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이 개혁을 할 수 있을까?

정진희

박빙의 승부 끝에 노무현이 당선했다. 노무현은 우파 이회창에 대한 대중의 반감과 개혁 열망에 힘입어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노무현이 집권하면 개혁이 진행될 것이라고 기대를 걸고 있다. “노무현이야말로 특권과 반칙 없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노무현 지지자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기대와 달리 이번 대선에서 노무현은 온건한 모습을 보였다. 노무현은 정몽준과 단일화한 뒤 자신은 “진보가 아니다” 하고 거듭 밝혔다. 실제로 그는 국가보안법 폐지가 아닌 ‘대체 입법’을 주장했고 사립학교법 개정에도 미온적이었고 주한 미군 철수에도 반대했다.

심지어 노무현은 처음에는 국민의 80퍼센트가 지지하는 소파 개정 요구조차 지지하지 않았다. 소파 개정은 공약에 포함돼 있지도 않았다. 반미 시위가 확산되자 그제서야 소파 개정을 지지했다.

이런 모습은 일부 노무현 지지자들의 실망을 자아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오히려 노무현의 온건한 태도가 우파의 공세를 피하기 위한 계산이라고 두둔했다. 그의 온건한 태도가 집권하기 위한 ‘전술’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5년 전에도 나온 낡은 변명이다. 지난 대선에서 김대중이 김종필과 손잡고 우경화할 때도 이렇게 해석됐다. 많은 사람들은 집권 내내 김대중이 왼쪽으로 이동하기를 바랐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노무현이 집권해 자신의 기반을 다지면 개혁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은 진실이 아니다. 6공 2기 정부로 불린 김영삼이 전두환과 노태우를 구속해 자신의 기반을 만든 것은 1995년부터였다. 그러나 그 뒤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1996년 12월 26일 새벽에 집권당인 신한국당 의원들이 몰래 모여 노동법·안기부법을 날치기 통과시켰다. 개혁은커녕 의회민주주의조차 유린한 이 사건으로 김영삼은 완전히 몰락했다.

노무현이 당선 뒤 민주당과 진정으로 결별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도 공상이다. 김대중은 집권 내내 자민련하고도 결별하지 못했다. 이것은 김대중의 우유부단한 성격 때문이 아니다. 김대중은 소수파 정권의 한계 때문에 집권 내내 자민련과의 공조에 매달려야 했다.

노무현은 당선하면 민주당 내 보수파를 배제하고 재창당을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것은 민주당에 대한 반감을 누그러뜨리려는 입발림말일 뿐이다. 현재 민주당은 의회에서 소수당이다. 만약 노무현의 말처럼 그가 집권 뒤 민주당 내 보수파를 제거한다면, 가뜩이나 협소한 그의 정치적 기반은 더 협소해질 것이다. 노무현은 대중 투쟁을 지지·고무하는 좌파가 아니다. 이런 그가 무엇에 의지해 우파의 공세에 맞설 수 있을까?

노무현이 제대로 된 개혁을 할 수 없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그의 주된 사회적 기반은 상층 중간 계급이다. 비록 그가 포퓰리즘적 언사로 하층 중간 계급과 노동 계급 일부의 지지를 받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가 걸핏하면 ‘서민’ 운운하면서도 부자와 대기업주에 유리한 정책들을 지지해 온 것도 이 때문이다. 발전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층 중간 계급은 대체로 대자본가들을 동경하고 좇는다. 민주노동당의 부유세 공약 반대, 공기업의 사기업화 지지, 교육비·의료비 인상 지지, 공무원 노조의 단체행동권 부정, 노동시장 유연화 찬성, 경제자유구역법 찬성 등.

그는 서민들이 모아 준 ‘희망 돼지 저금통’을 털어 정치를 하는 양 말하지만, 그가 지금까지 선거 비용으로 썼다고 신고한 3백억 원 가까운 돈을 개미들의 고사리손으로 충당할 수는 없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없듯이 노무현도 자신의 정치적·사회적 기반과 단절할 수 없다. 노무현이 집권하면 정말 개혁을 할 것이라는 기대는 헛된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