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당선의 요인과 민주노동당의 미래

김인식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이 이회창을 눌렀다. 노무현은 대중의 반이회창 정서 덕분에 48.9퍼센트를 득표해 근소한 차이(2.3퍼센트)로 승리했다. 이회창으로 표상되는 구체제의 복귀를 국민의 다수가 거부했다.

투표 전 날에 정몽준이 지지를 철회했는데도 노무현이 승리한 사실은 노무현의 승리가 재벌인 정몽준의 보수적 기반에 달려 있지 않았고, 오히려 우리 사회가 더 개방적이고 관용적이 되기를 바라는 피억압 대중의 지지 덕분이었음을 보여 준다. 노-정 단일화 자체가 이회창 집권을 저지해야 한다는 대중 압력의 결과였다.

보수 성향의 〈중앙일보〉(12월 20일치)조차 이회창의 패인을 이렇게 지적했다. “[이회창은]결코 질 수 없는 것처럼 보였던 선거에서 졌다. … 이 후보의 패인은 무엇보다 시대의 흐름[“젊은 세대의 변화 욕구”]을 읽지 못한 데 있다.”

이번 선거는 또한 반미 시위가 거세게 일고 있는 상황에서 치러졌다. 반미 시위는 “이[회창] 후보에게 상당한 타격을 줬다 … 미국에 한 번도 가보지 않았고, ‘반미면 어떠냐’고 했던 노[무현] 후보에게 반미 정서가 강한 20∼30대의 표가 대거 몰”렸다.(〈중앙일보〉 12월 20일치.)

반미 시위의 효과를 우려한 이회창은 운동을 지지하는 척해야 했다. 한나라당 국회의원 이부영은 “국민들의 소파 개정 요구를 외면해서는 지지를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다들 알고 있다” 하고 말했다.

12월 7일에 이회창은 면박과 수모를 당하면서까지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추모 미사에 참석해, 언론을 통해 청년 유권자들에게 자신이 반미 시위에 참가한 듯한 인상을 주려 애썼다. 미사를 집전한 신부들은 이회창에게 “떠나 달라”고 요구했고 근처에 있던 시민과 신자 들은 이회창에게 종이 뭉치와 계란을 던지기도 했다.

이회창이 친미적이지 않은 것처럼 보이려 이렇게 애쓴 반면, 평소 “미국에 일방적으로 굽실대지 않겠다”고 말해 온 노무현은 오히려 보수파의 눈치를 보느라 광화문 시위에 참가하지도 않고 부시 직접 사과 서명도 거부했다. “정치 지도자가 시위와 서명에 함께 참가한다는 것은 … 시류에 영합하는 자세일 수도 있다.”

노무현과 이회창의 이런 뒤바뀐 듯한 행태에도 12월 9일 한국갤럽 여론 조사에서 노무현은 이회창을 9.6퍼센트 차이로 크게 앞섰다(〈조선일보〉 12월 20일치).  

주한미군 철수 여론의 확산 가능성을 우려한 미국이 반격에 나섰다. 12월 11일 미국은 스커드 미사일을 싣고 항해하던 북한 선박을 나포했다. ‘북한의 위협’이 현존한다는 점을 상기시키고, 그것을 빌미로 주한 미군의 존재를 정당화하려 했다.

이것은 또한 반미 운동 내에서 주한 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좌파를 고립시키려는 시도이자 선거에서 우파를 돕기 위한 책략이었다. 정치적 양극화 촉진 시도였다. 조갑제도 간파했듯이, 양극화가 가속화한다면 우파인 이회창에게 이롭고 중도파인 노무현에게 불리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요청에 응답해 이회창은 이번 대선이 ‘안정이냐, 불안이냐의 선택’이라며 색깔 공세를 폈다. 한국갤럽 조사를 보면, 이런 기류가 얼마간 반영됐다. 북한의 ‘핵 동결 조처 해제’ 선언 직후 노무현과 이회창의 지지율 차이는 12일에 7.3퍼센트, 14일에 6.6퍼센트로 다소 좁혀졌다.

그러나 더 많은 사람들이 〈유에스에이 투데이〉 지적대로 “북핵 문제가 남북한 사이보다 북한과 미국의 싸움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미국 대통령 조지 W 부시가 남북 화해의 장애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부시의 대북 강경 노선을 이회창이 지지했다. 그 때문에 이회창은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는 강경파로 찍혀 있었다.

미국의 북한 선박 나포 직후에 노무현은 북한의 대량 살상 무기 수출을 비난했으나, 여론이 반전되는 조짐이 보이자 “전쟁이냐 평화냐”로 말을 바꿨다. 그러나 TV 토론에서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가 군축을 제안하자 북한의 위협을 들어 반대했다. 이렇듯 노무현은 오락가락한다. 그럼에도, 냉전주의자의 본색을 드러낸 이회창의 당선 가능성에 대한 대중의 우려 덕분에 노무현은 대중적 반미 시위의 최대 수혜자가 됐다.

그리고 “여중생 압사 사건과 미군 병사 무죄 평결로 불붙은 한국민들의 반미 운동이 폭넓은 국민적 지지를 받[는] … 이런 분위기” 덕분에 “해묵은 색깔론이나 냉전적 ‘북풍’, 그리고 미국의 입김이 예전처럼 먹혀들 수 없게 됐”다(〈한겨레〉 12월 13일치). 갤럽 여론 조사를 보더라도, 60퍼센트가 더는 북한을 안보 위협으로 보지 않는다고 밝혔다. 북한의 핵 위협은 더 많은 양보를 얻어 내기 위한 의도라고 생각한다.

결국 “보수층은 결집하는 양상이 나타났지만 다수 국민은 변화를 더 열망했다. 젊은 층에선 이 후보의 주장을 ‘냉전 시대의 논리’쯤으로 치부해 버렸다.”(〈중앙일보〉 12월 20일치.)

 

노무현의 당선과 진보 진영

노무현은 대북 강경론자이자 친재벌적인 이회창에 대한 피억압 대중의 반감 정서에 기대어 승리할 수 있었다. 노무현은 당선되자마자 피억압 대중의 기대와 대면하고 있다. 김대중 정부는 5년 동안 수많은 유산을 남겼다. 그 가운데 노무현에게 가장 위험한 유산은 노동자 운동의 성장이다.

이회창이 당선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노무현의 입에 발린 ‘따뜻한 말’이 김대중 정부에 대한 불만의 뚜껑이 열리지 못하게 막았다.

노무현 정부는 초기 김대중 정부보다 훨씬 더 취약하다. 당시 노동자 대중은 34년 일당 독재가 붕괴되고 정권이 교체됐다는 기대감에 사태의 악화를 잠시 기다릴 태세가 돼 있었다. 그러나 지금 노동자 대중은 5년 동안 자유주의 정부의 배신을 경험했다.

그래서 97만 명(3.9퍼센트)이 노무현에게 아무런 환상을 갖지 않고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 지난 1997년 대선 때 권영길 후보가 얻은 30여만 표에 비해 세 배가 많은 수치다. 더구나 권 후보는 1997년보다 더 좌파적인 비전을 제시했다.

노무현에 대한 기대와 그의 실체 사이의 격차 때문에 그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도전이 일어날 것 같다. 이렇게 봤을 때 노무현 당선은 중장기적으로 진보 진영에 더 유리할 것이다. 그리고 정치적 양극화가 더욱 진행될 것이다.

노무현 당선이 진보 진영에 결국엔 더 유리할 수 있다면 권영길보다 노무현을 지지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질문이 제기될지도 모르겠다. 노무현 자신도 투표 하루 전에 그 비슷한 얘기를 했다.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랠프 네이더가 앨 고어의 표를 잠식해 조지 부시 대통령의 당선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는 바람에 랠프 네이더의 자유주의 노선과 지지자들의 처지가 더 어렵게 됐다.” 일부 포퓰리스트들도 선거 며칠 전에 그 비슷한 이유를 들어 권영길 후보 사퇴를 요구했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이다. 부시가 이긴 건 그의 동생 젭 부시가 주지사로 있는 플로리다 주에서의 선거 부정 덕택이었다. 그리고 우리 나라에서 기성·자본가 정당들을 지지하는 대가로 돌아올 것이 거의 없다는 노동자 대중의 역사적 자각이 민주노동당의 등장 배경이었다. 진보 정당은 노무현의 품 안에서가 아니라 노무현과 단절·투쟁하면서 성장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일부 민주노동당 지지자들은 노무현 당선에 씁쓸함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민주노동당의 지지 기반이 노무현의 지지 기반과 일부 겹치는 바람에 치열하게 논쟁을 벌였던 탓이다. 그러다 보니 경쟁 심리가 발동했을 터이고 이로 말미암아 노무현 승리에 소외감이 들 수도 있겠다.  

어떤 이들은 1997년 대선 결과를 떠올릴 수도 있다. 또다시 부르주아 자유주의자에게 밀려났다고 여길 수도 있다. 외관상 비슷한 상황이니까 말이다.(그러나 앞에서 말했듯이, 이면을 들여다보면 그 때와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앞으로 5년 뒤에는 또 누가 나와 민주노동당의 길을 막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 갑갑할 수도 있다. 자본가들의 양당 체제가 형성된 미국처럼 한국에서도 진보 정당은 안 되는구나 하는 답답함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은 근시안적 생각이다. 우리는 격변하는 세계에 살고 있다. 불과 반 년 전에만 하더라도 언론들은 세계가 우경화하고 있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과연 그런가? 11월 오스트리아 총선에서 극우파 자유당이 참패했다. 이 당은 1999년 선거에서 27퍼센트를 득표해 보수당과 연립 정부를 구성해 유럽을 충격에 빠뜨린 바 있다. 자유당의 핵심 인물인 외르크 하이더가 히틀러 숭배자인 나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 선거에서는 자유당이 10퍼센트밖에 얻지 못했다. 물론 그들이 얻은 10퍼센트를 간단히 제쳐 버릴 수는 없지만 말이다.

10월 브라질 대선에서는 좌파 정당인 노동자당(PT)의 룰라가 승리했다. 11월 에콰도르 선거에서는 좌파 정치인인 루시오 구티에레스가 대통령에 뽑혔다. 내년 3월로 예정된 아르헨티나 대선에서는 좌파인 엘리사 카리오와 트로츠키주의자인 루이스 사모라가 여론 조사에서 선두를 다투고 있다. 라틴 아메리카 전역에서 신자유주의 정책과 내핍 정책에 대한 반대가 자라나고 있다는 징후들이다.

노무현은 포퓰리스트 특유의 좌충우돌과 오락가락을 거듭할 것이다. 노무현을 지지한다면 노무현의 배신이 낳는 분노에 응답해 노동자 대중과 함께 싸울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노무현과 맞서 싸울 수 없다면 진보 정당은 기성·자본가 정당과는 구별되는 독립적 대안을 제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