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의 촛불〉 7호의 《마르크스주의에서 본 영국 노동당의 역사》 서평은 영국 노동당의 역사를 통해 개혁주의의 모순과 한계를 지적하고 개혁주의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전술적 태도까지 제시하고 있어 매우 유익했다.

나는 거의 유일하게 “실질적인 개혁”을 제공했던 노동당 애틀리 정부의 진실에 대해 좀더 덧붙이고자 한다.

노동당 애틀리 정부의 “실질적 개혁”은 결코 아래로부터 투쟁이나 노동당 의원들의 ‘의회 전투’에서 쟁취한 성과가 아니었다.

애틀리 정부의 개혁은 제2차세계대전 뒤 영국 자본주의의 복구를 위해 효율적 국가 개입이 필요하다는 자본가들의 ‘필요성’과 ‘동의’ 덕분에 진행될 수 있었다.

애틀리 정부의 국유화는 “노동과 자본의 세력 균형을 바꾸는 수단”이 아니라 영국 자본주의 관리를 위한 “경제적 효율성” 때문에 추진됐다.

그래서 보수당의 주요 인사들, 심지어 처칠도 국유화에 반대하지 않았다. 은행·석탄·가스·전력·교통 산업 국유화에 반대하는 의원들은 거의 없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노동당의 국유화 조처들이 “대부분 보수당이 주도한 조사위원회의 보고서에 대응한 결과”였다는 점이다.

그러나 경제적 여건이 어려워지자 개혁주의는 금세 한계를 드러냈고 “실질적 개혁”은 모두 후퇴했다. 애틀리 정부는 1947년 금융 위기가 시작되자 ‘영국 산업을 더 생산적으로 만들 것인가’, ‘사회적 지출을 통해 부의 재분배를 이룰 것인가’ 하는 시험대에서 전자를 택했다. 또, 공공투자와 기본식량 배급량을 축소하고 임금 동결을 강요하며 노동자들을 공격했다.

“개혁주의의 절정”이라고 칭송받는 노동당 애틀리 정부의 역사는 오히려 개혁주의의 한계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 준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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