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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캘리니코스 논평:
왜 민주적 계획경제가 필요한가?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런던대학교 킹스칼리지 교수이고,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 중앙위원이다. 국내 번역된 주요 저서로는 《칼 맑스의 혁명적 사상》(책갈피)과 《미국의 세계 제패 전략》(책갈피) 등이 있다.

오늘날 경제 위기는 각국 정부들이 사적 부문을 인수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고 있다. 얼마 전만 해도 이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은행에 자본을 대규모로 투입해 부분적으로 국유화하는 것 ─ 지난주 영국 신노동당 정부가 발표한 핵심 조처다 ─ 은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영불해협을 건너 유럽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 조처는 많은 지배자들의 눈에도 아직 충분치 않다. 지난주 금요일 〈파이낸셜타임스〉에 글을 쓴 폴 드 그로위는 전체 은행 시스템에 대한 “일시적 국유화”를 주장했다. 그의 논지는 이런 것이다. 이미 입은 손실과 앞으로 입을 손실에 대한 두려움으로 움츠러든 은행들이 장기 대출을 중지한 상황에서, 오직 국가만이 이를 책임질 자금과 의지를 갖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일단 금융시장이 안정되고 “은행 시스템의 근본적 개혁”이 이뤄지면 “정부는 다시 은행 시스템을 민영화할 수 있을 것이다.”

국유화

다시 말해, 국가는 시장 자본주의의 재활을 도우려는 일시적 조처로서만 개입하고 국유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단 이 조처가 성공하면 국가는 다시 뒤로 빠져야 한다.

이 전략은 명백한 문제를 안고 있다. 즉, 금융시장이 다시 똑같은 문제에 봉착하는 것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 답은 아마 규제가 될 것이다. 은행을 구제해 주는 대신 국가는 그들을 더 강력히 규제할 것이다.

문제는 이것이 이미 일어났던 일이라는 것이다. 1930년대 대공황에 대한 대응은 대개 국가가 경제 전반, 특히 은행 시스템을 훨씬 강력하게 통제하는 것이었다.

1950년대와 1960년대, 자본주의가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을 때 ─ 제2차세계대전은 이 회생의 토대가 됐다 ─ 자본주의는 곧 자신을 옥죄 온 국가의 규제망을 해체하기 시작했다.

금융시장은 국가 통제를 피해 갈수록 효율적으로 됐다. 결국,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다시 찾아온 경제 위기와 계급투쟁을 배경으로 영국의 마거릿 대처와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은 금융시장에 대한 모든 규제를 없앴다.

지금이야말로 이 롤러코스터에서 다 같이 발을 뺄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인 듯하다. 더 또는 덜 규제된 시장 자본주의의 굴레에서 벗어나 이것과 근본적으로 다른, 경제적 협력을 다 같이 채택할 때다.

이것은 시장을 없애는 것을 뜻할 것이다. 물론 이것이 곧바로 이뤄지진 않을 것이다. 아마도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 첫걸음은 자본주의를 이끄는 눈먼 경쟁을 계획경제로 바꾸는 것이 될 것이다.

계획은 두 가지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첫째로 지금 투자를 하거나 미래 생산을 위해 자원을 아껴두는 일 등이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집단적 토론을 통해 결정될 것이다.

기후변화가 좋은 예다. 오늘날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얼마까지 줄이겠다는 목표치는 있지만 실제 배출량은 계속 늘고 있다. 그것은 서로 경쟁하는 기업·국가 들이 이 목표치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부담하길 꺼리기 때문이다. 계획경제는 체제 전체가 자원을 활용하는 데 탄소를 전혀 사용하지 않거나 소량의 탄소만 사용하도록 바꿀 수 있을 것이다.

둘째로 계획은, 그 결정으로 직접 영향을 받는 사람들 스스로 경제적 문제를 결정할 수 있게 할 것이다. 엄청난 연봉을 받는, 단지 수천 명에 불과한 은행가들의 멍청한 행동 때문에 이런 재앙적인 사태가 발생했다는 데 분노하는 사람들이 전 세계적으로 엄청나게 많다.

계획경제 하에서는 네트워크로 연결된 생산자와 소비자 들이 자신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필요한 자원을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토론을 통해 결정할 것이다. 이 네트워크는 쟁점에 따라 지역적·전국적·세계적 수준에서 운영될 것이다.

계획은 우리의 목표와 자원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것이다. 또, 민주적일 것이다. 물론 지배자들 중에는 ‘계획’이란 말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키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은행 국유화 조처도 [그들 말마따나] ‘빌어먹을’ 계획의 일종이다. 정부는 돈을 빌려 줄 기업들을 결정해 자원을 배분하는 일에 개입할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이런 결정에 평범한 시민들의 목소리는 배제될 것이고 여전히 기업의 이윤이 핵심 고려 사항이 될 것이란 점이다.

우리에겐 이 믿지 못할 체제를 영구히 대체할 진정한 계획경제 체제가 필요하다.