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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연대 파업 현장을 가다 4 ― 평택:
“너 나 할 것 없이 파업하고 있어요”

화물연대 파업 돌입 직후 ‘다함께’ 노동조합팀과 회원들은 의왕 내륙컨테이너 기지와 평택항, 인천항, 부산항 등 주요 물류기지·항만에서 파업 노동자들을 만났다.
이 글은 평택항에서 만난 화물노동자들과 카캐리어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담은 것이다.

30년 넘게 화물차를 몰고 있다는 한 베테랑 노동자는 우리를 보자마자 묵혀둔 이야기 보따리를 풀듯 얘기를 쏟아낸다.
“화물 실정을 아는 놈이 정부에 하나도 없어. 지금 쓰는 법도 왜정 때 만들어진 화물법을 그대로 따라하고 있는 거야.”
“어느 놈이 되더라도 그 나물에 그 밥이겠지만, 아무 것도 모르는 국토해양부가 관할 부서라는 건 말이 안 되거든. 최소한 독일처럼 화물부처장을 따로 둬야지.”
“정부는 우리가 아니라 화주를 우선시 해. 그러니까 기껏 한다는 소리가 [파업 참가자들한테] 유류 보조금 지급 안 한다는 건데, 허참, 이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야! 우리를 몰라도 한참 모르고 하는 소리지.”
역설적이게도 장거리 운행일수록, 대형 트레일러를 몰수록 노동자들의 손해가 막심하다. 최근에는 기름값이 치솟고 다단계 알선 구조가 심해져, 소형 화물차 노동자들에게까지 그 피해가 퍼지고 있다.
이 때문에 그동안 미조직 상태에 놓여 있었던 5톤·1톤의 화물 노동자들이 화물연대에 대거 가입하고 있다.
IMF 이후 5톤 트럭을 몰기 시작했다는 한 노동자는 이렇게 말했다.
“저희 주차장에 18명이 일하는데, [5톤 화물차 노동자들은 사무실이 따로 없고 주차장에서 일을 알선 받는다. 이 때 또 한 번 주차장 사용료 명목으로 알선료를 떼인다.] 7~8명이 신용불량자에요. 저도 보일러공이었는데 IMF 때 쫓겨나서 이 일을 시작했죠.”
[대형 트레일러 기사뿐 아니라] 저희도 엄청 힘들어요. 알선업체가 운송료 15만 원 받아서, 우리한테는 11만 원 돌려주니까… 서평택에서 인천까지 갔다 오는데 1백20킬로미터가 조금 넘어요. 기름값이 보통 6만 원에서 7만 5천 원까지 나와요. 여기다 도로비, 식사비 빼면 얼마 안 남죠. 요즘은 경기도 안 좋아서 하루 한 탕 뛰는데, 노가다 뛰는 것보다도 안 남아요.”
“기름값은 계속 오르는데 운송료는 오히려 깎였어요. 2년 전에는 2만 원 더 쳐줬거든요.”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는 이명박에 대해서도 한마디 한다.
“그래도 노무현은 들어 준다는 시늉이라도 했지만, 이명박은 시늉조차 안 해요.”
노동자들과 대화를 나누는데 트레일러 화물차 한 대가 평택항으로 들어간다. 노동자들의 표정이 잔뜩 심각해졌다.
“어? 저거 영업용 같은데?”
“아무래도 영업용 차량 같은데, 자가용 넘버로 바꿔 달고 오는 것 같아.”
화물연대가 파업에 들어가자, 이명박은 그동안 일을 못하도록 규제했던 자가용 차량[회사에 등록되지 않은 개인 차량] 규제를 풀었다고 한다. 이명박이 똥줄이 타긴 타는가 보다, 참 치사하다는 생각과 함께 피식 웃음이 나온다.

신용불량자

5백 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농성중인 카캐리어 노동자들을 만나기 위해 일어나자, 남편을 만나러 온 한 주부가 자신도 같이 유인물을 나눠 주겠다며 일어섰다.
살림이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남편이 일을 시작한 지 5년 정도 됐어요. 그 때 기름값이 [리터당] 9백 원이었는데, 지금은 1천9백 원 대에요. 살림이 어떠냐구요? 말 안 해도 다 아시겠죠?”, “초등학교에 다니는 애가 둘인데, 급한 대로 애들 학원부터 다 끊었어요.”, “요즘 남편 얼굴 보기 힘들어서 가끔씩 제가 농성장에 나와요. 집에서 밥도 안 먹어요. 조합원들이랑 같이 먹어야 한다고요. 새벽에 나가서 새벽에 들어와요. 그냥 뒤에서 조용히 참가하는 줄만 알았는데, 이렇게 적극적으로 하니까, 남편이 정말 자랑스러워요.”
농성 천막에 가는 길 도로에 카캐리어가 즐비하게 늘어선 모습이 장관이다.
기아차를 운송하는 카캐리어 노동자들은 우리를 보자마자 일어서서 반긴다.
“아가씨, 우리 얘기 언론에 싣는 거요?”
“비조합원들이 엄청 참가하고 있다고 실어요. 너나 할 것 없이 자발적으로 파업에 참가하고 있어요.”
“누군가 차를 이렇게 세워 놓으니까, 너나 할 것 없이 다들 여기에 차를 세우기 시작한 거에요. 자연적으로 파업에 들어간 거죠.”
또 다른 노동자는 이렇게 주문한다.
“글로비스 좀 세게 까 줘요. 글로비스가 뭔지 알아요?”
“글쎄요, 기아차 사장 정의선이 설립했죠? 그냥 앉아서 알선만 하고 엄청나게 돈 챙겨 먹는다는 것 정도 알아요.”
“맞아. 여기 파업하는 사람들, 글로비스에 속한 5개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인데, 글로비스라는 곳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힘든 거여.”
“광주[기아차 광주 공장]는 이미 섰대. 화성도 다음 주면 멈출 거야”라고 힘주어 말하는 노동자들에게서 이유 있는 자신감이 느껴진다.
마지막으로, 이명박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가볍게 묻자 여러 사람이 동시에 한마디씩 한다.
“음.. 대통령감은 아니고, 천상 CEO 태생이야. 우리한테 하는 것 봐. 이게 사장이지, 어딜 봐서 대통령이야?”
환갑이 넘어 보이는 한 늙은 노동자가 이렇게 쐐기를 박는다. “이명박 퇴진? OK!” “국민들이 다 일어나서 끌어내야 해. 전국적으로 다 일어나야 해!”
화물노동자들과 아쉬운 인사를 뒤로 하며 서울로 올라오면서 생각한다.
‘이명박을 몰아내기 위한 위대한 투쟁에, 화물 노동자들의 의미있는 진전이 이미 시작된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