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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간첩 사건이 보여 준 것:
이명박의 공세를 위해 사회분위기 냉각시키기

보수 언론들이 ‘한국판 마타하리'라며 호들갑을 떨었던 원정화 사건은 시간이 흐를수록 의혹이 끊이지 않으며 블랙코미디가 되고 있다. 공안기관들이 또 왜곡·과장·조작을 한 듯하다.

공안당국에 따르면 북한은 절도 전과 2범 원정화의 “개방적인 성관념”을 높이 사 ‘간첩'으로 발탁해 중국 노래방에 먼저 ‘침투'시켰다. 북한제 정력제를 팔아 스스로 공작금을 마련한 “자립형 간첩”인 원정화가 남한 침투 7년 동안 한 일은 몇몇 하급 장교들의 연락처와 인터넷으로 검색 가능한 군부대 위치 등을 알아낸 것이다. 〈조선일보〉조차 그녀가 “북한에 넘겨준 정보 가운데 국가기밀이 없다”고 의혹을 제기할 정도다. 신경쇠약과 겁에 질려 자물쇠를 4개나 달고 사는 여성이 ‘독침 암살'을 계획했다는 것도 황당하다.

기무사는 3년간 그녀를 내사해 왔다지만 물증은 거의 없고, 대부분 앞뒤가 잘 안 맞고 허풍이 섞인 듯한 그녀의 진술에만 의존했다.

심지어 기무사는 원정화가 간첩이라는 “결정적 증거”를 확보하고서도 그녀의 안보강연을 중지시키지 않았고, 국정원은 그녀에게 대북 간첩질을 시켰단다.

이런 점들은 그녀가 남과 북 정보기관 모두가 이용한 말단 정보원 수준임을 시사한다.(어쩌면 국정원이 관리하던 정보원을 기무사가 체포해 버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수사 결과는 한 편의 코미디지만, 공안기관과 우파들이 이 사건으로 노리는 효과는 공포물이다. 공안당국은 외부의 적으로부터 안보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간첩 사건들을 만들어 왔지만, 이는 결국 내부 단속으로 이어졌다. 많은 간첩 사건들이 사회 분위기를 냉각시키는 데 주되게 이용돼 왔다.

이번 사건은 원정화가 체포된 지 40여 일이 지난 시점에서야 발표됐다. 발표 하루 전에는 사노련 회원들이 체포됐고, 당일에는 이명박 정부를 규탄하는 불교도들의 대규모 집회가 예정돼 있었다.

‘적화 야욕'

낮은 지지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로서는 위기를 반전하고 각종 반동 공세에 추진력을 얻기 위해 비교적 손쉬운 대상으로 원정화를 택했을 수 있다.

국가기구는 더욱 더 권위주의화 할 것이다. 국방부는 ‘군 내에 간첩 용의자 50명과 좌익 전력자 1백70여 명이 있다'며 언론플레이에 나섰고, 한나라당은 정부 기관 내 대규모 간첩 조직이 있다고 공포감을 부추기고 있다. 국정원과 경찰 등 억압기구들의 활동을 더 강화하려는 이런 시도는 민주주의의 후퇴를 동반할 수밖에 없다.

한편, 이번 사건은 북한이 끔찍한 억압 체제임을 보여 줬다. 일부 우익들은 이번 사건이 ‘북한이 대남 적화 야욕을 버리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고 호들갑이지만, 원정화 사건의 본질은 오히려 북한 체제 내부 단속에 무게가 있어 보인다.

보위부 소속인 원정화가 수행한 주된 임무는 탈북자 관련 정보 수집과 북한 현지와 연결된 탈북자들의 네트워크 색출인 듯하다. 중국에서도 그녀는 탈북자를 잡아 북송하는 인간사냥꾼 구실을 주로 했다. 그녀가 불쌍해 보이면서도 결코 방어할 수 없는 이유다. 굶주림을 피해 고향을 떠나 떠도는 이탈 주민들을 ‘조국'은 국경을 넘어서까지 추적·박해했던 것이다.

또, ‘성로비'를 통해 경쟁 국가의 하급 관료에게 접근해 정보를 캐는 짓 따위는 자본주의 국가의 전형적 특징이지 노동계급의 아래로부터 자기해방인 사회주의와 아무런 인연도 없다.

남한의 우파 지배자들이 북한의 이런 행태를 비난할 자격이 없음도 물론이다. 이들은 과거 독재 정부 시절에도 지금 북한이 하는 것처럼 정보 요원들을 국경 너머로 파견해 반정부 인사들을 탄압·감시한 전통이 있다. 이들은 원정화가 감히 하지 못한 일도 과감히 수행했는데, 김대중이 일본에서 납치돼 살해될 뻔한 것이나, 중앙정보부 요원이 프랑스에서 김형욱을 살해한 것은 이의 한 사례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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