가까이 지지를 얻었다. 노동자투쟁당이 공공연히 노동자 혁명을 주장하는 트로츠키주의 정당이라는 사실 때문에 이 성과는 매우 놀라운 것이었다.

반면, 사회당은 공생, 평등, 민주적 자치, 박애, 평화 같은 추상적인 사회주의적 “가치들”을 말한다. 그러나 사회당은 이런 사회주의 “가치” 실현을 위해 필요한 수단·방법과 세력을 분명하게 말하지 않는다. 이 점이 사회당과 노동자투쟁당의 차이다.

게다가 사회당은 민주노동당을 영국 노동당, 프랑스 사회당, 독일 사민당과 똑같이 취급한다. 현 상황에서 민주노동당은 블레어가 주도하는 노동당 주류가 아니라 토니 벤 같은 노동당 좌파와 훨씬 더 유사하다. 가령 TV에 나온 권영길 후보는 분명한 말로 신자유주의와 미국의 전쟁을 반대한다. 이 차이를 무시하는 것은 서구적 맥락에서도 맞지 않지만, 한국적 맥락에서는 더더욱 맞지 않다. 무엇보다 대중적 입증과 대중의 정치적 경험이라는 가장 중요한 전술 문제를 건너뛰게 되기 때문이다.

지금 상황에서 사회당이 끝내 민주노동당과 차별성을 긋기 위해 독자 후보 전술을 고집하는 것은 희극적 비극이다. 사회당 당원들은 매우 헌신적인 투사들이다. 그러나 이 투사들이 종파주의의 덫에 걸려 타락하게 된다면 그것은 가슴아픈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