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나이트〉 영화평:
우리에게 ‘어둠의 기사’가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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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예술을 평가할 때 그것이 현실을 어떻게 해석했는가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될 수는 없지만 대중적 현상이 된 영화가 ‘테러와의 전쟁’을 어떻게 해석하는지는 흥미로운 문제다.
미국의 일부 진보적 웹사이트들은
그러나 엎치락뒤치락하는 복잡한 줄거리를 따라간 후 심신이 매우 피곤해진 관객들이 만나는 결론은 결국 배트맨 같은 ‘어둠의 기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내 생각에는 장르의 존속 본능보다 근본적 이유가 있다. 이 영화는 ‘테러와의 전쟁’이 미국 주류 언론에 반영되는 방식에 크게 영향 받은 듯하다. 영화에서 조커는 주류 언론에 비친 ‘무슬림 근본주의자’를 연상시키는 행동을 한다. 대표적인 것이 인질 비디오를 찍는 것이다. 곧 등장인물들은 그를 ‘테러리스트’로 부른다.
‘테러와의 전쟁’에서 빈 라덴 같은 ‘무슬림 근본주의 테러리스트들’이 비춰지는 방식은 냉전 때 이른바 ‘공산주의의 전체주의적 공포’가 표현된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당시 ‘공산주의자들’은 권력에 비이성적으로 집착하는 ‘괴물’로 묘사됐고, 일부 할리우드 영화들이 공산주의에 대한 두려움을 실제 괴물로 형상화했다.
조커는 이런 ‘괴물’의 현대적 화신이다. 의미심장하게도 ‘악당’ 중 한 명은 조커를 ‘괴물’이라 부른다. 또 다른 등장인물 중 한 명은 이렇게 말한다. “
이런 조커의 성격은 한편으로는 영화의 장점으로 작용했다. 히스 레저의 뛰어난 연기로 탄생한 조커는 매력적이진 않더라도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흡입력을 발휘한다. 그러나 조커의 폭력에서 합리적·역사적 이유를 찾을 수 없다면 결국 사람들이 바랄 수 있는 것은 누군가 그를 제거해 주는 것이다. 조커를 찾기 위해 3천만 명의 핸드폰을 도청하는 배트맨의 행동은 이런 식으로 정당화된다. 아무리 개인적으로 고뇌하더라도 말이다
결론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