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을 휩쓸고 있는 위기가 자본주의의 무질서하고 파괴적 성격을 만천하에 폭로하고 있다. 전 세계 지배자들은 어떻게 위기에 대처할지를 놓고 분열했다. 저들의 이른바 ‘해결책’이란 것의 한계가 명백히 드러났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현 체제를 뛰어넘는 대안이 있는지, 그리고 그 대안이 어떤 것인지 궁금해 하고 있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은행과 금융권이 현 단계 자본주의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이지만 자본주의 체제의 작동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아니란 것을 이해해야 한다.

약 1백40년 전에 칼 마르크스는 금융경제를 ‘의제[가공] 자본’이라고 불렀다. 금융경제는 노동자들의 노동으로 재화와 이윤이 창출되는 생산적 경제에 기초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핵심 동력은 경쟁이다. 그래서 이 체제는 매우 불안정하다. 회사들은 자원을 확보하고 시장 몫을 늘리고 비용을 줄이려고 무자비하게 경쟁한다. 이는 모두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이런 경쟁으로 사장들이 다음 번 호황 산업으로 생각하는 곳에 너도나도 투자하면서 노동조건, 환경, 궁극적으로는 경제 자체에 매우 파괴적 영향을 미친다.

최근 몇 주 동안 볼 수 있었듯이, 국가 지배자들은 자국 영토에 기반한 기업들을 지원하고 보호한다. 그래서 개별 기업들 간 경쟁이 국민국가와 밀접히 연관되게 되면서 경제적 경쟁이 세상을 갈수록 불안정하게 만들고 전쟁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무기력

자본주의는 많은 부를 생산하지만 동시에 역사상 가장 불평등한 사회를 만들었고 불평등은 전 세계적으로 계속 심화하고 있다.

또, 이윤 추구는 과학 지식을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것이 아니라, 특허가 부여되고 이윤이 창출되고 경쟁자에게서 감춰야 하는 대상으로 변화시켰다.

만약 자본주의가 불안정하고 불평등하고 전쟁을 낳고 생명을 파괴하고 인류의 존재 자체를 위협한다면, 왜 우리는 자본주의를 참고 견뎌 왔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부분의 시간 동안 자본주의가 사회를 조직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여긴다. 우리는 자격증·일자리·주택을 얻으려고 경쟁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기는 환경에서 자라난다.

현존 체제는 또한 대중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세계 인구의 다수가 다른 누군가를 위해 부와 상품을 생산하는 부문에서 일하거나, 그 체제가 작동하도록 돕는 서비스 부문에 고용돼 있다.

노동자들은 자기 일이 수행되는 방식에 영향력을 거의 행사하지 못한다. 비록 많은 곳에서 형식적 정치 민주주의가 보장되지만 경제를 통제할 권한은 보장되지 않는다. 우리는 무엇을 무슨 수단을 사용해 얼마나 생산할지에 대해 집단적으로 결정하지 못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만약 변화가 있어야 한다면 오직 현존 체제의 틀 내에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위기가 닥치면, 그런 생각은 빠른 속도로 변한다.

현 위기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누가 위기의 대가를 치를 것인가다. 최근 몇 주 동안 전 세계 정부들이 은행 체제를 뒷받침하려고 취한 조처들은 모두 자본주의와 이윤지상주의를 되살리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일자리·주택·임금·연금을 지키려면 자본주의와 이윤에 도전해야 한다. 또, 우리는 공세적으로 나가야 하며 왜 자본가들이 단물을 쪽 빨아먹고 버린 은행의 부채를 대중이 책임져야 하는지 물어야 한다.

우리는 단지 은행가나 시장을 구제하는 방식이 아닌 국유화를 요구해야 한다. 대신에 우리는 최근 몇 년간 우리를 등쳐 먹은 은행·에너지 기업·대형 슈퍼마켓의 이윤을 회수해야 한다고 요구해야 한다.

그러나 국유화만으로는 부족하다. 진정한 문제는 누가 그것을 통제할 것인가다. 부·자원·경제 결정권·노동에 대한 통제권이 소수[의 자본가]에게 있는 한, 자본주의의 파괴 행위와 낭비는 계속될 것이다.

우리는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운영할 수 있다. 우리는 아래로부터 경제 활동을 집단적으로 계획하고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을 생산해야 한다.

사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미 꽤 많은 것이 계획되고 있다. 상수도 공급 체제나 대규모 하수 처리 체제를 생각해 보라. 우리는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나오고 다 쓴 물이 하수도로 흘러가 처리될 것임을 알고 있다.

노동자 통제

혹은 전 세계에서 식량이 수확·가공된 후 수송돼 우리 동네 수퍼까지 배달되는 긴 과정이 계획되는 것을 생각해 보라.

그러나 자본주의에서 계획의 문제는 그것이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을 결정하는 계획, 사람과 환경의 안전을 고려한 계획이 아니라, 시장을 위한 계획,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계획이라는 것이다.

또, 상명하달식 자본주의 국가의 계획도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계획이다. 예컨대 스탈린주의 러시아에서 계획은 세계 시장에서의 경제적·군사적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것이었다. 국가 수준의 경쟁도 민간 기업의 경쟁과 동일한 결과 ─ 노동자에 대한 잔혹한 착취 ─ 를 낳는다.

지금까지의 논의에서 두 가지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첫째, 국유화로는 충분치 않다.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계획은 노동자 통제 ─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생산과 조직을 결정하는 것 ─ 와 연결돼야 한다.

둘째, 사회주의는 일국에서 실현 가능하지 않다. ‘일국 사회주의’는 결국 냉혹한 경쟁을 강요하는 시장 논리에 휩쓸릴 것이다.

오늘날 자본주의 체제는 전 세계적으로 고도로 통합된 체제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 위기가 매우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전 세계 곳곳에서 천연자원·공장·기타 작업장을 누가 통제하고 누가 사회의 우선순서를 결정할 것인가를 둘러싼 투쟁이 진행되고 있다.

경제 위기가 닥쳐오자, 위기가 평범한 사람에게 미치는 효과를 막기 위해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손 잡고 싸울 기회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사회를 이윤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운영해야 한다는 주장을 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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