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가부장제 이론

오늘날 세계 모든 나라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사회적으로 부차적인 지위에 있다. 분명히 그 정도는 나라마다 차이가 있지만, 기본 패턴은 비슷하다. 기업·국가의 고위직과 상층 전문직은 대부분 남성이 차지하고 있다. 대체로 남성이 여성보다 재산도 더 많고 소득도 더 높다. 여성은 물리적 폭력과 성폭행에 훨씬 더 많이 시달린다. 여성은 집안일과 자녀 양육을 대부분 떠맡고 있고, 그래서 더 넓은 사회에 평등하게 참여할 수 있는 능력을 제약당하고 있다.

이런 사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보수적 설명이 여전히 전 세계에서 유력한데, 이런 설명은 남녀 평등에 대한 입발림말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 남성의 우위를 정당화한다. 즉, 남성의 우위는 자연의 섭리이므로 과거에도 항상 남성이 여성보다 유력한 지위를 점했고 앞으로도 항상 그럴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런 설명의 가장 조야한 형태는 남녀의 신체적 차이에 초점을 맞춘다. 남성이 여성보다 힘이 더 세다는 식이다. 그러나 더 흔한 주장은 유전적으로 또는 심리적으로 남성은 능동적·진취적·경쟁적 성향을 보이게 돼 있는 반면, 여성은 수동적·순정적 성향을 보이게 돼 있다는 것이다.

가장 널리 알려져 있고 받아들여지는 이 보수적 인간본성론의 주된 대안은 흔히 ‘가부장제’ 이론이라고 부르는 주장이다. 가부장제 이론의 목표와 내용은 남성 우월주의를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비판하는 것이다. 오늘날 사실상 전 세계 페미니스트들의 다수는 이런저런 형태의 가부장제 이론을 지지한다.

모호한

가부장제 이론의 주된 문제점은 두 가지다. 첫째는 가부장제 이론이 종류가 많은 데다 아주 모호하고 분명한 형체도 없어서 뭐라고 콕 찍어 설명하기가 매우 힘들다는 것이다.(어떤 분야에서, 특히 학계에서는 이런 모호함이 오히려 장점이 된다는 점을 지적해 둬야겠다.) 둘째는 가부장제 이론에서 특정한 구체적 주장을 발견한다손 치더라도 그런 주장은 오히려 보수적 설명과 놀랄 만큼 비슷한 것으로 귀결된다. 보수적 견해가 긍정적으로 인정하는 주장을 가부장제 이론은 부정적으로 인정할 뿐이다.

‘가부장제’라는 말은 ‘아버지의 지배’를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다. 이 용어는 처음에 인류학자들이 아버지/남성 가장이 다른 성인 남성들을 포함한 가족 성원 전체에 대해 대체로 절대적 권력을 행사하는 가족 구조를(따라서 사회도) 묘사하는 데 사용됐다. 그러나 현대 페미니즘에서는 가부장제라는 말이 그런 뜻으로 쓰이지 않는다. 가부장제는 구체적으로 아버지의 지배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단지 ‘남성의 지배’를 뜻할 뿐이다. 여기서 우리는 분명히 난관에 봉착한다. 남성의 득세를 그리스어를 빌려 남성의 지배로 설명한다고 해서 뜻이 더 분명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가부장제 이론은 남성이 득세하는 원인을 뭐라고 설명하는가?

불행히도 이 물음에 대한 일반적 정답은 없다.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남성 때문!”이라고 딱 잘라 말할 것이다. 다시 말해, (모든/대다수) 남성들의 유전적 또는 심리적 구조 속에는 여성을 천대하도록 유도하는 뭔가 타고난 것이 있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내가 가부장제 이론과 보수적 견해 사이에는 비슷한 점이 있다고 말한 것이다. 이런 주장은 마치 16~19세기에 미국에서 흑인들이 왜 노예가 됐느냐는 질문에 흑인들은 노예가 되도록 타고났다는 대답을 듣자 분개하며 “아니다, 그것은 백인들이 노예 소유주가 되도록 타고났기 때문이다” 하고 대꾸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남성의 본성?

이 점과 관련해서, 가부장제 이론이 지난 1960~70년대에 주로 여성 차별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설명에 반대하면서 발전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성 해방 운동 ─ 당시 그렇게 불렀다 ─ 은 미국에서 기존의 급진 운동들 내에서 시작됐다. 주로는 사회에서 여전히 지속되는 남성 우위에 대한 대응으로 시작됐지만 부분적으로는 운동 내부의 여성 차별에 대한 반발이기도 했다. 여성 운동의 많은 지도자와 이론가 들이 마르크스주의를 비판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마르크스주의가 여성 차별 문제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이 언론계와 학계에서 출세하기를 염원하는 중간계급 여성이었던지라 노동계급 투쟁을 강조하는 이론을 본능적으로 싫어했다는 것도 한 이유였다.

그들의 주장인즉슨 대체로 다음과 같다. 마르크스주의는 여성 차별의 원인이 자본주의이고 오직 사회주의만이 여성을 해방시킬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사실 여성 차별은 자본주의보다 훨씬 더 오래됐고 소련·중국·북한 같은 탈(脫)자본주의 또는 사회주의 사회에서도 여성 차별은 지속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는 여성을 차별하는 것은 지배계급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지배계급·중간계급 여성을 포함해 모든 여성이 차별받고, 노동계급 남성을 포함해 모든 남성이 여성을 차별한다. 마르크스주의는 여성 천대를 경제와 계급 착취의 문제로 설명하지만, 사실 성차별에는 성서나 유교 경전 등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독자적인 이데올로기의 요소가 존재한다.

이런 주장들의 결론인즉슨 마르크스주의는 여성 차별을 설명할 수 없고, 남성의 권력은 자본가 계급의 권력과 별개로 존재하고, 따라서 여성 평등을 위한 투쟁은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과 따로따로 전개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들이 오늘날 이른바 ‘가부장제’ 이론의 핵심 사상이 됐다.

사실,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이런 비판은 대체로 진정한 마르크스주의가 아니라 스탈린주의(옛 소련 문제 등으로 제기된다)에 대한 반발이었거나 마르크스주의 이론에 대한 잘못된 해석(예를 들어 마르크스주의는 여성 차별의 기원이 자본주의라고 결코 주장하지 않았다)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점은 둘째로 치더라도, 가부장제 이론이 이렇게 부정적으로 발전하다 보니 여성 차별의 근원을 분명하고 일관되게 독자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리고 부지불식간에 낡은 인간/남성 본성론에 의지하게 돼 버렸다.

묵인

그래서, [가부장제 이론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성차별 이데올로기가 계급 분열이나 계급 착취와 무관하게 존재한다면 그것은 어디에서 비롯했는가? 고서(古書)와 경전 들을 저술한 남성 성직자·철학자·율법학자의 본성에서 비롯했다. 남성 권력이 계급 권력과 무관하게 존재한다면, 그것은 남성의 권력욕 때문이다. 자본주의를 전복하고 계급 없는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더라도 여성이 해방되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남성이 계속 여성을 천대할 것이기 때문이다. 왜? 그들이 남성이고, 여성 천대가 그들의 본성이니까. … 기타 등등.

가부장제 이론의 궁극적 결함은 그것이 마르크스주의나 사회주의자들 또는 노동계급 남성이나 심지어 남성 일반을 중상모략한다는 것이 아니라 여성 해방의 전망을 제대로 제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남성 권력이 보편적일 뿐 아니라 초역사적인 것이라면, 그리고 모든 남성이 대체로 성차별적이라면, 그리고 바로 그 남성들이 세계의 부(富)와 생산을 대부분 지배하고 권력의 핵심 요직을 차지하고 무기를 통제하고 있다면, 그리고 노동계급 남성이 여성의 동맹 세력이 될 수 없다면, 심지어 사회주의 혁명도 남성의 지배를 끝장내지 못한다면, 그렇다면 도대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래서 가부장제 이론이 실천에서는 흔히 체제를 수용하고 여성 차별을 묵인하는 외피 구실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중간계급 페미니스트들이 말로는 급진적 언사를 남발하면서도 실제로는 대다수 노동계급 여성들의 진정한 해방은 내팽개친 채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그들 자신만의 출세 ─ 여성 국회의원, 여성 교수, 여성 최고경영자(CEO)의 수를 늘리는 것 ─ 를 추구하게 되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는 여성 차별의 뿌리에 대한 진정한 역사적 설명과 여성 차별을 끝장낼 수 있는 진정한 전략을 제시한다.

2. 마르크스주의 이론

만족스런 이론은 첫째, 유물론적이어야 하고 둘째, 역사적이어야 한다. 내가 말하는 유물론적이라는 의미는 열등하거나 부차적인 여성의 지위가 어떻게 현실의 물질적 사회관계 ─ 사회의 경제적 발전 단계와 관련된 ─ 에서 비롯했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성 차별을 순전히 인간 본성 문제나 유전자 탓으로만 돌릴 수 없다. 또, 단지 ‘문화적’ 문제로 치부할 수도 없다. 문화적이라는 의미가 남성이 스스로 우월하다고 믿거나 여성이 스스로 열등하다고 믿는 것의 물질적 원인을 설명하지 않은 채 그런 믿음 때문에 여성이 차별받는다고 주장하는 것이라면 말이다.

내가 말하는 역사적이라는 의미는 여성 차별이 언제, 어떻게 시작됐는지(물론 이것은 대략적 설명이지 콕 집어서 자세히 설명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왜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는지, 그리고 여성차별을 설명하는 이론이 여성해방론이기도 하다면 남녀 평등을 현실적 가능성으로 만들기 위해 상황이 어떻게 변해 왔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부장제 이론이 이 모든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다는 것은 이미 보았다. 이제는 마르크스주의 이론이 이 시험을 통과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유물론

마르크스주의는 여성 차별이 수천 년 동안 지속됐지만 결코 보편적이거나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주장에서 출발한다. 오히려, 수십만 년 동안, 그러니까 약 1만 년 전 농업이 발전하기 전에 모든 인간이 수렵·채집 활동으로 먹고살았던 시기에 여성은 결코 체계적으로 차별받지 않았다. 다시 말해, 인류 역사의 95퍼센트가 넘는 대부분 기간에 여성과 남성은 대체로 평등하게 살았다. 따라서 차별이 아니라 평등이 인간 사회의 상궤였다. 이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먼저, 19~20세기까지 살아남은 수렵·채집 사회들을 인류학자들이 조사·연구한 결과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한 루이스 모건의 선구적 연구가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고전적 저작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을 썼다. (이 책에 나오는 인류학 데이터의 일부는 오늘날 틀린 것으로 판명됐지만 그 방법론은 여전히 타당하다.) 캐나다의 몽타녜-나스카피 족을 연구한 엘리너 리콕의 《남성 우위의 신화》(Myths of Male Dominance), 콩고의 피그미족을 연구한 윌리엄 턴불의 《숲 사람들》(The Forest People), 특히 칼라하리 사막의 이른바 부시맨들을 연구한 리처드 리의 《쿵산족: 채집 사회의 남성, 여성, 노동》(The !Kung San: Men, Women and Work in a Foraging Society) 등도 있다.

이런 연구 결과들이 보여 주는 바는, 유목민들과 마찬가지로 (사냥감을 쫓는) 수렵·채집인들도 날마다 각자 등에 지고 다닐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재산을 모을 수 없었기 때문에 수렵·채집 사회에서 물질적 평등이 대체로 보장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폭넓은 양성 평등은 주로 여성의 채집 활동으로 공동체 식량의 절반 이상이 공급됐다는 사실과 관련 있다.

마르크스주의는 여성 차별이 서로 연결된 두 가지 중대한 사회 변화의 결과로 나타났다고 주장한다. 수렵·채집 사회에서 농업 사회로, 그리고 계급 없는 사회에서 계급으로 분열된 사회로 바뀐 것이 그 변화다. 이 과정이 정확히 언제 시작됐는지 콕 집어 말할 수는 없다. 세계적으로 그런 과정은 때와 장소에 따라 다르게 발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략 1만~1만 2천 년 전에 중동의 비옥한 초승달 지대(오늘날의 이라크에서 나일강 유역에 이르는 지역)에서 처음으로 농업이 발전하면서 시작됐고 대략 5천~6천 년 전에 유력한 사회 편제 형태로 확립됐다고 할 수 있다.

계급으로 분열된 사회

농업이 시작되고 생산력이 발전하면서 정착 생활도 시작됐다. 최초의 도읍들이 나타났고 처음으로 잉여 생산물 ─ 하루하루 생존하는 데 필요한 것 이상의 재화들 ─ 과 함께 재산 축적 가능성도 나타났다. 그러나 이 초기의 잉여는 다수의 안락한 생활을 보장하기에는 매우 불충분하고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재산 축적, 즉 사유재산은 극소수 ‘지배계급’ 수중에 집중됐다. 이 새로운 지배계급은 자신의 재산(소떼나 토지 등)을 이용해서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위해 일하도록 ─ 노예나 농민으로서 ─ 강요했다. 그리고 자신의 재산과 특권을 지켜줄 국가 기구들(군대·성(城)·감옥·사법기구 등)도 건설했다.

수렵·채집 사회에서 농업 사회로 전환과 동시에, 생산 형태도 여성의 노동 ─ 주로 채집 ─ 이 남성의 노동과 동등하게 중요한 형태에서 남성이 사회의 부를 대부분 생산하는 형태 ─ 경작과 목축 ─ 로 전환됐다. 이것은 하루 종일 무거운 쟁기를 끌거나 소를 모는 일이 어린 아이들을 기르거나 돌보는 일과 양립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사회적 잉여와 국가를 통제하는 일을 주로 남성이 맡게 됐다.

이와 함께, 수렵·채집 사회의 특징이었던 자유로운 짝짓기와 집단적 육아 관행도 폐기됐다. 그리고 종교적·법률적으로 통제되고 남성이 우위를 점하는 배타적인 가족이 발전했다. 이런 가족 안에서 아내는 남편의 재산으로 취급됐고, 하는 일도 집안일과 자신의 자녀만을 돌보는 것으로 국한됐다. 이런 가족 형태는 사회에 따라 매우 다양한 형태를 취했는데(예컨대 일부다처제), 무엇보다 지배계급 내에서, 그리고 그들을 위해서 가장 강력하게 확립됐다. 그런 가족 제도는 축적된 재산(토지·가축 등)과 권력의 보존·상속을 보장한다는 경제적 기능도 했지만 사회적으로는 어디서나 여성이 남성보다 부차적 지위에 놓이게 됨을 의미했다. 엥겔스는 이를 두고 “여성의 세계사적 패배”라고 불렀다.

따라서 마르크스주의 이론은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특정 발전 단계에서 여성 차별이 비롯했다고 본다. 또, 여성 차별이 생물학적 차이와 관계가 있다고 보지만(어쨌든 여성과 남성은 생물학적 범주다), 역사적으로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그렇게 됐다는 뜻이지, 생물학적 차이가 지금과 미래의 여성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의미에서 그렇다는 뜻은 아니다.

자본주의

여기서 드는 의문은 ‘그토록 오래 전에 시작된 여성 차별이 수천 년 동안 지속되고 비록 완화된 형태로나마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분명히, 이 칼럼에서 모든 이야기를 다 할 수는 없지만 고대와 중세 사회 그리고 아시아적 사회, 즉 공납(貢納) 사회에서는 십중팔구 재산 상속 기능이 남성 지배 가족의 존속에서 핵심이었다. 이 점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요인이지만, 여성 차별이 체제에 도움이 되고 지배계급의 막대한 기득권이 걸려 있다는 면도 상당히 존재한다.

첫째, 남편과 자녀를 돌보는 것을 여성의 ‘타고난’ 본분으로 만든 덕분에 자본가 계급은 그들이 지금 부려먹는 노동자들과 차세대 노동자들을 거의 공짜로 재충전·재생산할 수 있게 됐다. 둘째, 가족에 헌신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함으로써 지배계급은 더 광범한 계급 연대와 계급 의식을 가로막는 협소한 보수적 세계관을 부추길 수 있다. 셋째, 여성이 일할 ‘권리’, 특히 지도적 구실을 맡을 ‘권리’를 약화시키는 것은 여성을 노동력인구의 2류 부문으로 만들어 더 낮은 임금으로 더 많이 착취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렇게 가족 제도와 여성 억압에 부르주아지의 기득권이 걸려 있기 때문에 완전한 여성 해방을 위해서는 노동계급의 단결된 투쟁을 통한 자본주의 전복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노동계급의 단결을 위해서는 노동계급 여성뿐 아니라 노동계급 남성들도 남녀 평등과 여성 해방을 위해 투쟁해야 한다.


존 몰리뉴는 《마르크스주의와 당》(북막스), 《고전 마르크스주의 전통은 무엇인가?》(책갈피), 《사회주의란 무엇인가?》(책갈피)의 저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