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7일 오후, 이화여대 학생회관에서 홍석천 씨를 만났다. '기자들에게 많이 시달렸을 그가 우리를 정말 만나 줄까?' 마음 한편 걱정도 있었지만 홍석천 씨는 기꺼이 〈열린 주장과 대안〉에 시간을 내 주었다.

이화여대 교문에 들어서자마자 5회 인권영화제 개막 준비로 부산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홍석천 씨는 인권영화제 개막식 사회를 보기로 돼 있었다.

개막식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얘기 나눌 시간이 부족하진 않을지 마음을 조리고 있을 때, 문을 열고 홍석천 씨가 들어 섰다. 처음 본 홍석천 씨의 얼굴은 예상보다 열 배쯤은 밝아 보였다. 〈한겨레21〉 인터뷰 기사에 실린 사진에서 봤던 우울·상심·불안·초조에 젖은 표정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환하게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어려운 거 물어볼 거예요? 아, 떨려라."

그의 코믹한 표정에 분위기는 금세 화기애애해졌다. 기자는 먼저 그가 커밍아웃을 결심하게 된 이유에 대해 물었다. "커밍아웃은 어려운 결단이었을 텐데요. 미처 마음의 준비를 하기 전에 보도가 나갔고 바로 다음날 커밍아웃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커밍아웃을 결심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 얘기해 주세요."

홍석천 씨는 아웃팅을 당한 게 아니라 커밍아웃한 것이라고 말했다. "커밍아웃을 오랫동안 준비해 왔어요. 시각에 따라 아웃팅 당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죠. 하지만 단지 제가 가족들을 설득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 뿐이예요. 저는 연예 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 언젠가는 커밍아웃을 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부모님과 격렬한 토론을 했을 때도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죠. 그 때문에 힘들긴 했지만요."

홍석천 씨가 커밍아웃을 하게 된 직접적 동기는 얼마 전까지 사귀었던 남자 친구와의 만남이었다. "내가 게이로서 살아가는 데서 나 자신을 인정하지 않고는 행복하지 않겠더라구요. 파트너에 대한 기본적인 배려랄까 그런 것도 있구요. 제가 연예인이니까 어렵긴 했죠."

그는 어린이 프로를 하면서 느낀 갈등도 또다른 동기로 작용했다고 말한다. "어린이들과 있다 보면 제 자신에 대해 혼란스러워지는 경우가 있어요. 죄를 많이 지었죠. 그래서 어떤 피해가 있더라도 커밍아웃을 하고 내가 감수해야 할 것은 감수해야 겠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이 날 인터뷰 자리에 함께했던 동성애자 인권운동 연대 대표 임태훈 씨는 죄책감을 느낀다는 게 무슨 뜻인지 오해가 없도록 자세히 얘기하는 게 좋겠다고 조언했다. 홍석천 씨가 계속 말을 이었다.

"어린이 프로그램에서 제가 맡은 캐릭터가 일탈하는 역이예요. 못된 짓하고 선생님 말 안 듣는 역할이죠. 결국엔 반성하고 '이러면 안 되는 거야' 하게 되지만요. 어린이 프로그램은 교육적이죠. 그런데 제가 커밍아웃을 안 한 상태면, 교육적 프로그램을 하는 연기자로서 나한테 거짓말을 하고 또 사회에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잖아요. 그런 자신이 조금 부끄러웠어요. 내가 게이여서 부끄럽다는 것은 전혀 아니고 그것을 왜 감추어야 하는가 하는 것 말예요. 그래서 좀 떳떳하게 아이들에게 다가서고 싶었어요. 아이들은 내가 커밍아웃 해도 아직 잘 모르지만 그 아이들이 커서 나와 같이했던 시간을 생각했을 때 '아 그래, 저 아저씨는 참 솔직한 아저씨야' 하고 생각해 주면 고마울 것 같아요. '용감한 아저씨야' 하면 더더욱 좋겠구요.

기자는 뽀뽀뽀 시청자 부모들에게 격려 전화가 온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그 소식을 물어 보았다. "질책하는 전화는 별로 없구요, '왜 그만 두셨냐', '우리 아이는 홍석천 씨를 너무 좋아한다'는 전화는 많이 오죠. 아파트에 사는 친척 누나들이 있는데 그 단지의 모든 아줌마들과 아이들이 제 팬이예요. 제가 뮤지컬하는 것도 많이 보러 오셨죠. 그런데 그 팬이 좀 늘었다고 전화가 왔어요. 오히려 제 캐릭터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었던 분들, 그러니까 여성적인 캐릭터나 '쁘아송' 캐릭터에 대해 '왜 저러냐' 했던 분들조차 이제는 좀더 개방적으로 이해해 주시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죠. 물론 욕하는 분들도 많아요."

해고

홍석천 씨는 커밍아웃을 하자마자 방송국에서 퇴출됐다. 홍석천 씨는 "예상은 했지만, 너무나 급작스럽게 모든 것이 결정나고 바뀐 것에 대해 좀 놀라고 당황했다"고 털어 놨다.

"공식적으로 커밍아웃을 인정한 바로 그날 저녁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제가 출연하기로 했던 모든 프로그램들이 끊어지고 그 전에 섭외됐던 모든 프로그램에서 연락이 바로 끊어졌어요. 담당 피디들은 '우리는 하고 싶지만 윗선에서 안 된단다'고 그러지만 그것조차 잘 모르겠어요. 얼마나 많은 토론의 시간을 가졌는지. 제가 능력이 부족하거나 정말 커다란 잘못을 해서 퇴출돼야 할 명분이 섰으면 이해가 됐을 텐데 그것이 아니니까요. 단지 제가 게이이기 때문에 퇴출시킨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놀라울 뿐이죠. 여론을 수렴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진 것도 아니고, 방송계에 종사하는 분들이 저를 직접 만나서 '너는 어떻게 하고 싶니, 지금 우리의 입장은 이렇다' 하는 식의 관계도 아니었죠. 일방적으로 '자, 우리는 이제 너하고 더 이상 같이 할 수 없어' 하는 태도를 취했기 때문에 아쉬운 점이 많죠. 아쉬워요, 많이."

홍석천 씨가 매우 조심조심 신경을 써서 단어를 선택하자 임태훈 씨는 "방송 나가는 거 아니니까 좀 세게 얘기해도 된다"고 다시 한번 조언에 나섰다. 그러자 홍석천 씨는 웃으면서 '쁘아송'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기분 더러웠어요."

홍석천 씨 개인이 공룡 같은 방송사를 상대로 대응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홍석천 씨는 평생 연기자로 남고 싶기 때문에 법적 대응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방송사 노조가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부당하게 해고된 홍석천 씨의 복직을 요구한다면 실질적인 힘이 될 것이다. 방송사 노조가 이런 문제에 적극적 관심을 갖지 않는 게 아쉽다.

하지만 홍석천 씨 커밍아웃에 따른 방송사 해고 등 탄압을 방어하는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홍석천의 커밍아웃을 지지하는 모임'도 재빨리 만들어졌고, 인터넷 지지 서명도 예상 숫자를 훨씬 넘어섰다. 민주노동당 학생 그룹의 몇 지부는 이 문제로 토론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홍석천 씨에게 이런 사실들을 알고 있는지 물었다.

"음, 알죠, 당연히. 제가 원래 컴맹이예요. 그 동안 너무 바빠서 컴퓨터를 배울 시간도 없었죠. 그런데 제가 커밍아웃 한 뒤에 지지하는 분들이 많다고 해서 피시 통신 하는 법을 배웠어요. 비록 서툴고 천천히 들어가긴 하지만, 들어가서 많은 글들을 봐요. 저를 욕하는 것도 보고, 저를 지지하는 것도 보죠. 어떤 분은 지지의 말을 쭉 한 다음에,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이걸 홍석천이 진짜로 봐요?' 하고 썼더라구요. 진짜로 봐요. 그리고 많이 고마워 하죠. 또 제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았는지 전화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반응은 제가 익히 다 잘 알고 있어요."

기자는 홍석천 씨를 인터뷰 하러 가기 전에 그를 방어하는 학생들에게 어떤 점이 궁금한지 물은 적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커밍아웃을 한 뒤에 그의 생활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궁금해 했다. 홍석천 씨가 커밍아웃을 한 첫 유명인으로서 동성애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대응이 어떤지 보여 주는 시금석이 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홍석천 씨는 커밍아웃 이후 자기 삶에 찾아온 변화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연예인이기 때문에 주변 분들의 반응에 민감하기 마련이예요. 택시를 타거나 지하철을 타거나 길을 다니다 보면 주변의 반응이 아주 재밌어요. 제 느낌에는 '쟤가 뻔뻔스럽게 얼굴을 들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나' 하는 눈초리로 쳐다보는 분들도 있고, 또 어떤 분들은 어렵게 말문을 떼 사인을 부탁하는 분도 있어요. 이런 분은 너무 고맙죠.

"한번은 제가 택시를 잡고 있는데 봉고차 한 대가 지나갔어요. 그러다가 뒤로 쭉 후진을 해서 다시 오더니 그 차에 타고 있던 온 가족이 저한테 '홍석천 씨, 용기 내세요. 그거 아무것도 아녜요. 저흰 홍석천 씨를 계속 지지합니다.' 그러시는 거예요. 기분이 너무 좋더라구요. 예전에는 팬으로서 다가섰던 분들이 이제는 저를 지지한다는 의식을 가지고 대해 주시니까 너무 기분이 좋아요.

"정반대 경험도 있죠. 어제는 동대문 시장에 옷을 사러 갔는데 젊은 친구들 무리가 있었어요. 그 중 한 사람이 '홍석천이다' 하니까, 다른 친구가 '저 죽여버릴 게이 새끼' 하더라구요. 이럴 때 가슴이 굉장히 아프죠."

변화가 주변의 반응에서만 찾아온 것은 아니다. 커밍아웃 이후 모든 프로그램이 중단됐기 때문에 수입도 급격히 줄었다. 홍석천 씨는 수입이 줄면서 피부로 와닿는 어려움을 이렇게 표현했다.

"예전에는 아파트 관리비 내는 것에 별로 신경도 안 썼어요. 얼마 나오는지도 모르고요. 그런데 지금은 꼼꼼히 다 보고 '어떻게 하면 절약할까' 생각하고 있어요.

인권

홍석천 씨는 지금 우리 나라 동성애 인권 탄압 상황을 최전선에서 직면하고 있다. 그는 우리 나라의 동성애자 인권 상황에 대해 한마디로 "최악"이라고 잘라 말한다.

"동성애자가 사회적으로 받는 대우는 최악인 거 같아요. 최악. 왜냐하면 가족 안에서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가족들과도 자신의 권리와 생각을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안 되니까요.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저 때문에 TV 토론 프로그램과 뉴스와 연예계 뉴스 등에서 '동성애자' 또는 '동성애'라는 단어가 많이 나오고 있다는 거예요. 이런 것을 보면 내가 한 일이 그렇게 가치 없는 일은 아니구나 하고 생각해요. 누가 욕을 해도 상관 없어요. '아, 이렇게 세월이 지나고 나면 조금씩 바뀔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을 가지면서 위안을 삼죠.

"제 바램이 이런 거였어요. 커밍아웃을 하면 잃는 것이 너무나 많을 게 뻔했죠. 가족, 경력, 직장 등등. 부모님도 이해 못하고, 친구들 다 잃고, 돈도 못 벌고 …. 이런 상상을 했죠. 그럼에도 내가 커밍아웃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 이유는 거창한 게 아니었어요. 홍석천이 커밍아웃 했다는 TV 보도를 듣고 엄마와 딸, 아빠와 아들이 '아빠, 커밍아웃이 뭐야?', '엄마, 동성애자가 뭐야?' 하고 저녁을 먹으며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된다면 난 만족할 거라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동성애자가 외계에서 온 별난 사람이 아니고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여기는 분위기면 좋겠다고 생각한 거죠."

그가 가족 안에서조차 자신을 밝힐 수 없는 동성애자들의 고통을 얘기하자 기자는 그의 부모님 생각이 났다. 그가 커밍아웃 하기 전에 그토록 설득하고 싶어 했던 부모님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실까?

"제가 커밍아웃 하기 전에 누나들은 알고 있었어요. 인터뷰를 하고 커밍아웃을 한 그 날 저녁부터 부모님과 전쟁이 시작됐죠. 부모님은 그때 처음 아셨어요. 아마 제가 연예인이 아니었으면 받아들이기가 좀더 수월했을 거예요. 차라리 무시하면 되니까요. 무시하고 집안 사람들만 알면 끝이니까요. 그런데 저를 전국민이 다 아는 상황이니까 충격이 심하셨죠. 아버지는 술도 많이 드시고, 어머니는 식음을 전폐하고 누워계시고 … 그런 그림들 있죠? 저희 부모님도 특별한 분들이 아니니까요. 그런데 주변의 지지도 있고 제가 진실하게 말씀드리고 있기 때문에 지금은 어느 정도 진정된 상태예요. 하지만 아직 완전히 받아들인 것은 아니예요. 저는 부모님이 변할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어요."

홍석천 씨는 이날 인권영화제 사회를 맡게 돼 있었다. 어떻게 사회를 맡게 됐는지 그리고 앞으로 동성애자 인권을 위해 어떤 기여를 하고 싶은지 물었다.

"우선 시간이 됐어요. 그런데 예비군 훈련이 나왔어요. 그래도 다 연기하고 사회를 맡겠다고 했죠. 제가 거리에 나가서 '우리 인권을 보장해라' 하고 외치는 단계까지는 아직 못하지만, 연예인이니까 제 나름으로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 거 같아요. 이런 부분이 있을 때는 제가 피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 자체에 감사할 뿐이죠. 앞으로 이런 기회가 또 있다면 꼭 영화제가 아니더라도 '이 잘생긴 얼굴'을 많이 보이도록 노력을 할 것 같아요. 늘 전면에 나서 선구자적 입장이 되기는 제가 약하지만 제 위치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은 해 나갈 참이예요."

홍석천 씨는 마지막으로 "저를 지지해 준 모든 사람들에게 정말 감사합니다." 하고 말했다.

인터뷰를 끝낸 뒤 홍석천 씨가 인권영화제 개막식 무대쪽으로 걸어 가자, 기자들이 갑자기 우르르 몰려 들었다. 또 한번 그를 호사거리로 만들 셈인가. 개막식 무대에 오른 홍석천 씨는 기자들의 입방아를 개의치 않는 듯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제5회 인권영화제 사회를 맡은 동성애자 홍석천입니다. 저는 이화여대에 처음 들어왔는데 여학교라 그런지 더 편안하네요. 오늘 어쨌든 이 뜻깊은 행사에 저를 초대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 말씀드리구요. 개인적으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홍석천 씨는 인권영화제 개막식을 닫으며 이렇게 말했다. "저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주신 분들께 감사드리고 저도 여러분들께 영원히 친구가 될 것을 약속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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