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초부터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고 주식·채권 가격이 폭락하자, ‘9월 위기설’이 실현되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이 퍼지고 있다.

9월에 만기가 되는 외국인 보유 채권 67억 1천만 달러를 외국인들이 일시에 매도하면 외환위기가 올 수 있다는 것이 ‘9월 위기설’이다.

한국의 외환위기 가능성이 높아진 이유는 우선 전 세계적인 ‘신용 경색’의 여파가 한국에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세계경제 위기의 진원인 미국에서는 9월 이후 최악의 위기를 맞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미국 주요 은행들은 9월 한 달 동안에만 9백50억 달러에 이르는 채권의 만기에 맞춰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

세계 금융기관들은 이미 5천억 달러의 손실을 봤고, 앞으로 이 손실액은 2조 달러까지 증가할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전 세계 주요 금융기관들은 현금을 얻을 수 있는 해외 투자자금을 모조리 되찾고 있는 추세다. 이들은 올해에만 한국 주식 25조 5천억 원어치를 순매도해 달러로 바꾸고 있다.

한국 지배자들은 외자를 유치해야 한다며 금융시장 자율화를 적극 추진해 왔는데, 이 덕분에 높아진 외국인 투자 비중이 금융 위기를 부채질하고 있는 상황이다.

더구나 한국 정부와 기업들이 해외에서 돈을 빌리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면서 단기 외채가 급증해, 만기가 1년도 안 남은 채권이 2천1백56억 달러로 현재 외환보유액 2천4백32억 달러에 근접하고 있다.

이런 요소들이 결합돼 투기를 부추겨 위기가 더욱 심화하고 있다.

실물 경제 위기 확대

이런 외환위기는 실물 경제 위기 확대와 밀접히 연결돼 있다.

세계경제 위기로 그나마 한국 경제를 지탱해 준 수출마저 축소하면서 무역수지 적자가 계속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올 4분기에 성장률이 0퍼센트대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한국의 최대 수출국인 중국도 올림픽 이후 투자와 소비가 가라앉고 물가가 치솟고 있다. 일본과 유럽 경제도 휘청거리고 있다.

이런 경기 악화 때문에 자동차, 반도체, 컴퓨터 등 주요 수출품들의 수출액은 전년대비 13~28퍼센트 감소한 반면, 석유·석탄·가스 등 수입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올 8월까지 1백16억 달러가량 무역적자를 기록했다.

이명박 정부의 고환율 정책은 수출 증대에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았고 오히려 석유·곡물 가격만 끌어올려 물가 상승만 부채질했다.

부동산 시장 침체도 한국 경제를 위기에 빠뜨리고 있다. 주로 재벌 계열사들인 상위 10대 건설사들의 부채는 1년 6개월 만에 35퍼센트나 늘었고, 어지간한 건설업체들조차 파산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이 때문에 이명박 정부가 부동산 경기 부양에 그렇게 매달리는 것이다.

내수가 부진한 상황에서 수출마저 감소하고 부동산 시장도 침체하기 시작하자, 올 상반기까지 금융회사를 제외한 1백대 상장기업이 1년 내에 갚아야 하는 단기차입금 등 유동부채 총액이 2백조 원 가까이로 늘어 지난해 상반기에 비해 32.3퍼센트나 증가했다.

두산·코오롱·금호아시아나·STX 등의 재벌들은 유동성 위기설에 휩싸였는데, 이들은 최근 기업 인수·합병으로 거액을 차입했거나 건설사를 가지고 있는 기업들이다.

1997년 경제 위기 때도 한국의 기업들은 수익성이 떨어지는 와중에 단기 외채를 끌어 쓰다 갚지 못해 외환위기를 불러왔고, 한보·기아 같은 재벌들이 파산하면서 그 위기의 파장은 더욱 커진 바 있다.

이번 ‘9월 위기’로 드러난 위험들이 꼭 9월에 폭발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현재의 경제 위기가 1997년 위기와 흡사하게 터질 가능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경제 위기의 고통을 노동자·서민에게 전가 말라

경제 위기 가능성이 점차 높아지는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는 공기업 민영화와 부동산 경기 부양을 발표하더니 9월 1일에는 대규모 감세를 대책이랍시고 내놓았다.

이명박 정부는 법인세율을 인하하면 투자가 증가해 경제성장률이 올라간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법인세율은 2000년, 2002년, 2005년에 28퍼센트, 27퍼센트, 25퍼센트로 이미 낮아졌지만, 기업 투자는 2005년 이후 계속 정체하거나 줄어들어 왔다.

또, 올해 상반기에도 10대 그룹의 현금성 자산은 38조 원이 넘었지만, 이들은 이윤이 남지 않기 때문에 투자를 늘리지 않았다.

소득세나 부동산세 삭감도 명백히 부유층을 위한 정책이다. 재정부는 2005년에 부유층 감세가 “경기부양 대신 정부의 재정 적자와 물가 상승만 야기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한 바 있다.

이명박 정부는 부동산세 삭감과 대운하 재개, 신도시 개발과 재건축 등으로 부동산 가격 하락을 사활적으로 막아보려 한다. 부동산 가격 하락은 한국판 서브프라임모기지 위기를 낳으며 금융시장 전체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감세가 부동산 가격 하락을 막을지도 불확실할 뿐 아니라 설사 일시적으로 부동산 가격 하락을 막는다 해도 거품을 키워 더 큰 위기를 자초할 공산이 크다.

거품

이명박 정부는 이런 미봉책들로 노동자·서민에게 위기의 고통을 전가하며 내년 하반기까지만 경제 위기를 지연해 보려는 듯하다. 그 후에 세계경제가 회복되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경제 위기가 내년에 끝날 것이라는 생각은 근거 없는 낙관일 뿐이고 노동자·서민의 소비를 더욱 위축시키는 정책은 경기 침체를 가속화할 공산이 크다.

한나라당 정책위의장 임태희조차 “민생 고통의 측면에선 과거 IMF 외환위기 때보다 훨씬 더 심각한 게 사실”이라고 말했듯이 서민 경제는 이미 위기에 빠졌다.

밀가루·라면·세제·식용유 등 생필품 11개의 가격은 단 넉 달 만에 최고 14.5퍼센트 올랐다. 뛰는 사교육비와 높은 이자율 등을 고려하면 실질임금은 크게 삭감됐다.

실업률에 잡히지 않는 청년층(15~29세) 미취업자만 71만 명을 넘고 공식적인 청년실업자를 포함하면 실질적으로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청년층만 1백4만여 명에 이른다. 또, 〈서울신문〉이 지난 6월에 조사한 결과를 보면, 서울 영등포역 주변의 노숙자는 지난해 5월 6백여 명에서 올해 1천50명으로 늘어났다.

재벌·부유층 감세가 아니라 재벌과 부유층에 누진세를 거둬 서민 경제를 지원하는 데 쓰고, 부동산 경기 활성화가 아니라 부동산 규제와 공공주택 확대로 서민들의 거주지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도록 해야 한다. 이는 서민 고통은 전혀 아랑곳 않고 재벌·부유층만 신경 쓰는 이명박 정부에 맞서 싸울 때만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