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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국가

불량국가

존 필저 - 다큐멘터리 제작자, 저널리스트

1백1일 동안 영국 해병대는 미국의 용병으로 무의미한 작전에 참가해 왔다. 이제 무법자 미국은 세계의 주요 불량국가라는 자격을 획득했다.

실체도 없는 적과 전투를 벌이고 가끔은 부족민들에게 총을 쏴 대고 흙더미를 폭파하고 언론을 위해 “포획한” 무기를 전시하는 것, 이 모든 것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영국 해병대가 한 수치스런 짓의 일부였다. 이것은 블레어 정부가 강요한 짓이었다. 블레어 정부가 부시 일당에게 복종하고 그들과 공모하는 것은 제국의 신하를 패러디한 것이 됐다.

부시 일당을 폭력배라고 부르는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내 사전에 폭력배는 “범죄나 나쁜 짓을 저지르기 위해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집단”이라고 나와 있다. 그 말은 조지 W 부시를 정확하게 묘사하는 말이다. 또, 부시의 연설문을 써 주고 그의 결정을 도와 주고 부시 집권 후 국제법의 기초 자체를 허물어뜨린 사람들도 정확하게 묘사하는 말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그들이 저지른 짓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월요일[2002년 7월 1일] 결혼식장에서 하객 약 40명을 살해한 것은 “실수”가 아니라 “사격·폭격 먼저, 수색 나중”이라는 정책의 직접적인 결과였다. 9·11 몇 주 뒤에 조지 W 부시는 그렇게 발표했다.

미국 지상군이 존재하지 않고 영국 해병대 같은 “동맹”군이 그들을 대신하는 한, 가난한 나라들을 깨부수는 미국 군사 기구의 구실은 결코 논쟁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대영제국의 전성기에 인도와 그 밖의 다른 식민지에 주둔한 영국 군대도 비슷한 구실을 했다. 물론, 미국인들과 달리 영국인들은 자국 병사들도 희생시킬 준비가 돼 있었지만 말이다.)

지난해 10월 이후 아프가니스탄의 지도자들은 미국 비행기들이 “너무 작아서 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은” 마을들을 파괴해 하룻밤에 “3백 명 넘게 살해했다”고 발표했다. 〈인디펜던트〉의 리처드 로이드 패리는 일가 40명 중에 살아남은 사람은 소년 하나와 그 할머니뿐이라고 보도했다.

TV 방송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미국 뉴햄프셔 대학교가 조사한 것을 보면, “10월 7일부터 12월 10일 사이에 미국의 폭격으로 적어도 3천7백67명의 [아프가니스탄] 민간인이 살해당했다.…하루 평균 62명의 무고한 사람이 죽은 셈이다.” 지금은 민간인 5천 명이 죽은 것으로 추산된다. 9·11 때 죽은 사람의 거의 두 배다.

알 카에다 지도자가 단 한 명이라도 잡혔다거나 죽었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 탈레반 지도자도 마찬가지다. 1990년대와 탈레반 집권 전의 살인적인 봉건주의와 비교하면 지금 아프가니스탄이 겪고 있는 변화는 아주 미미하다.

수도인 카불에는 외관상 변화가 있었지만 여성들은 아직도 감히 베일을 벗지 못한다. 미국이 세운 새 정권의 법무장관은 “탈레반은 죽은 사람의 시체를 나흘 동안 거리에 매달아 놓곤 했지만, 우리는 공개 처형 뒤에 아주 잠깐만, 예컨대 15분 정도만 매달아 놓을 작정이다.” 하고 말했다.

이것을 부시 말처럼 “악에 대한 선의 승리”라고 묘사하는 것은 1940년에 독일의 전쟁 기구는 우수했다고 칭송하면서 나치를 옹호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해병대뿐 아니라 영국의 언론도 속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워싱턴과 화이트홀[런던의 관청 소재지]은 모두 오래 전부터 알 카에다가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이미 끝났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보복이라는 요인을 제외하면, 미국인들은 국내 [여론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자기들이 선호하는 군벌들을 통제하고 있다고 거듭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 군벌들이 고통받는 자국민 수천 명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데도 말이다.

10월에 미국의 계획은 파슈툰족이 지배하는 정권을 세운다는 것이었다. 미국은 파슈툰족이 탈레반을 저버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탈레반의 내분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고, 그 뒤 미국인들은 전술을 바꿔 타지크족과 우즈벡족 군벌들의 “연합”을 결성하려 했다. 현재의 “임시 대통령” 하미드 카르자이는 비록 파슈툰족이지만 자기 부족 내에도 기반이 없고 군대 내에도 기반이 전혀 없다. 그는 그냥 미국의 앞잡이일 뿐이다.

이른바 “국제 안보 지원군”을 주도하는 영국 해병대의 주둔은 여러 가지 이유로 19세기부터 줄곧 이어져 왔다. 영국 해병대는 미국인들의 뜻을 받들어 [서방에] 우호적인 군벌들이 서로 상대의 목을 찌르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 영국 해병대는 미국의 석유와 다른 전략적 이해관계를 위해 그 지역을 “안정시킬” 수 있을 때까지 그렇게 할 것이다.

아직 개발되지 않은 중앙아시아의 막대한 에너지 자원은 심각한 곤경에 빠진 미국 경제와 부시 정부에게 아주 중요하다. 부시 정부를 좌우하는 것은 석유 산업의 이익이다. 특히, 부시 집안 자체가 그렇다. 홍콩에 본사가 있는 〈아시아 타임스〉가 지난 1월 조사한 결과를 보면, 미국은 “복잡한 카스피해 연안의 파이프라인망”을 미친 듯이 개발하고 있다.

부시에게 가장 많은 선거 자금을 댄 회사 중 하나인 엔론은 카스피해 연안에 25억 달러 상당의 송유관을 건설하는 사업의 타당성 조사를 했다. 부통령 체니를 포함해 미국의 전현직 고위 관리들은 “모두 석유 회사들을 대신해 직접·간접으로 중요한 거래들을 해 왔다”고 〈아시아 타임스〉는 보도했다.

“테러와의 전쟁”을 위해 그 지역에 건설된 미군 기지들을 지도에서 찾아 보면 당장 눈에 띄는 사실은 그것이 인도양으로 빠지는 송유관 건설 노선과 거의 정확히 일치한다는 것이다.

물론, 블레어와 떠버리 제프리 훈[영국 국방장관]은 이 결정적인 정보를 영국 국민에게 전혀 알리지 않았다. [아프가니스탄에] 파견돼 미국의 제국주의 게임에 놀아나고 있는 영국 병사들에게 알리지 않은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들에겐 다행히도 영국 군대는 단지 복통과 독감만 얻었다.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불행은 끝나지 않았다.

지난 5월 밀밭에서 자던 아이들이 총에 맞아 죽었을 때 미국 언론들은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자행하는 체계적인 살인 방식에 전혀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네 시간 동안 그 밀밭과 마을에 총탄과 로켓탄을 퍼붓던 미군 헬기들이 착륙하자 군인들이 쏟아져 나와 생존자들을 사살하고 다른 “용의자들”을 억류했다.

사실, 그 지역은 탈레반에 반대한 것으로 유명했고 우루즈간 주의 주지사는 죽은 사람들이 “평범한 사람들”이었으며 “거기에 알 카에다나 탈레반은 없었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었다.

최근 몇 달 사이에 미국이라는 불량국가는 교토 협약을 파기했다. 교토 협약은 지구 온난화를 억제하고 환경 재앙의 가능성을 줄이기 위한 것이었다. 미국은 “선제 공격”에 핵무기를 사용할 수도 있다고 위협했다. 미국은 또, 국제형사재판소의 설립을 방해하려 했다. 미국의 군 장성들과 주요 정치인들이 피고석에 설 수도 있으니 미국으로서는 그럴 만도 했다.

이스라엘은 예닌의 팔레스타인 난민촌을 공격했다. 그러자 미국은 이스라엘이 유엔 진상조사위원회의 출입을 봉쇄하도록 허용함으로써 유엔의 권위를 무너뜨리기도 했다. 그리고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그들이 선출한 지도자를 제거하고 미국의 꼭두각시를 세우라고 요구했다.

미국은 이탈리아에서 열린 세계식량정상회의도 무시했다. 그리고 캐나다와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정상회의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진정한 원조, 즉 깨끗한 물이나 전기 등의 원조를 봉쇄했다. 미국의 식량 보조금을 80퍼센트 증가시키자는 제안은 세계 곡물 시장에 대한 미국의 지배력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세계 최대의 식량 회사인 카길의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매일 아침 일어나 밥을 먹을 때, 그들이 먹는 것의 대부분―시리얼, 빵, 커피, 설탕 등등―은 우리 회사를 거쳐 나온 것들이다.” 카길의 목표는 5∼7년마다 회사 규모를 두 배로 키운다는 것이다.)

미국의 불량한 행동에는 대부분 절박한 초조함 같은 것이 배어 있다. 워싱턴을 운영하는 “자유시장”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두려워하고 있다.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3백40억 달러(약 40조 9천3백60억 원)에 이른다. 막대한 액수의 미국 국채 매입은 급속하게 줄어들고 있다. 미국의 주식 시장은 심각하게 고평가된 상태며 달러화 가치도 불안하다.

어떤 평론가가 썼듯이, “부시 독트린”은 “미국 독점 자본의 요구 위주로 세계 질서를 짜려는 마지막 시도”인 듯하다. “그것은 미국 독점 자본의 오랜 숙원이었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중앙아시아의 막대한 석유와 화석 연료를 지배하는 것이다. 그것은 이라크를 공격해 사담 후세인을 제거하고 세계 2위의 석유 자원을 차지하려는 것이다. 그것은 새로운 경제적 도전자 중국을 미군 기지들로 포위하려는 것이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약화시킴으로써 주요 경제적 경쟁자 유럽의 지도자들을 위협하려는 것이고 무역 전쟁을 개시하려는 것이다.

얼마 전 나는 미국에 다녀왔다. 많은 미국인들은 분명히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러나 감히 그런 말을 꺼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들의 생각은 미국의 주류 언론에 거의 보도되지 않는다. 주류 언론은 자기 검열과 통제를 하고 있다. 아마도 전에는 결코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워싱턴 포스트〉의 찰스 크로새머가 밝힌 것처럼 오히려 분위기는 어두웠다. 그는 “일방주의는 우리가 성공할 수 있는 열쇠”라면서, 향후 50년의 세계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미국 이외의 어느 나라 시민들도 핵 공격이나 환경 파괴에서 보호받을 수 없는 세계, “민주주의”의 혜택이 미국의 “이익”과 일치하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아무 의미가 없어지는 세계, 미국의 “이익”에 반대를 표명하는 사람은 곧 테러리스트라는 낙인이 찍혀 감시와 억압을 당하는 것이 정당화되는 세계. 그런 불량국가에 저항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이 있다. 그것은 긴급하게, 기탄없이 발언하는 것이다. 우리 정부가 그럴 수 없다면 우리가 그렇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