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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운트다운 이라크 전쟁

카운트다운 이라크 전쟁

이수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지난 11월 8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이하 안보리)에서 미국의 이라크 사찰 결의안이 통과됐다. 미국은 회유와 협박으로 유엔을 굴복시켰다. 평화와 협력을 위한 “세계 정부”라던 유엔이 사실은 “도둑과 강도 들의 소굴”이었다는 게 분명히 드러났다.

미국은 거부권을 행사할 수도 있었던 러시아와 프랑스에 미끼를 던졌다.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린 뒤 이라크 석유 수입의 일부를 떼어 주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러시아와 프랑스는 이라크와 수십억 달러 상당의 석유 계약을 체결했는데, 이라크의 정권이 교체되면 이 계약이 허공으로 날아갈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미국은 안보리 비상임 이사국들에는 채찍을 사용했다. 안보리 비상임 이사국 중 여덟 나라가 미국의 경제 원조를 받고 있다. 이들은 모두 예멘 꼴이 될까 봐 두려워했다.

예멘은 1991년 제2차 걸프전을 앞두고 미국의 이라크 공격을 승인하는 결의안에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졌다. 당시 투표가 끝나자 미국 관리가 유엔 주재 예멘 대사를 찾아가 “가장 값비싼 반대표가 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사흘 뒤 미국은 중동의 최빈국 예멘에 대한 원조 예산 7천만 달러 전액을 삭감해 버렸다. 미국의 주구인 왕정이 통치하는 사우디아라비아는 수천 명의 예멘 노동자들을 쫓아냈다.

그래서 이번 미국의 결의안은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심지어 미국에 유일하게 반대할 것으로 예상한 시리아조차 찬성으로 돌아섰다. 미국은 시리아를 “테러 지원국”으로 지정해 경제 제재를 가해 왔다. 유엔 주재 시리아 관리들은 반대표를 던지면 미국이 시리아를 이라크처럼 취급할까 봐 두려워했다고 〈뉴욕 타임스〉는 보도했다. 미국은 또, 1967년 중동 전쟁 당시 시리아가 이스라엘에 빼앗긴 골란 고원 반환 협상 가능성을 내비치기도 했다.

외교적 언사를 벗기고 보면 유엔 결의안은 이라크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사형 선고나 다름없다. 이라크가 결의안을 위반했는지 안 했는지는 미국이 판단한다. 안보리가 이라크의 결의안 위반 여부를 논의하는 동안에도 미국은 이라크를 공격할 수 있다. 무기 사찰단이 이라크에 들어가면 그들은 조작도 서슴지 않을 것이다. 전직 무기 사찰단원 스콧 리터는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무기 사찰단을 그렇게 이용했다고 폭로한 바 있다.

미국 대통령 조지 W 부시는 “미국은 [이라크의] 어떠한 실질적 위반도 안보리와 논의하는 데 동의하지만, 그것이 우리 나라를 방어하는 행동의 자유를 위태롭게 해서는 안 된다.” 하고 말했다. 또, “유엔이 책임을 떠맡는 데 필요한 용기가 없다면” 미국은 독자적으로 이라크를 침공하기 위한 동맹을 결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신네 나라를 넘기지 않으면 폭격을 당할 것”이라는 게 부시가 이라크 지도자들에게 전하는 진정한 메시지다. 안보리에서 투표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부시는 새로운 걸프전 계획을 승인했다. 이라크에 대한 무차별 공습에 이어 25만 명을 동원한 대규모 지상전을 감행한다는 것이다.

이라크 북부와 남부의 비행 금지 구역에서는 이미 폭격이 진행중이다. 지난 6개월 동안 미국과 영국의 이라크 공습 횟수는 10배로 증가했다. 컨스텔레이션 호를 비롯한 미국 항공모함 4대가 페르시아만으로 이동하고 있다. 미국 해병대 2천2백 명이 수에즈 운하를 통과했고, 미군 약 5만 명이 중동으로 몰려들고 있다. 카타르의 알 우데이드 미군(공군) 기지에는 이라크 침공을 진두 지휘할 중부사령부가 건설되고 있다.

“부시의 애완견” 토니 블레어는 1만 명 규모의 영국 예비군 소집령을 내렸다. 1991년 제2차 걸프전 당시 1천5백 명의 예비군이 동원된 사실에 비춰 보면, 이번 이라크 침공은 훨씬 대규모 작전이 될 것이고 따라서 더 큰 비극을 낳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전쟁의 공포 와중에도 희망은 있다. 전쟁이 시작되기도 전에 대규모 반전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지난 9월 28일 영국 런던에서는 40만 명이 반전 시위를 벌였다. 10월 26일 미국 전역에서 20만 명이 반전 시위를 했다. 유엔 결의안이 통과된 바로 다음 날, 이탈리아 피렌체에서는 1백만 명이 참가한 반전 시위가 벌어졌다. 이번 피렌체 시위는 사상 최대 규모의 반전 시위였다. 내년 1월 18∼19일 미국에서는 다시 대규모 반전 시위가 예정돼 있고, 2월 15일에는 유럽 전역에서 예상 인원 1천만 명이 참가하는 대규모 반전 시위가 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