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문제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이하 안보리)로 넘겨졌다. 하지만 이것이 북핵 문제가 더한층 심각한 단계에 돌입했음을 뜻하지는 않는다.

유엔 안보리가 당장 제재 논의를 하는 것이 아닌 데다 제재 논의에 들어가더라도 하나의 견해로 모아지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 상황이 진정된 것도 아니다. 이라크에 대한 대응에서도 보듯이 설사 유엔 안보리가 하나의 견해를 내지 못한다 해도 부시는 이를 기다리지 않고 혼자라도 행동에 나설 태세가 돼 있기 때문이다.

1994년에 북핵 문제가 안보리에 상정됐을 때 바로 이런 일이 벌어졌다. 당시에 클린턴 정부는 안보리가 북한 제재 준비에 들어간 시점에서, 한국 정부와 아무런 의논도 하지 않은 채 독자 공격을 감행하려 했다.

부시 정부는 북한에 어떻게 대응할지 여전히 방침을 정하지 못한 듯하다. 2월 7일 부시는 “모든 선택이 테이블 위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이것은 군사적 방안을 배제하지 않겠다고 북한에 경고한 것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대북 문제에 관해 정리된 입장이 없음을 드러낸 것이다.

미국은 북한의 “위협”을 부풀림으로써 동아시아 지역의 위기를 조성하고, 이를 관리하는 능력을 보임으로써 이 지역에서 패권을 유지하려 하고 있다.

예컨대 미국 중앙정보국 CIA 국장 조지 테닛은 상원 청문회에서 북한의 미사일이 미국 서부 해안을 공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을 MD(미사일방어) 체제 수립을 위한 알리바이로 이용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경쟁국으로 떠오를 수 있는 중국을 염두에 두고 MD를 개발하려 한다.

핵 문제도 마찬가지다. 물론 우리는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지지하지 않는다. 하지만 1만 기 이상의 핵 탄두를 가지고 있고, 핵 선제공격 전략을 수립해 놓고 있는 미국이 북한보다 천배 만배 더 위험하다.

더욱이, 핵은 미국이 북한을 압박하는 진정한 이유가 아니다. 핵은 빌미일 뿐이다. 그렇지 않다면 핵 시설을 재가동한 북한은 그냥 둔 채, 핵 탄두 하나 없고 유엔 무기사찰단은 물론 U2 정찰기까지 받아들이겠다는 이라크를 먼저 공격하려 할 리가 있겠는가?

미국은 막강한 군사력을 이용해 선진 강대국들에게 세계 패권을 재천명하려 한다. 그 일차적인 대상이 이라크다. 미국은 석유와 패권을 위해 지금 이라크 전쟁에 매진하고 있다.

미국이 이 전쟁에서 승리한다면 세계 곳곳에서 전쟁 벌이기를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그 가운데 하나가 한반도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미국이 이 전쟁에서 패배한다면 세계 곳곳에 개입하기를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미국이 베트남 전쟁 패배 이후 수십년 동안 베트남 증후군에 시달렸듯이 말이다.

지금 세계적으로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거대한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이 한반도에서 불러일으키고 있는 위기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모두 이라크 전쟁 반대에 힘을 쏟아야 한다.

이라크 전쟁은 단지 남의 나라 일이 아니다. 미국이 이라크에서 패배한다면 멋대로 한반도에서 핵 위기를 부추기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