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제정신이라면 은행을 구제하면서 이윤은 가만 두고 부채만 떠안겠는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지금 부시를 포함해 전 세계 정부들이 그런 짓을 저지르고 있다.

미국에는 정부의 7천억 달러 구제안에 반대하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언론은 주로 강경 공화당 우파들의 반응에 초점을 맞춘다. 이 안이 “금융사회주의”고 “반(反) 미국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보스턴 금융 지역에서 사무실 청소부로 15년째 일해 온 폴 클랜시는 다른 이유에서 반대한다. “저들이 말하는 구제라는 것은 부자들의 배만 불리는 것입니다 … 저들이 자신이 저지른 일의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합니다. 제가 곤경에 처하면 그들 중 아무도 저를 돕지 않을 것입니다.”

수많은 미국인들은 부시 정부가 민주당의 지원을 받아 7천억 달러를 은행들에게 거저 넘겨주려는 것을 보고 뚜껑이 열렸다.

이런 ‘월스트리트식 복지’의 혜택을 받는 부유한 자들과, 많은 평범한 노동자·민중이 직면한 현실은 너무도 다르다. 노동자·민중은 [저당을 잡힌] 자기 집에서 쫓겨나고 자선단체가 운영하는 할인점에서 옷을 사야하고 때로는 끼니를 걸러야 한다.

부시뿐 아니라 민주당 대선 후보 버락 오바마 등 다른 주류 정치인들도 ‘월스트리트식 복지’에 찬성한 것은 입맛을 씁쓸하게 한다.

문제는 이런 일이 전 세계에서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최근 아이슬란드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아이슬란드 3위 은행을 구제했다.

이런 구제 정책을 펴면 일부 기업들의 장부에서 악성 부채를 지울 수 있지만, 그것은 이제 고스란히 정부의 부채가 돼 앞으로 수십 년 동안 부담이 될 것이다.

지난 30년 동안 정치인들은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면서 시장만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주장했다. 사회주의의 ‘사’자도 꺼내면 안 됐다.

그러나 은행들이 줄줄이 도산하고 주가가 폭락하면서 시장의 작동 방식이란 것이 평범한 사람들에게 시장이 만든 문제를 떠넘기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노동자·민중은 그것을 거부해야 한다.

우리는 노동계급이 투자와 소비를 민주적으로 결정하는 체제, 즉 진정한 사회주의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임을 주장해야 한다.

전 세계의 부를 생산하지만 그 혜택을 누리지 못했던 우리 계급이 이제 반격을 가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