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룬다티 로이가 ‘9월이여 오라’라는 에세이에서 지적했듯, 우리는 또 다른 9·11을 기억하고 떠올려야 한다.

지금으로부터 35년 전 1973년 9월 11일 칠레 산티아고에서 피노체트의 쿠데타군 폭격기는 아옌데의 대통령궁을 폭격했다. 쿠데타군 탱크는 노동조합과 대학, 빈민가를 공격했고, 체포하고 납치한 수천 명을 실내 경기장에 몰아넣고, 그들을 다시 국립 경기장으로 끌고가 살해했다. 얼마나 죽었는지, 얼마나 납치됐는지 아직도 정확히 알 길이 없다.

선거로 뽑힌 아옌데 정부에 대한 쿠데타와 학살은 미국의 협조와 지원 아래 진행됐다. 칠레의 9·11 학살 그 와중에 노래로 저항과 혁명을 위해 싸웠던 빅토르 하라가 있다. 실내체육관에서 손가락이 짓이겨지고 살해당한 가수가 있다.

《빅토르 하라 ─ 아름다운 삶, 끝나지 않은노래》는 그의 아내이자 동지였던 조안 하라가 쓴 빅토르 하라에 관한 기록이다. 빅토르 하라는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 도시 빈민가 포블라시온 노갈레스에서 살았다. 그 자신의 성장기가 바로 칠레 피억압민들의 삶을 잘 보여 준다.

빅토르 하라는 신학교와 군대를 마치고 연극에 뛰어들어 연출자로 큰 성공을 거둔다. 그러나 그에게 예술은 칠레 민중의 삶과 역사를 담아내기 위한 투쟁이었다. 민요들을 채집하고 민속춤을 연구하면서 연극에서 점점 음악으로 무게중심이 옮아간다.

인민연합

빅토르 하라의 활동은 당시의 칠레 계급투쟁 상황과 긴밀한 연관을 가진다.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의 쿠바 혁명이 성공을 거두고 1960년대 말 세계적 차원에서 저항이 확대되면서 칠레에서도 분위기는 고조됐고, 1970년 살바도르 아옌데가 인민

연합 후보로 대통령에 당선한다. 빅토르 하라도 바로 그 칠레 민중의 투쟁과 궤를 같이한다. 열성적인 공산당원이 됐고, 인민연합을 위해 자신의 노래와 재능을 기꺼이 저당 잡힌다.

그것은 단지 빅토르 하라만이 아니었다. 대학과 연구소 안에 갇혀 있던 예술가들이 거리로, 빈민가로, 노동자 집회로 향한다. 민중발레단이 창립되고, 예술가들은 민중 속으로 들어가 그들과 호흡하려 노력하고 인민연합 정부를 위해 자신의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빅토르 하라 등이 이끌었던 음악 운동인 ‘누에바 깐시온 칠레나(새로운 칠레 노래)’가 대표적이다. 빅토르 하라와 이들의 운명도 계급투쟁과 함께했다. 인민연합 정부가 최후를 맞이할 때, 그 또한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다.

이 평전은 빅토르 하라의 변화를 잘 추적하고 있고, 당시 칠레 상황의 변화에 대한 생생한 경험을 내놓고 있다.

게다가 매끄럽게 번역된 빅토르 하라 주요 곡들의 가사를 음미할 수 있다. 다만 아쉽게도 한국에서 빅토르 하라의 음반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운 좋게도 빅토르 하라의 대표곡 몇 개를 MP3로 다운받을 수 있는 웹사이트가 있다.(http://www.nuevacancion.net/victor/mp3.html)

그러나 당시 전반적인 상황에 관한 질문이 생겨난다. 당시 칠레 상황에 대한 대안이 조안 하라의 개인적 견해만으로 종합될 수는 없을 것이다.

인민연합이 올바른 전략이었는가?

인민연합 정부 자체가 부르주아 일부와 동맹을 맺는 것이었다. 게다가 쿠데타 직전까지도 아옌데 정부는 기독민주당과 협상에 매달렸다.

이미 위기는 1972년부터 심화하고 있었고 쿠데타가 예상되고 있었는데 그것에 어떻게 맞설 것인가?

1973년 6월 29일 쿠데타 시도가 있었을 때, 노동자들이 무장을 시작했지만 아옌데 정부와 사회당, 공산당은 무장을 반대했다.

그럼에도 《빅토르 하라 ─ 아름다운 삶, 끝나지 않은 노래》는 예술과 혁명, 예술과 사회에 대한 관점과 칠레의 성공과 실패를 되돌아 볼 수 있게 하는 좋은 책이다. 이 책을 더 실감나게 읽고 싶다면 파트리시오 구스만이 제작한 다큐멘터리 〈칠레전투〉 3부작을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