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0일 1백만 명 시위는 촛불의 위력을 유감없이 보여 줬다. 애초 광우병국민대책회의는 온라인 참가자까지 포함해 1백만 명을 기대했지만, 촛불집회가 시작된 이래 늘 그랬듯이 촛불의 힘은 기대치를 훌쩍 뛰어넘었다.

21년 만에 1백만 명이 거리로 나서자 권력자들은 엄청난 두려움에 휩싸였다. 어떻게 해서든 촛불을 중단시켜야 하고 촛불이 강화될 수 있는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는 게 저들의 생각이다. 6월 10일 밤에 〈조선일보〉 인터넷판에 오른 사설은 “항의 표시는 충분히 했다 … 이제 정부를 지켜보자”는 것이었다. 촛불을 끄라는 얘기다.

조중동은 촛불이 사그라들고 있다는 희망 섞인 보도를 하는 한편, 의제 확장과 “정권 퇴진 운동 불사”라는 국민대책회의 방침, 그리고 민주노총 총파업에 비난의 핏대를 올린다. 의제 확장은 “운동권 본색”을 드러내는 “시위 메뉴 급조”이고, 순진한 촛불 참가자들은 대책회의가 “6개월 전 대한민국 헌법 아래서 자신들이 참여해서 치러진 선거까지 무효화시키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는 걸 알면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할 것”이란다.

그러나 지난 50일의 진실은, 국민대책회의가 ‘순진한’ 촛불 참가자들의 뒤를 허겁지겁 간신히 좇았다는 것이다. 그 반대가 아니었다. ‘이명박은 물러나라’는 구호는 5월 말 이후 촛불집회에서 대세로 자리잡았다. 국민 건강을 아랑곳하지 않는 이명박 정부의 태도가 취임 3개월 동안 정신 차리기 어려우리만큼 서민 말살 정책을 쏟아낸 정부에 대한 반발에 기름을 부었기 때문이다.

의제 확장도 촛불집회 초기부터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0교시 때문에 밥 못 먹고 학교 가서 급식으로 미국산 쇠고기 먹고 광우병에 걸렸는데 건강보험이 민영화돼 치료도 못 받고 죽으면 나를 대운하에 뿌려 주오.” 촛불집회가 시작될 무렵 고등학생들 사이에 유행했던 이 농담은 이미 자신의 삶과 직결되는 4개의 의제를 담고 있었다.

의제 확장은 소수 음모가들의 의도적 “급조”가 아니라 오히려 이 시위가 이토록 오래 지속되고 계속 확대돼 온 비결이다. 대통령리더십연구소 소장 최진의 말대로, “모든 불만이 일시에 터져나온 것으로, 쇠고기 문제만으로는 현재의 시위 사태를 이해할 수 없다.”

제도적 수렴? 지금 거리를 떠나서는 안 된다

6월 10일 1백만 명 시위 이후 그 판돈의 무게를 느끼는 것은 권력자들만이 아니다. 다음은 무엇인가,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를 둘러싸고 촛불 운동 안에서도 뜨거운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거리에서 1백만 명이나 결집한 이 어마어마한 운동이 무엇을 내걸든 그것을 이룰 잠재력이 있음을 다들 심각하게 인식한다는 얘기다.

논란의 가장 오른쪽에는 이제 ‘거리의 정치’를 그만 하고 제도권 정치에 맡기자는 주장이 있다. 최장집, 박상훈 같은 학자들과, 촛불집회 참가자들로부터 환대를 받았던 MBC, KBS, 〈경향신문〉 등이 이런 김빼는 얘기를 하고 있다. MBC는 민주당이 하루빨리 등원해야 한다는 논평까지 냈다.

그러나 지금 제도권 정치는 거리의 요구를 수렴할 능력도 의사도 없다. 18대 총선 직후 강부자 내각에 이은 강부자 국회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던가. 민주당은 다른 의제는 둘째치고 쇠고기 문제만 봐도 믿을 수 없는 존재다. 그 당 소속 의원들은 지난 16일 서울 강북구의회에서 ‘어린이집 미국산 쇠고기 급식 사용 금지 조례’조차 부결시켰다.

판돈

현재 국회에 일말의 기대를 가진 사람들만이 제도적 수렴론을 제기하는 것은 아니다. 정태인 교수는 “비용이 너무 커지기 때문에 촛불집회를 무한히 이어갈 수 없다”며 “우리가 이번에 촛불을 통해 요구했던 것들을 어떻게 제도로 만들지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지금 중요한 것은 거리의 운동을 계속 유지 확대시키고 결국 요구를 쟁취하는 데까지 나아가도록 모든 노력을 집중하는 것이다. 지금은 서서히 자리 털고 일어나거나 거리가 아닌 부유층 대표자 토론 장소로 관심을 이동(또는 분산)할 때가 아니다.

왜 우리가 1백만 명이나 모이고도 요구 성취 전에 스스로 거리에서 물러나야 하는가? 우리가 흩어지는 순간 이명박 정부는 탄압의 공세를 조이고 ‘너희는 1백만 명이 모여도 정부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대국민 세뇌로 임기를 사수하려 할 것이다.

1987년 6월 항쟁이 6월 29일 승리를 향해 가기 전에도 그만 거리에서 물러나자는 주장이 있었다. 6월 19일 계엄설이 나돌자 당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내 김영삼계와 김대중계 집행위원들이 전두환 군사독재와의 정치협상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그때 그런 주장을 물리치고 거리의 운동이 지속되지 않았다면 승리도 없었을 것이다.

왜 퇴진 운동이어야 하는가?

촛불 운동 내의 가장 뜨거운 논란은 이명박 정권 퇴진 요구 제출 여부다. 국민대책회의는 1백만 명 시위 직후 “정부가 20일까지 재협상 방침을 밝히지 않으면 정권 퇴진 운동도 불사하겠다”고 밝혀 놓은 상태다.

이명박 정부는 20일까지 재협상 방침을 밝히지 않을 게 뻔하다. 김종훈 보따리를 풀어놓으며 또다시 국민 기만을 시도할 것이다. 이 점이 명확한데도, 안타깝게도 국민대책회의는 정부에게 제시한 시한 종료 이후 정권 퇴진 운동을 선언할지 여부를 결정하지 못했다.

국민대책회의 소속 단체 가운데 다함께, 보건의료단체연합, 국민건강을 위한 수의사연대, 노동전선, 한국작가회의(송경동 시인) 등을 제외한 나머지 주요 시민·사회단체들 상당수가 정권 퇴진 운동을 부담스럽게 여겼기 때문이다. 결국 정권 퇴진 운동에 대해 의견을 모으기로 한 국민대토론회의 일정마저 19일부터 27일까지 늘려 잡았다. 이명박은 일주일의 말미를 보너스로 더 얻은 셈이다.

맥 풀리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개인들 사이의 싸움에서도 언제까지 두고 보자고 했으면 그 뒤에는 상응하는 조처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상대가 우리를 우습게 보며 자신감을 얻어 역습의 기회를 노릴 것이고, 우리 편은 기가 꺾일 것이다.

정권 퇴진 운동을 반대한 단체들은 퇴진 운동이 “섣부르다”, “성급하다”고 말했다. 거리에 1백만 명이 쏟아져 나왔는데 무엇이 성급하단 말인가. 거리에 1백만 명이 나왔을 때는 그 뒤에 그들을 지지하는 수천만 명이 있다는 얘기다. 아직 거리 시위가 수만 명 수준이었을 때조차 〈조선일보〉는 “더 섬뜩한 것은 이 같은 거리의 시위에 가세하지 않은 국민들조차 정권을 바라보는 눈길이 갈수록 싸늘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했다.

촛불집회 참가층이 다양한데 퇴진을 걸면 사람들이 떨어져 나간다는 우려도 나왔다. ‘이제 제도권 정치에 맡기자’는 MBC와 〈경향신문〉 등의 논조 변화를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하지만 투쟁이 전진하느냐 마느냐의 고비를 넘을 때 전진하자는 쪽과 말자는 쪽을 모두 만족시키는 방법은 있을 수 없다. 앞으로 나아가려면 멈추자는 주장과 논쟁해야 하고, 분명한 대안과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오히려 그렇지 않았을 때 이 투쟁에 큰 기대를 걸었던 사람들이 떨어져나가고 사기 저하할 위험이 있다.

퇴진 운동의 현실성

거리에 나온 사람들은 쇠고기 문제뿐 아니라 교육, 대운하, 방송, 의료민영화, 공공서비스 민영화, 물가 인상 등 이명박 정책이 모두 문제라고 말한다. 1퍼센트[사회 최상층]를 위한 정책들에 반대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명박은 여전히 “기업 프렌들리”를 다짐하고 있다. 그는 16일 아셈 재무장관회의에서 재벌들을 위한 세금 인하와 규제 완화, 그리고 FTA 확대를 재확인했다. 인터넷 괴담도 늘어놓았다.

이명박이 이런 정책을 멈추지 않는다면 그를 퇴진시키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우리는 더 나은 정부를 가질 자격이 충분히 있다. 어떤 사람들은 가까운 시일에 선거가 없다고 걱정한다. 하지만 이명박이 물러나면 법에 따라 대선을 다시 치를 수도 있고, 여러 가능성이 열려 있다. 우리는 이 열려진 공간을 이용해 아래로부터 운동을 강화하면 된다.

박상훈 씨는 정권 퇴진 운동에 대해 “민주주의 체제에서 운동을 통해 민주적 선거의 결과로 선출된 대통령을 물러나게 할 경우 이에 대한 반작용이 매우 클 수 있다”며 두려운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던 대통령이 거리의 저항에 의해 쫓겨난 실제 사례들이 있다.

볼리비아

볼리비아에서는 3년 동안 대통령 2명이 쫓겨났고 물 사유화 반대 운동을 이끈 MAS(사회주의운동당)의 지도자 에보 모랄레스가 새 대통령이 됐다. 2003년 대통령 로사다가 물러나고 후임으로 카를로스 메사가 등장한 뒤에도 운동은 멈추지 않았다. 2005년 볼리비아 민중은 석유 다국적기업들의 이윤에 50퍼센트의 세금을 매기는 법률을 제정하라고 요구했다. 4월에 국회가 탄화수소법을 통과시켰지만 메사는 새 법에 서명하기를 거부했다. 투쟁을 주도한 세력들은 요구 수준을 높이는 것으로 대응했다. 3월에 시위대는 50퍼센트의 세금을 요구했을 뿐 메사의 퇴진을 요구하지는 않았었다. 그러나 두 달 뒤에는 보상 없는 전면 국유화와 메사 퇴진을 요구했고, 결국 이를 실현시켰다.

지금 며칠의 말미를 더 얻은 이명박은 김종훈 보따리와 쇄신안 등을 내놓는 한편 카운터펀치를 날릴 기회를 호시탐탐 노릴 것이다. 퇴진 운동을 둘러싼 우리 운동의 약점을 파고들 궁리를 하면서 말이다.

지금 중요한 것은 이명박 사기극에 맞서 촛불의 기세를 유지 확대하는 것이다. 20일까지 재협상을 밝히지 않을 이명박에 맞서 주말(6월 20~22일) 비상행동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면 공격받고 있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총파업 자신감도 높여 줄 수 있을 것이다. 국민대책회의나 그 소속 단체들이 화물연대 파업과 민주노총 총파업을 옹호하는 주장과 활동을 하면 운동을 확대해 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도 거리의 기세가 국민대책회의의 방향을 이끌었다. 퇴진 운동을 향한 길도 이렇게 닦이기를 기대한다. 그러려면 퇴진 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적극적 주장과 운동 확대를 위한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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