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2월 28일까지 금호미술관에서 1919년 설립된 독일의 조형예술학교 바우하우스에 관한 전시 ‘유토피아 ─ 이상에서 현실로’가 열린다.

바우하우스는 기존의 낡은 사상과 새로운 혁명적 사상이 충돌하는 예술교육의 실험실이었다.

러시아에서 노동자들이 권력을 장악하고 제1차세계대전을 종식시키자 혁명의 물결이 전 유럽을 휩쓸었다. 곧 독일제국이 독일 노동자·병사 평의회에 의해 무너졌다. 칼 리프크네히트의 말대로 “4년 동안의 전쟁 때문에 피 흘리고 굶주렸던 사람들이 이제 무장한 병사들과 붉은 깃발들을 따라 교외에서 도심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바우하우스는 이 같은 혁명적 열기를 흠뻑 껴안았다. 초대 교장인 발터 그로우피스는 제1차세계대전에 참전해 전쟁의 끔찍함을 목격했다. 그는 인간이 기계를 다루는 방식이 다른 인간을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들 자신의 유익함에 복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취지에 따라 바우하우스는 전쟁기계와 군사기지가 아니라 인간의 필요를 위한 건물과 도구 제작에 예술적 창조력을 결합시켰다.

교수들은 기존의 위계적 훈련을 고집하지 않았고, 학생들의 각기 다른 개성을 존중하며 예술적 열정과 명확한 사고방식을 이끌어내려 했다. 학생들은 개인의 독립성을 발전시키면서도 상호협력을 통한 집단적 창조를 이뤄내는 방법을 실험했다.

어떤 학생은 거리로 내몰린 가난한 이들이 싸고 편리한 집에서 살기를 원했고, 또 어떤 학생들은 이를 위해 사회 전체가 노동자들 스스로에 의해 새롭게 개조되기를 희망했다. 학생들은 그들의 작품에서 회화, 조각, 연극 등 미적 요소와 물리학, 건축학 등 과학적 요소를 결합시켰다.

당시 16세의 바우하우스 학생이었던 알렉 암스트롱은 이렇게 회상한다. “급진 정치에 깊이 파고드는 학생들이 이곳에 많이 모였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모두 할 수 있었다. 학교는 자유로웠다 … 학생들 중 몇몇은 공산주의자였다. 나도 그들 중 하나였다.”

1929년 대공황 이후 나치는 급성장했다. 나치는 바우하우스의 실용품들을 싫어하진 않았지만, 바우하우스가 가진 혁명적 상징성을 제거하고 싶었다.

나치는 창조적 예술 행위를 억눌렀다. 히틀러가 총리에 임명된 지 석 달 만에 바우하우스는 폐교됐다.

바우하우스는 독일 혁명의 운명과 함께 사라졌지만 오늘날 우리 삶 곳곳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우리는 바우하우스를 통해 혁명의 성패가 훗날 인간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진실하게 느낄 수 있다.

이번 전시는 당시 바우하우스 예술가들이 제작한 가구, 생활용품, 부엌, 그리고 건축 모형들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다.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영상 자료도 준비돼 있다. 알차게 준비된 이번 전시에서 예술과 과학을 인간의 삶에 녹여내려 한 그들의 노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문의 : 금호미술관 (02-720-5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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