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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생각한다 ─ 6ㆍ10 이후의 과제:
이명박 퇴진을 향해 힘을 결집하자

서울에만 70만 명, 전국에서 1백만 명이 모인 6월 10일은 이번 촛불 항쟁에서 또 하나의 분수령이었다. 심지어 해외 9개국 18개 도시에서도 촛불이 켜졌다.

6월 10일 청와대로 향하는 길목들을 모두 ‘명박산성’(컨테이너 장벽)으로 막아 놓은 이명박은 그야말로 촛불의 바다에 포위된 ‘독 안에 든 쥐’처럼 보였다. 한국 사회의 심장부에 등장한 ‘명박산성’은 정권의 존폐를 위협하는 촛불 바다의 위력과 겁에 질린 정권의 처지를 극명하게 드러냈다. 사설 경비, 철제 삼각 바리케이드, 쇠못이 박힌 4중 장애물까지 설치해 놓은 〈조선일보〉 본사의 모습도 겁먹은 지배자들의 처지를 보여 준다.

쥐새끼

3개월 전만 해도 이명박의 별명은 ‘불도저’였고 조중동문은 기고만장해 있었다. 저돌적인 우파 정부의 등장에 많은 사람들이 위축돼 있었다. 그러나 지금 이명박은 ‘쥐새끼’라고 조롱받고 있다. 평범한 서민·노동자들이 무릎 꿇고 있을 때, 이명박은 강력해 보였다. 그러나 그들이 무릎을 펴고 일어서자 진정 힘 있고 강력한 것이 누구인지 드러났다.

온갖 야비한 꼼수에 도가 튼 이명박은 6월 10일 촛불 반대 시위에 한나라당 당원들과 우익 지지자들을 버스까지 대절해 불러모았지만 고작 5천 명에 그쳤다. 1백만 명 대 5천 명이라는 극명한 대비는 이명박의 초라한 처지만 드러냈다.

이명박은 또, ‘명박산성’에 화재 위험이 큰 그리스를 바르고, 정운천을 촛불 바다 속에 던져넣으며 궁지에서 벗어날 ‘비극’을 바랐다. 화재·폭행 사고 등이 일어나면 그것을 빌미로 촛불을 비난하고 군홧발로 짓밟을 속셈이었을 것이다.

이명박은 계엄 전 단계라는 갑호비상령을 발동해 전국의 모든 전·의경 4만여 명을 동원했지만, 1백만 개의 촛불 앞에서는 바람 앞의 등불이었을 뿐이다. 현직 경찰서 과장이 경찰의 촛불 대응을 공개 비판할 정도로 억압 기구 내부의 균열도 감지되고 있다.

물이 끓다가 1백 도를 넘으면 액체에서 기체로 질적인 전환을 하듯이, 촛불 항쟁은 6월 10일 1백만 명이 모이면서 이제 본격적으로 이명박 정부 퇴진 투쟁으로 성큼 전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명박의 귀가 막힌 이유


국민의 80퍼센트 이상이 재협상을 요구하고 무려 1백만 명이 거리로 나서 정권 퇴진을 외칠 정도인데도 왜 이명박은 부시 정부와 한 목소리로 한사코 재협상조차 거부하고 있는가?

이명박이 이처럼 귀를 시멘트로 막아 놓은 것처럼 행동하는 이유는 그가 진정으로 대변하는 게 평범한 국민이 아니라 소수 재벌과 강부자들이기 때문이다.

기업, 언론, 대학 등을 소유·지배하고 정부, 경찰, 국회, 법원 등을 ‘배후 조종’하는 이들에게 이명박은 결코 귀가 막힌 사람이 아니며 너무나 소통이 잘 되는 ‘머슴’이다.

어차피 고급 한우를 먹으면 되는 대기업 소유주와 최고경영자들(경제5단체장이 대변하는)은 광우병 위험에도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원한다. 가격이 비교적 저렴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통해 임금재의 가치(노동력 재생산 비용)가 떨어지기를 원하는 것이 주된 이유일 것이다.

재벌·강부자의 ‘머슴’

하지만 광우병 위험 쇠고기 문제를 놓고 1999년 10월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2003년 5월 캐나다와 미국 사이에, 같은 해 12월 미국과 일본 사이에 벌어진 무역 분쟁과 비슷한 무역 분쟁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것이 이명박이 우려하는 소위 “정부의 신인도[신뢰성] 실추”가 뜻하는 바다.

그래서 투쟁 수위가 어지간해서는 이명박은 물러서지 않으려 하며 고작 ‘자율규제’와 도마뱀 꼬리 자르기식 내각 교체를 내놓고 있다. 심지어 ‘박근혜 총리 기용’을 양보라고 내놓는 황당한(박근혜가 총리직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적다는 점은 제쳐두고라도) 짓도 하고 있다.

이명박의 고유가 대책도 정유 재벌들의 주머니는 전혀 건들지 않으면서 서민의 오른쪽 주머니에서 뺀 돈을 왼쪽 주머니에 넣어 주는 것에 불과했다. 이어지는 통신비·교육비 대책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재협상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어느 정부든 정치 위기가 심각해질 대로 심각해져 완전히 겉잡을 수 없어질 때까지도 내놓지 못할 양보 조처는 없다.

그러므로 재협상을 얻어내려면 지금보다도 투쟁의 수위가 더 높아져야 할 것이다. 20만 명이 참가한 시위에서 정권 퇴진 구호가 나와 권력 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했고, 지금은 그보다 규모가 훨씬 더 큰 1백만 시위에서 이 문제가 아주 자연스럽게 제기됐다.


정권 퇴진과 “의제 확장”


따라서 ‘6월 10일 이후는 무엇인가’에 대한 우리의 답은 이명박 퇴진과 “의제 확장”(요구 확대)이어야 한다. 이미 “이명박 퇴진”은 촛불 바다 속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구호이고 촛불의 요구는 쇠고기 문제를 넘어 확대됐다.

광우병으로 불이 붙어서, 이명박의 모든 미친 정책들에 대한 반대로 번지다가, 이 모든 것의 배후인 이명박을 직접 겨냥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점에서 광우병국민대책회의가 대운하, 민영화, 경쟁 교육 등에 대한 반대를 공식 요구로 채택하고, “6월 20일까지 재협상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정권 퇴진 운동을 벌이겠다고 밝힌”(11일 밤 9시 MBC TV 뉴스) 것은 매우 반갑다.

물론 범계급적인 현 촛불 운동 참가자들 가운데는 단지 쇠고기 문제에만 이해관계가 걸린 세력들이 있다. 예컨대 남호경 전국한우협회장은 〈조선일보〉와 인터뷰해 “[정권 퇴진이라는] 엉뚱한 쪽으로 불이 붙고 있다”고 불편함을 드러냈다.

의회주의적 이해관계 때문에 정권 퇴진 요구를 두려워하는 세력도 있다. 민주당은 가축전염병예방법을 고리로 한나라당과 타협해 국회로 돌아갈 채비를 시작했다. 얼토당토않게도 촛불 운동 참가자 일각에서 ‘구관이 명관’이라는 식의 지지를 받고 있는 노무현은 “청와대로 행진하거나 정권 퇴진을 요구해선 안 된다”며 운동이 체제 내에 머물 것을 촉구했다.

최장집 교수도 “거리의 정치는 오늘 이 선에서 그쳤으면 좋겠다”며 “제도권 내 정당이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류근일은 “헌정 질서도 존중하고 군중의 합당한 요구도 수용할 수 있는 차선책을 피차 찾아야 한다”며 이런 개입을 반겼다.

제도권

촛불 지지 주류 언론의 자유주의적 본질도 드러나고 있다. 며칠 전 밤 9시 MBC TV 뉴스 논평과 11일치 〈경향신문〉 1면 주요 기사 논조는 “제도권 수렴”을 촉구하는 것이다. 국회 내에서 이런 갈등을 조정·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임기를 보장해 주는 ‘헌정질서’는 국민을 등쳐먹는 이명박 정부의 사회적 기반인 재벌·강부자 집단을 위한 질서일 뿐이다.

한나라당이 과반 의석인 국회가 쇠고기 문제를 넘어선 문제 해결의 통로가 될 수 없다.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경쟁 교육, 민영화, 한미FTA 등은 바로 노무현과 민주당이 추진을 시작한 것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많은 시민·사회단체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섰을 때 대중의 ‘보수화’에 좌절감을 느끼고 있었고, 그래서 이 운동의 잠재력에 대한 믿음을 여전히 결여하고 있다.

이명박 퇴진을 둘러싼 운동 내 강온파가 본격적으로 대립하면 이 틈새를 이용해 이명박은 강경파를 고립시켜 탄압하며 통제력을 회복하려 할 수 있다. 조갑제는 이명박에게 “양보만 하고 공세 전환을 하지 않으면 또 밀린다”며 야당의 국회 등원을 계기로 “법질서 회복 조치”를 취하라고 코치했다.

그러나 최근에 공공노조의 공공서비스 사유화 반대, 대운하 반대, 유가 인상 반대 등의 요구는 물론 그 밖의 다양한 요구와 쟁점이 제기되면서 운동은 더 확대됐다. 단지 쇠고기 문제만으로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이토록 운동 지속에 의욕을 보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촛불 운동의 시초부터 〈맞불〉은 운동 근저의 다양한 불만과 요구가 쇠고기 쟁점 부각과 맞물려 작용하고 있으므로 이처럼 운동이 커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므로 단지 쇠고기 문제를 넘어 요구를 확대하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운동의 단결을 보증하는 것이고, 확대된 요구의 성취는 이명박 정부와는 성격이 다른 진정한 진보적 정권이 들어섬으로써만 가능하다.

따라서 지금, 이명박의 미친 정책들에 반대하는 광범한 사회 세력들의 요구와 힘 — 특히 조직 노동자들의 힘 — 을, 미친 정책들의 ‘배후’인 이명박 퇴진을 향해 결집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어떻게 운동을 전진시킬 것인가


하나의 방향으로 힘을 집중시키는 리더십의 필요 자체를 부정하는 태도도 있다. ‘확성기, 방송차, 깃발은 필요 없다’는 주장처럼 말이다. 이런 주장은 운동 내의 노무현·문국현 세력을 겨냥하지 않고 좌파를 겨냥한다는 점에서 위선적이고 그 성격이 친자본주의적 개혁주의이다.

이명박이 전국의 모든 경찰 병력을 총집결시켜 무자비한 폭력 사용도 서슴지 않으며 운동을 겨냥하고 있는 지금, 재벌·강부자 권력이 온갖 미친 정책으로 우리를 괴롭히는 지금, 신자유주의로 고통받는 사회세력들의 힘을 정권 퇴진으로 결집시켜 운동을 전진시키는 리더십은 절실하다.

그것은 민주적이고 쌍방향적인 리더십이어야 하고 우리의 피해와 힘의 낭비를 최소화하면서 가장 효과적으로 운동을 전진시키는 리더십이어야 한다.

그 리더십은 지금, 재벌·강부자들의 권력 기반인 생산과 이윤 자체에 타격을 가할 조직 노동자들의 파업을 고무·확산하는 구실을 해야 한다. 대중 행동의 힘을 바탕으로 위력적인 거리 행진이 계속되도록 이끌어야 한다. 이것이 노무현이 그토록 두려워했고, 지금 이명박이 가장 두려워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