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도전하다

촛불은 1987년 이후 가장 크고 중요한 운동이다. 이토록 크고 이토록 오래 지속된 운동은 지난 20년 동안 없었다. 젊은 세대들은 난생 처음 1백만 시위를 경험했다. ‘정치적 무관심’ 층으로 분류되거나 거의 ‘존재감’ 없이 살아가던 한 세대가 대중 행동의 힘을 느끼면서 운동에 참가하고 있다. 비록 그들의 정치의식은 매우 모순돼 있지만 말이다.

“엄마, 나 지금 나라 살리느라고 바쁘걸랑요. 나중에 전화할게요.” 《대한민국상식사전 아고라》(이하 《아고라》)에 소개된 거리의 전화 통화 내용이다. 평상시에 누가 이런 통화를 엿들었다면 아마 국회의원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과대망상증 환자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수만 명, 적어도 여전히 수천 명이 이렇게 생각한다.

촛불 운동의 등장은 한국 사회가 보수화했다는 17대 대선 전후의 지배적 해석에 대한 통쾌한 반증이었다. 그래서 더 감격적이고 흥분되는 경험이었다. 10년 동안 권력에 굶주린 우파는 이전 정권 같았으면 은밀하게 물타기도 하고 연막도 쳐가며 추진했을 시장 ‘개혁’들을 인수위 시절부터 노골적으로 거칠게 밀어붙이고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의기양양했던 이명박은 취임 후 불과 3개월도 안 돼 “헌법적·제도적 임기보장과 관계없이 정치적 탄핵 상태”(박명림 연세대 교수)에 빠졌다. 대운하를 포함한 핵심 공약도 상당히 좌절됐다. 촛불의 위력이었다.

부패해도 능력은 있는 줄 알았는데, 촛불이 밝힌 환한 세상에 밝히 드러난 그의 모습은 거짓과 무능 그 자체였다. 이명박은 그 전 어떤 대통령도 겪어보지 못했을 조롱의 대상이 됐다. (이름: 명박, 관상: 쥐박, 생각: 천박, 개념: 외박, 철학: 척박, 언행: 경박, 인심: 야박, 특기: 윽박, 의리: 깜빡, 서민: 핍박, 경제: 쪽박, 전망: 희박, 탄핵: 촉박, 하야: 급박….)

혹자는 우리가 얻어낸 게 구체적으로 무엇이냐고 실망할 수도 있지만, 촛불 운동은 대한민국을 통째로 시장 지상주의 제단에 봉헌할 태세가 돼 있었던 이명박 불도저에 어느 정도 브레이크를 거는 효과를 냈다. 그는 정책을 밀어붙이기에 가장 좋다는 취임 초 6개월을 까먹었다. 아쉽게도 우리가 이명박 불도저를 완전히 정지시키지는 못한 탓에, 그는 다시 공기업 민영화와 교육개혁 등을 앞세운 ‘8월 대공세’를 추진하려 한다. 하지만 국정 지지율이 여전히 10퍼센트대 후반에 머물고 있는 상황에서 이것은 결코 만만한 일은 아닐 것이다. 물론 결정적 변수는 우리 촛불 운동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달렸다.

촛불 운동은 광우병 위험 쇠고기 문제를 계기로 분출한, 이명박 정부의 시장주의 정책 전반에 대한 반대 운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 거대한 규모로 분출한 반신자유주의 운동인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번 촛불 운동이 거대 담론을 다룬 과거 사회운동과 달리 광우병 쇠고기 문제나 0교시 등 작은 일상사에 대한 것이었다고 말한다. ‘생활정치’라는 것이다. 물론 광우병 위험 쇠고기, 0교시, 의료민영화, 물·전기·가스 사유화 등은 모두 생활과 긴밀히 연관된 의제들이다. 그런데 이런 쟁점들이 지금 문제가 되는 이유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 기업 이윤을 우선하는 정책들, 세계를 모두 상품화하려는 체제의 논리 때문에 망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지 물 사유화에 반대해 싸웠던 볼리비아 운동은 몇 년 뒤 결국 신자유주의 대통령을 둘이나 내쫓고 자신의 대통령 모랄레스를 세우는 데까지 나아갔다.)

단지 밥상 안전 걱정에서 시작했던 사람들도 축산 다국적기업의 이윤과 동물성 사료 문제, 규제 완화, 한미FTA를 위해 기꺼이 국민 건강과 안전을 희생시키는 이윤 논리라는 문제에 다다랐다. 사실, 이런 문제들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국제적 운동이 “이윤보다 인간이 먼저다”라는 구호를 통해 제기했던 문제들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이다.

거리에서 자연스럽게 확장된 의제들도 마찬가지였다 ─ 건설 자본을 위해 환경을 해치는 운하, 경쟁 교육, 의료와 물·전기·가스 등 결코 상품이 돼서는 안 되는 공공서비스를 기업에 팔아넘기기 등. 또, 수출 기업을 위한 고환율 정책이 부채질한 물가 인상으로 빚어진 생활고도 촛불 운동을 촉진한 배경이었다.

그런데 이처럼 정책 전반에 대한 일반화된 반대는 논리상 정권 자체에 대한 반대로 나타나야 한다. 더구나 이명박 정부의 존재 이유 자체가 시장주의 정책이다. 이런 점에 대해 〈조선일보〉 김대중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가 내건 야심 찬 ‘개혁안’들이 ‘촛불’에 밀려 이처럼 스스로 포기하고 덩어리째 무산되고 만다면 이 대통령에게 남는 것은 무엇인가? MB적(的)인 것들이 없어진 MB의 가치는 과연 어떤 것인가?” 만약 조중동류의 권력자들이 정책 추진에 정권을 건다면, 우리도 정책 중단을 위해 퇴진을 걸어야 한다. 실제로, 5월 말에서 6월 초부터 “이명박은 물러나라”는 구호가 거리를 휩쓸게 된다.

민주주의

이번 촛불집회는 민주주의 문제도 중요하게 제기했는데, 그것은 단순히 이명박이 역사의 시계를 20년 전으로 돌리려 한다는 데만 머문 문제제기(“1백 년의 어둠에서 겨우 꽃피우려던 10년의 민주주의가 단 3개월 만에 짓이겨지는 모습에 눈물 흘렸소”)는 아니었다. 국민의 80퍼센트가 광우병 위험 쇠고기 수입을 반대했는데도 재벌이 휴대폰과 자동차를 파는 데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국민의 의견을 묵살한 정부에 대한 분노였던 것이다. 즉, 이명박 정부는 도대체 누구의 정부인지 물었던 것이다.

〈경향신문〉이 메릴랜드대학교·동아시아연구원과 공동으로 국제 여론 조사를 해 발표한 결과를 보면, 한국인의 78퍼센트가 “정부는 소수의 거대 이익집단의 이익만을 대변한다”고 답했다(5월 15일치). 이명박 정부의 ‘강부자’ 내각 등장으로 “대기업 외국인 강남부자를 위한 정부”라는 생각은 더욱 굳어졌을 것이다. 오늘날 정치인들과 평범한 사람들의 거리는 더욱 멀어지고 있다.(“버스값이 70원 하냐”는 정몽준에 대해 시위대는 “정몽준은 버스 타라”고 외쳤다.)

따지고 보면, 이런 문제는 소위 ‘민주화’ 과정이라고 부르는 지난 10~20년 동안에 꾸준히 발전해 왔던 일이다. 양극화 문제에서 보듯이 사회적 불평등이 더 심화됐고, 선출되지 않은 기업 집단의 결정권이 더 커졌고, 대중이 동의하지 않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요하기 위해 기본적인 민주적 권리가 후퇴하는 일도 있었다. 노무현 정부가 한미FTA 반대 집회를 원천 봉쇄했듯이 말이다. 사실, 이것은 한국만의 예외적 현상이 아니다. 〈워싱턴포스트〉가 인터뷰한 미국 시위대의 외침에서 보듯이, 지난 10~20년 동안 전 세계에서 같은 일들이 벌어졌다. “정부는 판매용이고 대기업이 정부를 구입한다.”

이것은 이명박 시대에 민주주의의 전망을 열우당의 후신인 민주당에서 찾을 수 없음을 뜻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이라는 김대중의 지론을 따라 왔는데, 지금 우리는 시장 자본주의의 논리 자체가 민주주의를 제약하는 것을 목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종된 고리 ─ 노동자 투쟁

이처럼 촛불 운동은 큰 의의와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몇몇 한계도 드러내고 있다. 처음에 촛불 운동은 그 자체만으로도 감동을 줬다. 모두 그 운동의 규모와 활기에 도취됐다. 운동이 자체 동력만으로도 계속 전진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거리 행진을 둘러싼 잠시의 위기를 극복하고 결속을 유지한 촛불 운동은 5월 말부터 6월 초까지 순식간에 수십만 명 규모로 커져 갔다. (광우병국민대책회의는 정치적 초점을 제공해 운동의 성장에 기여했다.)

기로

그러나 운동은 곧 그 성패에 영향을 미칠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첫 번째 정점이었던 6월 10일 1백만 시위 즈음, 촛불 운동은 ‘다음은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 봉착했다. 그러나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이미 거리에서는 자연스럽게 의제가 확대됐고, “이명박은 물러나라”는 구호가 압도하고 있었으나, 국민대책회의 내 다수는 이것을 운동의 목표로 채택하기를 거부했다.

결국 퇴진 운동 경고 시한인 6월 20일이 지났는데도 대책회의는 퇴진 운동을 선언하지 못했고, 그 뒤 정부는 추가협상 결과 발표와 관보 게재 강행이라는 ‘수습’ 수순에 들어갔다. 이런 국면이 되자 운동 내에서 불가피하게 첨예한 논쟁에 일었다. 1백만 명이 모였는데도 정부를 움직일 수 없자 운동을 ‘제도화’해야 한다는 얘기가 고개를 드는 한편, 거리에서는 주로 폭력이냐 비폭력이냐 하는 지엽적 논쟁이 나타났다.

거리의 전투적인 사람들은 막힌 국면을 돌파하고 싶은 절박한 심정에서 물리적 충돌을 불사하고자 했다. 그러나 전경 버스 당기기, 차벽 오르기(이런 것들은 결코 폭력이 아니다)는 절박한 분노를 보여 줄 수는 있었지만, 그것으로 결코 사태를 바꿀 수는 없었다. 경찰 탄압 수위가 높아지자 물리적 충돌을 피하고자 운동 내에서 비폭력주의가 우세해졌지만 이것도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비폭력 기조로 대규모 집회를 치른 7월 5일 직후, 정부는 다시 서울광장을 원천봉쇄했다.

노동자들의 힘

이 막힌 듯한 국면을 뚫을 수 있는 힘, 그러나 실종된 고리는 바로 노동자 투쟁이었다. 노동자들은 거리 시위대가 도저히 낼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이윤 체제에 도전할 수 있는 잠재력이다. 물론 민주노총 노동자들의 정치 파업이 있었지만, 말 그대로 상징적이었다. 이 점에서 박노자 씨의 지적은 타당하다. “(촛불정국에서) 민주노총을 비롯한 조직화된 노동운동의 역할이 중요했다. 시늉만 하는 파업이 아니라 실제로 공장을 멈추는 파업이 필요했다. 하지만 당시 민주노총이 보인 모습은 여러모로 아쉬웠다.”

운동은 이명박 정권 퇴진이라는 전략적 목표를 분명히 하고, 그에 걸맞은 힘을 동원하기 위해 노동자 계급을 더 깊숙이, 더 실질적으로 참가시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했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자들의 생활상의 요구를 포함하는 의제 확대가 필수적이었다. 그리고 이런 과제는 여전히 촛불 운동에게 남겨져 있다.

자발성주의와 정치

촛불 운동은 강력한 자발성 예찬을 불러일으켰다. 솔선수범, 풍부한 상상력, 창의력, 기지, 해학, 용기 등은 정말이지 이 운동의 가장 인상적인 측면 가운데 하나다. 사실, 새로운 대중 운동들은 출현할 때마다 이런 면을 보여 줬다. 그래서 이제는 낡은 조직 형태와 이데올로기적 방향 문제를 초월했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일렬종대를 하지 않는다. 엄숙해지지 않는다. 연단을 쌓지 않는다. 연설자를 두지 않는다. 누구나 자유발언이고, 개인행동이고, 즉흥난장이다. 구호도 제각각, 수백수천 개의 의지를 통합하려는 자는 왕따 될 것이다.”(《아고라》)

그러나 촛불 운동이 어려운 선택의 기로에 놓일 때, ‘정치 없는 운동’을 가정하는 자발성주의로는 충분하지 않다. 선택의 기로마다 정치가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예컨대 관보 게재가 강행되고 경찰 탄압이 강화된 6월 말~7월 초는 또 한 번의 기로였다.

논란

한편에서는 거리시위를 중단 또는 축소하고 광우병 쇠고기 불매운동으로 전환하자는 의견이 제기됐다. 전 노동부장관 남재희 씨는 한 토론회를 다녀온 뒤 “촛불 데모의 주역들은 분명한 말은 안 했으나 … 일단 정지하자는 의견도 있다고 하였다”고 썼다. 다른 한편에서는 교육, 공공부문 민영화, 물가 문제 등으로 의제를 확장하고 촛불을 이어 나아가자는 의견이 개진됐다. 사실, 이런 구도의 논란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촛불의 앞날이 달린 이런 기로에서 “촛불이 한쪽으로 간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냥 개인은 개인대로 단체는 단체로 필요한 부분을 가져가면 된다”(오창은 대안지식연구회 연구위원)고 말한다면 이것은 촛불의 약화를 방치하는 길이 될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각자 알아서 하고 싶은 대로 하는 분산적인 방식은 우리의 힘을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이 못 된다. 분산적 운동의 예찬자인 나오미 클라인조차 이런 약점을 지적한 바 있다. 그는 세계은행과 IMF에 반대하는 워싱턴 시위에서 시위대가 교차로를 계속 봉쇄할지 다른 곳으로 이동할지를 의논한 뒤 각자 알아서 하자고 정했던 사례를 든다. “이런 일은 나무랄 데 없이 공정하고 민주적이지만, 딱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일부 교차로는 열리고 일부는 계속 봉쇄된다면, 회담장에서 나온 대표들은 왼쪽으로 가지 않고 오른쪽을 이용해 마음껏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터였다. 실제로, 정확히 이런 일이 일어났다.”

2001년 말 아르헨티나의 경험도 정치의 중요성을 보여 준다. 자발적 반란이 일어나자 많은 사람들은 운동의 역동성을 예찬하며 정치 조직은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이 운동은 자발성과 지역 중심성을 강조하며 중앙집중적인 전략을 발전시키지 않았고, 취업 노동자들을 투쟁에 끌어들이지 못했다. 운동이 위기에 대한 나름의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자 정부는 운동 내 일부 세력들을 매수하고 다른 일부는 탄압하는 방식으로 운동을 분열시켰고, 결국 정치적 안정을 회복했다.

정치단체

젊은 자발성주의자들 가운데는 운동이 앞으로 전진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운동에 일관된 방향성을 부여하기 위해 노력하는 정치단체가 필요하다. 이것은 자발성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투쟁을 한층 밀고 나아가기 위해 자발성을 일반화하는 것이다. 이들의 정치 불신은 이해할 만하다. 그것은 기성 정당이 운동을 통제하거나 이용하려는 데 대한 반발감일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도록 진정한 정치 대안을 마련하지 않고 단순히 정치 배제로 나아간다면 결국 운동을 통제하거나 이용하려는 세력들에게만 이로울 뿐이다. 사실, 이런 목적으로 자발성주의를 예찬하는 세력도 있다.

책 《아고라》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아고라가 싫어하는 것: 계몽, 간섭, 지도. 아고라가 좋아하는 것: 연대, 지혜, 토론.” 그러나 연대, 지혜, 토론은 지도와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다. 계몽, 간섭은 일방적이고 하향식인 것이지만, 지도는 쌍방향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사회변혁 운동가들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한 허세로 가르치려 드는 태도를 보인다면 촛불의 새 세대에게 거부감을 줄 것이다. 운동 속에서 서로 경험을 나누고 서로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제2기 이명박 정부’에 맞서는 촛불 2기를 열자

촛불은 놀라운 끈기로 1백 일까지 이어졌다. 이제 촛불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벌써 “촛불 이후”라는 표현이 등장하고 있지만, 우리는 촛불이 과거 영광이 아니라 진행형이기를 바란다. 촛불은 계속돼야 한다. 이명박은 8월 15일을 ‘제2의 이명박 정부’ 출범일로 만들겠다고 벼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제2기 이명박 정부의 아젠다에 맞서는 촛불 2기를 열어야 한다.

그러나 ‘촛불은 계속돼야 한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명확한 목표나 방향 없이 표류한다면 지치고 사기 저하될 것이기 때문이다. 7월 5일 이후 촛불은 어느 정도 이런 문제를 드러냈다. 물론 촛불의 규모가 작아지고 중심축이 약화된 것은 주로 이명박 정부의 전방위적 탄압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대책회의가 정치적 초점을 제대로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아쉬움도 없지 않다.

의제 확장

촛불이 계속되기를 바란다면, 운동이 나아갈 방향과 전망을 책임 있게 제시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이 운동은 단지 광우병 위험 쇠고기 수입 반대 운동인가? 이미 촛불 운동은 광우병 위험 쇠고기 수입 반대를 넘어 이명박 정부 정책에 대한 전반적인 반대로 발전했다. 거리에서는 이미 의제가 확장돼 있다.

광우병국민대책회의의 시민사회 진영은 운동의 이러한 발전 추세를 수용하고 이명박의 민생 파탄·민주주의 파괴에 공동 대응하기 위한 노력을 구체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쇠고기 문제로 한정하기를 고집하지 말고, 의제를 확장하고 조직을 개편해야 한다.

쇠고기 문제만이 아니라 민생 파탄과 민주주의 파괴 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루는 ‘촛불 운동본부’ 정도면 좋을 것이다. 확대될 의제에는 ‘제2기 이명박 정부’가 중점을 두겠다고 발표한 공기업 민영화, 교육개혁과 함께 물가 인상 문제 등이 포함돼야 할 것이다. 이 조직은 민주·민생 파탄 저지를 위한 시민사회 진영의 포괄적·상시적 공동전선으로, 이명박 시장주의 ‘개혁’에 대한 대안과 희망을 제공해야 한다. 여기에 네티즌 등 1백 일 동안 촛불의 주역이었던 사람들이 적극 참가할 수 있도록 초기 논의 단계부터 개방된 장이 열려야 한다. (자유민주주의의 기본권을 방어하는 사안별 투쟁에 대해서는 어떨는지 몰라도, 신자유주의와 관계있는 이러한 문제들에는 일관되게 반대할 수 없는 민주당은 여기에 포함될 수 없다.)

그런데 최근 광우병국민대책회의 일각에서 1백 회 촛불집회를 맞아 거리집회 중심의 촛불을 ‘생활밀착형 촛불’로 전환하자는 논의가 있다는 보도는 우려스럽다. ‘생활밀착형’은 아마도 불매운동을 의미하는 듯하다. 물론 학교·직장 급식에 광우병 위험 쇠고기 사용 금지 등을 위한 불매운동은 거리의 촛불과 결합될 수 있다. 그러나 더 효과적인 투쟁 방법인 집회·시위를 불매운동이 대체해서는 안 된다.

게다가 이런 전환 기도는 거리의 촛불이 광우병 위험 쇠고기 수입 반대 운동만이 아니라는 점을 의도적으로 간과하고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이미 투쟁의 성격이 이명박 정부 정책 전반에 대한 반대로 사실상 전환한 마당에 대응을 광우병 문제로 한정하는 것은 운동의 전진을 가로막는 효과를 낼 것이다.

촛불 운동의 전진을 바라는 사람들은 모두 촛불이 계속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동시에, 촛불 운동에 일관된 방향을 부여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조직도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 필자는 다함께가 주최하는 ‘맑시즘2008’에서 ‘촛불 운동은 어디로 ─ 중간 평가와 전망’이라는 주제로 여러 활동가들과 함께 연설한다. (8월 14일(목) 오후 8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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