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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1백 회 기념 인터뷰:
우리가 촛불에서 배우고 있는 것

5월 2일부터 타오른 촛불이 8월 15일에 1백 회를 맞이한다. 촛불은 세 달 넘게 공안탄압을 무릅쓰고 끈질기게 타올랐다. 1백 회를 맞아 여러 촛불지킴이들의 소감과 평가를 들어 봤다.

박원석(촛불 수배자 / 광우병국민대책회의 공동상황실장)

1백 회까지 오리라고 누구도 생각 못했을 겁니다.

광우병국민대책회의는 광우병 중심으로 집회를 열었지만, 사람들을 거리에 모아 보니 [사람들은] 이명박 정부 자체에 대한 요구를 걸었고, 만약 요구가 실현되지 않으면 가만 둘 수 없다는 목소리를 냈어요.

촛불에 참가해 저항한 사람들은 결국 비정규직, 88만 원 세대였습니다. 10년간 양극화 과정에서 끝도 없이 절망했던 사람들이 촛불을 통해 요구를 드러냈습니다. 사회·경제적 평등 문제가 운동의 중심에 들어온 계기가 됐다고 생각해요.

여성들의 참여로 성적 편견을 날려버렸고, 분노하지만 절망하지 않는 새로운 저항의 문화를 구축했습니다.

10분의 1밖에 지나지 않은 임기 동안 정권은 바닥을 드러냈습니다. 공안탄압 말고는 수단이 없음을 드러냈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이명박 정부와의 1라운드는 촛불의 승리였습니다. 과거로 회귀하는 정부를 넘어설 수 있는 대안의 정치에 대한 구상이 차분히 준비될 필요가 있습니다. 운동세력이 지금까지는 운동을 보호하고 동참하는 데 그쳤다면 이제는 책임있게 방향과 전략을 내놓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한용진(촛불 수배자 / 광우병국민대책회의 공동상황실장)

87년 항쟁의 가장 큰 성과는 무엇보다 운동 단체와 조직들이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촛불 항쟁에서도 가장 큰 성과는 네티즌들이 최초로 당당한 운동세력으로 등장한 것이었습니다.

운동 단체들이 촛불 이전에는 서로가 걱정할 정도로 분열상이 심했는데 촛불 운동이 시작되고 나서는 모든 단체들이 반(反)이명박 전선을 그으면서 단결한 것이 소중한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국민들이 대의민주주의가 얼마나 허구인가를 체험한 것도 1백 회의 또 다른 성과입니다.

이런 성과들을 놓치지 않고 가려면, 광우병국민대책회의만으로는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의제 확장은 이미 오래전에 됐지만, 대책회의가 이것을 공식화하고 전면에 내걸고 활동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새로운 연대기구가 필요합니다.

김광일(촛불 수배자 / 광우병국민대책회의 행진팀장)

촛불이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6월 10일에 서울에만 70만 명이 모였고, 7월 5일에도 50만 명이 모였습니다. 이전 어느 시위와 비교해 봐도 대단한 규모입니다. 세 달이 넘도록 계속되고 있다는 점도 그렇습니다.

촛불의 요구는 국제적인 반(反)신자유주의 운동과 긴밀한 연관이 있다고 생각해요. ‘이윤보다 인간이다’, ‘경쟁보다 인간이다’란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있어요.

촛불 운동에서 네티즌의 자발성이 매우 중요했다고 생각해요. 다만, 자발성에 대한 찬미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촛불 운동의 초기국면은 마치 유럽이나 미국의 반신자유주의 운동이 9·11을 겪기 전까지 자신감이 충만했던 상황과 비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나 탄압이 심해지고 운동이 어디로 나아갈지에 대한 논란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지도와 조직은 점점 중요해지고 있어요. 최근 네티즌들도 네티즌 협의회를 만들고 거리시위에서 지도를 내놓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단체든 개인이든 이 운동의 전략과 전망을 내놓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지금 운동은 국가라는 의제에 부딪혀 있습니다. 이 의제에 어떻게 대응해 나갈 것이냐도 중요합니다. 이 점도 국제 반신자유주의 운동과 공유하는 문제입니다.

공기업 민영화, 정연주 해임 등 그 동안 촛불이 지연시켜 왔던 총공세를 막기 위해서도 촛불이 계속돼야 합니다.

거리시위에 나온 참가자들의 일반화된 반대 정서를 잘 포착해야 합니다. 민주주의 파괴, 민생파탄 등 이명박 정부에 반대하는 일반화된 조직으로 [광우병국민대책회의가] 바뀔 필요가 있어요.

김지윤(‘고대녀’)

커플도 1백 일 가기 어려운데, 촛불 운동이 1백 회나 됐다니 정말 대단합니다.

이명박 취임 1백 일도 되기 전에 이명박을 고개 숙이게 해서 용기와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한국 사회가 보수화하지 않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제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어요. 역사의 중요한 시점에 내가 와 있고, 그런 경험에 한몫을 하고 있는 것 같아서 매우 뿌듯하고 가슴이 벅찼고요.

모든 역경을 이기고 여기까지 온 것은 사람들이 이명박 퇴진을 얼마나 간절히 바라고 있는지를 보여 주는 것 같아요.

이명박이 백골단을 부활시키고 부시와 한미전략동맹과 아프가니스탄 파병을 논의하는 것을 보면서 앞으로 촛불을 계속 지켜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비틀거리고 있지만 아직 쓰러지지 않은 이명박에 브레이크를 거는 일에 끝까지 함께하겠다는 사명감이 생겨요.

여성 커뮤니티 ‘장백’ 회원

이전에 우리는 여성들끼리 그저 좋아서 만난 카페였는데, 촛불 운동 덕분에 모이게 됐어요. 1백 일 동안 ‘민주 공화국’의 모순적인 모습을 많이 봤어요. 깃발 들고 처음 나온 게 6월 11일인데, 정부 폭력을 보고 너무 안타깝고 화가 난 상태에서 사람들을 어떻게든 많이 불러 모아야 할 것 같아서 집회에 참가하기 시작했어요.

많은 언론에서 잘못 보도하는 게 있어요. 운동이 변질됐다고 얘기하는데, 광우병은 시발점에 불과하고 그 전에도 민영화 등 운동의 의제는 여러 가지였어요. 처음부터 이명박 정부를 반대하기 위해서 나온 거죠. 근데 언론에서는 그 문제를 축소시키고 이제 와서 변질됐다고 말합니다.

이명박 정책은 1퍼센트를 위한 정책입니다. 공기업 민영화 등 서민 말살 정책을 저지해야 합니다.

여성들의 사회 참여가 늘었다고 하는데, 갑자기 늘어난 것이 아니라, 여성들도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동안 꾸준히 참여와 관심을 늘려 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재선(기아자동차 노동자)

저를 비롯한 노동자들이 처음에는 좀 주춤하다가 나중에 모이게 됐어요. 시민들은 노동자들이 나와 주기를 바라는데, 민주노총 지도부를 포함해 노동자 스스로가 자신을 자제시킨 것 같아요. 바로 이럴 때가 국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계기인데 오히려 거꾸로 생각해서 나오지 않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죠. 현장에 있으면 조합원들 관심이 굉장히 많아요. 지도부가 안 끌고 오면 안 올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집회 갔다 와서 다음 날 출근해 보면 갔다 온 사람들이 정말 많아요.

이제 정부가 뭐라고 해도 국민들이 아무도 안 믿잖아요. 몰릴 대로 몰렸다고 생각합니다.

촛불 소녀(고등학교 1학년)

사람들이 많이 왔을 때 ‘사람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처음에는 한두 가지 정책에 반대해 나왔는데 촛불집회 나오면서 심장에서 뭔가 우러나오는 것이 생겼고, 신문을 봐도 나름의 사회관이 생겼어요.

학교가 청소년들을 엄청 탄압을 하는 걸 보고 ‘우리 청소년들을 이렇게 무서워하나?’ 생각했어요.

지금은 잠시 쉬는 휴식기일 뿐이라고 생각하구요, 사람들이 더 힘을 내서 계속 했으면 좋겠어요. 저는 이렇게 계속 싸우면 언젠가는 될 거라고 생각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