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 경제학자가 말하는 미국의 불평등

폴 크루그먼 《우울한 경제학자의 유쾌한 에세이》(부키), 《불황 경제학》(세종서적)의 저자

내가 어렸을 때 ― 1950년대와 1960년대 ― 미국은 실제로나 느낌으로나 중간계급의 사회였다. 황금시대[1920년대 ― 옮긴이]의 소득과 부의 엄청난 불평등은 사라진 상태였다. 물론 하층계급은 가난했다. 그러나 당시의 상식적인 지혜에 따르면, 그것은 경제적이기보다는 사회적인 문제였다. 물론 일부 부유한 기업인들과 많은 재산을 물려받은 상속인들은 보통의 미국인보다 훨씬 잘 살았다. 그러나 그들은 대저택을 지은 졸부들과는 다른 방식의 부자였고, 그 수도 별로 많지 않았다. 부자들이 미국 사회에서 큰소리 치던 시절은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이미 먼 옛날처럼 보였다.

 미국에서 빈부 격차가 점차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그 동안 알려지지 않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부자의 생활 스타일을 힐끗 보았다고 해서 필연적으로 사람들 마음 속에 이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수입과 부의 분배에서 생기는 급격한 변화가 분명한 그림으로 그려지는 것은 아니다. 내 생각에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 동안 엄청난 부자와 나머지 사람들 간에 차이가 얼마만큼 생겼는지 거의 대부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사실, 이 화제를 끌어 내기만 해도 “계급 전쟁”이나 “시샘의 정치” 등을 부추긴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래서 아주 소수만이 빈부 격차의 심각한 경제·사회·정치적 영향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지난 30년 간 나타난 엄청난 불평등 증가의 정도, 그 원인과 결과뿐 아니라, 특히 극소수에게 소득과 부가 놀랄 만큼 집중된 사실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오늘날 미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지금의 기업 스캔들을 이해하려면, 어떻게 회색 모직 양복을 입은 사람이 제왕적인 CEO에게 밀려났는지를 알아야 한다. 최상층으로의 소득 집중은 미국이 이룬 경제적 성취에도, 다른 주요 선진국들보다 빈곤이 증대하고 수명이 낮아진 주 요인이다. 무엇보다도 심각해지고 있는 부의 편중은 우리의 정치 제도를 다시 만들고 있다. 우리 정치의 우경화와 극단적인 양극화는 이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새로운 황금시대

증권거래위원회에는 멸시당한 여성과 같은 분노는 없다. 제너럴 일렉트릭의 전설적인 전 CEO 잭 웰치의 지저분한 이혼 소송은 뜻밖의 이익을 가져다 주었다. 보통 대중에게는 알려지지 않던 기업 엘리트들의 특혜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웰치가 퇴직하면서 회사에서 받은 맨하탄의 아파트 종신 이용권(음식, 와인, 세탁 포함), 회사 제트기 이용권, 기타 다양한 현물 혜택 등은 적어도 1년에 2백만 달러(약 23억 9천1백60만 원)의 가치가 있다. 이런 특혜를 보면 현재 기업 지도자들이 구체제[프랑스 혁명 전의 시대 ― 옮긴이]의 특권 계급 같은 대우를 기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금전 측면에서 이 특혜들은 웰치에게 별다른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그가 제너럴 일렉트릭을 경영하던 마지막 해, 즉 2000년에 웰치는 주로 주식과 스톡옵션으로 1억 2천3백만 달러(약 1천4백71억 원)를 받았다.  

미국 대기업의 CEO들이 돈을 많이 번다는 사실이 뉴스가 될 수 있을까? 사실 그렇다. 그들은 언제나 보통 노동자들보다 많은 돈을 받아 왔다. 그러나 한 세대 전의 기업 회장들이 받던 액수와 오늘날 이들이 받는 액수를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지난 30년 간 대부분 사람들의 봉급은 약간 올랐을 뿐이다. 미국의 평균 연봉은, 1998년 달러(즉, 인플레이션율을 감안한 수정치)로 환산해서, 1970년의 3만 2천5백22달러(약 3천8백89만 원)에서 1999년 3만 5천8백64달러(약 4천2백89만 원)로 상승했다. 즉, 29년 동안 약 10퍼센트가 상승한 것이다. 오르긴 했지만, 별로 눈에 띄는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포춘〉의 보도를 보면, 같은 기간 최상위 CEO 1백 명의 실질 연봉은 1백30만 달러(약 15억 5천4백54만 원) ― 평균 노동자의 39배 ― 에서 3천7백50만 달러(약 4백48억 4천2백50만 원) ― 평균 노동자의 1천 배 이상 ― 로 증가했다.

지난 30년 간 CEO 봉급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은 그 자체로도 놀랍고 중요한 이야기거리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소득과 부의 재집중이라는 더 큰 이야기에서 가장 두드러진 부분일 뿐이다. 부자들은 항상 여러분이나 나와는 달랐다. 그러나 그들은 불과 얼마 전과 비교해 봐도 훨씬 더 달라졌다. 말하자면, 지금 그들은 스캇 피츠제럴드가 유명한 말을 했을 때[대공황 직전 ― 옮긴이]만큼이나 우리와 다르다.

이것은 논쟁적 주장이지만, 사실 전혀 논쟁적일 필요가 없다. 적어도 지난 15년 간 미국에서 불평등이 증가했다는 증거는 부정하기 힘들다. 인구 조사는 상위 20퍼센트의 가정, 그 중에서도 특히 최상층 5퍼센트의 소득이 증가했으며 중간층 가정의 소득이 하락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 준다. 그런데도 이 증거를 거부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호황 산업이 돼 버렸다. 보수파 논객들은 이 통계 수치, 방법론, 분명한 사실을 보고한 사람들의 동기를 믿을 수 없게 만들려는 수십 건의 연구들을 쏟아 냈다. 불평등이 증가하고 있다는 주장을 반박하는 것처럼 보이는 연구들은 신문 사설란에서 특별 대접을 받았고, 우파 성향의 정부 관료들이 자주 인용하는 자료가 됐다. 4년 전 앨런 그린스펀(도대체 왜 사람들은 그가 비당파적이라고 생각했을까?)은 연방준비제도이사회[미국의 중앙 은행 ― 옮긴이]의 연례 잭슨 홀 모임의 기조 연설에서 미국에서는 불평등이 실제로 증가한 적이 결코 없다고 주장할 정도였다.  

불평등의 증가를 부정하려는 단합된 노력 자체가 떠오르는 금권 정치의 영향력을 보여 주는 징후다. 그리고 불평등은 문제가 아니라거나 더 심하게는 마사 스튜어트[‘마사 스튜어트 리빙 옴니미디어(MSO)’의 최고 경영자이자 뉴욕 증권거래소의 이사 ― 옮긴이]식 문장을 따와서 그것은 좋은 일이라는 견해에 대한 열렬한 지지도 마찬가지 징후를 보여 주고 있다. 한편, 정치적 동기가 있는 연막 전술을 걷어 내고 나면 불평등 증가라는 현실은 의심할 수 없다. 사실, 인구 조사는 기술적인 이유 때문에 매우 높은 소득을 누락시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현실을 과소평가하기 쉽다. 예컨대, 이런 통계들이 CEO 급여의 폭발적 증가를 반영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리고 증거들은 불평등이 증가하고 있을 뿐 아니라 최상위로 갈수록 정도가 더욱 심하다는 것도 보여 준다. 즉, 상위 20퍼센트 가정이 중산층 비슷한 가정보다 더 많은 몫을 차지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최상층 5퍼센트는 그 다음 15퍼센트보다 더 많이 벌고, 최상층 1퍼센트는 그 다음 4퍼센트보다 더 많이 번다. 그리고 같은 상황이 빌 게이츠에 이르기까지 반복된다.

따라서 우리가 두번째 황금시대에 들어섰다는 주장은 과장이 아니다. 미국에서 중간계급의 시기, 즉 대저택과 요트를 소유한 계급들의 시기는 지나갔다. 피케티와 새즈의 연구 결과를 보면, 1970년에 최상층 납세자 0.01퍼센트가 총 소득의 0.7퍼센트를 차지했다. 즉, 평균보다 “겨우” 70배 더 벌었을 뿐이며, 초호화주택을 소유하거나 유지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러나 1998년에 최상층 0.01퍼센트는 총소득의 3퍼센트 이상을 차지했다. 이것은 최고 부유층 1만 3천 가정이 2천만 가정의 빈곤층만큼 소득을 올렸다는 뜻이다. 이들 1만 3천 가정이 보통 가정보다 3백 배나 더 많은 소득을 얻었다.

 

뉴딜의 영향을 지우기

증대하는 불평등을 이해하려는 일부 ― 전체는 아니다 ― 경제학자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모호하다고 여겼을 가설을 심각하게 고려하기 시작했다. 이 관점은 불평등에 한계를 정할 때 사회 규범이 하는 구실을 강조한다.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뉴딜은 뉴딜을 가장 열렬하게 찬양하는 사람조차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중요한 영향을 미국 사회에 남겼다. 뉴딜은 30년 넘게 지속된 급여의 상대적 평등이라는 규범을 만들어 냈으며,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게 된 광범한 중간계급 사회를 만들었다. 그러나 그런 규범들은 1970년대 들어서 해체되기 시작했고 그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현실의 부정부패는 잠시 제쳐 두고, 30년 전 비교적 많지 않던 최고 경영자들의 봉급이 어떻게 해서 오늘날 어마어마하게 증가했는지 알아 보자. 주로 두 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는데, 둘 다 순수한 경제학보다는 규범의 변화를 강조하고 있다. 좀더 낙관적인 이야기는 CEO 급여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과 자유계약제도[한국에서 ‘연봉제’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 ― 옮긴이]의 도입 후 야구 선수 연봉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 사이에 유사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 이야기에 따르면,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면 커다란 성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높은 봉급을 받는 CEO는 그만한 값어치가 있다. 좀더 비관적인 관점 ― 내가 보기엔 더 그럴듯하다 ― 에서는 재능 경쟁은 사소한 요인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맞다, 위대한 경영자는 커다란 차이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성과가 그저 그런 경영자도 엄청난 봉급을 받았다. 경영자들이 많이 받는 핵심적인 이유는 자신들의 급여를 결정하고 많은 특혜를 관리하는 회사 이사진을 자신들이 임명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영진의 소득을 그토록 천문학적으로 늘린 것은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아니라 회의실의 보이지 않는 악수였던 것이다.

 

불평등의 대가

첫째, 총소득에서 부자들이 차지하는 몫은 더는 작지 않다. 요즘 1퍼센트 가정의 소득은 세전 총소득의 약 16퍼센트, 세후 소득의 약 14퍼센트를 차지한다. 이 비율은 지난 30년 간 대략 두 배로 늘어 이제는 하위 40퍼센트의 몫과 맞먹는다. 이것은 소득이 상층으로 거대하게 이전했음을 뜻한다. 단순히 산술적으로 보았을 때, 이것은 덜 부유한 가정의 소득이 평균보다 눈에 띄게 천천히 상승했음을 뜻한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다. 1979년부터 1997년까지 인플레이션을 감안해 수정한 평균 가계 소득 ― 총소득을 총 가정 수로 나눈 것 ― 은 28퍼센트 증가했다. 그러나 중간 가계 소득 ― 소득 분배에서 중간에 위치한 가계의 소득, 전형적인 미국 가정이 어떻게 사는지 더 잘 보여 주는 지수 ― 은 단지 10퍼센트만 증가했다. 그리고 최하위 5퍼센트 가정의 수입은 실제로 약간 하락했다.

이 점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우리가 우리의 경제 성장 기록을 자랑스럽게 여겨 온 것은 상당히 옳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난 몇십 년간 이 성장의 성과 중 극히 작은 부분만이 보통 가정들에 돌아갔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랍다. 중간 가계 소득은 해마다 겨우 약 0.5퍼센트 증가했을 뿐이다. 그리고 우리가 다소 신뢰할 수 없는 자료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이 작은 증가마저도 아내들의 장시간 노동 때문이지 실질 임금의 증가 때문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소득 관련 수치들은 평범한 노동자들이 살면서 감수해야 하는 위험의 증대를 반영하지 않는다. 제너럴 모터스가 사내에서 제너러스(generous : 인심 좋은) 모터스로 불리던 시절, 많은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직업이 꽤나 안정적이라고 느꼈다. 극단적인 경우 외에 회사는 그들을 해고하지 않았다. 많은 노동자들은 해고당해도 지급되는 건강 보험을 보장받았다. 그들은 주식 시장의 변동에 의존하지 않는 연금 혜택을 갖고 있었다. 지금은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회사들에서도 일상으로 대량 해고가 일어나고 있다. 직장을 잃는 것은 보험을 잃는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깨달았듯이, 401(k)[미국의 기업 연금 ― 옮긴이]은 안정적인 노후 생활을 보장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