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중생 살해 항의 투쟁이 폭발하면서 반미 감정이 확산되고 있다. 이런 감정은 미국의 모든 것, 모든 미국인을 거부하는 쪽으로 흐르기 쉽다. 그러나 미국은 한 덩어리가 아니다. 미국은 엄청난 빈부 격차, 인종 차별, 노동자 탄압 등 내부 모순으로 가득한 사회다.


1996년 클린턴은 복지 “개혁”을 단행해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는 “건강한 성인”에 대한 정부 보조금을 삭감했다. 지금 일리노이 주 펨브로크 군에 사는 라셰어와 그의 다섯 아이들은 식량 배급표로 한 달에 4백50달러(약 55만 원)를 받는다. 라셰어는 끼니를 걸러 가며 애들을 먹여 살리고 있다.

그러나 탈세 혐의로 기소된 타이코(한국의 캡스를 인수하고 노동자들을 탄압한 회사)의 전 회장 데니스 코조우스키는 개 모양의 우산꽂이를 사는 데 1만 5천 달러(약 1천8백만 원)나 썼다. 물론, 그에게는 “껌값”일 뿐이었다. 지난해 그는 자기 처를 위해 연 호화 생일 파티에 1백만 달러(약 12억 7백만 원) 넘게 쓰기도 했다.

지난 9월 미국 인구통계국이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2001년 미국의 빈곤층은 거의 3천3백만 명이었다. 전체 인구의 11.7퍼센트가 빈곤층인 것이다. 그 중에서 1천1백70만 명이 어린이들이다. 미국의 최상위 부유층 20퍼센트의 가계소득은 1년 전보다 평균 1천 달러 증가했다. 그들은 전체 가계소득의 절반을 가져갔다. 반면, 하위 20퍼센트의 빈곤층은 전체 가계소득의 3.5퍼센트만을 가져갔다.

2001년 말 미국 기업 최고 경영진의 평균 연봉은 1천45만 달러(약 1백25억 원)였다. 이것은 일반 노동자 임금의 4백10배, 육체 노동자보다 5백31배 많은 액수다. 빌 게이츠는 1억 달러(약 1천2백7억 원)짜리 집을 새로 샀다. 그는 자동차 30대가 들어가는 차고에 무슨 차를 넣을까 고민한다. 반면, 많은 사람들은 당장 끼니 걱정을 해야 한다. 이것이 미국의 현실이다.

사형

미국은 세계 최대의 사형 집행국이다. 미국의 사형 집행 건수는 올해 벌써 60건을 넘어섰다. 지금도 죽음을 눈앞에 둔 사형수가 3천 명이 넘는다. 사형이 합법인 38개 주 가운데 사형 집행이 가장 많은 곳은 조지 W 부시가 주지사를 지낸 텍사스다. 1977년 이후 집행된 8백여 건의 사형 중 2백86건이 텍사스 주에서 일어났다.

미국은 사형 관련 국제협약도 무시한다. 국제인권협약에 따라 금지된 18세 미만 미성년자 사형이 1993년 이후 16건이나 있었다. 세계 전체(24건)의 70퍼센트를 차지한다. 미국에서는 나중에 무죄가 입증된 사형수가 1백 명에 이를 만큼 오심도 많다. 빈부  격차와 인종 차별에 따른 불공정 재판도 끊이지 않는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서로 공범 관계인 사건에서 부자는 징역형, 가난한 사람은 사형 선고를 받기도 한다.

흑인 등 소수 인종의 사형수 비율은 인종별 인구 구성비를 크게 웃돈다. 1977년 이후 살인 피해자의 절반은 흑인이었다. 그러나 사형 선고가 내려진 사건의 80퍼센트가 백인이 피해자인 경우였다. 사형수의 95퍼센트는 돈이 없어 변호사를 선임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미국의 인종 차별은 악명 높다. 특히 경찰과 공무원들의 흑인 차별과 억압이 두드러진다. 이런 인종 차별과 억압 때문에 1992년 로드니 킹 사건은 LA 폭동을 일으켰다. 경찰은 거리·공항 등지에서 사람들을 검문할 때 인종을 단서로 이용한다.

미국은 공공 의료보험이 아예 없는 나라다. 가계의 의료비 지출이 국민소득의 14퍼센트나 된다. 그래서 인구의 18퍼센트인 5천만 명이 의료보험에 들지 못한다. 민간 의료보험 회사들은 질병 위험이 높은 사람의 보험 가입을 거부한다. 의료보험에 들었더라도 돈이 없는 사람들은 형편없는 의료 서비스를 받아야 한다. 그래서 미국인들의 건강 상태는 선진국 중 최저 수준이다.

미국의 노동자들도 우리 나라 노동자처럼 탄압받는다. 지난 여름 서부 지역 항만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였다. 그 곳의 작업 환경은 열악했다. 1999년 이후 산업재해로 죽은 노동자가 7명이나 됐다. 게다가 새로운 기계 도입으로 대량 해고 위협이 닥쳤다.

태업으로 시작한 노동자들의 투쟁에 기업주는 직장 폐쇄로 대응했다. 그러자 부시는 전시 상태에나 적용되는 미국판 노동악법 태프트-하틀리 법을 적용해 80일 동안 파업을 금지시켰다.

부시는 집권 당시 항공사 파업을 전면 금지하겠다고 약속했다. 노스웨스트 항공사의 정비사들이 파업을 벌이자 이것을 재빨리 금지시켰다. 그는 또,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인체공학적 기준들을 새로 마련하려는 방안도 취소했다.

부시는 9·11 사건 당시 구호 작업에 참여한 노동자들을 영웅이라고 추켜세웠다. 그러나 9·11 사건으로 파산 위기에 몰린 항공사들을 구제하기 위해 부시가 내놓은 긴급 대출 보증 계획은 노동조합에 수십억 달러 상당의 ‘기득권’ 반환에 동의하라고 강요하고 있다.

“노조 파괴”

부시는 최근 17만여 명을 거느리게 될 공룡 부서 국토안보부 신설 법안에 서명했다. 그러면서도 연방 정부 일자리 85만 개를 아웃소싱(자체 인력이나 설비를 이용하던 업무를 외부 용역으로 대체하는 것)하겠다는 대통령령을 발표했다. 그래서 부시의 이라크 전쟁을 지지하는 민주당 상원 지도자 톰 대슐조차도 이렇게 말했다. “이제 우리는 백악관의 진정한 목표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것은 국토 안보가 아니라 노조 파괴다.”

그러나 부시의 앞길을 닦아 준 사람은 바로 민주당의 앨 고어였다. 그는 부통령 재직 시절 37만 7천 개의 연방 정부 일자리를 없애는 “정부 혁신” 방안을 추진했다. 그리고 부시가 기업화 계획을 발표하기 하루 전에 민주당 상원의원들은 공화당과 결탁해 해상운송보안법을 95대 0으로 통과시켰다. 그 법은 전국의 항구들을 군사화하고 항만 노동자들에 대한 신원 조회를 요구하는 권한을 정부에 부여하고 있다.

미국은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이라크 국민들을 독가스로 살해했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미국은 후세인보다 훨씬 먼저 자국 국민들에게 독가스를 사용했다. 미국 국방부 문서를 보면, 1962년부터 1973년까지 미국 군부는 알래스카, 하와이, 메릴랜드, 플로리다에서 미군 병사들을 상대로 생화학 무기 실험을 했다. 그런 생화학 무기 중에는 VX, 사린, 소만, 타분 같은 신경 가스나 탄저균 같은 생물 무기도 있었다.

이렇듯 두 개의 미국이 있다.

존슨, 닉슨, 키신저, B-52 폭격기, 에이전트 오렌지[고엽제] 등으로 상징되는 미국, “악의 제국” 미국이 있다. 그 미국은 세계 각지의 독재자들을 후원한다. 엄청난 불평등, 빈곤, 억압은 외면한 채 부패한 친미 정권들만 두둔한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살인·고문·테러도 마다하지 않는다. 팔레스타인을 강점한 채 야만적인 학살과 탄압을 자행하는 이스라엘에 무기와 돈을 대준다.

그러나 또 다른 미국도 있다. 지난 10월 6일 미국 전역의 36개 도시에서는 10만여 명이 이라크 침공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10월 26일 벌어진 전국 반전 시위에는 약 20만 명이 참가했다. 미국이 벌이려는 이라크 전쟁을 미국인들이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과거 미국의 청년 학생들은 베트남전에 반대해 징집영장을 불태우고 학교 건물을 점거했다. 베트남전 참전 군인들은 고향에 돌아와 반전 시위에 가담했다. 흑인들은 인종 차별과 억압에 반대해 게토에서 봉기를 일으켰다. 동성애자들은 스톤월 반란을 일으켰다. 그리고 1999년 시애틀 시위에서 미국의 노동자들과 시민·사회운동가들은 반자본주의 운동의 신호탄을 쏘았다. 이들은 “또 다른 미국”을 보여 준다.

우리는 바로 이 또 다른 미국 편이다. “또 다른 미국”은 “악의 제국” 미국을 무너뜨릴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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