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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를 위한 전쟁의 희생자들

《미국의 이라크 전쟁》 - 노엄 촘스키·하워드 진 지음, 앤서니 아노브 엮음, 북막스

1999년 한 해에만 미국과 영국은 이틀에 한 번꼴로 이라크에 1천8백 개 넘는 폭탄을 투하했다. 그러나 언론들은 이 끔찍한 전쟁을 사실상 무시해 왔다.

미국이 주도한 이라크 전쟁과 경제 제재 때문에 1백만 명 넘는 이라크 사람들이 죽었다. 그 중 60만 명이 어린이들이었으며, 한때 그리스와 어깨를 견주던 나라가 이제는 “석기 시대”처럼 황폐해졌다. 끊임없는 공습은 전력망·운송망·상하수도를 파괴했고, 그 결과 콜레라·장티푸스와 다른 끔찍한 질병들이 널리 퍼졌다. 병원·학교·도서관·박물관 들이 사라졌다. 약 3백 톤의 열화우라늄탄이 식수와 작물, 사람들을 오염시켰으며 이로 인해 기형아와 암 발생율이 엄청나게 증가했다.

한때 중동에서 부러움을 산 이라크의 경제·농업·공업·보건의료·교육 체계는 경제 제재 때문에 파괴됐다. 의사와 교사들은 장비 부족으로 거의 아무 일도 못해 한 달에 3달러(약 3만 5천9백60원)도 못 버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택시를 몰거나 노점에서 담배를 팔아 부수입을 올리지만 그래도 먹고살기는 힘들다. 반입이 허용된 의약품도 운반·보관·관리가 거의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다른 필수 장비들의 반입이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파괴되지 않은 학교에는 책상이나 책, 난방·조명 시설도 없다. 미국은 심지어 연필조차 수입할 수 없게 만들었다. 흑연이 군사적으로 사용될 우려가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오늘날 이라크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굶주리고 빈곤과 실업과 절망에 빠져 있다. 대규모 기아 사태를 막아 주는 유일한 버팀목은 상당히 효율적이고 공평한 분배 제도뿐이다. 미국과 영국의 정치인들은 석유-식량 교환 프로그램에 따라 이라크가 연간 1백억 달러(약 12조 3백20억 원)어치까지 석유를 수출할 수 있기 때문에 고통은 필연적이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석유 수출 대금의 약 30퍼센트는 전쟁 배상금으로 유엔이 가져간다(쿠웨이트를 ‘해방’시킨 비용에 대한 보상). 또, 5∼10퍼센트는 유엔 무기사찰단으로 활동하는 미국 스파이 활동비를 포함해 유엔 경비를 지불하는 데 들어간다.

이라크 국민 2천2백만 명이 겪고 있는 그 많은 참상들을 도대체 무엇이 정당화할 수 있을까? 미국과 영국 정부는 자신들의 목표가 사악한 독재자로부터 이라크를 해방시키고 이라크의 대량 살상 무기를 파괴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시간의 시험을 견뎌내지 못한다. 미국과 영국 정부는 이 독재자가 자국민들을 대량 학살하고 독가스를 사용했을 때도 이 독재자를 무장시키고 후원했다. 미국과 영국 정부는 1991년 걸프전이 끝난 뒤 이라크 북부와 남부에서 봉기가 일어났을 때 후세인이 이들을 진압하는 것을 묵인했다. 이 봉기는 독재자를 쉽게 무너뜨릴 수도 있었다. 미국과 영국은 나토 동맹국 터키가 서방이 보호한다던 쿠르드족들을 공격하기 위해 이라크 북부의 비행 금지 구역을 비행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이러한 포위 상태는 독재자에 대한 대중의 지지를 높이는 결과를 낳았다. 이라크가 대량 살상 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 심지어 유엔 사찰단원들조차 그런 무기들이 파괴된 지 오래됐다고 말한다.

이라크를 포위하는 진정한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석유다. 이라크의 석유 매장량은 세계 2위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달리 이라크는 인구도 많고 오래 전부터 제국주의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대중적 열망과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다. 막대한 석유가 매장돼 있는 이 지역을 미국이 계속 착취하고 지배하기 위해서는 사담 후세인과 이라크 국민 전체의 콧대를 꺾어야 한다.

이 책에 실린 훌륭한 글들은 가슴이 아프기도 하고 고무적이기도 하다. 지난 12년 사이에 이라크를 방문한 많은 필자들은 매우 끔찍한 대량 학살을 그려내고 있다. 모든 필자는 사담 후세인에 대한 반대와 미국과 영국이 이라크 사람들을 처벌하는 것에 대한 분노로 단결해 있다. 필자 중 몇몇은 용감하게 자신의 입장을 밝힌다. 이들은 이라크에 대한 의약품 반입 금지를 끝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말하는 “황야의 목소리”라는 단체, 34년 동안 유엔에서 충실하게 근무하다가 경제 제재에 항의하며 사임한 이라크 주재 전 유엔 인도주의 조정관 데니스 핼러데이, 진실을 검증하고 자신들이 발견한 진실을 보여줌으로써 시류를 거스르는 존 필저, 노엄 촘스키, 로버트 피스크 같은 언론인들이다.

필자들은 대량 학살을 끝장낼 수 있는 운동이 건설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적대적인 분위기가 압도하는 상황에서도 공공연하게 자신들의 주장을 펴 왔다. 이 책은 이런 운동을 건설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테러리즘의 문화》 - 노암 촘스키, 이룸

김세원

1986년 10월 니카라과 정부군은 콘트라 반군이 군수 물자를 수송하는 미국 민간 항공 화물기 한 대를 격추시켰다. 그리고 한 달 뒤 레바논의 한 신문이 미국산 무기의 이란 유출을 폭로했다. 이것이 ‘적성국가’인 이란에게 무기를 판매한 돈으로 니카라과 콘트라 반군을 지원한 이른바 “이란-콘트라 게이트”의 시작이다.

이 책은 니카라과에서 미국 대외 정책의 이중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이란-콘트라 게이트”를 중심으로 미국이 수행하는 “국제 테러리즘”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테러리즘의 문화”, 즉 언론이 권력에 순종하고 미국의 대외 정책에서 ‘자유, 민주주의, 인권이라는 미국의 선량한 의도’라는 엘리트의 내면화된 교리, 국무부 대중외교국의 역할과 이들을 통한 진정한 진실이 가려지게 만드는 “군사 작전을 방불케하는 거대한 진실 작전”의 기만을 고발한다.

1979년 니카라과에서 친미 소모사 독재 정권이 무너지자, 니카라과의 민주주의에는 관심도 없던 미국은 “니카라과 민주주의 구상”을 말하며 콘트라 반군을 지원한다. 이것을 두고 촘스키는 “니카라과의 인민들은 산디니스타 정부의 자국 자원을 가난한 다수를 위해 사용코자 한 범죄적 시도 때문에 처벌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산디니스타 혁명은 사회주의 혁명은 아니었지만, 자선 개발 기구 옥스팜도 인정했듯이, 식량 자급·사회 복지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이 때문에 미국 정부는 산디니스타가 추진하는 사회 개혁을 파산시키기 위해 ‘새로운 공격 목표’를 설정했다. 보건소, 학교와 같은 “부드러운 목표”를 공격해서 60곳 이상의 보건소를 파괴해 의료 상태와 복지 수준을 열악하게 만들었다.

또, 촘스키는 “니카라과는 분쟁이 발발한 이후 외교적 해결의 길을 추구했지만. 미국은 평화적 해결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 온갖 방도를 다 강구했다.” 하고 말한다. 평화협정이 파기된 책임을 산디니스타 정부에 돌린 미국 정부와 언론의 허위 보도에 대해 진실을 밝힌다. 얼마 전 ‘북한의 제네바 협정 파기’가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된 지금, 특히 이 부분에 대한 촘스키의 분석은 유익하게 다가온다. 미국은 평화협정을 조인하지 못하게 중앙아메리카의 다른 나라를 압박하는가 하면, 협정을 체결해도 1973년 파리협정에서 그랬듯이 협정 이후 모든 결정 사항을 무시하고 콘트라 반군을 계속 지원할 것을 밝혔다.

또, 촘스키는 “미국에서는 니카라과에서 일어나는 일이 다른 중앙아메리카 국가의 기록과 비교해서 제시되는 법은 없다.” 하고 말한다. 현재 대륙문제위원회는 엘살바도르와 함께 과테말라를 세계 최악의 인권 침해국으로 규정했다. 엘살바도르에서는 1987년 1∼5월 사이 14명이 정치적인 이유로 암살당하고 1백여 명 이상이 실종됐다. 과테말라 군부의 “검열의 일차적 방식은 살인”이다. 1987년 이래 매월 1백여 명 이상 실종되고 사망했다. 중앙아메리카에서 레이건 독트린 이후 모두 미국의 지원에 의해 적어도 15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

하지만 미국에 이들 나라는 “초보 민주 국가들”일 뿐 비난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미국의 〈뉴 리퍼블릭〉은 “이 지역에서 민주주의를 향한 전진이 있음을 뒷받침해 주는 실제 모델”은 엘살바도르라고 알려 준다. 그러면서 이 나라들 수준에 턱없이 못 미치는 니카라과의 어떤 신문사 폐간 조치나 계엄 발표에 “자유와 민주주의”를 들이대며 광분한다.

여기에서 “자유”란 “다섯번째 자유”이며(촘스키는 미국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4대 자유에 이어 “빼앗고, 착취하고, 지배하고, 기존의 특권을 보호하고 확대하기 위해서는 어떤 행위도 할 수 있는 자유”를 추가한다. 그리고 이 다섯번째 자유야말로 다른 네 가지 자유에 선행하고 모든 것을 압도하는 자유라고 한다), 미국 지배 계급과 친미 국가의 자본가들에게 걸맞는 “민주주의”다. ‘자유의 투사’ 콘트라 반군의 지도부는 니카라과의 기업가와 지주 계층을 대표한다. 알폰소 로베로는 목화 재배업자이자 식용유 가공업자, 민영기업상급위원회 회장이었고, 아리스티데스 산체스는 지주이다.

또, 촘스키는 미국의 ‘적성국가’ 이란에 무기를 판매한 것을 두고도 (미국은 인질을 구출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친미적인 샤 정권이 무너지자 “이란의 피노체트를 발견하기를 원했”(ABS 중동 통신원의 말을 인용해서)기 때문일 것이라고 덧붙인다.

이란-콘트라 게이트가 터지자, 미국은 “피해 방지”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1980년대 중앙아메리카의 ‘초보 민주 국가들’에서 저지른 일들과 1986년 6월 국제사법재판소가 미국의 콘트라 반군 지원에 내린 국제사법재판소의 유죄 선고를 무시한 것은 의회나 언론의 조사 대상이 되지 않고 기껏해야 절차상의 문제나 개인의 책임으로 마무리지어졌다. 가장 중요한 조치는 “니카라과의 민주주의를 민주화하기 위한 미국의 의도는 고귀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콘트라 반군은 미국의 “선량한 의도”를 관철시키기에 적당하지 못한 도구이며, 니카라과에서 벌어진 끔찍한 만행은 “선량한 의도가 미치지 않아” 몇 가지 문제가 발생한 것뿐이다. 〈뉴욕타임스 매거진〉의 표현에 따르면, “레이건은 ‘고상한 이상주의’에 대해 약간의 ‘현실주의’를 보태야한다.” 이런 피해 방지 조치는 궁극적으로 미국의 “선량한 의도-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근본적 문제제기가 나올 수 없게 하는 것이다.

이 책이 쓰여진 1987년에 촘스키는 “테러리즘의 문화”의 현실을 직시하자고 한다. 그결과가 지금 드러나는 것일까? 작년 9·11 사태 이후 미국 대외 정책의 “선량한 의도”에 대해 커다란 문제 제기가 시작됐다. 그것이 바로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거대한 반전 운동이다. 이러한 대중 운동이야말로 “테러리즘의 문화”를 바꾸고 미국의 “국제 테러리즘”에 맞설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촘스키와 세계화》 - 제레미 폭스, 이제이북스

김덕엽

제레미 폭스가 “근대 언어학의 아인슈타인”, “반체제주의자”, “진리의 수호자.”로 부르는 촘스키는 40년이 넘도록 미국 정부의 대외 정책과 다국적 기업의 “반민주성”을 폭로해 왔다. 《촘스키와 세계화》의 저자 제레미 폭스는 1994년 이후 출판된 촘스키의 책·대담·강연 자료를 토대로 이 책을 썼다.

세계화가 좀더 부유하고 행복한 미래로 세상을 안내할 긍정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도 그럴것이 국제 기구 ― IMF·WTO·세계은행 ― 와 다국적 기업 들은 경제를 개방하면 선진국을 따라잡을 수 있다는 선전, 개발 도상국의 가난한 사람들이 무역 자유화로 가장 큰 이익을 얻는다는 선전을 끊임없이 언론에 내보낸다. 촘스키는 이것을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기업적 대중 선전의 성장”이라고 말한다.

1999년 시애틀 시위 이후 시장에 대한 반감이 급속하게 확산되면서 시장 예찬론자들은 자유무역을 보호하려고 부단히 애쓴다. “IMF는 자신들의 성공적인 활동에 대해서 많은 수의 ‘학술적인 연구’를 발표하고 있는데, 그 수가 IMF에 대한 대안적인 연구들을 압도할 정도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들이 내세우는 정책과 현실의 격차가 얼마나 큰지 보여 준다. 신자유주의의 본고장 미국에서 인구의 30퍼센트가 빈곤에 처해 있다. 제레미 폭스가 지적하듯이 “세계화는 전체 인구 대부분의 생활 조건을 향상시키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부유한 서방 국가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더구나, 어떤 개선의 가망도 없어 보인다. 지난 25년간 노동시간과 노동 불안정이 크게 증가하는 반면에 임금은 정체되거나 하락해 왔다.” “신자유주의는 스스로 이론임을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부를 지키기 위한 고집스런 처방들의 집합일 따름이다.”

이 책은 언론이 말하지 않은 진실을 수없이 많이 보여 준다. 자유무역이 전혀 공정하지 않다는 사실, 즉 자유무역은 “자신들의 산업과 상품을 오랫동안 충분히 보호해 온 세계의 주도국들에 의해 가난한 국가들에 부과”된다. 1997년에 OECD 집계를 보면, 미국 정부가 비군사적 연구 조사와 개발에 지원한 돈이 “모든 민간 연구조사 지출의 약 3분의 1”에 달한다. 신자유주의는 왜 정부 규제를 반대하는가? 세계 경제 활동의 70퍼센트가 투기인 상황에서 정부 규제의 최소화는 “이윤 수준을 증가시키고 투기를 촉진하는 경향이 있다.” 신자유주의는 왜 사기업화를 강요하는가? “그것은 국가의 지출을 줄이고 정부의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를 축소시키기 때문이다.” “민영화는 정부의 지출을 삭감하고, 조세수준을 낮추고, 사기업들에게 이윤창출의 기회를 제공한다. 정부지출의 축소는 민간부문에 있는 학교, 병원, 수송체계 등으로부터 모든 필요한 서비스와 주식 둘 다를 살 수 있는 부유한 국민들을 만족시킨다. 신자유주의는 본질적으로 부유층에게 기여하도록 고안된 체계이다.”

정부와 기업가와 언론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세계 경제에서의 경쟁”을 위한 희생을 요구한다. 제레미 폭스는 세계화론자들의 이런 주장이 “노동인구의 불안감을 유지시켜 통제를 용이하게 함으로써 생산비용을 절감하기 위한 책략”이라고 옳게 지적한다. “달라진 건 없다. 현재까지 세계화의 영향은 이윤을 상승시키고, 기업 조직을 강화하고, 노동 세력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체제는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불평등의 증가를 통해 더욱 극단적인 상태가 되었을 뿐이다.”

《촘스키와 세계화》는 얇은 책이다. 그러나 세계화를 찬양하는 신자유주의자들의 거짓말을 반박하는 이 글은 결코 가볍지 않다. 시장주의자들의 허점을 명쾌하게 반박한 이 책은 반자본주의 활동가들이 꼭 읽어야 할 책이다.

《수탈된 대지 - 라틴아메리카 5백년사》 -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범우사

김현옥

“라틴아메리카는 석유, 금, 은, 구리 등 광물이 엄청나게 풍부하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온갖 자원을 풍부하게 지니고 있다.

그런데도 1억 2천만 명의 아이들이 태풍의 눈 속에 던져져 있다. 1분마다 한 명꼴로 아이들이 병 또는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다. 1971년 당시 라틴아메리카인 2억 8천만 명 중 5천만 명이 실업자나 잠재 실업자였고, 거의 1억 명이 문맹이었다. 라틴아메리카 인구의 절반은 비위생적인 주택에서 초만원을 이룬 채 생활하고 있다.

1968년 〈워싱턴 포스트〉가 지적한대로 “매년 과테말라에서 사망하는 7만 명 가운데 3만 명은 아이들이다. 과테말라의 아동 사망률은 미국의 40배”라고 한다.

풍부한 자원을 가진 나라가 빈곤이 가장 심각한 나라가 된 이 모순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 책의 저자인 에두아르도 갈레아노는 5백년 동안 선진국이 저지른 수탈의 역사를 생생하게 폭로함으로써 의문의 안개를 시원스럽게 벗겨주고 있다.

1492년 콜럼버스가 ‘신세계’(아메리카)를 발견했다. 유럽인들은 인디오들에 게 채찍과 복음서를 자주 이용했고, 심지어는 세균이나 바이러스도 사용했다. 유럽인들은 천연두, 파상풍, 다양한 폐와 창자 질환을 갖고 들어왔다. 인디오들은 파리처럼 죽어갔다. 그들의 몸은 새로운 질병에 무방비 상태였다.

브라질의 인류학자인 다르시 리베이로는 “아메리카, 오스트레일리아, 그 밖의 태평양 여러 섬의 토착민 절반 이상이 백인과의 최초의 접촉으로 감염되어 죽었다”고 추정했다. 살아남은 인디오들은 짐 운반용 가축으로 취급당했다. “사람은 노새보다 싸다”는 말이 자주 사용됐다.

어디 그뿐인가? 값싼 노동력이 필요한 플랜테이션 농업에는 인디오뿐 아니라 아프리카의 흑인 노예도 필요했다. 브라질 정복에서 노예제 폐지까지 아프리카에서 끌고온 흑인 노예는 약 1천만 명으로 추산된다. 세르히오 바구는 “유럽 중상주의 자본 축적의 최대 원동력은 아메리카의 노예제”였다고 밝혔다

저자는 원주민 공동체를 강탈해 세워진 플랜테이션 농업은 인디오의 시체실이 됐고, 흑인 노예들로 이뤄진 죽음의 밭이 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플랜테이션 농업의 확대는 기아의 급증을 낳았다.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이 수출용 농작물을 생산하기 위해 옥수수나 콩 등 자신들이 먹을 농작물 생산을 줄여야만 했기 때문이다.

사탕수수·커피·카카오 등 플랜테이션의 풍요와 번영은 자본과 기술을 투자한 유럽과 미국 지배자들의 배만 살찌웠을 뿐이다.

또, 사탕수수나 커피 같은 단일 농작물에 매달린 경제 체제는 라틴아메리카의 주민 대부분을 끝없는 궁핍으로 내몰았다. 모노컬쳐(단작 재배) 방식의 농업은 외국 은행가들의 수지 타산에 좌우되고, 국제 시세 변동에 너무 쉽게 노출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러한 국제 시세 변동을 ‘간질병의 임상표’에 비유했다. 기계류나 공업 제품에 비해 단일 농작물의 거래 가격이 항상 위험한 상태에 빠지기 쉽다는 것이다.

그런데 저자가 종속 이론의 관점에서 글을 쓰다 보니 잘못된 지적도 눈에 띈다.

“선진국의 공산품과 라틴아메리카의 농산물의 부등가 교환으로 라틴아메리카의 기아 임금은 미국 및 유럽의 고임금에 융자하는 데 공헌하고 있다”는 저자의 주장은 맞지 않다. 사실상 부등가 교환으로 이득을 얻는 것은 미국과 유럽의 자본가들이지 노동자들이 아니다.

“선진국의 번영은 라틴아메리카의 빈곤의 강화”라는 주장도 일면만 맞다.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인 브라질의 성장은 저발전의 발전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저자가 미국과 IMF에 의해 라틴아메리카의 위기가 가속화하고 있다고 폭로한 점은 적절하다.

제2차대전 이후 라틴아메리카에 투입된 외국 자본은 주로 미국 자본이었는데, 국가 보증 차관 방식으로 지원한 원조는 각 국가의 외채를 누적시키는 결과를 야기했다.

1975년 라틴아메리카의 대외 채무는 1969년의 거의 3배였다. 1980년대가 되면 해외 차입에 의한 성장은 한계에 봉착하고, 그 동안 은폐돼 온 외채 위기가 라틴아메리카를 엄습하게 된다.

저자는 “IMF 처방전은 불균형을 완화시키는 대신 악화시키는 정책을 라틴아메리카에 강요하고 있다. … 무역을 자유화하고 국내 신용을 극단적으로 압축하도록 강요하고, 임금을 동결하고 국가 활동을 위축시키고 있다. 그 치료법은 차관 및 투자라는 약제를 강요함으로써 환자의 상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IMF가 내린 처방전은 오늘날의 라틴아메리카를 더욱 위기로 몰아넣는 주범이다. 비록 이 책이 1971년에 씌여졌지만, 오늘날의 아르헨티나, 브라질, 베네수엘라에서의 사회적 격변을 이해하는 데 여전히 많은 도움을 준다.

《자원의 지배》 - 마이클 클레어, 세종연구원

한상원

인류는 21세기 벽두를 전쟁의 시대로 규정할 것이다. 9·11 사태 이후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으며 이라크 공격을 서두르고 있다. 또 북한을 계속 압박해 끊임없이 한반도에 전쟁 위협을 가하고 있다. 한편, 중동에서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들을 무참하게 학살했으며,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쟁은 핵 전쟁 일보직전까지 치달았다.

이 책의 저자 마이클 클레어는 21세기의 전쟁 양상은 새뮤얼 헌팅턴이 주장하는 “문명의 충돌”이 아니라 “자원 전쟁(Resource War:이 책의 원제이기도 하다)”이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많은 사례들을 제시한다. 그는 자원을 둘러싼 수많은 국가간·국가 내부의 분쟁들을 소개한다.

자원을 둘러싼 분쟁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은 역시 중동, 즉 페르시아 만이다.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자원인 석유가 세계에서 많이 매장된 지역이기 때문이다. 석유 수입 국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이 지역에서 에너지를 더 많이 공급받을 것이다. 미국 에너지부의 예측대로라면, 세계 각국이 페르시아 만에서 공급받는 석유는 1997년 하루 1천6백30만 배럴에서 2020년에는 3천6백40만 배럴로 두 배 이상 늘어날 것이다.

따라서 중동 지역을 둘러싼 분쟁의 수위도 높아져 가고 있다. 1991년 이라크 침공 이래 미국은 자국 군대를 이 지역에 주둔시키는 한편, 이라크, 수단 같은 국가들을 끊임없이 폭격해 왔다.

1970년대에 베트남 후유증을 앓던 미국은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를 내세워 이 지역의 패권을 공고히 하는 “위임 전략”을 채택했다. 그러나 이란에서 혁명이 일어나 친미 팔레비 왕조가 퇴진하자 미국은 직접 책임을 떠맡아야 했다. 1980년 1월, 당시 미국 대통령 카터는 연두 교서에서 페르시아 만을 미국의 “필수적 이해관계”로 규정하고 “이 지역에 대한 공격은 군사력을 포함하여 필요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격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른바 “카터 독트린”이다. 이 카터 독트린이 실제 효력을 발휘한 것이 바로 1991년 조지 부시 행정부가 지휘한 “사막의 폭풍 작전”, 즉 2차 걸프전이었다.

저자의 관점대로라면 오늘날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에 대해서도 “군사력을 포함하여 필요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격퇴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조지 부시의 의도 역시 명쾌하게 읽을 수 있다. 1991년 〈비즈니스 위크〉가 지적한 대로 “석유는 전쟁을 치를 가치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어서 저자는 카스피 해로 시선을 옮긴다. 저자는 이 지역을 “석유의 새로운 엘도라도[전설 속의 황금 도시]”라고 부른다. 1997년 미국 국무부는 카스피 해역의 에너지는 북해에서 발견되는 양의 약 10배에 달하고, 페르시아 만 총 매장량의 3분의 1인 2천억 배럴에 달하는 석유가 매장돼 있다고 의회에 보고했다. 이 지역에 매장된 에너지가 이목을 끄는 더 중요한 이유는 다른 지역에서는 석유 생산량이 줄어들 전망인 반면, 이 지역의 생산량은 앞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냉전 해체 이후 미국과 러시아는 이 지역에 매장된 에너지에 군침을 흘리며 군사적·정치적 개입을 추진해 왔다. 클린턴은 이 지역 대통령들과 회담을 한 뒤 미군과 이 지역 국가들의 군대가 합동으로 실시한 훈련(CENTRAZBAT)을 실시했다. 옛 소련의 지배에서 벗어난 이 지역의 국가들―카자흐스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그루지야,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은 친 서방 노선을 채택해 미국과 관계 개선을 추진해 왔다. 미국은 이 지역을 텃밭으로 여기던 러시아의 그림자 때문에 군대를 주둔시킬 수는 없었으나, 경제·군비 지원이나 합동 군사 훈련 같은 방식으로 이 지역에 개입을 늘려 왔다.

러시아는 이 지역의 국가들이 러시아의 통제에서 벗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 대표적 사례가 체첸 침공이다. 얼마 전 발생한 모스크바 인질극 사태와 이후 푸틴의 공격 강화에서 보듯 앞으로도 체첸에 대한 무력 개입은 멈추지 않을 전망이다.

저자는 2000년 이 책을 발표했다. 따라서 그 뒤 카스피해에서 전개된 세력 양상을 다룰 수 없었다. 미국은 작년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해 이 지역에 전초 기지를 마련했다. 하미드 카르자이를 수반으로 하는 과도 정부는 철저하게 미국에 봉사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미국이 1990년대 중반 추진했다가 실패한 석유 파이프라인 건설 사업을 재개한 것이다. 또 러시아는 미국의 대 테러전을 지원한 대가로 체첸 침공과 민간인 학살에 대해 면죄부를 얻을 수 있었다.

페르시아 만과 카스피해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수많은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석유와 천연가스를 둘러싼 분쟁은 남중국해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1995년 중국이 몰래 스프래틀리 군도의 산호도를 점령한 이후 주변국들은 경쟁적으로 해군력을 증강하고 있다.

수자원을 둘러싼 분쟁도 일어날 수 있다. 저자는 나일강을 둘러싸고 북아프리카 국가들이 벌이는 분쟁을 소개한다. 또 이 지역의 맹주 이집트가 횡포를 부리는 모습도 보여 준다. 요르단강을 둘러싼 이스라엘의 횡포도 볼 수 있다. 이스라엘은 1967년 6일 전쟁에서 요르단강 서안과 골란 고원을 점령해 부족한 수자원을 독차지하면서 주변국들과 마찰을 일으키고 있다. 또 서안 지역과 가자지구에 사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게 물을 거의 공급하지 않아 반감을 사고 있다.

이 밖에도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을 둘러싼 터키·이라크·시리아의 갈등, 인더스강을 둘러싼 인도와 파키스탄의 갈등, 목재와 광물을 둘러싸고 아프리카에서 벌어져 온 끔찍한 내전의 역사를 접할 수 있다.

모든 국가간 분쟁의 핵심 원인을 자원에서 찾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일 것이다. 그러나 경쟁과 약육강식이 법칙인 자본주의 국제 질서에서 자원을 둘러싼 분쟁은 사라질 수 없다. 중동에 또 다시 전운이 감도는 지금, 이 책은 자원을 둘러싸고 제국주의 국가들이 벌이는 추악한 경쟁을 폭로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저자가 국제 분쟁에서 국제에너지기구(IEA)·국제원자력기구(IAEA)·세계보건기구(WHO) 같은 국제 기구들에 기대를 걸 뿐, 분명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점은 유념하고 읽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