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이번 촛불항쟁에서 일부 사람들은 촛불항쟁의 자발성만을 예찬하며 조직이나 일관된 행동지침은 필요없다는 식의 태도를 보였다. 운동을 유기적으로 조직하고 행동을 통일하려는 노력이 자발성을 해친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러나 존 몰리뉴는 민주집중제적 사회변혁 조직은 자발성을 해치지 않고 운동의 전진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민주적 중앙집중제(이하 민주집중제)는 민주적 논쟁에 따른 정책 결정을 모든 당원들의 행동 통일과 결합시키는 당 조직 원칙이다. 모든 당원들은 민주적 토론과 논쟁을 거쳐 정책을 결정하고, 그 정책을 실행할 때는 행동을 통일해야 한다.

레닌과 볼셰비키 시대 이래로 대다수 마르크스주의 정당들은 민주집중제를 바탕으로 활동했다. 아니, 활동한다고 주장했다.

내가 “주장했다”고 말한 이유는 이른바 마르크스주의 정당들의 압도 다수가 사실은 옛 소련에 충성하는 스탈린주의 정당이었고, 그런 당에서는 중앙집중제가 압도적이어서 모든 당원이 모스크바에서 결정한 노선에 복종해야 한 반면 민주주의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런 경험으로 말미암아 민주집중제는 악명을 얻게 됐다.

그런데 스탈린주의가 마르크스주의 개념이나 실천을 오용하고 왜곡해서 불신의 대상으로 만들어 버렸다는 이유로 우리가 마르크스주의 개념이나 실천을 거부한다면 우리는 분명히 마르크스주의와 사회주의를 통째로 거부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민주집중제에 대한 적대적 태도는 스탈린주의적 ‘민주집중제’에 국한하지 않는다. 많은 좌파들 ─ 좌파 개혁주의자들, 자유지상주의자들, 자율주의자들, 아나키스트들 등 ─ 이 이 문제와 관련해서 트로츠키주의 정당들을 비판하고 스탈린주의에 강력하게 반대하는 다른 정당들도 싸잡아 비판한다.

예컨대, 영국에서 ‘리스펙트’ 국회의원인 조지 갤러웨이는 사회주의노동자당(SWP) 당원들이 ‘러시아 인형’[뚜껑을 열면 안에서 똑같은 인형이 계속 나오는 러시아의 전통 인형으로, SWP 당원들을 지도부의 꼭두각시라고 비꼬는 말이다] 같다며 SWP의 민주집중제를 비판했다. 그러나 갤러웨이를 제쳐 두더라도, 민주집중제는 심각한 결함이 있는 본래 반민주적인 조직 모델이라는 견해가 좌파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나는 (1) 혁명적 노동자 정당이 투쟁 속에서 노동계급의 지도자 구실을 효과적으로 하려면 민주집중제가 필수적이고 (2) 민주집중제가 반민주적이기는커녕 사실은 가장 민주적인 당 조직 형태라고 주장하려 한다.

민주집중제의 중요성을 이해하려면 민주주의와 중앙집중제를 결합시키려는 노력이 레닌이나 다른 마르크스주의자가 생각해 낸 모종의 자의적 조직 원칙이 아니라, 노동계급 투쟁의 본질 자체에 맹아적 형태로 뿌리박고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노동계급 투쟁은 아래로부터의 투쟁, “압도 다수의 이익을 위한 압도 다수의 투쟁”이다. 노동계급 투쟁의 초기(예컨대, 영국의 차티스트 운동)부터 운동의 가장 중요한 요구 가운데 하나가 정치적 민주주의, 민주공화국이었다. 정치적 민주주의만으로는 사회를 바꾸는 데 충분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노동자들은 민주주의의 축소가 아니라 확대를 요구했다. 즉, 민주주의가 생산과 사회 전체로까지 확대된 사회민주주의를 요구한 것이다. 따라서 각종 노동자 단체·노동조합·협회·정당, 기타 등등이 적어도 처음에는 민주적 규약과 절차를 채택한 것은 당연했고 필연적이었다.

민주주의

그러나 노동자 투쟁에는 중앙집중제의 요소도 내재해 있다. 자본의 권력은 본질적으로 매우 중앙집중적이다. 자본주의 기업에서 내려진 결정은 위에서 아래로, 기업 소유주나 이사회에서 말단 사원에게로 전달되고 거의 군사적 규율에 따라 집행된다. 자본주의가 나이를 먹고 자본의 소유가 더 집중될수록 이 중앙집중화 경향도 점차 확대되고 강렬해진다. 삼성이나 포드나 엑슨이 가격, 공장 폐쇄, 노동쟁의 대처 방안 등에 대해 전략적 결정을 내리면 그들은 전 세계 [지사]의 모든 관리자가 이 결정을 집행하기를 기대할 것이다. 이런 [자본의] 권력에 맞서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지키려면 서로 힘을 합치고 함께 행동하는 것말고는 달리 대안이 없다.

계급투쟁의 가장 기본적 형태인 파업을 생각해 보라. 특정 작업장, 회사, 산업의 노동자들은 파업에 들어갈 것인지 말 것인지를 민주적으로(이상적으로는 대중 집회에서 투표를 통해) 결정하지만, 일단 결정이 내려지면 모든 노동자들이 그 결정을 따라야 한다. 만약 파업을 하지 않기로 결정이 났는데도 일부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인다면 그들은 거의 틀림없이 해고당할 것이다. 그러나 파업을 벌이기로 결정이 났다면 모든 노동자들이 파업에 동참해야 한다. 동참하지 않는 노동자는 파업 파괴자, 배신자가 될 것이다. 이것은 맹아적인 민주집중제다. 그리고 민주집중제를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지적해 줄 만한 사실이 하나 있다. 부르주아 자유주의자들은 노동조합의 연대와 규율이 개인의 신성한 권리를 침해한다고 항상 비난하지만 자본의 중앙집중적 권력이 노동하는 사람들의 권리를 어떻게 침해하는지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혁명정당의 민주집중제는 파업의 민주집중제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둘 사이에는 차이도 있다. 파업에서 민주집중제는 주로 경제적 투쟁에 적용되고 경제 투쟁으로 제한된다. 당에서 민주집중제는 정치적 수준에도, 그리고 어느 정도는 이데올로기 수준에도 적용된다. 이것은 혁명정당이 노동자 운동 전체 안에서 자발적인 소수의 조직이고, 혁명정당의 목표는 정치 권력, 즉 국가 권력을 장악하도록 노동계급을 지도하는 것이고, 그 목표를 달성하려면 노동계급 사이에서 득세하는 부르주아 사상에 맞서 그리고 노동자 투쟁의 발목을 잡고 노동자 투쟁을 부르주아지에게 팔아 넘긴다는 것이 경험적으로 입증된 다른 정치 경향들(개혁주의·스탈린주의 등)에 맞서 다양한 측면의 이데올로기 투쟁을 벌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 정치적인 민주집중제의 필요성은 파업의 사례를 혁명적 상황의 사례로 바꿔보면 알 수 있다. 즉, 대중이 행동에 나서고, 기존 국가 기구가 붕괴하고, 아마도 이중 권력의 요소들 ─ 노동자 평의회, 작업장 점거 물결 등 ─ 이 존재하고, 무장 봉기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운명적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 말이다. 가장 격렬한 계급 전쟁이 한창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결정을 어떻게 내릴 수 있을까? 국민투표 따위는 불가능할 것이고, 의회 청문회 방식의 공개 논쟁을 벌일 수도 없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 계급의 적에게 조심하라고 미리 알려주고 반(反)혁명 탄압을 자초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사실, 노동계급의 모든 부문에 뿌리를 내리고 내부 민주적 논쟁이라는 강력한 전통을 가진 정당만이 대중의 분위기와 [무장 봉기의] 성공 가능성을 정확히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단 결정이 내려지면 그 결정은 분명히 (서울·광주·부산에서 또는 런던·맨체스터·버밍엄에서) 일치 단결해서 실행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혁명은 분쇄되고 말 것이다.

결정

이런 주장이 옳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혁명적 상황도 아니고 사악한 지도자들이 민주집중제를 너무 쉽게 조작했다는 문제점은 여전히 남는다고 비판가들은 주장한다. 반민주적 조작이 당의 형식적 규약과 무관하게 항상 가능하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민주집중제는 그런 조작을 더 어렵게 만들지 더 쉽게 만들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민주집중제는 당의 기층 당원들뿐 아니라 지도자들도 규율하기 때문이다.

민주적 토론과 논쟁의 수준은 높지만 중앙집중제는 거의 없는 당을 떠올려 보라. 토니 블레어가 장악하기 전의 영국 노동당이 그런 정당이었다. 당시 노동당의 연례 당대회에서는 열정적 논쟁, 당 지도부에 대한 비판, 민주적으로 제안되고 표결에 부쳐지는 결의안이 넘쳐났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아무 쓸모가 없었다. 중앙집중제가 없었기 때문에 당 지도부는 당대회 결정 사항들을 간단히 무시해 버렸다. 특히 노동당이 집권하고 있을 때는 더 그랬다. 중앙집중제가 없었으므로 민주주의도 없었다. 왜냐하면 당의 노동계급 다수가 자신들의 견해를 행동 지침으로 만들 수 있는 수단이 없었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민주집중제 문제는 계급 문제다. 노동계급은 민주주의와 중앙집중제가 모두 필요하다. 왜냐하면 노동계급 운동은 함께 행동해야만 성공할 수 있는 아래로부터의 운동이기 때문이다.

존 몰리뉴는 《마르크스주의와 당》(북막스), 《고전 마르크스주의 전통은 무엇인가?》(책갈피), 《사회주의란 무엇인가?》(책갈피)의 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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