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9년 이후 최악의 경제 위기가 세계 시장을 강타하고 있다. 알렉스 캘리니코스가 전 세계의 정치 불안정성을 심화할 요인들을 분석한다.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런던대학교 킹스칼리지 교수이고,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 중앙위원이다. 국내 번역된 주요 저서로는 《칼 맑스의 혁명적 사상》(책갈피)과 《미국의 세계 제패 전략》(책갈피) 등이 있다.

2008년 여름과 이른 가을에 걸쳐 전 세계적으로 경제적·지정학적 불안정이 더 심화하고 있다. 2007년 8월 금융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신용 경색이 시작됐고, 이윽고 경제 위기가 전 세계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동시에, 지난 8월 러시아와 그루지야 사이의 짧은 전쟁 이후, 패권 국가의 지위를 지키려는 미국의 모험 때문에 러시아와 매우 위험한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우리는 반자본주의·반제국주의 좌파의 강력한 힘이 요구되는 시점에 서 있다.

신용 경색이 발생한 뒤 몇 달 동안 주류 언론인과 경제학자 들은 위기의 확산을 막을 수 있다고 자신했다. 이유는 가지가지였는데, 어떤 이는 금융시장, 혹은 ‘앵글로색슨’ 자유시장 경제만 위기를 겪고 유로화 통용 지역이나 중국·인도 등 ‘신흥시장 경제’는 미국과 ‘탈동조화’해 세계 자본주의 성장 동력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메커니즘

그러나 이유는 다양하더라도 함축하는 바는 비슷했다. 올해 봄 연방준비제도이사회(미국 중앙은행) 전 의장 앨런 그린스펀이 말한 것처럼 “최악은 끝났다”는 것이다.

9월 15일 세계적 투자은행인 리먼브러더스가 무너졌을 때 그린스펀은 자신이 매우 어리석었다고 느꼈어야 마땅하다. 지금 세계 자본주의의 주요 경제들이 경기 후퇴에 영향받고 있다.

물론, 그 속도는 불균등하다. 가장 최근에 발표된 통계를 보면, 2008년 2분기에 유로화 통용 지역, 일본, 영국, 캐나다는 성장률이 정체하거나 마이너스를 기록했고, 위기가 시작된 미국은 3.3퍼센트 성장했다. 자본이 이탈하기 시작하면서 6~9월 사이 2백95억 달러가 신흥시장에서 빠져나갔다. 상하이 주가 지수는 2008년 1~8월 사이 57퍼센트나 폭락했다.

세 가지 메커니즘이 작용하면서 경제 불황을 심화시키고 있다. 첫째는 신용 경색이다. 2000년대 초 그린스펀과 동료 중앙은행장들은 미국 이윤율 하락이 심각한 불황으로 발전하는 것을 막으려고 미국과 세계경제에 값싼 신용을 쏟아 부었다.

그래서 주택 시장을 중심으로 투기 거품이 발생했고(단지 미국뿐 아니라 영국, 남아일랜드, 스페인에서도), 2007년 8월 그 거품이 꺼졌다.

그 결과 미국과 유럽 은행들은 엄청난 악성 부채를 졌고 설상가상으로 어느 은행이 얼마나 많은 악성 부채를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불확실성 때문에 전 세계 금융시장이 마비됐다. 은행들은 사실상 서로 대출하기를 중단했다.

불황이 전면화하면, 이에 반응해 금융시장 상황이 더 나빠질 것이다. 물가상승과 실업 때문에 기업들이 파산할 것이고 가구들이 부채를 상환하지 못하면 은행들이 보유한 악성부채가 더 늘어날 것이다. 자본 축적 과정에서 신용이 핵심적 구실을 하는 것을 감안할 때 이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다.

둘째 메커니즘은 물가상승이다. 신용 팽창에 힘입은 미국 경제의 회복과 미국에 값싼 공업제품을 수출하는 중국의 거침없는 성장에 힘입어 2000년대 중반에 세계경제가 호황을 누릴 수 있었다. [경제 호황으로] 석유와 다른 천연자원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가격이 폭등했다. 물론 지난 7월 1백50달러에 이른 석유 가격이 9월 중순에 1백 달러까지 떨어진 것이 보여 주듯이 금융 투기꾼들이 상품 시장에서 [석유]가격을 올리는 데 일정한 구실을 한 것도 사실이다.

물가급등은 현 상황에서 두 가지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먼저, 물가급등은 실질임금을 깎는다. 남반구에 사는 많은 빈민에게 이것은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다. 그러나 그 정도로 심각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재화와 서비스 구입에 더 적은 돈을 쓰게 된다. 칼 마르크스와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같은 점을 지적했다. 즉, 지출이 줄면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는 노동자들이 해고되고 이것이 수요를 줄이면서 고용이 더 악화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중앙은행들은 물가상승을 잡기 위해 높은 이자율을 유지하라는 압력을 받고 있다. 지난 30년 동안 신자유주의가 승리한 결과로 새로운 경제 정책 체제가 성립됐다. 그 결과 선출되지 않은 중앙은행장들에게 이자율을 정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됐다. 보통 그 권한에는 물가상승률을 낮게 유지하라는 조건이 따라 붙었다.

그래서 현재 중앙은행들은 높은 이자율을 유지하라는 압력을 받고 있다. 그 결과 돈 빌리기가 더 어려워지고 더 비싸지더라도 말이다. 유럽중앙은행과 영국은행은 물가상승률을 줄이기 위해 불황도 감수할 수 있다고 밝혔다.

경제 위기를 확산시키는 셋째 메커니즘은 환율 변동이다. 주도적 자본주의 국가로서 미국의 지위 덕분에,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다른 나라 중앙은행보다 이자율을 낮추기가 용이하다.

그래서 투자자들은 [이자율이 더 높은] 다른 곳에서 더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에 달러를 덜 선호하게 된다. 부시 정부는 미국 수출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려고 노골적으로 약(弱)달러 정책을 폈다.

달러화의 가치 하락 ─ 2002년 초~2008년 초 사이 25퍼센트가 하락했다 ─ 속도는 신용 경색 초기 국면에서 더 빨라졌다. 그 덕분에 미국 상품의 가격이 싸지면서 수출이 늘었다. 2008년 2분기 미국의 경제 성장은 거의 전적으로 수출 증가와 수입 축소의 효과였다.

그러나 이것은 다른 곳에서 역효과를 발생시켰다. 세계 기축 통화로서 달러화의 주요 경쟁자인 유로화 환율이 크게 상승한 것이다.

유로화 통용 지역 수출품 가격이 비싸지면서 이 지역의 성장률이 더 낮아졌다. 예컨대 실질임금을 크게 낮춘 잔혹한 산업 구조조정을 겪은 후 2000년대 중반 세계 제1의 수출국으로 부상한 독일에게 이것은 심각한 문제였다. 독일 경제의 미약한 회복은 전적으로 수출 덕분이었기 때문이다.

다양한 메커니즘과 경향이 상호 작용하는 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복잡성 때문에 현재 위기가 어떻게 발전하고 얼마나 심각할지 예측하기 힘들다.

예컨대 환율을 보자. 달러의 가치는 2008년 초반 7퍼센트 하락했지만 그 뒤 9월까지 10퍼센트 상승했다. 이것은 아마도 경제 위기의 심각성이 드러나자 ‘핫머니’(유리한 이자율을 쫓아 유입된 자금)가 체제의 핵심부로 도피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결과, 유로화 가치가 하락했고, 주택과 금융 위기로 몸살을 앓고 있는 영국 파운드는 아예 추락하고 있다. 만약 이 추세가 지속된다면 미국 경기의 급격한 하강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미국 정부는 이것을 막으려 한다. 그래서 1930년대 이후 가장 우익적인 공화당 정부가 엄청난 돈을 금융 시장에 퍼부었다. 재무장관 헨리 폴슨이 몇몇 중요한 국가 개입 정책을 조직했다.

첫째는 2008년 2월 투자 은행 베어스턴스를 구한 것이다. 그 뒤 9월 초 프레디맥과 패니메이를 사실상 국유화했다. 프레디맥와 패니메이는 미국의 새로운 모기지[부동산담보 대출] 중 4분의 3을 차지한다. 이 두 기관의 인수로 미국 정부의 부채 규모는 총소득의 5분의 2가 됐다.

그리고 리먼브러더스 몰락 후 시장을 휩쓸던 공포심을 진정시키려고 9월 15일 8백50억 달러의 예금을 동원해 AIG를 인수했고, 곧 7천억 달러를 들여 투기 활동 실패로 은행들이 짊어진 악성 금융 자산들을 사들이겠다고 발표했다.

이런 극적 조처들은 미국 국가 경영자들이 미국 금융제도가 1930년대처럼 붕괴하는 것을 막겠다고 굳게 결심했음을 보여 준다. 그린스펀뿐 아니라 IMF도 1930년대와 현 상황을 비교하고 있고, 이것은 전 세계 지배자들이 현 위기를 얼마나 심각하게 보고 있는지 증명하는 예다.

국가 개입

그러나 국가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폴슨은 두 가지 이유에서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도록 방치했다.

첫째, 폴슨은 리먼브러더스를 구출하면 나중에 일이 잘못돼도 국가가 구해줄 것으로 가정하고 은행들이 투기 활동을 계속하지 않을까 우려했다.

둘째, 금융 전문가 아비나쉬 페르사우드는 미국 부채 규모가 급격히 늘어난 후 “신용 시장이 미국 정부의 파산 가능성을 따지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이런 ‘전무후무한 사태’로 미국 정부마저 시장의 신뢰를 유지하는 문제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폴슨이 곧 입장을 바꾼 것은 미국 국가 경영자들이 얼마나 사태를 우려하고 있는지를 보여 준 것이었지 금융 체제가 위기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었다.

또, 자본 축적은 개별 자본들 간의 경쟁적 축적이 원동력이다. 각 나라들은 자국 영토에 근거한 기업들이 경제 위기에서 최악의 타격을 입는 것을 막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환율 변동은 ‘꾸러미 돌리기’[꾸러미를 돌릴 때마다 짐이 늘어나는 놀이] 놀이와 비슷한 결과를 낳는다. 예컨대 환율이 강세인 나라들은 생산과 고용에서 타격을 입는다. 그래서 그들이 자국 통화 가치를 내리면 상대적으로 환율이 오른 나라들이 타격을 입는다.

최근 [WTO] 도하 협상 실패가 반드시 보호무역주의 경향의 갑작스런 강화로 연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북반구와 남반구를 통틀어서) 대형 무역 국가들이 서로 타협할 여지가 점차 줄고 있음을 보여 줬다.

한편, 경제적 불안정의 확산이 세계 국가 체제에 존재하는 지정학적 불안정과 결합하고 있다. 이것은 현대 자본주의적 제국주의의 특징이 경제적 경쟁과 지정학적 경쟁의 결합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9·11 이후 군사적 우위를 이용해 미국의 세계 패권을 지키려는 부시 정부의 노력이 세계 정치를 좌우했다. 이 과정에서 이라크 정복이 핵심 열쇠였다. 이라크 정복 후 중동을 자유주의적 자본주의 모델에 따라 변화시키고, 세계 제1의 석유 생산 지역에 대한 미국의 지배를 강화하고 다른 이들을 겁준다는 계획이었다.

부시의 전쟁 몰이 결과는 별로 좋지 않다. 부시 정부는 3년 반 동안 재앙을 겪은 후 이라크에 일정한 안정을 가져올 수 있었다. 이것은 이른바 ‘증파’의 효과이기보다는 두 가지 정치 거래 덕분이었다.

첫째 거래는 사담 후세인 제거 이후 영향력이 강화된 이란과, 누리 알말리키의 꼭두각시 정부를 구성하는 이란의 동맹인 시아파 정당들과 맺었다.

둘째는 수니파 저항세력들과 맺은 거래다. 그들은 원래 점령군에 맞서 싸웠지만 말리키 정부와 알카에다의 공격으로부터 보호받고 돈도 받을 겸 미국과 동맹 관계를 맺었다.

이런 전략의 문제점은 명백하다. 현재 미국은 서로 매우 적대적인 두 집단과 동맹을 맺고 있다. 이런 허약한 동맹관계는 시간이 지날수록 흔들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미 말리키 정부는 미국 정부에게 2011년 말까지 철군한다는 약속을 억지로 받아냈다. ‘수니파 각성 운동’도 말리키 정부가 자기 구성원들을 탄압할 뿐 아니라 꼭두각시 정부의 군대와 경찰에 채용한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고 불평하고 있다.

시아파 빈민과 점령 반대 여론의 지지를 받고 있는 무크타다 알사드르의 마흐디군은 지금은 조용하지만 영원히 그러지는 않을 것이다.

한편,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과 나토는 1980년대 옛 소련의 군대를 무너뜨린 똑같은 세력을 상대로 이길 수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더 위험한 것은 그 전쟁이 파키스탄으로 확산된 것이다. 전 대통령 페르베즈 무샤라프가 자리에서 쫓겨난 것도 그것과 연관돼 있다.

무샤라프의 후임 대통령인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가 당선하기 직전에 미국 정부는 아프가니스탄 국경을 넘어 파키스탄 지역을 공격했다. 그 때문에 민간인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파키스탄의 탈레반 세력만 더 강화했다.

부시와 체니는 존 매케인을 당선시키기 위한 마지막 노력으로 이란 공격을 계획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사라 페일린을 영웅으로 떠받드는 우익 광신도들만이, 이란 침략으로 상황이 악화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역풍’

한편, 부시 정부는 코카서스 지역에서 러시아를 자극해 또 다른 ‘역풍’ ─ 당장은 9·11만큼 극적이지는 않지만 잠재적으로는 매우 심각하다 ─ 에 직면했다.

냉전 종식 후 미국 패권 전략의 핵심적 내용 중 하나는 러시아의 약점을 이용해 유럽연합과 나토를 동·중유럽으로 무자비하게 확장하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러시아를 포위하고 미국의 영향력을 유라시아 대륙 중심부로 확장한다는 계획이었다.

이 정책은 1990년대 초 빌 클린턴 정부에서 시작돼 부시 정부로 계승됐고, 우크라이나와 그루지야의 취약한 친서방 정부들의 지지를 받았다.

1990년대 대통령 보리스 옐친 시절 러시아가 약할 때 이것은 값싸고 효과적인 계획으로 보였다. 그러나 블라디미르 푸틴과 그의 문하생이자 후계자인 디미트리 메드베데프 치하 러시아에서는 상황이 변했다.

러시아 경제는 2000년대 중반 에너지 호황의 주된 수혜자 중 하나였다. 푸틴은 석유와 천연가스 산업에 대한 정치적 통제를 재확립했다. 푸틴은 러시아 국가의 기강을 확립했고, 군사력을 재건했고, 일종의 권위주의적 자본주의를 장려했는데, 이데올로기적으로 이것의 핵심적 내용은 몰락한 소련 제국의 영광을 최대한 회복한다는 노골적인 민족주의 메시지였다.

상황이 어쨌든, 우크라이나와 그루지야 ─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주요 국가들 ─ 까지 나토를 확대한다는 계획은 무모하다.

어리석음

미국과 러시아 사이의 상대적 힘의 변화를 볼 때, 지난 4월 나토 정상회담에서 부시가 밀어붙인 나토 확장 정책은 어리석음의 극치다. 이라크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자만은 ─ 그리스 신화가 말하듯이 ─ 인과응보를 가져오기 마련이다.

러시아·그루지야 전쟁에서 실수와 음모가 한 구실에 대해 여러 가지 설이 난무했다. 정말로 체니와 미국 정부의 우익들이 그루지야의 칠칠치 못한 대통령 미하일 사카슈빌리가 남오세티아를 공격하도록 부추겼을까? 혹은 사카슈빌리는 러시아 정부의 모사꾼들이 쳐 놓은 덫에 걸린 것인가?

아마도 두 질문에 대한 답은 모두 ‘그렇다’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러시아가 가진 세 가지 이점에 비해 덜 중요한 것이다.

먼저, 러시아는 그 지역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이 사카슈빌리에게 아무리 많은 무기와 군사 자문을 보내더라도 뛰어넘을 수 없는 압도적 군사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

둘째, 미국 정부의 군사적 대응 ─ 그루지야가 나토 회원국이었다면 필요했을 수도 있다 ─ 은 전면전을 불러올 가능성이 있다. 제아무리 부시와 체니라도 그루지야를 두고 핵전쟁을 벌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

어떤 경우든, 미국의 군사력의 상당 부분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묶인 상황에서 미국 정부의 선택의 폭은 넓지 않다. 냉전 때 가장 위험한 상황이었던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미국이 재래 군사력에서도 지역에서 명백한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셋째, 푸틴과 메드베데프는 과거 미 국방장관 럼스펠드가 이라크 전쟁 직전에 했던 것처럼 ‘신’유럽과 ‘구’유럽의 분열을 이용할 수 있었다.

동·중유럽은 유럽연합과 나토 회원자격을 자유주의 자본주의 클럽에 가입하고 러시아에 대한 안보를 보장받을 수 있는 패키지 상품으로 여긴다. 그루지야 전쟁 이후 이들 나라 정부는 모스크바를 비난하고 그루지야와 우크라이나에 대한 나토의 연대를 요청하는 선전전에 뛰어 들었다. 폴란드는 서둘러서 미국과 대중적 반감이 큰 미사일 방어 조약에 서명했다.

유럽 대륙 강국인 프랑스와 독일은 이와는 다른 노선을 택했다. 그들은 지난 4월 우크라이나와 그루지야의 나토 가입 계획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그들은 러시아의 그루지야 공격 후 나토와 유럽연합 정상 회담에서 러시아를 비난하는 말은 무성했지만 그것이 행동으로 연결되지 않도록 만전을 기했다.

심지어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의 우익 정부조차 그루지야 문제에서는 온건한 입장을 취했다. 이런 입장을 취한 이유는 아주 비열했지만(특히 베를루스코니의 경우), 가장 중요한 이유 ─ 러시아에 대한 유럽연합의 에너지 의존도가 갈수록 높아지는 것 ─ 는 한동안 변하지 않을 것이다.

2020년에 유럽의 천연가스 생산량은 2006년의 절반에 불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러시아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천연가스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유럽 [천연가스] 소비에 대한 러시아의 기여가 현 수준인 25퍼센트 이상으로 높아질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

캠브리지 에너지 연구회의 사이먼 블레이키는 〈파이낸셜타임스〉에 이렇게 말했다. “[러시아와 유럽의 에너지] 상호의존도가 너무 높아 20년이 지나더라도 크게 변하기 힘들 것이다.”

러시아는 그런 현실을 이용해 미국의 유럽 동맹들을 분열시켜 미국이 러시아와의 대결에 유럽 동맹국들을 단결시키지 못하게 만들고, 장기적으로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새로운 냉전이 시작되지 않을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최근의 부활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으로 봤을 때 러시아의 상대적 힘이 크게 하락한 것이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소련은 유라시아 대륙에서 최대의 영토를 확보할 수 있었다. 1970년대에는 엄청난 핵무기뿐 아니라 재래식 군사력을 전 세계에 파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1980년대에만 해도 소련은 세계 제조업 생산량의 14.8퍼센트를 차지했는데, 이는 당시 미국(31.5퍼센트)의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양이었다.

2007년 가장 유리한 국민소득 계산법(구매력지수)을 따르더라도, 러시아는 세계 총국내생산의 3.2퍼센트에 불과하다. 이것은 1992년(4.2퍼센트)보다 낮고, 같은 해 미국(21.63퍼센트)보다는 비교할 수 없이 낮은 수준이다. 2006년 러시아 군비 지출을 가장 높게 잡았을 때 대략 7백억 달러 정도다. 반면에 같은 해 미국 군비 지출은 무려 5천3백59달러였다.

러시아는 전략적·경제적으로 알짜배기 지역인 우크라이나와 중앙아시아를 잃었고, 인구도 계속 줄고 있다.

취약

또, 옛 국가자본주의 시절보다 세계시장에 깊숙이 편입돼 있기 때문에 훨씬 더 [외부의 경제적 충격에] 취약하다. 그루지야 전쟁 이후 러시아는 상당량의 자본 이탈을 겪었다. 부분적으로 세계적 신용 경색이 지역에 영향을 미친 것이기 때문이지만, 모스크바 증시는 5월 정점에 달한 후 9월 중순까지 50퍼센트나 떨어졌다.

그러나 이런 약점을 큰 그림에서 봐야 한다. 미국과 러시아의 경제력·군사력 격차는 냉전 때보다 훨씬 더 크다. 즉, 현재 미국만이 유일한 세계적 제국주의 열강이다.

그래서 미국은 다른 어느 국가보다 자신의 재원을 훨씬 더 넓은 지역에 사용해야 하고, 폴 케네디가 ‘제국의 과잉확장’이라고 부른 것에 취약하게 됐다. 러시아는 미국이 서아시아[중동]에 발이 묶이면서 나타난 약점을 이용하려 한다.

러시아는 여전히 상당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고 에너지 시장 호황 덕분에 혁신할 수 있었다. 러시아는 그루지야 전쟁을 통해 자국 국경 지역에서 제국주의적 이익을 지킬 능력이 있다는 것을 과시했다.

러시아는 지구적 수준에서는 미국과 경쟁할 수 없을 것이지만 몇몇 중요한 지역, 특히 중요한 에너지 공급 지역인 코카서스나 중앙아시아, 또는 어쩌면 중동에서는 미국의 영향력에 도전할 수 있다.

이것이 보여 주는 것은 비록 미국이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오늘날 세계 정치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전통적으로 제국주의 간 경쟁이라 부른 동력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중국 경제의 급속한 성장에 따른 세계 경제력의 재분배도 고려해야 한다. 중국이 ‘다음번 초강대국’이라는 온갖 주장은 황당하다. 설사 중국이 매년 8~10퍼센트씩 성장하더라도 앞으로 몇십 년 동안 여전히 가난한 국가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은 지난 25년간 세계 자본주의에서 가장 역동적 지역이었던 동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가 되고 있는 중이다.

미국이 유럽과 중동뿐 아니라 이 지역에서 패권을 차지하려는 상황에서, 그리고 원재료에 대한 중국의 수요가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의 전통적 종속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미국과 중국 간 경쟁은 격화할 것이다. 이미 미 국방부는 중국의 군사력에 대한 연례 보고서를 제출하고 있다.

우리는 불안정한 상황들이 혼합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몇 가지가 더 있다. 생각해 보자. 만약 많은 전문가들이 예측하듯이 중국에서 국가와 민간 자본 간 잡종이 내부적으로 붕괴한다면? 그러나 불안정의 근원은 명백하다. 위기로 점철된 자본주의적 경제 발전과 국가들 사이의 상대적 힘이 변화하면서 패권적 위치가 흔들리는 미국이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벌이는 모험. 코카서스 전쟁은 이 두 가지가 상호작용할 때 어떤 위험이 발생하는지 보여 줬다.

해결책은 명백하다. 성취하기는 쉽지 않지만 말이다. 쇠퇴하는 ‘유일 초강자’에 맞서 우리는 〈뉴욕타임스〉가 2003년 2월 15일 대규모 반전 시위 때 ‘제2의 초강자’라고 불렀던 세력을 부활시켜야 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힘을 단지 전쟁광과 전시 부당이득자뿐 아니라 그들 뒤에 있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에 맞서도록 집중시킬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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