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인터내셔널

제임스 굿맨 -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 과학기술대학교 인문사회과학부 교수

세계경제포럼(WEF)이 2002년 1월 31일부터 2월 4일까지 맨해튼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에서 연례 대표 회담을 연다. 1998년 대표 회담에 참석한 알렉산더 도우너는 대표 회담을 국제 ‘기업 올림픽’으로 묘사했다. 보통 스위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 본부에서 열리던 연례 회담은 9월 11일 테러 공격으로 상처 입은 뉴욕 시에 연대하는 뜻에서 뉴욕에서 열리기로 재조정됐다.

세계경제포럼은 한편으로는 세계 기업 총수들의 거대한 칵테일 축제다. 정책을 결정할 조직적 힘은 실제로 없지만, 세계경제포럼은 국제 “지도자”들이 자신의 계획을 우리들에게 철저하게 설명할 공간을 만들었다. 그들 자신의 말에 따르면, “그들은 전 세계적 의제를 정의하고 추진하는 과정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우리가 사는 세계를 좌우하는 것은 그들의 의제라는 것이다.

세계경제포럼은 1971년 유럽 기업들의 연례 ‘유럽 경영자 포럼’으로 탄생했다. 1987년까지 유럽공동체(EC)의 재정 지원을 받다가 세계경제포럼으로 바뀐 뒤 국제적 진출을 시작했다. 이 포럼의 회원 자격을 보면 계급 지향을 알 수 있다. 가장 유명한 1천여 개의 다국적 기업이 세계경제포럼 ‘창립 회원’을 구성한다. 거기에, ‘세계 성장 기업’ 모임, 3백 명의 ‘산업 장관’ 모임, ‘ 3백 명의 세계 미래 지도자’ 모임, 정·재계의 ‘세계 경제 지도자’ 모임, 1백 명의 미디어 그룹들의 ‘세계 미디어 지도자’ 모임, 1백 명의 ‘세계 문화 지도자’ 모임, 대학과 각국 경제 연구 기관의 우두머리로 구성된 ‘포럼 특별 회원’ 모임이 있다.

세계경제포럼은 국제적 의제를 결정하는 포럼이 되고 싶어 안달한다. 그들 자신의 신중한 의견에 따르면 세계경제포럼은 “세계의 상태를 개선하는 일에 헌신하는 기업인, 정치인, 지식인 지도자들과 그 밖의 사회 지도자들로 구성된 최상의 국제적 동반관계”이다.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의 확산과 기업 세계화의 결정적 발전으로 세계경제포럼은 국제 엘리트들의 결집장으로, 계급 권력을 위한 도구로 전례 없는 구실을 해 왔다. 분명 세계경제포럼은 국제적 의제를 확립할 수도, 확실히 그 결과를 좌우할 수도 없다. 즉,  세계경제포럼은 사회를 통제하는 비밀결사대는 아니다. 세계경제포럼은 그보다는 자기 의식적으로 집단적 계급 이익을 계획하는 구실을 수행하는, 사회 관계 속에 아로새겨진 계급 조직이다. 그들은 정치적 의제에 영향을 주고 쇄도하는 도전에 대응하려고 애쓴다. 이런 측면에서, 키스 반 데르 피즐(Kees van der Pijl)이 주장하듯이, 세계경제포럼은 최초의 ‘진정한 자본의 인터내셔널’이다.

이 포럼은 놀랄만치 성공했다. 1971년 이래로 ‘국제 상황’은 많은 참가 기업들에게 극적으로 유리하게 됐다. 1980년대에 세계경제포럼의 전략은 신자유주의 의제를 밀어붙이는 것이었고, 다국적 기업 이사들과 함께 이 의제를 펼칠 계획을 세밀히 세우기 위해 OECD 나라들뿐 아니라 새롭게 산업화한 세계로 ‘간주된’ 나라들의 정치인들을 끌어 모았다. 세계경제포럼은 공적 감시에서 벗어난 사전 포럼이 됐고 신자유주의를 확산시키는 데 중심 구실을 했다. 이 모델은 1970년대와 1980년대 초에 겪은 축적 위기의 해결책으로 제시됐고 시장의 영역을 확대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성공의 대가는 체제 내적인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이었다. 세계화한 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의 경계를 극적으로 재구성했다.(물론 자본주의 전체를 포괄하지는 못했다.) 순환이 빨라지면서 시간적 경계는 사라져 버렸다. 다국적 기업의 영역이 성장하면서 공간적 경계는 대체됐다. 심지어 사회심리학적 경계도 생활이 더욱 상품화하면서 소멸했다. 새롭게 힘을 얻은 다국적 자본가들은 축적을 할 새 영역을 장악하면서 승리를 거머쥐었다. 그러나 계급 헤게모니는 결코 보증되지 못했다. 새로 개척한 영역에는 예상할 수 없는 위험이 도사린다. 빨라지고 있는 순환이 경제 주기를 가속하고, 자신감도 금방 사라지고 이데올로기적 상징들이 소위 ‘펀더멘틀[경제성장률, 물가상승률, 경상수지 등 한 나라의 경제 상태를 보여 주는 가장 기초적인 지표 ― 옮긴이]’로 나타나고, 광란의 투기가 지배한다. 기업 다국적주의는 사회적·물리적 환경을 고갈시켰다. 상품화 증대는 사회적 연대를 해체하고 문화적 생존을 강요하는데, 이것은 흔히 새로운 사회 교류 양식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 결과로, 적어도 1990년대 중반부터는 신자유주의 처방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현재 아르헨티나의 위기를 보라.) 경영진의 봉급과 기업의 자본 축적이 급격히 성장한 것은, 모든 부분에서 경제적 힘이 극적으로 집중되는 것과 함께 신자유주의라는 계급 전략이 명백히 성공했다는 증거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전례 없는 수준의 국제적 불평등과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금융 불안정, 환경 파괴와 사회적 혼란도 가져왔다. 신자유주의의 승리는 새로운 반대의 근원을 만들었고, 그 충격과 대응은 결코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그래서 신자유주의 옹호자들은 수세에 몰렸다. 그 높은 파고는 1995년에 있었는데 그 때는 OECD가 “2020년 세계 전망, 새로운 황금 시대”를 선언한 해였다. 그러나 사회민주주의 사상에 영향을 받았고, 때때로 ‘제3의 길’로 묘사되는 새로운 형태의 사회 자유주의에서도 나타난 정치적 재생이 OECD를 휩쓸고 있었다.

신자유주의적 처방들이 실패했기 때문에 세계경제포럼의 신자유주의 계획은 긴급하게 수정됐다. 세계경제포럼은 자신의 시장 근본주의를 숨기고 현재는 기업 세계화를 위한 새로운 의제를 만들고 있다. 그것은 ‘사회적인 것’을 거부하지 않고 포용한다. 신용평가 기관과 경영자문기관, 국제관계 연구소, 비정부 기구(NGO)의 분석가, 컨설턴트와 조언가들이 새로운 자본 축적의 패러다임을 규정하기 위해 분투하면서 논쟁에 참여했다. ‘시장 규율’을 강화하고, 위기로 나아가는 것을 억제하고, 다국적 계급 권력을 제도화하고,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되돌릴 수 없는 것으로 만들려는 지속적인 노력이 있다. 그러나 정책 결정 집단 사이의 이견이 커지고 있다. 최고의 엘리트 기관들조차 신자유주의를 재고하고 있다. 한스-페터 마르틴과 하랄트 슈만은 [《세계화의 덫》에서 ― 옮긴이] 세계 자본주의의 가장 강력한 운영자들 다수가 ‘시장의 독재’에 의문을 품고 있다고 설명한다. ‘소로스 재단’과 ‘터너 재단’이라는 창의적인 이름이 붙은 기구들을 통해 온정주의적 개입을 일삼던 조지 소로스와 테드 터너 같은 신자유주의의 주된 옹호자·수혜자들도 신자유주의의 사회적 비용에 진지한 우려를 표명하기 시작했다. 키스 반 데르 피즐이 강조하듯이, 다른 사람들은 더 나아가 점차 ‘어제의 처방’을 재고해 왔고 분명히 이를 반대해 왔다. 그 결과는 훨씬 더 광범하며 잠재적으로 ‘민주주의의 심화, 대중의 공공 영역 재장악, 궁극으로는 계급 사회의 더 근본적인 변혁’을 가능하게 만든다.

최근의 발전은 이런 이견을 가진 부분의 힘을 강화시켜 왔다. 1998년에 OECD가 ‘다자간 투자 협정’을 연기하고 1999년 세계무역기구(WTO)의 ‘밀레니엄 라운드’가 일시적으로 마비되고 ‘구조조정’이라는 IMF의 세계 체제가 점점 위기에 빠져들면서 정당성의 제도적 위기가 누적됐다. 여기에 ‘이행기의’ 옛 공산권 국가들, 특히 러시아의 계속된 위기와 1997∼1998년 금융 위기가 동아시아의 ‘신흥 공업국가’들에 ‘전염병’처럼 번진 심각한 충격, 임박한 정보·오락 산업의 거품 폭발이 더해지자 신자유주의에 대한 도전은 억누를 수 없는 듯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을 보여 준 것이 1996년 제네바, 1998년 쾰른, 1999년 시애틀, 2000년 워싱턴, 2001년 몬트리올과 제노바에서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대중의 극적인  폭발이었다.

몇 년 만에 최초로 ‘반자본주의’ 저항이 자본주의의 심장부와 전 세계 무대로 돌아왔다. 이런 저항은 변혁을 통한 현재 사회의 불치병 극복이라는 가능성을 의제에 올려 놓으면서, 대안적인 지도적 원리들을 표현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적 공간을 열어 놓았다. 자본주의 규율을 장려하는 게 의문시되면서,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기구들을 겨냥하고 저항은 상당한 정치적 영향력을 획득하고 있다. 이런 정치적 분위기에서 세계경제포럼 회담은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됐다. 1996년 이래로 세계경제포럼은 점점 더 전투적인 반발을 자극했고, 그에 대해 신자유주의 계획을 수정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세계경제포럼의 대응은 밀실 전략 회의를 일삼는 듯한 인상을 피하고 더 공개적으로 되려고 노력하면서 새롭게 등장하는 대안 세력의  유명한 대변자들과 관련을 맺는 것처럼 보여서 그 정당성을 재확립하려 한다. 세계경제포럼은 그래서 자신이 ‘새로운 구도를 형성하는 데서 중요한 구실’을 할 수 있다고 단언하면서 자신을 신자유주의 재평가 논쟁의 중심에 두려 한다.

이를 반영하듯, 세계경제포럼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에서 배제된 나라들, 그 중에서도 특히 멕시코와 남아프리카 공화국 같은 OECD 소속이 아닌 정부와 국제자유노동조합연맹(ICFTU) 같은 중요한 NGO에 손을 뻗쳐  왔다. 1998년 다보스에서 힐러리 클린턴은 NGO와 그 밖의 ‘시민 사회’ 대표들의 구실이 강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시에, AFL-CIO[미국의 통합 노총 ― 옮긴이] 위원장 온 존 스위니는 시장이 ‘단지 소수가 아니라 다수를 위해’ 기능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분배 문제를 부각시켰다. 1999년 당시 미국 부통령 앨 고어는 코피 아난과 함께 TV에 출연했다. 코피 아난은 ‘인권, 노동 환경, 환경적 실천 영역의 핵심적 가치’에 기반을 두고 기업과 UN이 ‘세계적 합의’를 맺어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이다. 2000년 클린턴은 토니 블레어와 함께 새 천년의 장미빛 전망 ― 1999년 시애틀 시위로 다소 흐려지긴 했지만 ― 을 공유했다. 다보스 정책 토론은 2000년에 했던 ‘책임있는 세계화’, ‘포괄적 번영’, ‘지속 가능한 발전’이란 주제와 함께, 오늘날에는 ‘제도적 포용’, ‘기업의 책임감’과 ‘국제적 대화’라는 말들로 표현된다. 아마 가장 냉소적으로, 세계경제포럼의 ‘세계 경쟁력 채점표’ ― ‘국내 환경이 기업의 국내·국제 경쟁력에 얼마나 이바지하거나 방해물이 되는지’에 대한 연간평가표 ― 가 2000년 다보스에서 ‘환경의 지속 가능성 지수’로 대체됐다. 동시에, 제인 켈시가 강조했듯이, 1만여 개의 핵심 경제 결정단체들 사이에 새로운 인터넷 연결망인 ‘세계 경제 공동체’ ― 기업들의 대응을 조율하기 위한 인터넷 ‘핫라인’ ― 가 건설되고 있다.

논쟁은 세계 경제의 표준이 될 만한 개정된 제도적 틀을 세우는 데에 있다. 세계경제포럼은 의제를 형성하는 데서 중심 구실을 하려 한다. ICFTU[국제자유노련] 같은 일부 단체는 세계경제포럼의 겉보기에 번드르르한 의제를 마음에 두고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의 옹호자가 되기 위해 이 과정에 참가했다. 그러나 핵심적 의문은 세계경제포럼이 이러한 의제를 추진하도록 허용할 것인가 여부이다. 기업 이익이 지배하는 포럼이 미래 세계 정부의 틀을 형성하는 구실을 하도록 용인해도 될까? 이러한 의제 형성 과정을 용인하고 그 정당성을 인정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면 그들의 역할에 도전하고 대안적인 정의를 내세워야 할 것인가?

2000년 다보스에 모인 경영진들이 클린턴의 연설 전에 보안 점검을 하기 위해 회의실을 비우는 걸 거부했다는 일화가 있다. 미국 대통령의 보안팀은 기업의 ‘항의 농성’으로 말미암아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클린턴의 연설은 진행됐다. 결국 미국 대통령조차도 기업 집단의 의지를 존중해야만 했다. 어쩌면 그는 회담장 밖에 있던 1천여 명의 시위대와 함께하면서 기업 권력에 대항한 민주주의 운동에 참여했어야 타당했을 것이다.

이번 달 말 세계경제포럼 대표 뉴욕 회담장 주변에서 유사한 시위들이 열릴 것이다. 1999년에 이 대표자들은 무역 자유화가 불가피하고 ‘지적 재산권과 외국 투자를 보호하는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으로 확대되는 게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각국 정부가 다가올 WTO의 ‘밀레니엄 라운드’를 지지하도록 로비했다. 2002년 우리는 환경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 많은 미사여구를 듣게 될 것이다. 세계화한 신자유주의를 정치화할 아이러니한 순간과 기회가 많이 있을 것이다.

 

세계경제포럼 반대에 대한 정보는 http://www.s11.org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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